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검색
칼럼 모아보기
ERICK squareal Research & Innovation Center of Korea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계기교육 혹은 사회현안교육을 어떤 원칙으로 할 것인가

#237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2016.10.19

필자는 이른바 계기교육을 어떤 원칙으로 실시해야 교육적으로 올바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지 오래되었다. 전교조의 계기교육이 편향성 시비를 일으키며 교육부의 탄압을 불러온 경우가 많았다면 교육부의 계기교육 역시 일방적인 계도와 홍보 목적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교육부가 지난 7월24일 17개 시도교육청에 사드안전성 계기교육 지시공문을 보냈을 때 교육청의 반응이 종전과 달리 전면실시, 전면거부, 찬반논쟁교육 실시 등 세 갈래로 나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계기교육의 원칙과 실태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판단했다.

 

지난 9월30일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전교조, 좋은교사운동이 서울시교육청의 후원을 받아 ‘계기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본격적인 토론회를 공동개최한 배경이다. 당시 교총에도 공동개최를 제안하고 사정상 어렵다면 토론자라도 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불참해서 많이 아쉬웠다. 계기교육 토론회에서 밝혀지고 합의된 주요내용을 공유한다.

 

먼저 계기교육은 어떤 사회현안이 불거진 상황을 계기 삼아 교육과정과 상관없이 그 사회현안을 교수, 학습하는 학교교육으로 이해된다. 대부분 계기교육의 계기는 교육부를 통해 주어진다. 사드, 메르스, 천안함, 독도 관련 계기교육이 좋은 예다. 전교조나 교총도 가끔 계기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실시계획을 발표한다. 그렇지만 개별교사가 교장의 사전승인을 받아 자신의 수업시간에 들끓는 사회현안에 대한 계기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제도적으로는 가능하나 사실상 금지돼 있다. 이 글에서는 계기교육을 사회현안교육이나 정치교육으로 광의로 해석하며 올바른 사회현안교육의 원칙과 방법을 모색한다.

 

정치철학자 장은주 영산대 교수는 “공교육은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를 통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선언으로 논의를 열었다. 장은주에 따르면 이때 민주주의는 물리적인 투쟁을 치열한 논쟁으로 바꾸는 데 그 본질이 있다. 민주주의가 논쟁 참여 역량에 달려있고 학교교육의 본분이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다면 당연히 학교교육은 최대한 논쟁교육이 되어야 한다. 학교수업시간에 논쟁적인 사회현안을 일상적으로 다루는 것은 민주시민역량을 기르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장은주는 학교에서 논쟁적이고 정치적인 사안을 가르칠 때 교사가 반드시 따라야 할 교육원칙으로 독일에서 합의된 보이텔스바흐 3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주입하거나 교화해서는 안 된다. 주입교화금지의 원칙이다. 둘째, 학문적,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은 반드시 교실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논쟁성재현의 원칙이다. 셋째, 사회현안교육의 목적은 학생 각자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자각하고 그 바탕 위에서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을 형성하도록 돕는 데 있다. 학생이해관계중심의 원칙이다. 장은주는 보이텔스바흐 원칙이 사회현안교육, 즉 광의의 정치교육의 ‘교육화’ 원칙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이 요구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구체화 원칙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한마디로, 사회현안교육을 실시할 때 보이텔스바흐 원칙은 헌법차원의 교육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전교조 서울지부 조남규 정책실장은 역사교사답게 계기교육에 대한 교육부와 교육청의 규율이 어떻게 변천했는지를 추적했다. 교육부 차원에서는 2007년 2월 교육과정고시에서 “학교에서는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은 사회현안에 대해 학생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계기교육을 실시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계기교육지도지침에 따른다”고 규정한 것이 최초의 법적 규율이었다. 이에 따라 마련된 계기교육지도지침은 “사회적, 정치적 현안 관련 계기교육을 실시하는 경우 학교장 승인 하에 실시하도록 규정”했다.

 

교육부의 관련고시와 지침이 제정되기 전에도 모든 시도교육청은 계기교육의 요건으로 1)학년 및 교과협의회를 통한 교수-학습과정안 작성; 2)실시 48시간 전까지 학교장의 승인 획득; 3)교육청에 학교장의 승인사항 보고를 규정한 내부지침을 운영해오고 있었다. 그러다 08년 4월 교육부가 학교자율화조치의 하나로 계기교육지도지침을 즉시폐지대상 29건의 규제 중 하나로 지목하자 시도교육청은 일제히 교육청 보고요구를 삭제하는 선에서 내부지침을 수정한다. 요컨대, 교장의 사전승인이 없이는 교육과정에서 제시되지 않은 사회현안을 교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이는 17개 시도 교육청의 공통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교사의 교육적 판단에 따른 사회현안 교육을 금지하고 교장의 사전승인을 요구하는 이유를 교육청은 교사가 개인적 판단에 따라 자의적으로 계기교육을 실시할 경우 학생의 가치관 형성에 혼란을 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여기서 말하는 위험성이란 것은 사회현안이라는 교육소재의 위험성이 아니라 논쟁적인 사회현안을 다루면서 교사가 자신의 견해를 학생들에게 주입, 교화할 위험성, 즉, 교육방법의 위험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교육청이 교육적 관점에서 두려워하는 것의 실체다.

 

장은주가 제시한 보이텔스바흐 3대원칙은 사회현안교육을 이러한 위험성 없이 실시할 수 있는 헌법적 교육원칙이다. 이러한 안전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모든 시도교육청들이 사회현안교육에 대해 교장의 사전검열을 거칠 것을 요구하며 사회현안수업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것은 한시바삐 바로잡아야 할 시대착오적이고 반민주적인 잘못된 관행이 아닐 수 없다. 조남규도 사회현안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교사불신에 입각한 교장사전승인제도부터 폐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사회현안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공동선과 공익이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과 정쟁이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현안 수업에서 교사의 교육적 역할은 사회현안의 논쟁지형을 균형 있게 재현하며 학생 각자가 상호토론과 논쟁을 통해 독자적 판단에 이르도록 돕는 데 있다. 교육청은 보이텔스바흐 3대원칙을 사회현안교육의 방법론으로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교직윤리를 확립하면 된다. 계기교육(=사회현안교육)도 보이텔스바흐 원칙의 준수를 조건으로 교사의 전문적 판단에 맡기면 된다.

 

황재인 교장은 교육청이 계기교육의 목적을 사회현안에 대한 학생들의 ‘올바른’ 이해로 설정한 것부터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실 사회현안에 대해서는 대립하는 여러 입장마다 일장일단이 있을 뿐 단 하나의 올바른 이해가 있는 게 아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무엇이 공동선과 공익에 가장 좋을지는 미리 주어진 정답이 없다. 그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부단하게 모색하고 형성해 나갈 뿐이다. 민주적 실험정신과 실용주의적 자세로 이끌어가는 집단지성의 전개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사회현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강조할수록 정답을 아는 교사가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계도하는 교사중심의 주입식 교육으로 흐를 위험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바람직한 정치현안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학생 개개인이 독립적인 정치적 판단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에게 어떤 생각이나 의견을 주입하기보다는 지금까지 부지불식간에 주입받은 내용을 비판적으로 의식하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도록 돕는 역주입이 되어야 한다. 신념의 교조적 주입만큼 교육의 본질에 역행하는 것은 없다.

 

조남규와 황재인은 과거에 교육부와 교육청, 전교조와 교총이 각각 어떤 계기교육을 요구했는지를 비교한다. 2014년부터만 살펴봐도 계기교육의 요구는 적지 않았다. 교육부는 메르스, IS(이슬람근본주의단체), 광복70주년, 호국보훈, 독도, 서호수호, 사드 관련 계기교육을 공문으로 지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선거 관련 계기교육 실시를 주문했다. 전교조는 세월호참사 2주기 관련 계기교육을 계획했다. 교총은 신흥무관학교100주년 특별수업, 경술국치 바로알기 특별수업, 독도지키기 특별수업, 문화유산보호 특별수업 등을 주창했다.

 

여기에서 드러나듯이 교육부의 계기교육 주제는 토론식 민주시민교육보다는 일방적인 계도홍보교육에 적합한 애국심 고취 및 보건위생 관련 주제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도빼기에 급급한 많은 교사들은 홍보성 동영상을 틀어놓는 정도로 대처하며 보고서를 채운다. 학생들도 어차피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습하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때운다. 그나마 수업시간을 할애하는 경우는 양반이다. 조례나 종례시간 혹은 뒷면 칠판 게시를 이용해서 시늉만 내는 알리바이 확보용 행태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교육부, 전교조, 교총 간에 고작 독도 관련 계기교육 정도 외에 겹치는 계기수업 주제가 없다는 점도 놀랍다. 그렇기 때문에 황재인은 계기교육의 주제와 내용, 교육자료를 사회와 학교가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절차를 먼저 마련하고 그에 따라 정하자고 제안한다. 황재인도 계기교육을 계도교육이 아니라 민주시민교육으로 이해하고 더 많은 사회현안에 대해 학생 개개인의 판단과 실천역량을 기르는데 초점을 맞춰 논쟁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사실 교장이나 교사의 입장에서는 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논쟁적인 사회현안에 대해서는 수업시간에 다루지 않는 편이 제일 속 편하고 안전하다. 공연히 구설수에 오르거나 물의를 빚을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진도빼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사회교과수업에서도 사회현안에 대한 토론과 논쟁은 좀처럼 실시되지 않는다. 더욱이 교육의 정치중립 요청에 대한 오해가 편리한 핑계거리를 제공한다. 요컨대, 사회현안교육은 학교교육과 교실에서 공백상태로 남는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매스콤과 SNS, 또래친구 등에 의한 정치교육에 노출될 뿐 그것을 성찰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교육적 기회를 갖지 못한다.

 

좋은교사운동의 이봉수 사회쟁점교육위원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성숙한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것은 국영수 모든 과목의 효용성을 다 더해도 이룰 수 없는 아주 근본적인 목표”라는 점을 환기시키며 이러한 현상을 개탄한다. 그는 좋은교사운동이 수많은 내부학습과 토론 끝에 계기교육=사회쟁점교육의 방법론으로 정립한 원칙을 소개했다. 사회쟁점토론수업을 할 경우 1)사회적 쟁점을 중심으로, 2)쟁점에서 출발하되 좀 더 본질적인 가치충돌까지 나아가며, 3)학습자 중심의 토의와 토론을 통해, 4)자신의 생각을 논술형으로 정리하고 실천적 과제를 발견해 실천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보이텔스바흐 원칙과 다를 바 없다.

 

이봉수가 지적하듯이 계기교육은 공동체적 “삶의 현안을 수업으로 끌어들이는 교육”이기 때문에 삶 중심, 현장중심, 오늘중심의 교육이 될 뿐 아니라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일정한 조사연구와 학습토론을 거쳐 잠정적으로나마 주체적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교사에게나 학생에게나 가장 도전적이고 고난도 교육이다. 공교육이 사회현안교육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포용할 때 교육과 민주주의가 같이 발전한다.

 

계기교육토론회를 통해서 몇 가지가 분명해졌다. 첫째, 계기교육은 교육과정에서 예정되지 않은 사회현안교육으로 이해된다. 둘째, 계기교육=사회현안교육은 주로 정부에 의해 계도와 홍보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셋째, 정부의 요구가 아니라 교사의 판단에 의한 사회현안교육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어 교장의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실시할 수 있다. 넷째, 막상 교사들은 교과서 진도빼기에 급급해서 사회현안교육을 등한시한다.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학교에서 사회현안교육이 최대한 실시되어야 하며 관련 교과목, 특히 사회교과수업에서 교사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볼 때 사회현안교육에 교장승인을 요구하는 교육청 지침은 하루바삐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다만, 지금처럼 사회현안교육에서 헌법상 요구되는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관철시킬 수 있는 교육방법론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것은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담긴 3대 원칙(주입교화금지의 원칙, 논쟁성재현의 원칙, 학생이해관계중심의 원칙)과 같은 사회현안교육의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입법이나 협약의 형식으로 만들어내고 교육방법론과 교직윤리를 뿌리내리는 작업이 시급하다. 교육감들이 이러한 과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특별한 관심으로 실천에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 인쇄(Print)하기

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글 진보교육운동의 독점 시장 해체에 따른 교원 단체들의 선의의 경쟁을 기대한다 다음글 미래사회, 이런 교사만 생존한다
칼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