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30년지대계(5) – 미국 공교육 혁신에서 배울 점 2가지!
1. 시작말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교육과정 개정, 대입전형과 수능의 미래방향에 대한 논의들이 얼마나 타당하고 적절한 것일까? 그 논의가 학교교육의 현 위기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척하면서 실기(失期)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습관이란 것이 참 무섭다. 개인의 습관도 그렇고 사회적 습관(문화)도 그렇다. 사람이나 사회나 한 번 익숙해지고 나면 늘 그 틀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학교교육이 대입시에 종속되고 학교가 대입시에 나오는 문제풀이 기관이 된 것도 우리 사회의 나쁜 습관의 하나다. 정권이 바뀌는 5년 주기로 기존의 논의가 중단되고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는 것도 우리 사회의 잘못된 습관의 하나다. 이런 습관에 물든 지도 꽤 오래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습관에 적응했다. 그래서 그런 습관이 우리의 젊은 아들딸들의 젊음과 미래를 망치고 있는지에 대해 매우 둔감해졌다. 우리의 희망인 오늘의 아동·청소년들을 이런 나쁜 사회적 습관의 희생자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이 나쁜 습관으로부터 피해를 덜 보도록 하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더 이상 정부나 정치가들이 나쁜 습관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어떤 정책이든 일단 시작되고 나면 그것이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바로잡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들고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수능의 EBS 연계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교원평가도 그렇고, 일제고사도 특목고와 자사고의 설립도 그렇다. 선행학습금지법도 신중하지 못한 정책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그 다음 방법은 기존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이 다. 가장 우선적으로 고쳐야 할 습관은 학교교육이 대입시에 종속되고 학교가 대입시에 나오는 문제풀이 기관이 된 것을 바로 잡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단단히 굳어진 나쁜 습관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가? 이를 뇌과학적으로 살펴보자.
뇌과학적으로 보면 사람의 습관이란 특정 행동을 만들어 내는 뇌의 회로가 단단히 형성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기존의 회로 자리에 새로운 생각, 행동, 경험을 통해 새로운 회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뇌의 회로가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예외적으로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 강도 높은 자극을 주면 회로는 단시간에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충격적 요법보다는 최소한 ‘교육 30년지대계’의 접근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 현재의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이에 익숙해지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자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땜질식으로 수능과 대입전형을 수선하면서 가려는 것이 긴 장래를 통해서 보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달았으면 한다. 현재의 한국의 학교교육은 미지근한 물속의 개구리가 곧 물의 온도가 100도가 되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 기존의 틀,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통념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기존의 통념과 반대되는 사례들을 많이 접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회로를 녹슬게 하고 새로운 회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똑같은 문제를 다르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보다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고민할 때다. 그래서 앞으로 주목할 만한 해외의 혁신사례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그 첫 번째로 이번 칼럼에서는 교육개혁에 관해 미국으로부터 배울 점 2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2. 미국의 공교육으로부터 배울 점 2가지
미국의 공교육으로부터 배우지 말아야 할 것도 많지만 배워야 할 것도 적지 않다. 현재 한국의 학교교육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2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미국의 아동낙제방지법의 실패로부터 배우자는 것이다. 아동낙제방지법(NCLB)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10년 후 모든 아동들이 기초과목의 유창성을 갖추게 한다”는 매우 가슴 뛰게 하는 비전으로 시작했지만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할 때의 절차와 방식을 배우자는 것이다. 미국은 교육자치가 잘 발달한 나라라서 연방정부의 획일적인 간섭이 없다. 각주가 모든 결정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각주에서는 수많은 혁신이 일어난다. 한국은 이런 혁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는 대부분의 교육정책이 획일적이다. 각 학교가 처한 환경이 각기 다른데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통제나 방침은 대부분이 획일적인 것들이다. 타당하지 않은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학생을 묶는(grouping) 방식이 대표적인 예다. 모든 아동들의 뇌는 각기 다르고 잘할 수 있는 분야도 다르고 학습의 준비 수준도 다른데 아직도 “나이별로” 학급을 구성하여 하나의 교육과정으로 획일적인 교육을 한다. 산업시대의 제조공장과 똑같은 방식이다. 수준별로 다르게 가르치고도 평가는 똑같은 시험문제로 한다. 넌센스에 가깝다. 이런 나라는 아마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대입전형을 바꾸고 수능을 바꾼다고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다. 이제 미국처럼 한국도 교육자치를 좀 더 강화하여 획일적인 접근을 벗어나고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중앙정부가 교육성과를 성적이란 양적 지표로 나타내고(quantifying), 강하게 통제하며(controlling), 비교하고 경쟁시키는(competing) 방식으로는 희망이 없다. 한국의 학교교육의 실패는 미국의 실패와 매우 흡사한 점이 많다. 그래서 미국의 아동낙제방지법의 실패가 주는 교훈은 한국을 위해 더욱 값진 교훈이 될 수 있다.
가. 아동낙제방지법(NCLB)의 실패가 주는 교훈으로부터 배우기
아동낙제방지법(NCLB)은 부시 대통령의 서명으로 2002년 1월 정식으로 법제화 되었다. 법안의 원 제목은 “책무성, 유연성 그리고 학교선택의 강화를 통해 성취도 격차를 줄여서 한 아동도 낙제하지 않게 하기 위한 법안(An act to close the achievement gap with accountability, flexibility, and choice, so that no child is left behind)”이다.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교육의 공정성, 결과적 평등에 도전하는 법안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어떤 주가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으려면 읽기/언어, 수학, 과학 교과에 대해 매년 적정 성취도 향상 목표(YAP-Yearly Appropriate Progress)를 정한 다음 이를 달성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달성 여부는 그 주의 모든 학교가 일제고사를 치게 하고 그 표준화 시험의 성적으로 판단한다. YAP 성취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벌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즉 test-and-punish를 변화의 핵심 전략으로 삼은 것이다. 벌은 정도에 따라 민간회사에게 넘기기, 계약학교(charter school)로 전환하기, 교직원을 몽땅 해고하기 등 매우 강력하다. 미국은 이런 전략을 통해 법안 통과 후 12년 내(2013-2014년 학기까지) 한 명의 아동도 낙제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출발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할 정도로 실패다.
실시 후 10년 이상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평가가 나왔다.
▶ NCLB의 10년 성적표
• NCLB는 교육의 질과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빈곤층 아동들에게 피해가 컸다.
• NCLB는 평균적으로 보면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키지도, 성취도 격차를 줄이지도 못했다.
• NCLB의 문제점을 오바마 정권이 바로잡으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있으며 문제점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 NCLB의 주요 폐해
• 교육과정의 폭을 좁혔다. 시험보지 않는 과목(예: 예술)을 소홀히 했다. 전인적 성장을 위한 교육을 포기하는 이런 현상은 빈곤층, 소수민족 자녀들에게 더 영향이 컸다.
• 학교마다 정규 수업을 중단하고 시험과 시험준비에 쏟는 시간이 급증했다.
• 성적을 높이기 위한 부정이 심했다(예: 틀린 답을 정답으로 수정하기). 30개 이상의 주에서 부정을 저지른 것이 확인되었다.
•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학교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강한 책무성 때문에 공부를 가장 못하는 아동들을 더 뒤떨어지게 만들었다.
• 시험점수에 초점을 맞추고 징벌적 책무성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정책결정자들은 특히 빈곤 아동들의 진정한 성장을 위한 교육을 무시하게 했다.
• 학교를 중단하고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가는 아동의 숫자를 늘렸다.
이는 한국과 너무나 유사하다. 한국도 성적을 올리기 위한 각종 부정이 저질러진다는 얘기는 끊임없이 들린다. 이런 현상은 캠프벨의 법칙(Campbell’s law)을 떠올린다.
“사회적 의사결정에 양적인 지표가 더 많이 사용되면 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부정을 저지르고 싶은 압력을 받게 되고, 사회적 절차를 왜곡하거나 부정을 저지르기 쉽게 된다.”
미국 연방정부는 무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일까? 실패의 이유로 ‘불평등한 사회에 평등한 결과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환상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빈곤이란 환경이 아동의 학습능력을 어떻게 저하시키는지를 간과한 것이다. 경제적 격차가 교육의 격차를 만드는 주요 원인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책무성의 칼만 휘두른 결과라는 것이다. 한편 교육개혁의 세계적 대가인 마이클 풀런 교수는 미국의 NCLB의 실패는 전략의 실패라고 분석한 바 있다. 한 명도 낙오자로 만들지 않겠다는 비전은 훌륭했다. 하지만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성공요인을 잘못 도출했다. 그리고 목표 달성을 하게 하기 위한 전략도 잘못 선택되었다. 이는 연방정부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잘못된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현장을 돈으로 조정하고 상벌을 통해 관리하려는 나쁜 습관이 미국의 NCLB를 실패하게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를 이런 식으로 통제하는 나쁜 습관은 한국 정부 역시 미국에 뒤지지 않을 것 같다.
NCLB의 실패를 좀 더 세부적으로 분석하면, 표준화 시험 점수를 ‘성취도’의 주된 지표로 삼은 것이 큰 잘못이었다. 토론수업, 프로젝트 수업, 논술, 예체능 활동 등 훨씬 더 중요한 교육활동들을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큰 오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책무성 정책도 설계가 잘못됐다. 교육의 성과를 평가할 때 여러 가지 지표를 종합적으로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딱 한 가지 표준화 시험으로, 그것도 딱 한번 본 결과를 가지고 교육성과에 대해 교사들에게, 또 학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성이 낮다. 이는 매우 불공정하고 부정확한 것이었으며, 다수 교사들의 불만을 사고 수많은 주의 학교들은 조직적으로 부정을 저지르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하지만 표준화 시험으로 책무성을 강하게 묻게 되면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소득이라면 큰 소득이다.
▶ 표준화 시험의 폐해
• 교육의 내용을 측정할 수 있는 범위로 좁힌다.
• 전인적 성장을 위한 교육 대신에 시험 문제 풀이 중심의 수업을 하게 만든다.
• 좋든 싫든 누구나 표준화된 시험에 참여하게 만든다.
• 경쟁을 강화한다.
• 학교와 학생을 비교하고 서열화한다.
이상과 같은 NCLB의 실패 후 미국의 주요 교육학자들(Linda Darling-Hammond, Diane Ravitch, Tony Wagner)은 핀란드의 성공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표준화 시험으로 학생과 학교를 줄 세우지 않고 시험성적으로 교사를 평가하지 않는 핀란드 방식이 옳다고 주장을 하지만 여전히 NCLB의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의 NCLB의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지는 분명하다. 한국도 미국과 똑같이 실패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의 실패 교훈을 바탕으로 징벌보다는 지원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 상황인가? PISA 성적이 최상위라 해서 한국의 학교교육이 우수하다는 생각을 가진 국내외 인사들도 적지 않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처럼 시험문제 풀이에 도가 튼 아동들이 어떤 시험인들 잘 보지 못하겠는가. 신자유주의식 학교교육의 개혁을 주도했던 분들, 이를 지지했던 언론들이 깊이 반성을 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사과합니다. 이제 표준화시험을 단계적으로 없애고 전인적 성장을 위한 교육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와 같은 성찰의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은 미국의 NCLB의 실패로부터 다음의 다섯 가지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 NCLB가 한국에 주는 5가지 교훈
① 표준화 시험(수능, 일제고사 등)을 없애거나 그 결과를 선발이 아니라 피드백을 위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사용한다.
② 표준화 시험 성적으로 교육의 책무성을 묻는 것을 중단하고 새로운 책무성 제도를 도입한다(예: 집단 책임감과 투명성 강화).
③ 표준화된 성취목표를 사전에 규정하고 이를 하향식으로 부여하는 일, 교사들의 자율성·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표준화된 교육과정의 전달자에 머물게 하는 일을 중단한다.
④ 지역 간의 다양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시험과 획일적인 평가를 부가할 경우, 어려운 환경에 놓인 학교를 더 어렵게 만든다. 교육의 성과 측정은 표준화 시험 한 가지만으로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복수의 방법으로 한다. 또 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⑤ 새로운 정책의 도입이 빈곤층과 다문화가정 아동들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줄지 잘 고려한다.
나. 차세대 평가개발 완료, 획일성의 탈피, 혁신운동 사례로부터 배우기
미국은 아동낙제방지법이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내자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주공통핵심성취기준(CCSS) 개발과 이를 뒷받침할 차세대 평가의 개발
미국은 최근 K-12 교육혁신을 위해 주공통핵심성취기준(Common Core State Standards)을 만들어 도입하기로 했고, 두 개의 컨소시엄(SBAC; PARCC)을 통해 이와 연계된 두 가지 종류의 평가까지 개발을 완료하고 2014-2015년 실시에 들어갔다, 이번에 SBAC(Smarter Balanced Assessment Consortium)가 개발한 평가는 학습장애아동, 학습부진아동도 접근 가능하도록 보편적 학습설계(UDL) 원리를 일부 적용했고, 문항반응이론에 의한 개별화 평가도 가능하게 한 매우 발전된 평가여서 주목할 점이 많다. 4년에 걸쳐 개발한 이 평가는 졸업자격시험과 형성평가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이 평가가 지향하는 목표, 전략, 기술들은 한국의 미래평가에 큰 시사점을 준다.
이번에 개발한 차세대 평가의 개발과정을 한국은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자발성, 자주성 존중; 사회적 합의를 통한 변혁
한국으로 말하면 준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이라 할 만한 주공통핵심성취기준(Common Core State Standards)을 개발함에 있어서 연방이 강제하지 않고 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개발했으며,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사회적 합의 모델을 적용했다. 아래 영문의 내용처럼 공화당, 민주당 양당이 합의하에 교육과정과 평가 등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From the very beginning, the process of developing the Common Core has been bipartisan and state led. It also has support from educators, policymakers, and business leaders across the country”
(http://www.corestandards.org/wp-content/uploads/FAQs.pdf)
한국이 미국의 이런 점은 꼭 배웠으면 한다.
▶ <교육과정, 교수법, 평가>를 동시에 고려하는 변혁
주공통핵심성취기준의 개발과 이를 뒷받침할 평가를 동시에 개발했다는 점도 본받을 만하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한국에는 상식적이지 않다. 한국의 경우 가령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예: 창의적 문제해결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협업능력)을 강조하면서도 이런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평가도구는 개발에 착수도 않고 있다. <교육과정, 교수법, 평가>는 서로 조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무엇이 그렇게 급한지 교육과정 개정에만 매달리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가는 수능평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형성평가 성격의 학교평가를 말한다. 미국은 차세대 과학 교육과정도 개발하고 있다. 이 역시 그 과정을 보면 가장 먼저 평가의 연구, 개발 그리고 교사양성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다. 한국도 이젠 이런 프로세스를 갖추어 개발해야 한다.
▶ 교사를 중심에 세우는 변혁
교육과정 개정과 이와 관련된 평가에 대한 정책 결정에서 미국은 언제나 교사가 중심이 된다. 다음 관련 원문을 보자. 교사가 항상 가정 먼저 언급되고 연구자나 전문가는 후순위다.
States across the country collaborated with teachers, researchers, and leading experts to design and develop the Common Core State Standards.
(http://www.corestandards.org/wp-content/uploads/FAQs.pdf)
▶ 학습장애 아동도 소외시키지 않는 공정한 접근
미국의 차세대 평가 중 하나인 Smart Balanced 평가의 장점은 아래와 같이 서술되고 있다. 아래 ②의 내용을 보면 매우 부럽다. 한편으로는 국내 학자들이나 평가 개선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도 아래 2번과 같은 것은 생각도 않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
① 지식과 함께 지식의 활용까지 평가한다. 비판적 사고능력, 문제해결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같은 소위 21세기 스킬까지 평가한다.
② 보편적 학습 및 평가 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Assessment) 기술을 도입해서 청각장애자, 시각장애자, 영어가 서툰 이민자녀 등도 접근 가능하게 한 매우 공정한 시험이다.
③ 문항반응이론을 적용한 컴퓨터적응평가(CAT) 기술을 통해 지식뿐만 아니라 수행평가와 같은 지식의 활용까지 평가할 수 있다.
④ 교사와 학부모에게 학생들이 주공통학업성취기준을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는지, 대학진학과 직업세계로 나갈 준비는 어느 정도 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히 제공한다.
⑤ 개별학생의 학습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교사들에게 개별 교육을 지원할 풍부한 자료와 도구를 제공한다.
평가 기술이 많이 발전했다. 올해 실시될 PISA2015가 선보일 ‘협업에 의한 문제해결능력 평가’를 보면 알 것이다. 한국의 교육개혁은 늘 장애를 가진 아동들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교육은 아직 매우 폭력적이고 야만적이기까지 하다. 가장 먼저 고려대상이 되어야 할 소수자나 약자는 늘 다수의 아동들을 위한 정책에 가려져 부각되지 않는다. 한국도 소수자나 약자를 먼저 고려하거나 공정하게 취급하는 사회가 어서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③ 문항반응이론을 적용한 컴퓨터적응평가(CAT) 기술을 통해 지식뿐만 아니라 수행평가와 같은 지식의 활용까지 평가할 수 있다.’의 내용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가 기술이 이렇게 발달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고전적 평가를 전제로 수능의 개선을 논하고 있다. 문제다.
2) 뉴욕주 수행평가 성취목표 컨소시엄(New York Performance Standards Consortium)의 표준화 시험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참신한 시도
NCLB 법에 의하면 뉴욕주의 모든 학교들은 통일된 시험(Regents Examination)을 봐야 한다. 하지만 뉴욕주는 유연성을 발휘하여 이 컨소시엄에 속한 학교들은 영어(English Language Arts: ELA) 한 과목만 주가 실시하는 표준화 시험을 보게 하고, 나머지 수학과 언어(language arts) 과목은 자체 개발한 시험과 기타 수행 중심의 평가를 도입하면서 연방 및 주가 부가하는 책무성을 이행하기로 하였다. 이 컨소시엄에 속한 학교들은 분석적 사고, 연구보고서 작성, 문제해결능력, 예술 공연, 지역사회 봉사를 통한 학습, 직업 준비 스킬 등을 중요하게 다루고 평가하기로 했다. 이런 다양한 교육활동을 포함해서 성취를 정의하고 평가한 결과 학교 중단률이 9.9%(주 평균은 19.3%), 대학진학 합격률이 91%(주 평균은 62.6%)란 놀라운 성과를 나타냈다. 한국도 17개 시도교육청이 이런 혁신을 시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시도교육청의 발목이나 잡고 길들이기에 전념한다면 이는 역사에 죄를 짓고 아동, 청소년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 될 것이다.
3) FairTest가 펼치는 공정한 시험 운동
표준화 시험 반대 운동 단체인 FairTest는 메사추세츠 주의 실천 사례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 평가 개혁안을 제안하고 홍보해왔다.
• 매년 각 학교의 학급단위 평가, 학교단위 평가가 아동의 학습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증거를 수집한다.
• 몇 년 주기로 주 전체의 학교를 대상으로 읽기와 산수 과목에 있어서 저부담 표준화 시험을 실시한다.
• 4-6년 주기로 학교의 질평가 보고서(school quality reviews)를 발행한다.
이상과 같이 할 경우 표준화 시험 한 가지만으로 학생과 학교를 평가하는 것보다 학생의 성취도 향상과 학교의 교육효과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FairTest(http://www.fairtest.org/)는 학생, 교사, 학교를 평가할 때 공정하고 타당한 평가, 교육적으로 유익한 평가를 주창하며 NCLB의 정책 중 표준화 시험을 통한 책무성 관리 등의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매우 질 높은 평가개혁 운동으로 보여진다.
4) 교육 책무성에 관한 포럼(Forum on Educational Accountability: EFA)
이 단체는 2011년 NCLB의 개정 방향을 제안하였는데 그 내용은 학교가 소정의 교육적 목표와 사회성 함양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연방정부가 지나치게 사전 제약을 가하지 말 것을 주문하였다. 이 제안은 다음의 4가지 영역에 관한 것이다.
• 평가제도를 전적으로 개혁하라.
• 책무성 제도를 재구조화하라.
• 학교는 모든 아동의 잠재력을 잘 키울 수 있는 역량을 갖춰라.
• 아동의 충족되지 못한 인간적, 사회적 욕구를 해결하라.
이러한 주장들이 증거기반으로 이루어졌다니 한국도 그럴 수 있는 날이 어서 와야 한다.
5) 교육단체, 시민단체, 종교단체, 장애인단체 등의 NCLB에 관한 공동성명서
전국적으로 150여개의 교육단체, 시민단체, 종교단체, 장애인단체 등이 NCLB에 관한 공동성명서를 작성하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내용은 NCLB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표준화 시험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고 다른 다양한 성과지표들을 사용하라!”라는 요구를 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연대적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교원단체, 학교장들도 이런 성명서를 내는 데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각 변화를 위한 노력의 공통점은 표준화 시험의 해악을 얘기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것들이다. 단언하건데 한국 사회가 표준화 시험의 신화(높은 신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정한 학교교육의 개선은 어렵다. 표준화 시험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어떻게 배울 것인가, 교육적으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결정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학교교육은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어떻게 더 잘 가르칠 것인가?”는 고민하지 않고, ‘학생들이 봐야 할 표준화 시험의 성적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향상시킬 수 있을까?’에 매몰되어 있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현실을 중앙정부를 포함해서 정치가, 학자, 교사 등이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학교교육의 일탈은 교육과정에 충실한 교육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의미없는 교육에 천문학적인 국민의 세금을 쓰고 매년 20조원이 넘는 사교육비를 쓰게 하는 것은 비정상 중의 비정상이다.
앞에서 소개한 ‘뉴욕주 수행평가 성취목표 컨소시엄’에서 추구한 그러한 혁신이 한국에도 활발히 일어나게 해야 한다. 표준화 시험의 신화를 깨는 일에 우리사회는 좀 더 과감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은 비전 중심의 개혁과 교육 30년지대계를 주장하는 것이다.
3. 맺음말
지금 한국의 공교육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표준화 시험의 성적 향상을 위한 훈련(drill)이 교육의 최대 목표가 된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사교육이란 또 하나의 ‘훈련’시스템이 존재하면서 고등교육의 기회배분 과정에 불평등을 크게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 중에서 이 점에 있어서 한국은 특히 심하다. 중앙정부가 배우도록 요구하는 내용과 학습자가 배우고 싶은 내용 간의 불일치(mismatch)가 매우 심하다. 이게 오늘날 교실이 붕괴된 주 원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획일적 시스템과 운영은 꿈적도 않고 있고 교사의 지식 전달식 강의는 여전하다. 이런 내용과 수업방식에 적응할 수 없는 뇌를 가진 아동들을 모두 낙오자로 만들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교육의 이런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하는 단체나 리더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는 학교교육이 앞으로 지금보다 더 나아질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우려스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마도 이는 기존의 익숙한 제도에 길들여져서 이것밖에 보지 못하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또는 한국 사회가 제대로 된 변화 프로세스를 밟아 변화시켜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의 변화에 영향을 주고 있고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있는 모든 사람, 단체들이 지금의 학교교육이 정상을 되찾을 수 있게 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성과가 불확실한 작은 수선에 매달리지 말자. 여기에 에너지를 쏟게 되면 실제적으로 교육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는 고갈되고 기회조차 잃게 된다. 그래서 교육 30년지대계부터 수립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적어도 30년 후에 도달하고 싶은 교육의 모습을 정하고 모든 변화 정책을 이에 정합(alignment)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그런 전인적 성장 교육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30년 후에는(10년 단위 하위 비전 달성을 통해) 기필코 우리의 후손들이 지금처럼 시험문제 풀이에 몰두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정부와 정치인, 교육리더, 시민단체, 기성세대 등 모든 어른들의 도리이자 엄중한 역사적 사명이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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