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30년지대계(2) – 중앙정부가 중앙집권적으로 교육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자.
“교육 자치제 [敎育自治制]: 교육 행정의 지방 분권을 통하여 주민의 참여 의식을 높이고 각 지방의 실정에 맞는 적합한 교육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려는 교육 제도-국어사전”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교육자치제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나라도 형식적으로는 교육자치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의 교육체계는 정부가 주도하는 중앙집권적 방식이다. 정부에 의해 기획된 교육과정과 체제, 평가, 진학틀, 정부의 인허가가 필요한 학교설립과 운영 등등 정부가 관여하지 않는 부문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중앙집권적인 교육시스템은 최근에 이르러 조금씩 지방교육자치제로 완화되어왔다. 그 대표적 예가 교육자치제, 즉 직접선거에 의한 교육감 선출이다. 일부 세력에서 이 방식에 불만을 느끼고 다시 임명방식으로 개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지방분권화 되어가는 대세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러한 교육자치제가 더욱 진일보하여 진정한 학교자치로 발전되어 가기를 원한다. 현행 교육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진정한 지방교육자치가 실현되기를 기대하면서 이 글을 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중앙정부가 관여하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학교의 설립 및 각종 인허가가 정부의 주도 아래 시행되고 있다. 자사고 존폐 문제에서 보듯이 지방에 이양하였던 권한을 오히려 교육감에게서 다시 중앙정부로 빼앗아가려는 행태를 보이는 등 지방자치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경우도 눈에 띈다. 또한 검인정 체제인 교과서 중 일부를 다시 국정체제로 전환하려고 하는 등 비대한 교육부 행정관료와 정치인들의 통제 아래 진정한 지방교육자치는 오히려 움츠러들고 있다. 교원 인사제도, 학교체제, 교육과정 편성 등에도 중앙정부의 방침이 절대적이다. 전국이 모두 같은 제도, 같은 교육과정으로 같은 내용을 배우고 가르치고 유지하고 있다. 또 같은 평가방식으로 학력을 평가하며, 전국 학생을 대상으로 동시에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같은 시기, 같은 방법으로 대학진학을 결정한다. 현재의 제도는 교육을 통제의 수단으로 보는 과거 봉건군주제도 때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지역별, 계층별, 개인별 차이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하나의 교육시스템을 전체에 적용하여 유지하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의 학교는 일종의 중앙정부에 예속된 행정기관이나 다름없는 것이 현실이다.
천편일률적인 교육행정에 따른 부작용으로 우선 어떻게 바뀌어도 상당수가 불만을 나타내는 입시제도를 들 수 있다. 지역별, 학력격차별, 개인별 차이를 무시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진학을 결정하는 현재의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도 불만을 나타내는 계층이 달라질 뿐 여전히 문제일 것이다. 수능의 난이도, 내신성적 반영 문제 등은 현재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어떻게 바뀌더라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만족하는 계층이나 지역이 있으면 불만족을 나타내는 계층이나 지역이 있을 수밖에 없다.
둘째로 탄력성이 거의 없는 현재의 교육 체제이다. 유치원, 초등, 중등, 고등, 대학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획일적인 체제는 누구나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내용을 배우면서 같은 방법으로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일을 반복시켰다. 여기에 세계에서도 가장 자녀교육을 중시하는 국민의 높은 교육열이 더해져서 계속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의무교육과정에서는 능력에 따른 월반이나 낙제를 거의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초등과정에서 기초를 다지지 못한 학생들의 학력신장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고등학교를 마치는 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셋째, 지역별 특성, 학교별 특성을 거의 살릴 수 없는 일률적인 교육과정 때문에 학교별로 창의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똑같은 내용이 적힌 교과서를 기준으로 같은 내용을 배우고 그 결과를 전국적으로 일제히 평가한다. 교사별 학교별 지역별 개성적인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원천봉쇄되어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지수는 초등, 중등에서는 매우 우수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점점 낮아져서 대학과정에서는 세계의 유수한 대학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단순수행, 암기, 문제풀이의 교육을 반복한 결과 창의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외국으로 유학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창의성이나 자기계발, 토론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은 여려 연구나 사례에서 입증되고 있다. 다양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출판되었던 국사 교과서를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국정교과서 한가지로 통일시키려는 일까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넷째, 중앙집권적인 교육행정이 지방의 교육현장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항상 교육에 대한 구호는 요란하지만 실제 교육현장은 거의 변하지 않는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교육관료들이 항상 상위기관의 눈치만 보는 일도 이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첫째,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지시와 통제를 없애고 지방의 실정과 특수성에 맞는 교육정책을 펴나갈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이름뿐인 지방자치 대신 실제 교육자치가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주민의 투표에 의하여 당선된 교육감이나 지방의원들이 지역주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교육과정이나 내용을 심의,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중앙정부에서 통제하는 대부분의 내용이 지방으로 이양되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지역주민의 의지로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방교육자치제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일몰제로 없애버린 교육위원제도의 부활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교육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인정하고 교육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교육과정을 지역특성에 맞게 편성하고 교육적 식견을 갖춘 전문요원들에 의하여 관리되어야 한다. 지역별로 다양한 교육과정이 편성될 때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이 실행될 수 있다. 더불어 단위학교가 중심이 되고 현장에서 지도하는 교사가 중심이 되는 교육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교육과정의 기본적인 틀은 중앙이나 지방정부에서 제시하지만 이를 이용하여 실제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것은 단위학교에서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야 한다. 여기에 학교재정이나 인사문제도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있어야 한다.
셋째, 교육의 자율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정치적, 지역적, 계층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하여 교육의 고유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그리고 교육행정은 정치색을 띨 수 있는 일반행정과 분리하여 독자적으로 실시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수명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