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검색
칼럼 모아보기
ERICK squareal Research & Innovation Center of Korea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오장풍 사건’ 당시 놓친 것 : 지금이라도 언론의 학교취재보도준칙을 제정해야 한다

#117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2015.01.13

2010년 7월 ‘오장풍’ 교사 체벌사건이 날 때, 그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셨다는 한 부장선생님을 강연회에서 만나서 가슴 아픈 하소연을 들었다. “오장풍 교사 사건이 언론보도를 타자마자 우리 학교는 쑥대밭이 됐습니다. 우린 그 학교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도매금으로 비난을 받았지요. 누구도 의혹의 눈길과 수군거림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건 날마다 방송사와 신문사 기자들이 우르르 복도까지 들어와서 경쟁적으로 취재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통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교육청은 그럴 때 뭘 하는 덴지 정말이지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당시 교육감으로서 이런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벌써 4년 반이나 지난 상황을 얘기하면서도 그 선생님은 눈물을 그렁거리며 목이 메어 두세 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모든 참석자들이 얘기를 들으며 가슴 먹먹했을 터다. 특히,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창피했다.

 

“지금도 그토록 마음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니 선생님께 정말 미안합니다.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체벌사건을 보고받고 나서 체벌을 받은 아이와 현장을 목격한 아이들을 트라우마와 2차 피해에서 보호하는 방안만 생각했지, 사고가 난 학교와 교사, 학생들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 사건을 체벌금지의 계기로 삼을지 말지 골똘히 저울질하기 바빴습니다. 제가 명색이 인권운동을 해온 입장이라 더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주위의 누군가가 조금만 일러줘도 바로 조치를 취했겠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교육청엔 언론인과 카메라 앞에서 학교와 교사, 학생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매뉴얼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불합리를 고치라고 진보교육감을 세웠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간과한 것은 전적으로 제 불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료선생님들에게 지금이라도 제가 얼마나 죄송스럽게 생각하는지 꼭 전해주십시오.”

 

당시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힘에 겨워 연신 울먹이며 말씀을 이어가신 그 선생님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지금이라도 비슷한 경우가 벌어졌을 때 학교와 교사, 학생들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언론기관이 학교와 교사, 학생에 대해 취재하고 보도할 때는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테러범의 요구나 범죄자의 행로를 낱낱이 보도하지 않는 게 옳은 것처럼 언론이 일부 교사나 학생의 일탈행위, 혹은 학교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에 대해 어떤 자세로 보도할지는 따져봐야 할 사항이 많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한 윤리기준과 인권준칙을 마련하여 대처한다. 자칫 학교와 교사가 언론의 무분별한 취재와 보도로 도매금으로 매도되고 공신력을 잃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와 평판을 보호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다.

 

시민의 알 권리가 아무리 중요하고 언론의 취재할 권리가 아무리 중요해도 학교건물과 시설, 특히 교실에는 학교당국, 즉 교장의 허가가 없이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교사와 학생을 상대로 학교 안에서 인터뷰 등 기타 방식으로 취재하려면 반드시 학교당국의 사전승인이 있어야 한다. 특히 학교 건물이나 시설 구내로 방송장비나 카메라 등을 반입하거나 수업시간에 교사나 아이의 사진을 찍으려면 반드시 해당 교사나 아이 부모의 동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언론의 취재요청이 있을 경우 교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필요한 허가를 해주고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교사와 아이의 안전권이나 수업권, 인격권이나 초상권, 프라이버시권이 언제나 우선이다. 이를 위해 사전승인제가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이런 기본원칙에 비추어볼 때 ‘오장풍 사건’ 당시 학교 구내에 언론인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와 진을 치는 상황을 교장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면 이는 일차적으로 현장책임자인 교장의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신문기자든 방송기자든 어떤 외부인사도 교장의 승낙 없이 학교에 제멋대로 들어와 마음대로 취재할 권리는 전혀 없다. 만약 당시에 교장의 요청과 지시를 언론인들이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했다면 그것은 언론의 ‘갑질’이자 권한남용일 것이다. 반면에 교장이 당시 아무 생각 없이 언론의 행태를 방치했다면 교장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교육청도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당연히 외부인사의 학교접근, 특히 미디어의 취재보도에 관한 규정이나 지침을 미리 만들어놓고 그 내용에 대해 교장과 교사에게 제대로 숙지시켰어야 했다. 만약 그렇게 못한 결과로 학교가 잠시라도 언론에 의해 쑥대밭이 되고 교사와 학생들이 공황상태에 빠졌다면 교육청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특히 당시 문제의 학교를 방문해서 난장판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지나친 장학사와 장학관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물론 최종적인 책임은 당시에 총체적인 지휘감독 책임을 가진 교육감이었던 내가 져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4년 전은 물론이고 지금도 나는 교육청과 학교가 과연 언론기관의 취재보도에 대해 법원칙에 부합하는 확고한 방침과 기준을 마련해놓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만에 하나, 지금도 구체적인 규정과 지침이 없다면 반드시 서울교육청이 앞장서서 마련하기 바란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오장풍 사건’처럼 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불행한 사건이 터질 때 문제교사를 넘어 그 학교의 모든 교사와 학생까지 악몽을 꾸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언론기관도 문제학교와 문제교사, 문제학생을 취재할 때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거나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학교와 교사, 학생은 이 부분에서 작은 실수라도 용납하기에는 너무나 취약하고 너무나 중요하다. 학교와 교사, 학생에 대해, 특히 부정적 스캔들에 대해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인에게는 특별한 주의의무와 높은 직업윤리가 부과된다. 다시는 ‘오장풍 사건’도 없어야 하지만 학교 안에서 사전 허가와 동의 없는 무분별한 취재경쟁도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이 글이 4년 전 ‘오장풍 사건’에 대한 언론의 과열 취재보도 경쟁으로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선생님들과 학생들, 학부모님들에게 만시지탄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 인쇄(Print)하기

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글 두뇌기반교육에서 길을 찾다!(6) -자기체계 편- 다음글 교육 30년지대계(2) – 중앙정부가 중앙집권적으로 교육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자.
칼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