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가 바라본 2015 개정 교육과정
1. 엉뚱한 불똥
9월 12일 발표된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의 방향과 주요사항’에서 가장 새로운 이슈는 초등학교 1-2학년의 수업시수를 확대하는 논의이다. 아래의 표를 살펴보면 한국의 초등학교 1-2학년의 수업시수가 비교국가 중 가장 낮게 나왔다.
※ 온정덕(2014), 초등학교 수업시수 국제비교 및 적정화 방안 연구
단위: 시간(60분)
| 국가 | 한국 | 영국 | 미국 | 핀란드 | 프랑스 | 독일 | 싱가포르 |
|
1, 2학년 연간시수 |
560 | 645-765 | 845.5 | 570 | 864 | 798 | 646 |
이 연구를 바탕으로 ‘초등 1∼2학년(군) 수업 시수를 주당 1∼2시간 증배하여 창의적 체험활동에 배정하거나 안전 생활 등 안전교육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초등학교 1-2학년의 수업시수를 1-2시간 늘인다면 지금도 지난 2009개정 교육과정으로 인해 1주일에 5교시를 하루 이상 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2-3일은 5교시 수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엄청난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2. 비슷한 연구 다른 결론
2013년 교육과정평가원의 백경선 연구원이 연구한 ‘교육과정 편제 및 수업시수에 대한 국제 비교 연구’에서 보면, OECD 8개국과 비교해 본 결과 한국 초등학교 저학년의 연간 수업 시수인 560시간(국가수준 교육과정)과 563.65시간(단위 학교실제 사례)은 가장 낮은 수준이다. 초등학교에서 연간 수업 시간이 가장 높은 국가는 캐나다로서 학년에 관계없이 연간 950시간이다.

또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상위 학년으로 갈수록 연간 수업 시수가 높아지는 반면, 나머지 7개국에서는 학년에 관계없이 초등학교 연간 수업 시간이 거의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비교 국가에서는 부모들이 등하교를 책임지는 사회적 문화가 있어 아이들을 한꺼번에 등하교시키는 생활이 정착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 부분 이해가 된다. 이들 국가의 수업시수 편제는 학년 구분 없이 비슷하게 하지만 내용상 초등 저학년은 우리와 같은 정규수업보다는 돌봄기능이 많이 포함된 것이다.
백경선 연구원은 이 연구 결과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수업 시수는 비교 국가에 비해 그 차이가 더 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만으로 교과 이수 시간의 증가나 이수 교과목 수의 증가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국가별 교육과정 결정의 주체, 편성·운영의 실제, 교육과정에 부여된 자율권 등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면서 초등학교 1~2학년의 수업시수를 늘리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로 ‘수업 시간을 늘림으로써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향상되거나 학교 교육의 질이 높아진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우수한 결과를 보이고 있는 핀란드도 연간 수업 시간이 OECD 국가의 평균과 비교하여 낮은데, 이 점도 수업 시간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상호 관련짓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말해준다’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3. 초등 저학년 문자교육 확대 필요
유치원 누리교육과정이 처음 도입될 때 필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누리교육과정에 문자교육이 포함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입학기인 8세 이전의 문자교육은 아동발달 단계상 문제가 있다. 유치원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문자교육을 위해 필요한 공간보존개념이나 변이개념이 발달단계상 완성되지 않았기에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 중 문자를 익히지 않고 오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입학하면서 곧바로 알림장을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초등학교에서 한글해득교육은 제7차 교육과정에서 6시간,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14시간, 2009년 개정된 교육과정에서 3단원(27시간)으로 조금씩 늘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반면에 누리교육과정에서는 문자교육을 실시하고 있지 않다. 아동발달 단계의 원칙을 잘 지킨 것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14시간 정도 문자교육을 받은 후에 곧바로 받아쓰기 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문자교육은 가정이나 사교육의 선행학습으로 떠 넘겨진 것이다.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나라로서 제대로 된 문자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참으로 창피한 일이다. 지금 초등 1-2학년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문자교육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의 문해력지수는 OECD의 최하위권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선이 시급하다.
4. 교육과정 구성의 가장 약자는 초등학생
교육과정 논의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주체는 대학이다. 교육에서 대학은 마치 먹이사슬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최종 포식자와 같이 교육이라는 생태계 전반에 가장 강력한 힘을 미치고 있다. 교육과정에서 대학이 미치는 가장 중요한 힘은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학업성취기준을 제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성취기준은 대학을 입학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험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출제 기준이 된다. 당연히 이 시험을 보는 고등학생들은 과목별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요구하는 성취기준을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고등학교 3학년을 졸업할 때 달성해야 할 학업성취 기준이 정해져 있고, 이 기준에 도달하게 하기 위해 중학교와 초등학교의 교육과정이 효과적으로 배열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논의에서 두 번째로 큰 힘을 가진 주체는 교과관련 이해당사자들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교과 관련 대학교수들과 교사들이다. 자신의 전공과목이 교육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차지하느냐가 자신들의 생존과 영향력 확대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들의 이해관계의 타협점에서 교육과정의 시간이 조정되기 마련이다.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자신들의 교과시간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 결과 학생들은 많은 교과들을 배우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같은 과학교과 안에서도 물리, 생물, 화학, 지구과학의 내용들을 골고루 배워야 한다.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교육내용 축소나 교과 축소를 말하지만 최종 결과물에서는 오히려 교육내용이 늘어나 버리는 것은 대부분 이런 이유에서 발생한다. 정치적 타협에서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으레 약자들이다. 힘의 논리가 중요한 정치적 타협에서 가장 약한 자는 학생들이고 그 중에서도 초등학생이 가장 약자이다. 학생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부모들은 전문적 논의 과정에서 소외되기 마련이다.
실제적으로 지난 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사회에서 한 학기 동안 반만 년 역사를 가르치는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교사들이 그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 결과 한 학기동안 반만 년 역사를 배우는 교육과정은 중학교로 옮겨지지 않고 오히려 초등학교 5학년으로 내려왔다. 6학년에게 가르치기 어려운 내용을 어떻게 5학년에게 가르치라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초등학교의 교육과정은 해를 거듭할수록 어려워져 가고 있다. 시대변화에 따라 새로운 교육내용이 추가되면 자연스럽게 기존의 교육내용이 아래로 밀려내려오기 때문이다. 마치 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낼 곳이 없는 사해의 염도가 다른 바다보다 이상하게 높은 것처럼 우리나라 초등학교는 강도 높은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5. 독립적인 초등교육과정 위원회 설립 필요
가장 교육적인 교육과정 구성방법은 초등학교 1학년의 발달 단계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중에서도 도시에 사는 공부 잘하는 학생을 기준으로 해서는 안 된다. 성적 하위 1%의 농산어촌에 사는 학생을 기준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교육과정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 심하게 말하면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버리고 가는 교육과정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의 학부모에게 일부 몰지각한 교사들이 학원을 좀 보내라는 충고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초등 교과서가 지나치게 도시에 사는 아이들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어 비도시 지역에서는 소화할 수 없는 내용들도 많다.
위에서 지적한 문제점을 지금의 구조에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대안을 제시한다면 “초등교육과정의 독립”이다. 힘이 약한 사람에게 기존의 질서에서 어떻게든 잘 해보라고 한다면 논의만 무성할 뿐 좋은 결과를 낳기는 어렵다. 정치적으로는 “입시로부터 독립된 행복한 초등학교”와 같은 강한 문구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육과정만은 기존의 교육과정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에서의 성취기준이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만드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발달단계가 가장 우선시되는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독립된 초등교육과정을 위한 “초등교육과정 위원회”의 설립을 통해 대학입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동 발달단계를 고려한 이상적인 초등교육과정이 만들어질 것이고, 중등교육과정은 초등학교 학생이 졸업할 때의 학업성취기준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요구하는 학업성취기준 사이의 교육내용을 가지고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짜게 될 것이다.
당연히 중등교육과정에서 많은 양의 교육과정을 소화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교육과정에 관한 논의는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상한선만 있고 하한선이 없는 교육과정 논의는 힘의 논리에 따라 늘 아래로 교육내용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약자에게 부담을 넘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이제 끝내야 한다. 이런 방식은 잠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초등교육과정을 어렵게 만들고 학습결손을 양산해 왔다. 약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은 문제를 직면하게 하지 못하므로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기회를 빼앗는 나쁜 방식이기도 하다. 중등교육과정은 중학교까지 공통이수 교육과정을 발달단계에 맞게 만들고 고등학교에서 다양한 선택에서 의해 학생별로 교육이수 내용을 심화하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의 문제를 푸는 것이 적절하다.
※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한산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며, 좋은교사운동 초등정책 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교육정책 비평가로 활동하며, 경향신문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