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바꾸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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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세월호를 닮아가는 한국 학교교육, 어떻게 구할 것인가?

#72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14.05.14

세월호 참사는 우리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번 참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능하고 허술하며, 인간이 얼마나 탐욕적이며 비윤리적일 수 있는지를 명확히 확인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부패지수가 말해준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3년 기준, 한국은 100점 만점에 55점으로 세계 177개국 중 46위다. 스페인(40위), 폴란드(38위)보다도 순위가 뒤진다. 오호애재(嗚呼哀哉)라! 무엇이 한국을 이 수준으로 만들었는가. 어떻게 위기의 순간에 가장 기본적인 프로세스도 작동되지 않는단 말인가. 배의 침몰 순간에도 선장과 청진해운은 승객의 퇴선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허비한 시간이 무려 40여분. 승객의 퇴선 판단은 팽개치고 자신들만 먼저 탈출한 이 야만적 비양심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동안 교육은 무엇을 했고, 인간이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인륜도 이렇게 무참히 저버릴 수 있단 말인가. 슬프고 부끄럽지만 이게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제 분노를 가라앉히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슬픔과 공분의 단계를 넘어 우리들 각자의 책임을 통감하고 자신이 선 자리에서 어떻게 응분의 책임을 질지를 생각할 시점이다. 이것만이 그들의 희생에 대한 작은 위로이자 죄인이 취할 최소한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교육시민단체로서 지금 시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아가 교육계 전체는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생각할수록 현재의 학교교육은 무서울 정도로 세월호를 빼닮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한국의 학교교육도 침몰하고 있으며 그 속에 갇힌 수많은 아동, 청소년들이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학교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외면하는 것일까 또 아니면 체념한 것일까. SOS를 치는 사람도 없고 너무 조용하다. 침몰 중인 학교교육을 알리고 세월호의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이 칼럼을 쓴다.

 

한국의 학교 교육이 왜 세월호를 빼닮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자. 그리고 침몰하는 학교교육을 어떻게 구할지 함께 생각해보자.

 

첫째, 학교 시스템이 세월호만큼 낡았다는 점이 닮았다.

 

세월호 선령(船齡)은 21년이다. 일본은 선박법에 따라 선령 15년이 넘는 2000t 이상 여객선에 사실상의 사망선고를 내린다고 한다(중앙일보, 2014). 우리는 이미 폐기처분해야 할 선박을 수선해서 계속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학교교육시스템도 그렇다. 19세기 산업시대의 유물을 지금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공교육도 폐기처분할 때가 이미 넘었다. 지금의 교육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세월호를 조금씩 수선해서 운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약 20-30년 앞을 내다보면서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디자인 해야 한다.

 

둘째, 학교교육 역시 침몰했거나 침몰하고 있다는 점이 닮았다.

 

학교 교육의 붕괴, 교실의 붕괴 등은 배로 말하면 침몰에 해당된다. 공교육의 내용이 의미 있고 즐겁고 좋아서 학교에 가는 학생들은 소수다. PISA 2012 결과를 보면 수학에 대한 불안감은 세계 최고며 자존감, 자기유능감은 세계 꼴찌 수준이다. 학생도 교사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즐겁지 않다. 지금 한국 학교교육이 침몰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징후로 봐도 분명하다. 최근 ‘한국건강증진재단’에서 전국의 중고등학생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30% 정도가 최근 한 달간 심한 우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 중단을 고민하는 학생의 숫자는 서울의 중고교생 기준 평균 32.5%(2011, 서울시교육청)에 이른다. 중퇴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학교가 좋아서가 아니라 유급제도가 제대로 작동 않는 것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게다가 학교는 많은 아동, 청소년들에게 약(藥)이 되기보다는 독(毒)이 되는 장소가 되고 있다. 하위권 청소년들은 수업에서 일상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낙인효과, 자존감 상실, 부정적인 자아상 강화, 무력감 강화, 차별, 이로 인해 비행과 폭력에 가담할 가능성 증가, 장래에 대한 희망 상실 등은 세월호의 침몰로 인한 소중한 생명의 희생에 버금가는 일로서 함께 반성하며 되돌아보아야 할 문제이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소외되는 아동, 청소년들의 이런 피해를 우리 사회는 너무나 오랫동안 눈감고 있다. 이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아야 할 아동들이 가장 심하게 차별받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들로 하여금 어른과 사회에 대한 분노를 키울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미래사회를 통합이 불가능한 사회로, 지속가능하지 못한 사회로 만들 우려도 크다.

 

이제 정부와 교육계는, “단 한 사람의 배제와 차별도 없고, 개인의 능력과 학습속도에 맞는 개별화 교육의 실현”을 2025 교육비전으로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이 비전이 달성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와 여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

 

셋째, 과적운행은 과밀학급, 과도한 학습량을 닮았다.

 

현재 한국의 초중고 학급당 평균 인원수는 2013년 4월 1일 기준으로 초 23.2명, 중 31.7명, 고 31.9명이다(KEDI, 2013). 이는 OECD의 평균(2010년도 기준 초등 21.2; 중고 23.4)에 비해서도 많은 편이다. 이는 평균을 말하는 것이고 현재 한 반의 인원이 40명이 넘는 곳도 있다. 이는 분명 과밀학급이고 이는 개인이 받아야 할 관심과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밀학급은 과적이 승객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듯이 학생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관심과 배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학생들과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학급당 인원수를 20명 이하로 줄이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최소수준이 너무 높고, 학습량이 너무 많다. 느린 학습자는 낙오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도 도착시간에 맞추기 위해 과속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습량이 너무 많으면 수박 겉핥기식 수업, 진도빼기식 과속 수업이 불가피하다. 이런 과속 수업, 소화불량 수업은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조장한다. 이번 세월호의 과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경험했다. 이를 계기로 교과이기주의가 사라지게 해 교육과정 적정화를 이루어야 한다. 아울러 교사의 개별 평가를 정착시키고, 교과서 내용 전체를 다 가르치려는 문화도 바꾸어야 한다.

 

넷째, 학교 교육의 선장(〓교육부, 교육청)이 승객들(〓학생들)에게 침몰하는 배 속(〓학교)을 떠나지 말기를(〓계속 학교를 다니기를) 바라는 점도 닮았다.

 

한국의 국가와 사회는 학교 교육에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학생도 학교를 중단하지 말고 학교에 계속 남아있기를 바란다. 지금 학교를 거부하는 아동,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학교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누적된 학습부진을 해결해줄 시스템도 없다. 중하위권 학생들은 일상적으로 수업에서 배제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많은 아동들은 학교를 떠나 대안적 교육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나 사회는 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잠재력을 사장시키고 미래의 희망을 빼앗고 하루하루 자존감을 잃고 무기력만 쌓아가는 오늘날의 학교 현실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한국 교육이 이대로는 특정 아동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이 뻔한 데도 이런 아동들에게 기존의 제도 속에 계속 머물게 한다면 이런 정부와 사회는 침몰하는 줄 알면서도 자리를 뜨지 말고 제자리를 지키라고 한 세월호의 안내방송과 무엇이 다른가?

 

다섯째, 기초학력 미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예방과 조기 개입 시스템이 없거나 부실한 것은 평형수(平衡水)를 제대로 채우지 않고 운항한 것을 닮았다.

 

악천후 속에서 배의 요동이 심하더라도 혹은 실수로 배의 조타기(=운전대)를 급하게 돌려 일시적으로 배가 갸우뚱해도 배가 복원력을 회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배 밑바닥에 충분한 평형수를 채워야 한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의 경우 더 많은 짐을 싣기 위해 평형수를 제대로 채우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평형수는 흔들림 속에서도 선체의 복원력과 안정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학교 교육도 모든 아동의 기초실력을 튼튼히 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부족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부족한 평형수 상태에서 위험한 항해를 계속한 세월호와 기초실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는데도 적시 보정(補整)교육 없이 진도를 계속 나가는 학교교육은 서로 빼닮았다. 기초학력 미달이 발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질 높은 예방과 조기개입 시스템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기초실력을 갖추어 주지 못한 채 학업성취도평가의 예상문제만 반복적으로 풀게 하여 기초학력미달 통계수치만 줄이는 현재의 방식은 아동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선진교육이 채택하고 있는 보편적 학습설계(UDL)와 반응기반개입(RTI) 접근을 한국도 본격 도입해야 한다.

 

여섯째, 학생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보다는 국가나 학교가 정해 준 것을 잘 따르도록 길들여 수동적 인재를 양산하는 현재의 학교교육은, 침몰의 순간에도 ‘움직이지 말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란’ 안내 방송만 믿고 있다가 변을 당하게 한 점과 닮았다.

 

한국의 학교교육은 지독히 수동적이다. 수업의 대부분은 교사의 설명이다. 그 많은 배울 내용을 빠짐없이 가르치려면 진도빼기식 교사위주의 수업이 불가피하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배우는 내용, 배우는 수준, 배우는 속도를 학생이 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육과정 문서상으로만 학생의 선택권이 열려 있지 교사수급, 교실수급, 획일된 평가제도 등의 이유로 대부분의 경우 선택은 학교의 몫이다. 이렇다보니 학생들은 주어진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교육의 목적 중 하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키우는 것인데 한국의 학교교육은 이런 기회를 주지 않는다. 오직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해 1점이라도 더 따는데 모든 것을 집중시킨다. 이런 교육환경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책임 있는 민주시민의식이 길러질리 만무하다. 지금부터 고교 과정부터라도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숨은 재능과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일곱째, 고객의 귀중한 생명과 안전보다는 선주의 사익(私益) 추구와 선장의 생명을 더 우선시한 것은, 국가가 관료주의의 효율을 우선시하여 학교를 행정중심 체제로 운영하고, 교원이 승진하려면 교장·교감이 기대하는 교무행정을 잘 처리하도록 되어 있는 현 학교 시스템과 닮았다.

 

청해진해운 같은 군소 업체에서는 퇴선명령을 추후 민사 책임이나 인사상 불이익 등을 받을 것을 우려해 선장 혼자 결정하지 못하여 구조요청 하기 전에 본사에 먼저 알리는 게 업계의 관행이라고 한다(국민일보, 2014-4-26). 그래서 배의 침몰 순간에도 선장과 청진해운은 승객의 퇴선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허비한 시간이 40여분이나 된다. 이 순간에 선장이 승객의 구출에 우선순위를 두고 독자적으로 퇴선 결정만 내렸다면 훨씬 더 많은 생명을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아쉬움은 통한으로 남는다.

 

절체절명의 그 순간에는 평상시에나 지킬 수 있는 절차는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선장은 그 순간 인사상 불이익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관습에 승객의 생명 구조보다는 내부 절차를 더 우선시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간다.

 

학교를 보자. 교장은 상급기관의 평가를 잘 받아야 더 유리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고, 교사는 교장의 근평을 잘 받아야 승진할 수 있기 때문에 행정중심의 학교 운영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에게 진급은 생명이다. 그리고 교사의 근무평정은 교장40%, 교감30%, 동료교사30%로 진급에 관심 있는 교사를 교장, 교감의 기대사항에 충실하게 만드는 구조다. 그래서 ‘행정중심 학교체제가 수업중심 체제로 바뀌고, 교원승진제도를 개혁하면 학교가 살아날 수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행정 처리를 잘하고 관리자에 충성하는 교사보다 수업연구에 열정적인 교사에게 더 높은 평점을 주는 방향으로 평가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또 행정중심 체제는 교과수업중심 체제로 바뀌고, 학생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교사들을 우대할 때만 학교는 진정 학생을 위한 공간으로 변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여덟째, 학교자치가 미흡하고 중앙통제가 강한 교육 거버넌스는 사고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초기 상황을 판단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것과 닮았다.

 

재난이 일어나면 신속한 판단과 대응이 생명이다. 그러나 모든 통제시스템이 수직적 위계구조로 되어 있고 윗선의 지시를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중앙집권적 시스템이라면 긴급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진정한 분권화와 학교자치의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의 갈등 같은 것은 이제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위임해도 좋을 권한을 여전히 놓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해당 학교와 학생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단위학교와 교사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주어야 한다. 재난관리 시스템도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장 신속히 판단하고 조치할 수 있도록 현장에 권한을 주어야 한다. 선조치 후보고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아홉째, 위기 극복을 위한 관련 기관들 간의 협력이나 소통이 안 되는 것도 세월호 생명구조 상황을 닮았다.

 

해경의 초동 대처가 미흡했던 것뿐만 아니라 지휘체계가 명확하지 않아 지휘부와 현장 간, 민간과 정부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이는 일사불란한 구조를 힘들게 했고 장비투입 문제를 놓고도 사소한 이견과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상황은 교육행정과 일반행정이 분리되었기 때문에 이로부터 오는 비효율, 그리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관할 부서가 나누어져 있어서 교사 양성 불균형 및 관리 부실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점, 학교와 지역 아동센터들과 협조가 안 되는 점 등과 유사하다. 이번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가 일어났을 때 지휘통제체계의 난맥상이 없어야 하듯이 교육 거버넌스에 있어서도 네트워크들 간에 정교한 협치가 가능하도록 바뀌어야 할 것이다.

 

열째, 바른 학교 교육을 만들고 학생의 미래에 희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밤낮으로 헌신하는 교사들이 있다는 것은 세월호 영웅들을 닮았다.

 

“언니는 구명조끼 안 입어요?”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위 대화는 침몰하던 세월호에 남아 끝까지 학생들의 탈출을 돕다가 끝내 유명을 달리한 고(故) 박지영씨가 선내 구조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과 주고받았던 내용이다. 박지영씨 외에도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건네고 친구를 구하려다 숨진 고(故) 정차웅군, ‘세월호’ 침몰사고 최초 신고자로 174명의 생명을 구조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단원고 고(故) 최덕하군, 10여 명의 학생들을 구출해 냈지만 끝내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시신으로 발견된 고(故) 최혜정 단원고 교사, 자신은 얼마든지 먼저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빨리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외쳤던 고(故) 남윤철 단원고 교사, 침몰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배가 많이 기울었다. 통장에 있는 돈으로 아이들 등록금을 하라. 지금 학생들 구하러 가야 된다”는 마지막 말을 전한 후 현재까지 구조자 명단에 오르지 못한 양대홍 세월호 사무장. 이들은 영웅이자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이 분들 외에도 배안에서 구조를 돕다가 자신도 함께 변을 당한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이 더 있을 것이다. 지금 어린이집, 누리과정, 초중등 학교에도 이런 영웅들처럼 대한민국의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다.

 

이번 세월호 참사로 인한 모든 분들의 희생은 우리 어른들 모두의 책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각자부터 변해야 한다. 일상의 기본질서부터 잘 지키자.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꼬리물기를 하는 행위가 타인의 시간을 도둑질하는 것임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자. 운전 중 다른 차가 끼워달라고 신호를 보낼 때 끼워주기보다는 더 빠른 속도록 간격을 좁힌 경우는 없는가.

 

학교에서는 경쟁에 바탕을 둔 입시중심 교육을 멈추고 서로 협력하고 각자 가지고 태어난 재능과 바른 심성을 키워주는 교육을 하자. 이제 문제풀이가 중심인 수업을 교육이라 부르지 말자. 그리고 배울 내용, 배울 수준, 배우는 방법과 속도에 대해서도 학생들에게 선택과 통제권을 돌려주자. 그것만이 모든 아동이 수업에 몰입하고 매시간 성장할 수 있으며, 거칠어진 아이들의 언행을 바르게 이끌어 줄 수 있는 길이다.

 

이제 학교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도 돌아보자. 학습부진아 지도가 의도와 달리 국가의 실적관리에 가까운 것은 아닌지, 교사가 책임을 다했다는 것을 상부에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닌지, 진정 학습자를 위한 일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성찰하자. 우리 모두가 과연 선장과 선원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지 반성하자.

 

타인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나의 기득권을 내려놓자. 나의 기득권 고수가 수많은 아동들이 학교라는 배 안에서 조금씩 죽어가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점은 특히 공교육을 관리하는 국가가 깊이 성찰하자.

 

이제 학교를 한 사람의 아동도 배제하지 않는 장소로 만들자. 특히 하위계층 자녀들이 낙오하지 않고, 자존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교육시스템과 학교 제도를 만들자. 이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한국 교육을 이대로 침몰하게 놔둘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낡은 배를 폐기하고 약 20~30년에 걸쳐 새로운 배를 건축할지 선택해야 한다. 당연히 후자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댓글부탁]

심하게 기울고 있는 또 다른 세월호 학교교육을 어떻게 바로 세울지에 대한 소중한 의견 한 마디 기다리겠습니다. 보내 주시는 작은 아이디어를 모아 큰 실천의 힘으로 바꿔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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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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