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교육과정 개선방향과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의 비판적 검토
목차
1. 머리말
2.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도입의 배경 이해
3. ‘문이과 통합’이란 용어 해석 및 연관 과제의 이해
4.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논의 전(前) 필수 고려사항
가. 미래교육이 나아갈 방향
나. 문이과 통합관련 주요 쟁점들
다. 학교교육을 왜곡시키는 주요 환경 요인
5.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의 도입의 타당성 검토
가. 개정의 절차 타당성
나. 통합의 방향과 내용 타당성
6. 맺음말
1. 머리말
현재 교육부는 2015년 개정을 목표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교육과정 문서상은 문이과 구분이 없지만 ‘속칭’)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개정과 관련해서 한국교육과정학회는 ‘국가 교육과정 개선의 과제와 방향’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하반기부터 2014년 초까지 4차례 포럼을 개최하고 중간보고서(작성자, 황규호)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이번 교육과정 개정의 주요 이슈는 다음과 같은 3가지이다.
•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
• 핵심역량 중심 교육과정 개발
• 교육과정 개정의 절차와 과정에서의 유의점
이 중에서 필자는 차기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는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과 이와 조응하는 ‘수능 체제 개편’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현재 문이과로 구분되어 있는 수능체제를 개편함으로써 현재 일반계 고교에서 문이과로 구분 운영 되고 있는 것을 단일 계열 체제로 바꾸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이다.
2.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도입의 배경 이해
○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 논의의 계기는 교육부가 지난해 8월 27일 학생·학부모 부담 완화와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마련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서 속에는 수능시험 체제로 아래와 같은 세 개의 안을 예시하고 있다.
• 제1안: 문이과 구분안(현행 골격 유지안)
–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구분하고 2과목을 선택하는 현행 방안
• 제2안: 문이과 일부 융합안(1안, 3안의 절충안)
– 사탐과 과탐을 구분하되 교차해서 선택하는 방안
• 제3안: 문이과 완전 융합안
–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을 공통적으로 학습하고 수능에서 평가하는 방안
지금 교육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제3안: 문이과 완전 융합안’은 ‘창의적이고 융복합적인 인재 양성을 위해 학생이 균형적인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자 문·이과로 구분되어 있는 수능시험 체제를 개선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 제3안은 아래와 같은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이 공통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과목(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을 평가
• 국어·영어·수학 영역은 공통학업능력 측정을 위해 출제범위도 각각 동일하게 설정
• 사회·과학영역은 ‘사회’(사회 및 지리교과 내용요소 포함) 및 ‘과학’(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내용요소 포함) 과목 중심으로 평가
○ 융복합안이란 용어 사용: 융복합이란 용어에 대한 이해가 사람마다 다르고, ‘융복합을 고교 수준에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라는 등의 비판이 일자 지금은 융복합이란 용어 대신에 ‘문이과 통합안’처럼 ‘통합’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 교육부 보도자료(2013.10.25.)에 따른 교육과정 개정 추진 일정(안)은 다음과 같다.
• 교육과정 개발: 2013.11.~2015.5.
• 교과서 개발: 2015.3.~2016.8.
• 교과서 검정: 2016.9.~2017.8.
• 교육과정, 교과서 적용(고1): 2018.3.
• 2021학년도 수능 반영(고3): 2020.11.
○ 창의ㆍ융합 인재양성을 위해 “문ㆍ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발에 관해 교육부는 2014년 2월 13일 2014년도 업무계획으로 아래 사항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다.
• 인문학적 상상력,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인재로 키울 수 있도록 문ㆍ이과 칸막이를 없애는 새 교육과정 개발
< 문ㆍ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기본방향(안)>
◦ 모든 학생이 인문ㆍ사회ㆍ과학에 관한 기초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편성
◦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 개발을 위하여 핵심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교과별 학습량을 적정화하고 학생 참여형 수업 등이 가능한 여건 조성
◦ 꿈끼를 키워줄 수 있는 다양한 선택과목 또는 진로과정 개설 검토
• 교육과정은 초ㆍ중등 학교교육의 기본 설계도
–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교과서, 교원, 평가(학교생활기록부, 수학능력시험), 시설 등 교육정책 전반을 종합적으로 개선
• 전문가, 현장 교원 및 학부모 등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는 등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교육과정 개발 추진
• 현장 적합성이 높은 질 좋은 교육과정 개발을 위해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의 협업체계 구축 및 현장교원의 참여 확대
3. ‘문이과 통합’이란 용어의 해석 및 연관 과제의 이해
‘문이과 통합’이란 말은 그 의미 해석이 다양한 수준으로 존재하고, 해결하거나 조정해야 할 연관된 과제가 많아, 이를 먼저 살펴본 후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의 타당성을 검토하기로 한다. 문과와 이과란 표현 자체가 교육과정 상에는 이미 7차 교육과정부터 없어졌다. 그래서 논리적으로는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문과도 과탐의 일부과목을, 이과도 사탐의 일부과목을 필수적으로 배우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수능시험의 구조가 문과는 사회탐구만, 이과는 과학탐구만 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어서 시험을 보지 않는 과목의 학교 수업은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문이과 통합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으며, 문이과 통합과 연관된 과제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가. 문이과란 계열(혹은 과정)을 통합하는 ‘계열 통합’
‘계열 통합’은 일반계 고교에 존재하는 문이과 계열을 없애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이제 더 이상 고교에 문과 이과란 계열을 구분해서 지금처럼 경직적으로 교과를 편성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문과 이과의 구분을 없앰으로써 학생들이 공통으로 배우는 영역, 내용, 이수단위를 현재보다 늘리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계열 통합’은 ‘공통필수의 확장, 교과내 내용통합, 교과목 체제 변경’ 등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나. 문이과가 공통으로 배우는 영역을 확대하는 ‘공통필수의 확대’
현재 교육부는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의 도입을 통해 현재의 문이과가 공통으로 배워야 할 교과목을 늘리고 이를 수능에서 공통으로 평가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월 13일 교육부 장관의 업무보고 내용에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모든 학생이 최소한의 인문·사회·과학 교과를 학습하고 창의·융합형 인재로 자라도록 지원할 계획”, ‘다양한 선택과목 또는 진로과정 개설 검토’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고교 교육과정은 <공통필수+선택>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공통필수의 확대’는 특히 수학과 탐구과목이 그 대상이 될 텐데 어떤 수준까지 공통필수를 확대할지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며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
다. 융합과학과 공통사회의 ‘교과 내 내용통합’
교육부의 구상에 따르면 문이과 통합은 ‘공통필수의 확대’ 외에 ‘교과내 내용통합’, ‘교과목 체제변경’ 등을 수반할 예정이다. 현행 교육과정에도 융합과학, 공통사회가 있지만 이는 융복합형 교육과정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행 교육과정 중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었다(박백범, 2013). 따라서 창의적이고 융복합적인 인재양성을 위한 새로운 융합과학과 공통사회 교과서는 개별 교과 내용을 병렬식으로 제시하지 않고 내용 자체를 유기적으로 ‘섞는’ 화학적 통합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라. 기존 교과 구조의 유지여부와 관계되는 ‘교과목 체제 변경’
현재의 교과목 체제가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복잡하고 세분화되어 있어서 교과영역 및 교과(군)을 재구조화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만약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을 도입하게 되면 기존의 교과목 체제를 단순화하는 등의 ‘교과목 체제 변경’이 수반될 것이다.
지난 2월 13일 대통령에게 하는 업무보고에서도 ‘교육과정 개발과 연계하여 교과서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라는 내용을 포함시키고 있다.
문이과 통합으로 인한 교과목 체제 변경은 우선적으로 수학, 사탐, 과탐이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국어, 영어 과목도 그 체계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 왔다. 특히 탐구과목에서 대대적인 교과목 체제 변경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사탐 9개 교과목, 과탐 8개 교과목 체제를 이대로 두고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도입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 문이과 간에 출제범위를 동일하게 하는 ‘평가 통합’
차기 수능에서는 현재와 같이 수학, 탐구과목에서 문이과를 구분해서 시험보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청의 근거는 2014년 2월 13일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은 ‘모든 학생이 인문·사회·과학에 관한 기초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편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지난해 8월 27일 발표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란 문서에서 ‘수능 제3안’을 ‘국영수 영역은 공통학업능력 측정을 위해 출제범위도 각기 동일하게 설정’ 및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이 공통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과목(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을 평가’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바람직한 일인지는 뒤에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이처럼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문이과 통합이 수반하게 될 ‘계열 통합’, ‘공통필수의 확대’, ‘교과 내 내용통합’, ‘교과목 체제 변경’, ‘평가 통합’ 등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한지, 바람직하다 하더라고 이를 교육부가 밝힌 기간 내에 준비가 가능한지를 검토하는 일이다. 이상과 같이 ‘문이과 통합’의 타당성과 바람직한 정도를 검토하기 전에 ‘문이과 통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각 이슈들의 타당성은 뒤에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4.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논의 전(前) 필수 고려사항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과 이와 연계된 수능 체제에 대한 논의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사전에 논의의 판단 기준을 설정해보고자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논의를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논의가 겉돌거나 논쟁만 무성하고 이견이 있을 때 어떤 안이 더 나은 것인지 판단할 수도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론에 이르거나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이러한 기준의 설정에는 교육의 장기적 발전 방향이 포함되어야 한다. 만일 교육이 나아갈 장기적 미래방향을 설정하지 않은 채 단기적 관점에서 교육과정 개정을 단행한다면 이는 매우 위험하다. 나아갈 목표지점 즉, 방향도 모른 채 항해를 하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은 새삼 만들기 보다는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국내외 대다수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을 모아 정리한 것들이다. 다소 필자의 자의적인 주관이 들어가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논의를 할 때 평가나 판단의 최소한의 준거는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 미래교육이 나아갈 방향
▶ 교육과정 개정 원칙관련
[방향1] 단기·중기적(5년-10년) 교육개혁은 장기적인(10-20년) 발전방향을 수립한 후 장기적 방향에 맞추어 개혁한다.
[방향2] 충분한 연구와 준비를 통하여 개정하고 개정된 내용이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후 실시한다.
[방향3] 고교 교육과정과 대학 교육과정은 원칙적으로 연계를 지향한다.
[방향4] 전면 개정일 경우 교육과정 연구와 개발에만 최소 3년 이상을 확보한다.
[방향5] 개정의 논의 주체는 정책결정자, 연구자(학자), 실행자(교사)로 하되, 특히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교사의 참여와 역할을 가장 중심에 둔다. 도출된 초안에 대해서는 학생, 학부모, 기업가 등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어 사회합의형 개정을 추구한다.
[방향6] 이상과 현실을 분리해서 논의하고 조화시켜 개정한다.
▶ 교육과정 발전방향 관련
[방향7] 교육의 목적, 교육의 내용, 교육의 방법, 교육의 평가를 일치시킨다.
[방향8] 교사의 설명을 통한 지식의 전달을 지양하고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능동적 학습을 하도록 한다.
[방향9] 초중 수준에서 모든 학생이 공통필수로 배워야 할 내용은 가능한 한 최소화하고(예: 중학교 혹은 고1까지만 공통교육과정으로 운영), 고교 교육과정은 개인의 현재 수준, 적성, 진로, 흥미 등이 다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여 선택의 폭을 넓히고 다양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킨다.
[방향10] 개인의 현재 수준, 적성, 진로, 흥미 등이 다 다르다는 점, 학습결손이 누적된 학습자가 같은 반에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개별화 지도(differentiated instruction)를 지향한다.
[방향11] 단편적 지식 전달식 현 학교수업을 (간교과/범교과)프로젝트 수업, 토론수업, 체험수업 등을 강화함으로써 지식의 활용 비중을 높인다. 이를 통해 지식과 역량의 균형 잡힌 교육을 추구한다.
[방향12] 교사가 가르쳐야 할 분량의 과다로 인한 진도빼기식 수업은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하고, 많은 양을 피상적으로 지도하지 않고 핵심적인 내용을 깊이 있게 지도하는 방향을 지향한다.
[방향13] 지식의 습득과 지식의 활용, 적용, 활용 등이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
[방향14] 인지적 학습과 정의적 학습이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
▶ 대입전형 발전방향 관련
[방향15] 대입전형은 상대평가적 특성을 축소하고,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중기적으로 자격고사화를 지향하며, 내신의 반영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시킨다.
▶ 평가 발전방향(내신) 관련
[방향16]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 내신 평가는 교사별(학급별), 수준별, 절대평가를 지향하되, 실시는 작동할 수 있는 준비(교사의 전문성, 외고·자사고 등의 걸림돌)가 된 다음에 한다.
[방향17] 현재 선발에 맞춰져 있는 학교 교육의 평가를, 피드백 강화를 통해 지도와 평가를 일치시키는 형성평가를 강화한다.
나. 문이과 통합관련 주요 쟁점들
이번 교육과정 개정과 수능의 개편에 관해 아래와 같은 쟁점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쟁점은 교육과정 개편 이전에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쟁점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느냐에 따라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도입에 대한 평가나 입장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고교 교육과정의 성격에 대해
1) 고교 교육의 성격을 기초교양교육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진로진학 준비 과정으로 볼 것인가?
이에 대한 판단은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고교 교육과정의 성격을 전자로 보면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추진의 기본 방향은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고교 교육과정의 성격을 후자로 보면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의 도입은 고교 교육의 장기적 발전방향과 상충된다.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을 추진하는 교육부는 고교 교육의 성격을 기초교양교육으로 보는 듯하다. 이런 시각에는 대학교육조차 교양교육에 가깝다는 논리와 아직 고교 과정에서 자신의 장래 진로를 정하기 어렵다는 논리도 깔려 있는 듯하다. 그리고 미래사회는 직업의 생멸 주기가 더 빨라져서 특정 직업에 관련된 전문성을 갖추기보다는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고 국영수와 같은 도구과목을 충실히 공부하며, 21세기를 살아갈 때 필요한 공통 필수 역량을 갖추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까지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한편은 일리가 있지만 한쪽만 생각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선진 교육을 보자. 미국을 보든, 핀란드, 스웨덴을 보든 고교 과정에서는 개인의 선택의 여지를 가능한 한 넓혀주려고 한다. 핀란드의 경우는 개인별 학습 계획(ISP: Individual Study Plan)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개별화 교육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은 잠재력, 적성, 도달 목표, 흥미, 현재의 수준, 선호하는 학습 스타일 등이 다 다르다. 이런 이유로 개별화 교육을 지향하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의 기회를 통은 수준으로 보장하는 개별화 교육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중요한 가치다. 대학교육이 교양교육에 가깝다고 해서 고교 교육의 성격도 기초교양교육으로 보고 공통교육과정을 연장해서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교과를 동일한 수준으로 배워야 하는 기간이 과도하게(예: 1년 이상) 늘어난다면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 공통필수는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교 과정에서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매우 많다. 우선 뇌과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21세기 디지털 원주민들의 뇌는 자신이 배우고 싶은 내용에조차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 하물며 자신이 배우고 싶지 않고 배울 의미를 찾지 못하는 교과 내용에 대해 몰입해 학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뇌과학에서는 학생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을 가장 중요한 수업 전략의 하나로 삼는다. 이는 교육과정 혁신의 세계적 추세와도 일치한다(2013, 이찬승). 한국의 교실붕괴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다수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몰입할 수 있는 접근이 무엇인가를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학습 부적응 아동이 많은 것이 현재의 상황임을 인정한다면, 일상적으로 수업에 배제되고 있는 학생들도 수업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잠재력을 녹슬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우리 교육은 더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공통필수 영역을 과도하게 넓히고 그런 교과를 공부하는 기간을 연장한다면 이는 개인의 선택의 폭을 줄이고 배울 내용을 국가가 강제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교육부가 고교 교육과정을 기초교양교육으로 보고 고교 전 과정 혹은 2년 정도라도 공통필수를 주로 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면 이는 한국 공교육 발전사에서 가장 잘못된 판단으로 기록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그렇다고 진로진학 준비 과정은 그 모든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진로진학 준비과정도 경직적으로 운영할 경우 많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배워야 할 수준을 전반적으로 낮추고 배워야 할 과목 수를 현재보다 늘리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과도함은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가 적합한가를 결정하는 과정은 많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고교 교육의 성격을 어떻게 보든 개인의 선택의 여지는 최대한 넓혀 주어야 한다.
이상의 쟁점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미래교육이 나아갈 원칙’에 상충되는 것은 아닌지 검토가 필요하다.
[방향9] 초중 수준에서 모든 학생이 공통필수로 배워야 할 내용은 가능한 한 최소화하고(예: 중학교 혹은 고1까지만 공통교육과정으로 운영), 고교 교육과정은 개인의 현재 수준, 적성, 진로, 흥미 등이 다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여 선택의 폭을 넓히고 다양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킨다.
▶ 교육의 다양화 방안에 관해
1) 고교 다양화를 학교 다양화로 실현할 것인가, 학교 내 교육과정 다양화로 실현할 것인가?
평준화 제도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가 주도했던 고교 다양화 정책을 선호하고 현 외고, 자사고 등의 유지를 찬성한다. 하지만 이런 고교들 때문에 고교 서열화가 더 심화되어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입시준비 교육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 왔을 뿐만 아니라 다양화의 취지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학교 내 교육과정 다양화를 찬성하고 있다.
고교 교육과정 다양화는 문서상으로만 가능성을 열어 두었지만, 실제 다양한 교육과정의 운영은 여건 미비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실제 학교 내 교육과정 다양화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여건이 매우 많다. 우선 핀란드처럼 한 교사가 복수의 과목을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그리고 교과 교실제도 원만하게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또 교사별, 수준별 절대평가도 가능해야 교육과정 다양화가 작동될 수 있다. 따라서 교육을 다양화하고, 개인에게 선택의 문을 활짝 열어주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짤 필요가 있다.
학교 내 교육과정 다양화를 위해서는 현재의 외고, 자사고, 과학고 등을 중점학교로 혹은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도입과 함께 외고, 자사고 등의 교육과정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2) 학교 내 교육과정 다양화는 계열 다양화를 추구할 것인가, 개인의 적성, 진로, 흥미에 따른 과목 자율 선택형 다양화를 추구할 것인가?
계열 다양화는 현재의 문과, 이과를 더 세분화 하여 다양한 계열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9등급 상대평가 제도 하에서는 실시가 어렵다. 대도시의 대규모 학교의 경우는 다양한 계열의 운영이 가능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학교들은 주변 학교와 협력해서 공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식이 되어야 한다. 다학기제를 도입한 다음 복수전공을 시도하는 것도 바람직할 수 있지만 이는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아직은 많은 어려운 점이 예상된다. 대입전형이나 취업에 유리한 과정에 몰리는 현실, 고교-대학의 연계부족, 고교과정을 기초교양교육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기 어려운 교사주도의 수업 지속 등도 계열 다양화를 도입하는 데 주요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문이과나 이를 약간 더 세분화한 인문·사회·과학 정도의 계열을 개인별 교과목 자율 선택이 실제 가능한 여건을 만들기 전까지는 유지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한편, 과목 자율 선택을 통한 다양화는 현재의 교육과정이 이에 해당되나, 복수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의 양성이 병행되어야 하고 절대평가 도입, 교실 수급이 따라주어야만 기대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상의 쟁점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미래교육이 나아갈 다음의 원칙’에 비추어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방향9] 초중 수준에서 모든 학생이 공통필수로 배워야 할 내용은 가능한 한 최소화하고(예: 중학교 혹은 고1까지만 공통교육과정으로 운영), 고교 교육과정은 개인의 현재 수준, 적성, 진로, 흥미 등이 다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여 선택의 폭을 넓히고 다양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킨다.
▶ 융복합형 인재양성의 방법에 대해
1) 융복합형 교육과정의 핵심인 융복합형 교과서로 교수학습을 하면 융복합형 인재 양성에 도움이 되는가, 오히려 방해가 되는가?
우리 사회는 융복합형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이런 인재를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모든 학생들이 사탐과 과탐은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배우면 그런 인재 양성에 도움이 된다는 막연한 인식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접 과목을 힘께 배운다고 융복합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란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함께 여러 과목을 배우게 되면 수박 겉핥기식 수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융합과학과 공통사회와 같은 교과목을 만들어 전통적인 교과간의 엄격한 경계를 허무는 것이 창의적 융복합형 인재 양성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서, 개별 과목의 기초지식을 먼저 튼튼히 한 후 간교과적(interdisciplinary) 혹은 범교과적(multidisciplinary) 프로젝트 수업 등을 통해 융복합적 사고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일 것이란 견해도 존재한다. 융복합형 인재 양성이란 목적과 사탐, 과탐의 편식을 해소하려는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다 보니 매우 도식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란 비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쟁점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미래교육이 나아갈 다음의 원칙’에 비추어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방향11] 단편적 지식 전달식 현 학교수업을 (간교과/범교과)프로젝트 수업, 토론수업, 체험수업 등을 강화함으로써 지식의 활용 비중을 높인다. 이를 통해 지식과 역량의 균형 잡힌 교육을 추구한다.
[방향12] 교사가 가르쳐야 할 분량의 과다로 인한 진도빼기식 수업은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하고, 많은 양을 피상적으로 지도하지 않고 핵심적인 내용을 깊이 있게 지도하는 방향을 지향한다.
▶ 학교 내 평가에 대해
1) 절대평가가 타당하지만 당장은 준비가 안 되었으니 향후 몇 년간은 절대평가가 가능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기간으로 잡고 과도기적으로 상대평가를 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시범 운영기간이 끝나면 바로 시행에 들어갈 것인가?
절대평가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매우 많다. 우선 상대평가는 평가의 특성이 학습목표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에 관심을 두는 평가가 아니고 상대적 서열화에 초점이 있다. 현재의 9등급 상대평가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도전적인 과목을 선택하기 보다는 자기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이 수강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비록 배우는 것이 적다고 할지라도 좋은 내신 등급을 받는데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허경철, 2014). 이런 상대평가는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 문제를 비틀거나 꼬아서 내야 하는 경우도 잦다. 대입전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1,2,3등급 구분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더라도 상대적 서열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2,3 등급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문제를 쉽게 내거나 소인수 학습집단의 경우에는 아예 1등급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래서 상대평가는 비교육적인 평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평가는 성취기준에 비해 어떤 성취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파악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전에 설정한 목표에 도달을 점검하기 위한 평가란 점에서 교육적이다.
절대평가 도입에 있어 걸림돌은 무엇일까? 절대평가의 경우, 현재로서는 성적 부풀리기가 예상되고, 이 때문에 대학이 내신 성적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성적 부풀리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교사별, 수준별 절대평가를 도입해 정착시켜야 하는데 이는 교사의 평가전문성과 신뢰도 때문에 현재로서는 선별을 위한 자료로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절대평가의 경우, 외고·자사고 등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는 비판이 일 가능성도 높다.
또, 수준별 절대평가를 위한 기준 설정도 미비해서 교사별, 수준별 절대평가는 향후 상당기간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우선 절대평가가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이런 여건이 만들어지는 시점에서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고교 교육이 선택형 교육과정으로 가기 위해서도 절대평가를 위한 환경마련(교사의 전문성과 학습별, 수준별 교사별 평가에 대한 신뢰성 확보)은 최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상의 쟁점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미래교육이 나아갈 다음의 원칙’에 비추어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방향15] 대입전형은 상대평가적 특성을 축소하고,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중기적으로 자격고사화를 지향하며, 내신의 반영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시킨다.
[방향16]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 내신 평가는 교사별(학급별), 수준별, 절대평가를 지향하되, 실시는 작동할 수 있는 준비(교사의 전문성, 외고·자사고 등의 걸림돌)가 된 다음에 한다.
[방향17] 현재 선발에 맞춰져 있는 학교 교육의 평가를, 피드백 강화를 통해 지도와 평가를 일치시키는 형성평가를 강화한다.
▶ 수능시험의 발전방향에 대해
1) 수능시험은 수능I, II의 체제로 발전시킬 것인가 아니면 자격고사화 할 것인가 혹은 폐지할 것인가?
수능시험이 표준화된 고부담 객관식 시험이라서 학교교육을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주범 역할을 해왔다. 이제 수능을 이대로 두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할 수 없다는 점도 충분히 확인했다. 그렇다면 수능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가? 수능체제 개편을 오직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을 위해 고려한다면 이는 너무 근시안적이고, 소극적인 접근이다. 수능시험이 고교 교육과정을 종속시켜버리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어쩌면 교육과정의 개정보다도 수능을 향후 어떤 방향으로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될 필요도 있다.
지금까지 수능을 자격고사화 하자는 주장이 있어왔다. 자격고사란 영국의 GCSE나 핀란드의 졸업시험처럼 학업성취도 평가 성격을 가지면서 이것이 대입 자격고사의 성격을 갖는 시험을 말한다. 수능의 자격고사화는 미국의 과거 SATI, II처럼 수능I, II 체제를 채택해서 수능I은 문이과 공히 봐야 하는 자격고사의 역할을 하고 수능II는 대학의 전공 관련 선택시험으로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수능II를 국가시험으로 가져갈지 아니면 학생부의 내신으로 대신할지 이는 절대평가의 실행 가능성을 고려해서 판단할 과제다.
2) 수능시험 과목의 배점을 어떻게 적정화 할 것인가?
현재는 수능의 국어, 영어, 수학이 각각 100점이고, 사탐과 과탐은 각각 50점씩이다. 그동안 국영수의 배점 비중이 상대적으로 너무 높다는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 도구 과목이란 중요성은 있지만, 특히 영어, 수학의 경우 성적이 가정의 경제적 수준과 연관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격차완화나 형평성 차원에서도 국영수 비중을 줄이고 과탐, 사탐의 비중을 높이는 것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사교육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수능시험에 대해서는 뒤에서 ‘평가 통합’의 타당성 검토를 할 때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다. 학교교육을 왜곡시키는 주요 환경 요인
교육 개혁 정책들 중에 도입의 취지가 나빴던 것은 없다. 대개 도입의 취지는 좋지만 이것이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을 수반하는 것이 문제였다. 현장에서 작동될 수 없는 정책을 펴면 학교가 혼란스러워지고 교사는 피곤해지며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로 돌아간다. 이런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을 펼 때 실제로 기대하는 성과가 날지, 실현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를 면밀히 따져보고 시범운영을 통해 철저히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정책도 현장에만 내려가면 왜곡되어 기대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는 학교 교육을 둘러싸고 있는 부정적 환경 조건들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번 통합교육과정 도입 논의도 진공상태에서 하면 안 될 것이다. 앞으로 어떤 교육개혁을 하더라도 한국의 학교교육을 왜곡시키는 아래와 같은 환경 요인들을 고려하면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10년 내 불변적 요인
○ 대학의 견고한 서열
○ 학벌중시
○ 직업의 귀천의식
○ 안정적인 직업 선호의식
○ 적성을 고려한 진학보다는 성적에 맞춰 진학하는 경향
○ 전공을 살리기보다 임금이 높은 직종 선호 의식
○ 평가의 타당성보다 객관성/신뢰성 중시 경향
○ 학교교육을 거부하는 아이들 증가
○ 학교 부적응 아동 다수
○ 사교육(선행학습)의 영향 지속
○ 고졸-대졸간의 큰 임금격차
○ 괜찮은 일자리 부족
○ 관료주의의 폐해
▶ 10년 내 가변적 요인
○ 고교교육의 대입전형 종속화
○ 수능시험의 성격과 타당도
○ 대학의 우수 인재 선발 경쟁
○ 내신평가 방법(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 교직사회에 대한 낮은 신뢰도
○ 학급당 인원수 과다
5.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의 도입의 타당성 검토와 대안제시
문이과의 통합이란 표현이 다양한 조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만큼 쟁점도 많고 이의 도입을 위해서는 사전에 연구하고 사전에 해결할 과제도 많다. 문이과가 공통으로 배워야 할 내용과 양, 배워야 할 수준, 배우는 방법, 수능에서의 평가 등을 결정하는 일도 매우 난해하다.
이번 개정은 고교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변경하는 성격이 짙기에 개정 방향을 결정하기 전에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개정방향에 대한 타당성 검토는 매우 중요하다.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이 아무리 바람직하다 하더라도 개정의 절차와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교육과정을 위한 정책방향이 타당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가. 개정의 절차 타당성
개정의 절차가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일정의 적절성과 개정과정에 교사의 참여와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개정일정에 관해
교육부는 아직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고, 수많은 관련 쟁점에 대한 충분한 연구나 사회적 논의 및 공감대 형성의 과정도 없이 교육과정 개정과 새로운 수능 도입의 일정을 이미 아래와 같이 발표한 상태이다.
교육부 보도자료(2013.10.25)에 따른 교육과정 개정 추진 일정(안)은 다음과 같다.
• 교육과정 개발: 2013.11~2015.5
• 교과서 개발: 2015.3~2016.8
• 교과서 검정: 2016.9~2017.8
• 교육과정, 교과서 적용(고1): 2018.3
• 2021학년도 수능 반영(고3): 2020.11
이상의 일정에 근거한다면 졸속개정이 될 우려가 크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은 ‘계열 통합’, ‘공통필수의 확대’, ‘교과 내 내용 통합’, ‘교과목 체제 변경’, ‘평가 통합’ 등 매우 중요하고 복잡한 연구와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고교의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변화가 오면 이는 필연적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육과정에도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번 교육과정의 개정은 대규모 전면개정이다. 현재의 2009 개정 교육과정은 기준자체가 허술하여 수정, 보완할 것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대규모 개정은 아무리 빠르게 추진해도 교육과정 개발에만 3년은 족히 걸릴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런 전면 대규모 개정을 1년 반 만에 마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일본, 핀란드 등의 나라들이 10년 주기로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이유는 그만큼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교육과정을 가장 모범적으로 연구하고 개정했다는 스코틀랜드의 경우 약 7년에 걸쳐 매우 질 높은 연구를 수행해서 세계의 모범을 보이고 있고, 핀란드 역시 ‘교육과 연구계획 2011~2016(Education and Research 2011-2016)’을 통해 202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국가의 수립이란 교육비전을 먼저 수립하고 이를 역순(backward) 방식으로 연구와 개정작업에 임하고 있다.
또 한편, 역량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도 전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역량의 도입까지 추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졸속개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 교사의 참여에 대해
절차의 타당성을 논할 때 교육과정의 논의와 의사결정 주체에 교사를 핵심 파트너로 참여시키지 않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교육과정 개발 연구에 의하면 교사를 교육과정 개발에 적극 참여시켰을 때 교육과정 운영의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봐도 그렇다. 그래서 국내 교육과정 학자들도 이에는 모두 공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다음은 최근 학교 상황을 정말 참기 어려워 조기 퇴직한 한 교사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현장 교사로서 교육과정의 개정 방향에 관계없이 여전히 상존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단위학교/교사를 나름 판단력이 있고 자율적인 주체로 간주하더라도 이들의 주체적 교육 역량을 발휘할 구조가 안 되어 있는 학교. 구성원들이 목표를 공유하지 않고 교사 개인의 헌신 또는 무관심 등을 그대로 인정하고 흘러가는 학교 문화 등등이 여전한 상황에서는 상층부의 교육개혁에 대한 시도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홍완기, 2014).”
홍완기 선생님은 단위 학교에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교수학습 방법을 함께 고민하여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면서, 교육과정이 어떻게 개정이 되어도 남는 문제로 아래와 같은 글을 인용하고 있다.
• 기계적이고 양적인 교육과정이 획일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현실
• 교육과정/교과서가 교육 내용, 교수학습 방법 및 평가까지 세밀하게 규정하는 상황
•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문제집/문제풀이가 교육과정/교과서를 대체하는 현실
(출처: 학교 속의 문맹자들(엄훈, 2010))
지금부터라도 교육과정 개정의 주체로 현장 교사를 포함시키고, 현장의 다양한 혁신 사례들이 교육과정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하면서 현장 적합성을 높이는 조치가 바로 취해져야 할 것이다. 이를 게을리 하면 이는 아래와 같은 ‘미래 교육의 발전 방향’에 정면 배치되는 일이다.
[방향1] 단기·중기적(5년-10년) 교육개혁은 장기적인(10-20년) 발전방향을 수립한 후 장기적 방향에 맞추어 개혁한다.
[방향2] 충분한 연구와 준비를 통하여 개정하고 개정된 내용이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후 실시한다.
[방향4] 전면 개정일 경우 교육과정 연구와 개발에만 최소 3년 이상을 확보한다.
[방향5] 개정의 논의 주체는 정책결정자, 연구자(학자), 실행자(교사)로 하되, 특히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교사의 참여와 역할을 가장 중심에 둔다. 도출된 초안에 대해서는 학생, 학부모, 기업가 등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어 사회합의형 개정을 추구한다.
나. 통합의 방향과 내용 타당성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은 ‘계열 통합’, ‘공통필수의 확대’, ‘교과 내 내용 통합’, ‘교과목 체제 변경’, ‘평가 통합’ 등 매우 복잡한 과제들을 수반한다. 따라서 이런 각각의 과제들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추진에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1) ‘계열 통합’의 타당성
문이과 통합 즉 문이과 계열을 없애자는 주장이 등장한 데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창의적 융복합 인재가 필요한 시대에 문이과란 장벽을 유지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능시험에서 이과 수학이 문과 수학에 비해 수준이 너무 높고 준비 부담이 커서 이공계 진학을 기피하게 만드는 이유의 하나라는 점, 또 수능시험의 구조 때문에 과탐, 사탐의 편식이 불가피했고 이런 상황은 균형 잡힌 인재 양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전자는 다분히 추상적인 근거에 기반을 둔 주장이라 비판적 의견도 많다. 하지만 후자 즉 문이과의 경직적 운영으로 인한 문제점을 해소하자는 주장은 널리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되고 교육부의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운영도 후자의 실현에 더 무게 중심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문이과 간의 장벽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다음은 2017학년도 수능체제 도표이다.
< 2017학년도 수능체제 >
| 영역 |
주요 내용 |
| 한국사 | 필수 과목으로 지정 |
| 국어‧영어 | 공통 (수준별 수능 폐지) |
| 수학 | 문‧이과 구분 (나/가형) |
| 탐구 | 수험생이 선택한 영역에서 2과목 응시
(사회 : 9과목 중 택2 / 과학 : 8과목 중 택2 / 직업 : 10과목 중 택2) |
| 제2외국어/한문 | 9과목 중에서 1과목 응시 |
출제 대상범위는 기본·심화 과목을 제외한 “일반”과목으로 한정하며, 영역별 출제과목은 아래와 같다.
<수능 출제과목>
| 한국사 | 국어 | 수학 | 영어 | 탐구 | 제2외국어
/한문 |
| 한국사 | 화법과 작문, 문학, 독서와 문법 | (나)수학Ⅱ, 미적분Ⅰ, 확률과 통계 | 영어Ⅰ, 영어Ⅱ | (사회) 한국지리, 세계지리, 동아시아사, 세계사, 법과 정치, 경제, 사회·문화,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과학) 물리Ⅰ, 물리Ⅱ, 화학Ⅰ, 화학Ⅱ, 생명과학Ⅰ, 생명과학Ⅱ, 지구과학Ⅰ, 지구과학Ⅱ 직업: 농업 이해, 농업 기초 기술, 공업 일반, 기초 제도, 상업 경제, 회계 원리, 해양의 이해, 수산‧해운 산업 기초, 인간 발달, 생활 서비스 산업의 이해 |
독일어Ⅰ, 프랑스어Ⅰ, 스페인어Ⅰ, 중국어Ⅰ, 일본어Ⅰ, 러시아어Ⅰ, 아랍어Ⅰ, 베트남어Ⅰ, 한문Ⅰ |
| (가)미적분Ⅱ, 확률과 통계, 기하와 벡터 |
위 표를 보면, 문과가 보는 (나)형과 이과가 보는 (가)형의 차이를 확연히 볼 수 있다. 두 계열 사이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수학과 탐구과목이다. 수학의 경우, 이과 지망생이 공부해야 할 수학의 부담(양과 수준 측면에서)이 문과의 2배를 넘는다고 한다. 바로 이런 점은 이공계 진학을 기피하는 주요 이유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번 개정이 교육부의 의도대로 이루어진다면 이를 통해 문이과의 벽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 오게 될 것이다. 또 문이과를 통합하면 과탐, 사탐의 편식도 줄일 수 있고, 수업 참여도도 높아질 것이란 기대도 해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장점 때문에 이 안에 대한 지지가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이과 통합은 단점도 많다. 첫째, 문과 이과의 계열을 없애면 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하나의 수단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으로 인한 단점을 해소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2개 계열마저 하나로 획일화시키고 개인별 자유로운 과목 선택도 제한한다면 이는 고교 교육이 나아갈 미래 방향과 맞지 않다. 이런 필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의 도입은 고교 교육과정을 <공통필수+선택>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고, 여기서 ‘공통필수’를 고1에서 배운다고 하면 고2~고3은 선택교육과정으로 운영하게 된다. 이때의 ‘선택’이 자유로운 개인선택이기에는 아직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로는 결국 학교선택일 수밖에 없는 데 이 경우, 최소한 2계열을 운영하는 방안을 생가해보자는 것이다. 가령 수학을 예로 든다면 대학에 진학하는 학과에 따라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수준이 <기본수학, 중급수학, 고급수학>처럼 3수준 정도라고 하면, ‘기본수학’은 고1 때 공통필수로 이수하게 하고 ‘중급수학, 고급수학’은 이수할 학생들을 학년별로 2그룹으로 나누어 고2~고3에 걸쳐서 배우게 하자는 것이다. 기존의 문이과 체제를 ‘나쁜 문이과 제도’라고 한다면 필자가 말하는 문이과 체제는 ‘좋은 문이과 제도’라고 생각된다. 수학 외에 탐구과목도 3 수준으로 나누어 수학과 비슷하게 운영하면 될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현재의 문이과 제도와 다른 점은 문이과 구분없이 <중급수학, 고급수학>을 선택하여 이수하게 하고 이를 내신성적으로 산출하여 대입전형자로로 사용하든가 수능에서 과목별 선택시험으로 치게 된다는 점이다.
문이과 간의 단단한 경제를 허물거나 유연하게 하는 것과, 문이과 계열 자체를 없애는 일은 별개의 일이기 때문에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 고교 교육의 다양화를 계열 다양화를 통해서 구현할지, 아니면 개인별 과목 선택을 자유롭게 하는 과목별 선택형 교육과정을 지향할지 나아갈 방향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운영하는 방식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다양한 계열을 유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수준, 적성, 진로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 있다. 전자는 스웨덴이 대표적인 예다. 스웨덴은 우리나라의 일반계고에 해당되는 고교에는 6개의 계열이 존재하고 실업계에 해당되는 고교에는 12개의 계열이 존재한다. 이들도 약 1/3정도는 이수 과목이 공통이다. 다시 말해 공통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교과목 외에 선택적으로 이수할 수 있는 과목을 개설함으로써 개별화 교육과 교육의 다양화를 추구한다. 후자의 경우는 미국과 핀란드와 같은 방식인데 학교가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고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게 함으로써 개별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경우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후자일 것이다. 하지만 후자처럼 교육과정을 운영하려면 조건이 있다.
우선, 상대평가 제도가 가장 큰 장애요인이고, 그 다음은 개인의 다양한 과목 선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교사가 필요할 수 있다. 융합과학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융합과학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부터 양성해야 한다. 핀란드의 경우 한 교사가 복수 과목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과목 개설이 다양할 수 있다. 교실 수급도 문제다.
가장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은 교사별 절대평가가 가능한가의 여부이다. 한국의 경우 절대평가가 시행되기에 어려운 요인들이 많다. 토론식 수업, 프로젝트 수업, 포트폴리오 평가 등은 그 속성상 선다형 객관식 평가에 비해 객관성과 신뢰성이 떨어지는 시험이다. 한국은 시험의 타당성보다는 객관성을 중시하는 뿌리 깊은 문화가 있어서 아무리 교사가 공정하게 평가를 하더라도 그 결과가 선발에 사용되는 순간 객관성과 신뢰성에 많은 문제제기를 할 우려가 있다. 이는 교사에게 매우 부담스런 일이다. 그리고 교사의 절대평가 전문성이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직 그런 경험이 아주 일천하기 때문이다.
황규호(2014) 교수도 “단일 과정(track) 운영 방안은 ‘교육의 획일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얻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며 비판하고 있다. 한편, 교육과정 전공학자인 허경철(2014) 박사도 “우리는 다시 ‘고정된 계열’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회귀하는 등 선진형 교육과정과는 반대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고 현 정부의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 방향을 비판하고 있다.
한편 김재춘(2012) 교수도 향후 한국 공교육의 교육과정이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서 공통으로 공부해야 하는 교육과정의 내용을 줄이고, 선택 교육과정의 내용은 필요하다면 확대해도 된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대 정창우(2013) 교수는 이런 다양성을 줄이는 방향으로의 교육과정 운영은 단위학교에서의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둘째, 문이과 통합과 공통이수 범위를 넓히려는 방향은 미래 고등학교의 세계적 진화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미래 고등학교의 진화방향을 연구한 책을 보면, 학교 내 다양한 작은 학교들이 존재한다. 이 작은 학교는 지금의 문이과 계열이 더 분화된 형태이다. 그 다음의 진화 단계는 하나의 학교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특성화된 다양한 복수의 학교를 다닌다. 이는 ‘무학년 학점제’를 넘어 평생학습 시대의 ‘무학교 학점제’인 것이다. 대학 간에 학점 교류제도가 있듯이 고교의 경우도 그렇게 운영하는 방법이다. 이런 미래를 상상할 경우 현재 문이과 통합의 논의는 너무 근시안적인 느낌이 든다.
셋째, 통합교육과정이 도입되고 문이과 계열 구분이 없어질 경우, 대학 지원 과정에서 교차지원이란 용어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교차지원을 무한정 허용하는 것을 바람직할까? 외고 출신이 의대를 지원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문이과의 통합은 지금이라도 문이과 운영의 현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옳은지, 아예 문이과란 계열을 없애고 획일적 교육으로 가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문이과 통합은 신중해야 한다. 고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대학이 요구하는 전공 간의 연계는 여전히 가치 있는 것이므로 이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문이과 통합에 대한 한 현직 교사(이용준, 2013)의 우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대학의 특별한 준비 없이 수능 시험에서만 문·이과를 구분하지 않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수능의 개편과 교육과정 및 대학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대학은 전공별로 선발하면서 고등학교에서는 구분하지 않겠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외국의 경우처럼 대학에서 전체적으로 계열 구분 없이 선발한다는 조건과 함께 논의되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2) ‘공통필수의 확대’의 타당성
지난 2월 13일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한 업무보고에서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과 관련해 ‘다양한 선택과목 또는 진로과정 개설 검토’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고교 교육과정을 <공통필수+선택>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 업무보고서는 ‘모든 학생이 인문·사회·과학에 관한 기초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편성’이란 점도 밝히고 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유추해보면 교육부는 ‘공통필수’ 영역과 범위를 늘리고 이를 수능에서 공통으로 평가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공통필수의 확대’는 특히 수학과 탐구과목을 대상으로 할 텐데, 공통필수를 어느 정도로 확대할지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고 의사결정이 지난한 사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공통필수 과정을 고1로 한정하는 방법, 혹은 고1~고2까지 2년간으로 하는 방법 등이 있다. 고교 교육과정 운영의 세계적 흐름이나 한국의 현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것이 ‘수준별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무학년 학점제)’인 점을 고려하면, 이 중에서 현실적인 것은 공통필수를 고1까지로 하고 고2~고3의 과정은 선택 교육과정으로 운영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고2~고3에서 배우는 내용을 어떻게 대입 전형에 반영할 것인가이다. 내신성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데, 상대평가는 비교육적일 뿐만 아니라 소인수 과정으로는 운영이 불가능한 방식이고, 절대평가는 신뢰성이 낮아 대학이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통필수 과정을 고1~고2로 확장하는 경우에도 고3에서 배우는 것을 어떻게 대입에 반영할 것인가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공통학습의 범위가 가령, 고1~고2 과정이라면 고3과정은 고1~고2과정의 반복 학습에 매달릴 가능성이 높은 점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공통필수 시험과는 별도로, 수능에서 교과목별 심화선택과정 시험을 추가하든가 아니면 미국의 SATI, II처럼 수능을 이원화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방법 역시 당장 도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렇게 보면 발제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의 도입과 이를 단일 수능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개인별 자유로운 과목 선택도 실제 거의 불가능하다. 교사 수급이나 교실 여건 등이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학교들은 선택과목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대학진학 성향에 따라 문이과 혹은 인문, 사회, 자연처럼 소수의 계열로 나누어 수업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도루묵이 되는 셈이다. 고교 교육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원칙과 고민 없이 추진하는 이번 교육과정 개정은 그 전도가 매우 험난하고 추진과정에 암초가 많아 추진이 의도대로 이루어질지는 매우 불확실해 보인다.
문이과 통합안에 대한 한 고교 교사(이용준, 2013)의 우려를 직접 들어보자.
“탐구과목에서의 차별성이 없어지고 학습 부담이 증가한다. 현재 학생들은 자신의 성향에 따라 인문 계열과 이공 계열로 진로를 정하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탐구과목도 인문 계열은 사회교과 위주, 이공 계열은 과학교과 위주로 선택하여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완전 융합안을 따르게 되면 이러한 계열의 차별성은 없어지게 된다. 게다가 좋든 싫든 탐구과목을 모두 배워야 하므로 학습 부담이 증가한다. 공통사회나 공통과학처럼 내용을 줄여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형식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교과내 내용 통합’의 타당성
‘수능 3안’의 성격 설명의 일부 내용인 ‘사회․과학영역은 ‘사회’(사회 및 지리교과 내용요소 포함) 및 ‘과학’(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내용요소 포함) 과목 중심으로 평가‘란 발표내용을 보면, 사탐과 과탐을 하나의 융합 혹은 통합교과서로 개발하려는 시도를 읽을 수 있다. 이를 융합과학, 통합사회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런 시도는 얼마나 바람직하고 타당할까?
이런 접근을 찬성하는 쪽은 21세기 기술의 발전의 특징이 융합임을 내세운다. 정보기술(IT), 생명기술(BT), 나노기술(NT)과 인지과학이 결합하고 다시 여기에 예술과 인문학, 사회학까지 융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추세 속에서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의 도입은 피상적인 수준에서나마 긍정적인 반응이 많은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모두가 융복합적 인재가 될 필요가 있는지, 융복합 인재가 되려면 먼저 깊이 있는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사탐과 과탐의 편식을 줄이면 융복합적 사고력이 증가할 수 있는지, 또 각각의 지식은 나름의 체계가 있는데 이를 단기간에 의미 있게 통합시킬 수 있는지 등의 수많은 비판적 질문들이 있다.
국가 교육과정 포럼 제4차 전문가 토론회 자료집(한국교육과정학회, 2014)에서도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초중등학교, 대학의 학부교육과 대학원 교육 중 융합통합교육, 또는 융복합적 사고가 강조되어야 할 시점, 또는 가능한 시점은 어느 시점인가?
• 고등학교(또는 초중학교) 수준에서 가능한 융복합 교육의 범위는 무엇인가?
우리사회가 융복합형 인재 양성의 중요성은 인식해야 하지만, 지금 정부가 추구하려는 방향처럼 전통적인 교과를 물리적이든 화학적이든 섞어서 가르치면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은 다소 도식적이란 느낌이 든다. 융복합형 인재 양성은 진정한 교양교육과 관련이 더 있는 듯하다. 다음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인 도정일(2014) 교수가 대학 수준의 교양교육에 대해 내린 정의다. 창의적 융복합형 인재가 어떻게 길러지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한다.
“리버럴 에듀케이션이란 상식적 잡식 교육이 아니라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탐구와 교육’이다. 틀에 가두고 갇히는 교육이 아닌 틀을 깨고 나가는 교육, 기성의 진리체계, 지식, 진리주장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비판적 사고력의 함양, 지식의 단순 전수와 답습보다는 전수를 넘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낼 수 있는 상상력, 호기심, 이해력의 자극과 확대-몇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 ‘틀을 깨고 나가는’ 교육으로서의 리버럴 에듀케이션, 우리식 표현으로는 ‘교양교육’이다.”(한겨레, 2014-2-20)
도정일 교수는 이어서 하버드 보고서에 나오는 대학에서의 교양교육(리버럴 에듀케이션)의 성격과 목표를 간명하게 정리한 대목도 소개한다.
“교양교육의 목표는 추정된 사실들을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현상들 밑에, 그리고 그 배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폭로하고, 젊은이들의 방향감각을 혼란시켜 그들이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상의 인용문은 창의적 융복합형 인재 양성은 대학의 질 높은 교양교육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란 생각을 들게 한다. 만일 이것을 고교 수준에서도 추구하고 싶다면 이는 문이과의 통합이나 융합과학과 같은 교과내용의 통합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업방식의 혁신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면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수능과 같은 표준화 시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고교 수준에서는 전통적인 과탐과 사탐의 기본 지식을 충실히 습득한 후 이를 활용하고 적용하는 단계를 거쳐, 가끔씩 범교과적 프로젝트 수업까지 도전하는 단계별 접근이 현실적이란 생각이 든다.
4) ‘평가 통합’의 타당성
차기 수능에서는 현재와 같이 수학, 탐구 과목에서 문이과를 구분해서 시험보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현재 문이과로 나누어져 있는 수능 체제를 바꾸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통합 수능의 성격은 지금까지 발표된 정부 자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이 공통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과목(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을 평가
• 국어·영어·수학 영역은 공통학업능력 측정을 위해 출제범위도 각각 동일하게 설정
• 사회·과학영역은 ‘사회’(사회 및 지리교과 내용요소 포함) 및 ‘과학’(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내용요소 포함) 과목 중심으로 평가
출처: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시안)」(2013 8월 27일)
수능시험은 고교 교육과정을 왜곡시키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수능은 교육과정보다 훨씬 더 위력이 크다. 수능에서 어떤 등급을 획득하느냐가 어떤 대학을 가는가, 나아가 장래 어떤 직장을 가질 수 있는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수능시험은 고교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고교 3년간 학교를 문제풀이 기관으로 만들어 버린다. 문제 풀이과정보다는 정답을 찾는 스킬을 키우는 시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능은 평가하고 싶은 것을 충실히 평가하지 못하는 시험이기에 타당도가 낮다.
따라서 교육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부터 새롭게 고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한국을 포함하여 많은 나라들이 시험을 바꾸는 것을 통해 학교를 바꾸고, 교육을 바꾸려고 한다.
수능시험이 이렇게 고교 교육과정 운영에 끼치는 영향력이 큰 것이라면 그 동안 수능의 개선에 대한 질 높은 연구가 있어야 했다. 그 동안 기술의 발전과 함께 평가기술이 많이 발전했다. 그래서 평가를 개선할 여지도 그만큼 커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PISA2015 시험과, 미국이 2014~15년에 도입할 예정인 차세대 평가이다. PISA 2015 시험이 컴퓨터 기반 역량 평가를 대중화하는 길을 열어가고 있고, 미국의 차세대 평가인 ‘탁월성을 위한 평가(Race to the Top Assessment)’가 복잡한 텍스트를 읽는 능력, 연구 프로젝트 완성 능력, 교실에서 발표하고, 듣는 능력, 디지털 미디어 활용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하고(최상덕 외, 2012), 보편적 평가 설계 기법(UDA: Universal Design for Assessment)을 활용하여 학습부진학생, 학습장애학생들의 접근을 더 공정하게 하려는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수능은 이런 새로운 평가 기술의 발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수능시험의 개편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너무 고부담이기 때문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격고사화 하자는 안, 미국의 과거 SATI, SATII처럼 수능I(기초공통수학능력시험 – 선다형, 단답형, 논서술형으로 최소교과, 최소기준 통과 여부를 확인하는 목적), 수능II(교과목별 심화선택과정 시험 – 고교 내신 몇 %이상 혹은 기초공통수학능력시험 몇 점 이상만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교과목별 학업성취도 확인이 목적)로 이원화하자는 안이 바로 그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표준화시험의 폐지에 대한 주장도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좀 과격하게 들릴 수 있지만 수능시험을 폐지하는 것이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는데 가장 충격적이며 효과적인 요법일지도 모른다. 호주의 퀸스랜드 주가 대입시험을 없애고 내신성적만으로 대입 선발을 상당기간 해왔던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고 한국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절대평가 내신성적이 비록 수능시험에 비해 객관성과 신뢰성이 떨어진다해도 교육이 교육다울 수 있기 위해서는 절대평가의 도입은 절대절명의 과제다. 선진 교육은 모두 오래 전부터 논서술형 절대평가를 해오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수능시험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수능시험을 자격고사화 하는 것, 나아가 폐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함께 열어놓고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다.
이 기회에 수능과 같은 고부담 표준화 시험의 폐해에 대해 살펴보자. 표준화 시험은 검사의 실시·채점·해석이 동일하도록 모든 형식과 절차가 기술적으로 엄격하게 통제된 검사이다. 따라서 관리가 용이하고, 채점에 대해 시비가 일지 않는 편이며, 비교적 소수의 문항만으로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비용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다. 또, 학교별, 개인별로 간단하게 성취도를 비교할 수 있다. 게다가 학부모들이 궁금해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시험 방식이기도 하다. 자녀가 반에서 혹은 전교에서, 전국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지를 알려 주기 때문이다. 표준화 시험이 등장하고 지금까지 장수하고 있는 주된 이유가 바로 이런 점들에 있다.
그러나 교육의 표준화가 본격 도입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표준화 시험의 폐해가 너무 크고 이것이 유행병처럼 세계적으로 번지자 최근 이를 ‘세균’(GERM – Global Education Reform Movement)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해독제 마련에 각국은 골몰하고 있다. 한국도 깊이 감염된 이 세균의 박멸에 힘써야 한다.
표준화 시험(수능, 일제고사) 중 특히 수능시험이 공교육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몇 년 전 OECD 교육국의 전문가 두 사람이 한국에 와서 KBS 라디오 홀에서 PISA 시험 결과를 분석해 발표한 적이 있다. 이때 OECD 교육혁신센터(CERI) 소속 Stephan Vincent-Lancrin 박사는 표준화 시험의 문제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한 바 있다.
① 시험에 나오는 과목만 공부하게 만든다.
② 학교를 수험준비기관으로 만든다.
③ 새롭고 불확실한 것에 대한 도전을 꺼리게 만든다.
표준화 시험은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만들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는 진단 도구가 될 수도 있으며, 지역마다 배우는 수준이 들쭉날쭉한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모든 학습자는 서로 다르다. 학습 유형이 다르고, 학습 속도가 다르며 학습하고 싶은 내용도 다르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교육의 모습은 바로 ‘개별화 교수학습’인 것이다. 하지만 표준화 시험은 모든 학습자가 똑같은 내용을,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방법으로, 또 똑같은 속도로 학습하는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표준화 시험은 흔히 개별화 교수학습과 충돌하며 장애물로 작용한다. 학습자의 다양성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교육 상황과 ‘표준화’ 시험은 얼마나 미스매치(mismatch)이며 모순된 것인가!
현 교육부의 계획대로 2021학년도 이후까지 현재와 같은 수능이 유지된다면 이는 우리의 미래 학교 교육을 오늘날과 비슷하게 운영하는 것을 용인하고 연장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앞으로 10년 후에도 현재의 수능 제도로 학교교육을 왜곡시킨다면 한국의 학교교육은 매우 후진적인 교육이 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 교육에 대한 희망을 접는 일이 될 것이다.
미래 한국 교육이 추구해야 할 미래형 수능평가에 대해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수능의 자격고사화나 폐지가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폐지가 어렵다면 교육적이고 타당도 높은 차세대 평가를 개발해서 학교교육을 왜곡시키는 힘을 줄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견인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6. 맺음말
이상과 같이 지금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도입과 수능 개편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종합하면 아래와 같이 문제점이 있는 추진이라고 생각된다.
1) 수학과목 관련
수학 과목의 경우 문이과 구분 없이 동일한 내용을 배우고 동일한 수준의 수능으로 시험을 보게 한다면 이는 대학의 모집 단위별로 요구되는 수학의 수준이 다양한 것과의 불일치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동일한 내용을 배우는 과정을 가령 고1-고2, 즉 2년으로 한다면 공통과정에서 제외된 높은 수준의 수학을 고3에서 희망 진로에 따라 선택케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다시 문이과보다 더 많은 계열별 수업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리고 계열이 분화되거나 소인수 선택과목이 많으면 현재의 상대평가제도로는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절대평가의 여건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중대한 과제들의 해결 방향도 정하지 않고 일정 먼저 발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2) 탐구과목 관련
사탐(현 9과목)과 과탐(현 8과목)을 문이과 공통으로 편식 없이 배우게 하는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고1~2까지는 공통사회와 융합과학 교재로 배우고(교사 양성 제도, 수능에서의 이와 밀착된 출제가 이를 뒷받침해줘야 함) 고3은 희망 전공에 따라 일부 과목 선택
• 고1까지 공통사회와 융합과학을 기초 교양과목으로 배우고 고2~3은 희망 전공에 따라 일부 과목 선택
그러나 현재 매우 여러 과목으로 쪼개져 있는 과탐, 사탐 과목을 다시 재구조화하는 데는 상당한 논의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공통사회와 융합과학을 가르칠 교사 양성시스템도 아직은 없다. 그 외 아래와 같은 쟁점이나 미해결 과제들이 산재해 있다.
• 모두가 융복합적 인재가 될 필요가 있는가?
• 융복합 인재가 되려면 먼저 개별 과목의 깊이 있는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 사탐과 과탐의 편식을 줄이면 융복합적 사고력이 증가할 수 있는가?
• 또 각각의 지식은 나름의 체계가 있는데 이를 단기간에 의미 있게 통합시킬 수 있는가?
3) 세계적 추세와 역행(획일화, 붕어빵 인재 양성, 학생학부모 입장과 상충)
고교 교육과정 운영의 세계적 추세는 개인의 선택을 넓히는 것인데 교육부의 의도대로 문이과 통합을 통해 공통필수를 대폭 늘린다면 이는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고, 국가의 입장만 반영된 교육의 획일성 강화일 수 있다. 미국의 SAT나, 영국의 GCE, 독일의 아비투어 시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일분의 대학입시센터시험 등의 경우 지원자가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지원하느냐에 따라 시험을 치르는 과목의 종류, 과목의 수 등이 달라진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02). 고교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학생/학부모의 의견, 대학의 의견을 듣는 과정도 필요하다.
상위권 학생의 학부모는 낮은 수준의 공부를 하게 하는 것에 불만이 클 것이고, 공부동기가 낮은 중하위권 학생의 경우, 배워야 할 과목 내용의 종류가 늘어나는 것을 싫어할 것이다(예: 과탐의 일부 과목이 절말 싫은 데도 강제로 공부해야 하니까).
게다가 교사수급의 문제, 교과교실제 미정착, 교사별 절대평가 도입의 어려움 등이 있어서 개인의 자유로운 과목 선택을 허용하는데도 큰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이과 계열마저 없애고(문이과 통합의 본질은 계열이 존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탐 과탐의 편식을 불가피하게 하는 수능시험 체제의 문제, 이과 수학의 수준이 너무 높아 이공계 기피현상이 존재하는 것임!), 공통필수를 과도하게 늘리는 것(가령 2년 이상)은 지양해야 한다.
4) 수능시험 관련
수능시험이 고교의 교육과정, 가르치는 내용, 가르치는 방법, 평가 방법까지 종속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수능시험의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 절대평가, 자격고사화 한다.
• 수능체제를 수능I(기초공통수학능력시험), 수능II(교과목별 선택과정 시험)로 이원화한다.
• 수능I에 논서술형, 수행평가를 포함시켜 타당도를 높이고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견인한다.
• 대입전형에서 수능의 가중치를 50%, 내신을 50%로 할 수 있도록 내신 절대평가를 정착시킨다.
• 수능시험을 폐지하고 완전히 내신성적 중심으로 대학을 가게 한다.
수능의 이런 중장기적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도 없이 현재의 문이과 통합을 위한 근시안적 접근을 해도 되는가? 2020년대에도 현재와 같은 수능이 지속되어 고교 교육과정, 가르치는 내용, 학교의 평가방법을 획일화하고 종속시키겠다는 생각은 교육의 본질과 거리가 먼 오늘날의 학교교육을 영속시키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고교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 수능시험의 바람직한 방향, 나아가 대입전형의 바람직한 방향을 먼저 설정한 다음 그 속에서 문이과 통합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5) 고교 교육이 나아갈 미래 방향 설정 없이 근시안적 접근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고교 교육이 나아갈 방향(예: 개별화 교육 지향; 희망 전공별 선택을 중시 혹은 기초교양 성격의 공통성을 강화 등)을 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도입도 검토를 해야 하는데, 현 정부의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도입 시도는 숲은 보지 않고 나무만 보고 하는 근시안적 교육과정 개정 추진이다.
6) 개정의 일정 관련
대규모 전면적 개정이어서 교육과정 개발에만 최소 3년 이상 걸릴 작업인데 1년 6개월을 잡은 것은 너무 무리한 일정이다. 졸속 개정이 우려된다.
7) 교육과정 개정의 주체 관련
교육과정 개정 논의에 현장 교사가 핵심 파트너로 참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과거처럼 교육부와 교육과정 전문가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즉각 교사의 폭넓은 참여를 통해 현장적합성 높은 개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충분한 연구와 논의를 거쳐 고교 교육이 나아갈 큰 그림을 그린 후 그런 그림에 맞춰서 현재의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도입’의 방향은 무엇인가? 발제자는 단연코 다음과 같은 방향과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1) 10-20년 후 우리 사회가 꿈꾸는 교육 비전을 먼저 수립하고 철저히 역순 방식(backward)으로 하위 과제를 설정하고 추진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교육의 목적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친다. 교육개혁은 사회개혁과 연계될 때 성공 가능성이 높으므로 국가 전체 비전과 연계하여 추진한다.
2) 존속적 혁신(현 교육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개선하는 접근)과 파괴적 혁신(기존의 시스템은 산업시대의 낡은 유물이므로 장기적 관점에서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디자인하는 접근)을 병행한다.
3) 국가는 플렛폼만 제공하고 지금까지와 같은 중앙 통제 중심의 거버넌스를 개선해서 진정한 학교 자치와 학교단위, 학년단위, 개인단위 교육과정의 운영이 가능하도록 한다. 일부 광역자치단체부터 미국, 캐나다, 호주 수준의 자치를 허용하는 실험을 한다.
4) 이상의 교육 시스템 개혁이 이뤄지더라도 일선 학교의 교사들이 높은 사명감, 동기, 자발성, 전문성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공허할 뿐이다. 학교의 바람직한 변화는 교사로부터 시작될 때만 성공할 수 있다. 교사가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성공시킬 수 있도록 중앙 정부와 시도교육청은 지원과 격려에 초점을 맞춘다. 징벌적 책무성으로 학교를 변화시킬 수 없다. 내부로부터 형성되는 집단책임감과 투명성의 강화를 추구하고 지금과 같은 외부 책무성은 1/2로 줄여야 한다.
5) 학교교육만으로 교육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버리고 교육은 학교-가정-지역사회-국가의 공동사업이며 공동책임이라는 인식전환부터 한다.
6) 문이과 계열 통합은 고교 1학년 과정에 한하고, 고2,3 과정은 수준별 선택형(무학년 학점제)으로 운영한다. 수능 체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는 고교 교육과정이 나아갈 미래방향을 먼저 정하고 이를 견인할 수능을 설계해야 한다.
7) 객관식 수능시험은 국가수준 교육과정과 학교수준 교육과정은 물론 교수학습 내용, 방법까지 획일화시키며, 창의성을 죽이고, 사교육을 조장하는 주범이므로 수능시험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고 정권을 초월해 일관되게 추진한다.
8) 내신평가를 ‘어떤 변명도 허용하지 않고’ 교사별, 수준별 절대평가로 전환한다. 이를 위해 절대평가가 가능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종합계획을 세워 일관되게 추진한다. 교사별 절대평가를 도입하지 않고 공교육 정상화, 교사의 전문성 신장 등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 교사별 절대평가의 도입은 교과서의 역할을 크게 달라지게 하는 일이다. 교사별 절대평가는 교육과정 및 교수학습 내용의 재구성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교사별 절대평가가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도입’ 의 구상은 대중의 선호도는 높은 편이었지만 ‘문이과 통합’이란 개념이 가지고 있는 모호성과 연관된 과제의 과다로 인해, 개정하기 전에 충분한 논의와 검증이 필요하다.그리고 추진 절차에 있어서는 최소한 10-20년 앞을 내다보는 한국교육의 큰 그림부터 그린 후, 이 큰 그림과의 연계 속에서 추진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문이과 통합을 위한 구상은 너무 촉박한 일정 외에 추진 방향, 추진 내용 등에 사전 논의할 과제가 많아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