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정과 정책은 학부모·학생의 변화 속도를 반영해야 한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교사와 정부 교육 관료들보다 더 빨리 진화하고 있다. 교육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의 진화 속도의 차이에 따라 양자 사이에 격차가 점점 더 크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교육에서 ‘수공격차의 심화’라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커져만 가는 수공격차는 우리에게 어떤 교육적 과제를 제기하고 있는가? 정부도 교직사회도 수공격차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1. 수공격차 문제의 심화: 교육문제와 갈등의 진원지이다.
한동안 학교교육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았고 국가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교육은 국민의 신뢰도 많이 잃고 선진국으로 가기위한 국가발전에도 공헌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받기 일 수이다. 학부모 수요자들의 눈에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품질이 낮고, 다양성이 없으며, 제도가 경직되어 있고, 사교육비 부담이 크며 쓸모 있는 교육보다는 오직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며, 필요 이상의 소모적 경쟁을 일으키는 등 문제투성이로 보인다. 공교육, 사교육, 대안교육, 국외교육 등 온통 교육은 넘쳐나면서도 중복성과 경직성, 소모적 경쟁 등으로 적시에 필요한 교육을 학습자에게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사안별로도 분석하고 대처방법을 찾아야하겠지만, 또한 이런 여러 문제들의 진원지를 파악하고 대처방법을 찾기도 해야 한다. 즉 나무도 보고 숲도 보아야 한다.
세 가지 변화의 비교를 통해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오늘날과 같은 격변의 시대에 정부의 교육정책의 진화, 학교제도와 운영의 진화, 학부모의 (교육열의) 진화, 이 세 가지를 생각해보자. 어느 것이 진화의 속도가 빠를까? 진화 속도의 격차가 커지게 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이런 격차가 커지는 것은 정책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교육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진화 속도의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격차가 점점 더 커지는 추세이다. 필자는 이를 ‘수공격차’ 문제라고 지적해왔다. 이런 수요자들의 빠른 진화와 교육제도의 느린 진화에 대해서는 Alvin Toffler의 속도 충돌론을 들어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는 세계적인 위기는 ‘비동시화 효과’에 기인하며 경제적인 진보를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각 조직의 변화 속도를 비유하고 있다. 비동시화라는 말은 아래 각 조직들 사이의 변화 속도 차이로 인해 생기게 되는 조직들 간의 기능의 부조화, 불협화음, 갈등을 의미한다.
1. 시속 100마일: 기업이나 사업체
2. 시속 90마일: 비정부기구, 시민단체(NGO)
3. 시속 60마일: 미국의 가족
4. 시속 30마일: 노동조합
5. 시속 25마일: 정부 관료조직과 규제기관
6. 시속 10마일: 미국의 학교 – 부서진 고물자동차
7. 시속 5마일 : 국제기구, 유엔, IMF
8. 시속 3마일 : 정치조직
9. 시속 1마일 : 법
이 비유에 따르면 미국의 학교는 시속 10마일의 변화 속도를 보이며 기업의 10분의 1 속도, 가족의 6분의 1 속도의 변화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변화 속도보다도 15마일이나 느린 거북이 속도가 학교의 변화 속도이다.
앨빈 토플러는 사회 각 영역간의 발전 속도의 차이는 부조화와 충돌을 일으킨다고 한다. 앨빈 토플러는 혁명적 부 창출의 요인으로 시간, 공간, 지식을 꼽는다. 그는 자칫 평범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세 요인을 비즈니스는 물론 경제, 사회 전반을 주관하는 기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작용하고 있는 심층 기반으로 규정했다. 먼저 그는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이 속도의 충돌 때문임을 밝힌다. 경제 발전의 속도를 사회 제도나 정책 등이 보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속도의 차이는 결국 교육관련 기관과 집단들 간의 상호 충돌을 야기하고 변화, 발전의 흐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거대한 관료제를 구성하고 있는 공교육조직보다 개개인 학부모와 학생들이 사회변화에 더 빨리 대응하면서 진화해가고 있다. 그리하여 학습수요자 측의 요구는 다양하고 질적 수준이 높고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는데 반해 제도교육은 여전히 변화와 고객 서비스에 매우 둔감하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우리 교육에서 발생하고 있는 많은 문제현상의 저변에는 바로 이런 수공격차문제가 깔려있다. 우리 교육계가 이러한 수공격차문제를 심각하고도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여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 교육은 수요자로부터 엄청난 저항이나 반란에 부딪쳐서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다.
2. 우리는 수요자의 정책저항권을 인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을 비난하기 바쁜가?
각종 교육정책과 교육제도가 진화해가는 학부모, 학생들의 요구에 부적합하면 수요자들의 저항이나 반란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수요자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공)교육정책은 수요자에게 대체 방안을 찾도록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조기해외 유학, 특목고나 외고 중퇴자 속출, 이공계 기피현상, 고시열풍, 조기유학 등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정부의 정책에 저항하는 수요자들의 모습이다. 과학자가 대접받지 못하는 과학기술사회에서의 교육열은 고시열풍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정책저항인 동시에 수요자들이 스스로 찾은 대체방안들이라고 볼 수 있다. 현 상태를 방치한다면 교육제도에 대한 수요자들의 저항이나 반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고 부작용도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교육수요자들의 교육요구는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교육의 품질에 대한 요구로부터 시작하여 시간, 공간,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으로 교육요구가 진화하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학습수요자들은 단순한 학교선택권을 넘어 교육내용 선택권, 교육시간 선택권을 요구하는 추세로 변해가고 있으며, 학교 내에서의 내용이나 시간 선택권을 넘어 학교 밖으로 그리고 국외 교육의 선택권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수요자들의 교육적 선택 폭은 학교제도의 경계를 넘고 지역과 국가의 경계도 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지역이나 특정 국가의 교육이 규제적이고 품질이 낮고 선택 폭이 좁다면 수요자들의 저항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여러 다양한 형태의 저항들이 나타나다가 결국 공교육에서의 탈출로 연결되고 나아가 한국교육으로부터 외국교육으로의 엑소더스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일어날 것이다.
국민 혹은 학부모들의 이런 교육적 선택과 집중권을 원칙상으로 뿐만 아니라 충분한 수준까지 인정하는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국가의 교육정책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듯이, 교육 수요자들도 자신과 자녀의 교육 전략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기를 원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수요자들의 필요를 지원하기 위해 우리 교육이 가야할 길은 교육을 다양화하고, 선택권을 보장하고, 관련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는 길이다. 지식기반경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분야인 인적자원의 개발도 수요자의 참여와 스스로 학습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육 분야에서 교육수요자에 대한 의식의 대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국민 혹은 학부모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정책에 비협조적임을 지적하고 학교에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집단군으로 보는 경향이 높다. 어느 나라, 어느 선진국이 학부모를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나라가 있을까? 내 생각에는 없을 것 같다.
3. 학부모를 적극적으로 정책파트너로 삼고 수공격차 줄이자.
정부가 교육 분야에서의 수공격차 문제를 인식한다면 더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문제를 정부 주도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버리는 것이다. 민간영역, 교직집단 뿐만 아니라 특히 학부모집단의 자율성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정부 주도적으로 할 필요가 있는 경우일지라도 학부모를 정책파트너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관점과 교사관점이 과도하게 반영되고 학부모관점은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대상 집단들 사이에 특정 정책에 대한 관점과 자세가 같다고 볼 수 없다. 교원승진정책에 대해 교사집단은 초미의 관심을 보이지만, 학생이나 학부모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입시제도정책이나 사교육정책에 대해서 교사집단은 직업적 반응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지만, 학부모집단은 본성적 반응(즉 교육열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학부모를 정책파트너로 삼을 경우와 아닌 경우는 분명 다른 결과를 보일 것이다.
그동안 학부모를 정책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아 온데에는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 조직화되지 않은 학부모 중 누구를 파트너로 할 것인가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분명 이것은 문제이다. 그러나 연구하고 토론을 거듭하다보면 분명 좋은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점은 기술적인 문제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학부모에 대한 경시적 자세이다. 이런 관점을 ‘문제학부모관점’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학부모는 문제투성이로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 ‘욕심 많고,’ ‘맹목적이고,’ ‘앞만 보라하고,’ ‘가족 이기적이고,’ ‘과도하고’ 등등의 수많은 부정적 수식어를 붙이고 다니는 학부모이다. 정부의 공익광고 ‘부모와 학부모’에서도 학부모는 여지없이 문제 집단으로 규정되고 있다. 학부모들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틀림없다. 이명박 정부 때의 ‘부모와 학부모’ 공익광고에도 이 점이 반영되었고, 이런 공익광고에 반영될 만큼 지배적인 관점이고, 또 이런 방송이 그런 관점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문제학부모관점’은 경제활동에 비추어 표현하면, 소비자의 소비태도가 나빠서 경제가 안 된다는 말과 같다. 경제학자들이나 경제정책담당자들이 이런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 거의 안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교육 분야에서는 학부모의 관점과 방식이 잘못됐다는 얘기로 도배를 하고 있다.
학부모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사실 교육 실제에서 교사 못지않게 영향을 미치는 주체가 바로 학부모이다. 학부모는 매우 중요한 교육주체이다. 학부모는 자녀에게 최초의 담임 같은 사람이며, 평생담임 같은 사람이다. 자녀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곧 국민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정부의 교육역할은 교육정책으로 나타난다. 교육정책은 그 정책대상 집단(교사, 학생, 학부모 등)에게 어떤 종류의 기호(signal 행동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각 정책대상 집단은 그 정책들이 보내주는 행동신호들에 따라 행동한다. 이런 행동을 정책대응(혹은 반응)행동이라고 부른다. 정책대응행동이 어떠하냐에 따라 교육정책의 성공적 추진여부가 달라진다.
‘문제학부모관점’에 근거한 교육정책 혹은 학부모정책은 애초부터 별로 성공가능성이 적다. 학부모를 훈계하고 가르치려 드는 정책 이전에 학부모가 왜 저럴까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 학부모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학부모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가미되어야 교육정책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4. 학부모관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학부모에 대한 이러한 인식방식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까? 학부모는 권력도 힘도 없는 평범한 국민 혹은 시민이다. 혹시 학부모들의 자녀교육지원행동에 대해 아주 교육적이기를 기대하거나, 합리적이기만을 기대하는 것 자체에도 문제점이 있지 않을까?
이런 논의를 하기 위해 영국 수상 데이비드 캐머룬이 2010년 2월 런던에서 녹화한 TED강연에서 보여준 정치철학을 살펴보자. 한국의 학부모정책에도 시사하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철학은 역사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오늘날과 같은 지식정보화시대를 후기관료주의 시대(Post Bureaucratic Age)라고 규정한다. 후기관료주의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시민(혹은 민중)의 통제력(people control)이 지방권력에 의한 통제(local control)나 중앙권력 통제(central control)보다 강한 시대라는 점이다. 캐머룬이 예견하는 이런 일반적인 변화는 물론 교육영역에도 나타날 것이다. 교육 분야에서도 민의 통제력이 점점 증가하여 다른 통제력보다 강해질 것이다. 결국 학부모-학생의 통제력이 점점 증가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캐머룬 수상은 이처럼 국민의 힘이 증가하고 변화하는 21세기의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크게 2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하나는 국민에게 더 많은 권력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의 지속적 추진이다. 그 중요 방법으로 첫째가 각종 정보의 더 많은 공개를 통한 투명화(trnasparency)이고, 둘째가 정보의 공개를 통한 선택권(choice)의 증진이다. 셋째는 책무성(accountability)의 증가를 통한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행동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 즉 국민들의 행동방식에 대한 이해방식의 전환을 통한 적합한 정책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행동경제학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정책적 조언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기본이 종전과 획기적으로 다른 점은 시민의 행동을(그것이 합리적이든 아니든 간에)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런 인정위에서 국가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관점이다. 국민을 훈계하거나 강제하거나 교화시키거나 거창한 도덕성에 호소하거나 하려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정부정책에 따라올 수 있게 ‘넛지(nudge)’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2013년 2월 녹화된 알렉스 라스키(Alex Laskey)의 TED강연에서도 전기에너지를 아껴 사용하도록 만드는 데 효과적인 방법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절약하자’, ‘지구를 살리자’, ‘건전한 시민이 되자’와 같은 캠페인이나 호소는 거의 효과가 없고 ‘당신의 이웃이 더 잘하고 있다’라는 정보를 줄 때 가장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캐머룬 수상의 정치철학은 학부모와 관련하여 크게 2가지 시사점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학부모에게 더 많은 권력을’, ‘부모의 행동(즉 교육열행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틀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캐머룬 수상은 정부가 시민(국민)의 행동에 대한 이해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행동경제학의 관점과 이론을 적극 활용하는 정부정책을 수립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서양시민과 한국인 사이에 문화적 차이가 있으므로 꼭 같은 반응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책적 시사점이 많은 응답이다. 우리나라에도 사교육과 관련한 민속적 지식 중에 ‘이웃집 아줌마 효과’라는 것이 있다.
5. 수공격차 완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캐머룬 수상의 정책방향에서 시사 받은 것처럼 정부는 교육 권력을 학부모에게 좀 더 많이 주려는 정책을 써야 한다. 교육정책과 행정에 있어서 수요자들의 진화속도의 차이에 따른 수공격차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측면의 강화가 매우 중요하다. 하나는 수요자 참여형 수요자중심교육으로 구조전환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즉, 공급자들에 의한 수요자중심교육이 아니라 수요자가 참여하고 수요자들의 참여, 요구, 선택이 존중되는 수요자중심교육구조로 전환해가야 한다. 둘째로 교육혁신에 대한 자율적이고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로 개편하여 각 단위 기관들이 자율적 혁신역량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셋째로는 유연한 스폰지형 교육체제로 변해야 한다. 이 세 가지 교육혁신의 핵심에 대해 좀 더 논의해 보자.
첫째로, 수요자 참여형 교육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급자 측이 중심이 되어 추진되는 수요자 중심개혁은 빨리 진화하는 수요자들을 따라가지 못하며, 양측 간의 갭(gap)은 점점 커질 전망이다. 교육소비자(수요자)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혁신하게 만들 수 있다면 교육혁신은 더 빨리, 더 타당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교육수요자의 요구가 고급화, 다양화되고, 선택성이 증진되어야 한다. 교육환경은 맞춤형 교육에 대한 요구의 증대, 즉시만족형 교육에 대한 요구, 원스톱서비스 등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부모의 직업적 필요나 혹은 더 좋은 교육을 위해 이동하는 교육유목민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가 국민을 일일이 끌고 가려는 정부정책 위주의 교육운영방식을 탈피해야 할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한국의 경제규모가 방대하게 되어 정권이 바뀌고 정부정책이 바뀌어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흘러간다고 한다. 교육계 역시 이런 면이 있지 않을까? 정부는 수많은 정책을 내놓지만 학교도, 학부모나 학생도 중요한 부분은 정부정책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외형만 일시적으로 떠들썩하게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정책들이 참으로 많은 현실이지 않은가! 정부주도적 정책의 한계가 왔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교육소비자(수요자)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정부는 너지(nudge) 역할을 하여 교육혁신을 더 빨리, 더 타당하게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 너지 방법의 핵심에는 교육열이 자리 잡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변화하는 교육수요자들의 교육열을 만족시켜 주는 너지 방법을 디자인 해내야 한다.1
둘째로, 각 단위 기관들이 자율적 혁신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체제 정비를 해야 한다. 수요자 중심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다양하며 변화하는 수요자 요구를 효율적으로 반영하려면 상부로부터의 지시와 통제에 따른 운영과 개혁으로는 부족하다. 각 단위 교육관련 기관들이 스스로 학습조직이 되고 수요자의 요구를 질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한 자율적인 혁신능력이 형성, 강화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국가가 교육혁신 할 것을 일일이 정하고 지시하고 감독할 것인가? 빠르게 변하는 학습자들의 교육필요성을 이런 방식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다. 교육기관에 대해서는 교직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게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화와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국민에 대해서는 수요자가 국가 교육에 대한 모니터요원이 되게 하고, 혁신 제안자가 되게 만들고, 그들의 교육권과 학습권을 행사하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자율적 혁신을 위한 교육개혁의 목표이자 또한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셋째로, 교육수요자들의 다양하고 수시로 변해가는 교육요구들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스폰지형 학습체제로 혁신되어야 한다. 즉 스폰지가 다량의 물을 흡수할 수 있듯이 교육제도도 다양한 요구를 스폰지처럼 수용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되어야 한다. 학제, 교육내용, 학습방법에서도 기본적으로 스폰지형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 적시 학습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교육요구가 점점 다양해지고 유목적 생활이 점점 증가하는 시대를 맞아 교육적 교류와 이동이 쉽도록 만들어야 한다. 학교 간, 학년 간, 학과 간 교류와 이동을 편리하게 하여 누구나, 언제나 교류와 이동이 가능하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학교 내 학습과 학교 밖 학습간의 교차학습도 가능하게, 그리고 쉽게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스폰지형 교육체제의 예이다. 각종 사회 변화에 따른 교육적 영향은 수요자를 통해 반영된다. 국가의 교육적 필요도 수요자를 통해 만족시켜야 한다. 여기에 국가의 필요, 국가의 교육제도 운영, 수요자의 교육활용 사이에 소통이 잘되고 조화가 이루어 져야 한다. 경직되고 수요자의 요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교육제도의 운영은 수요자들의 저항과 반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수요자들의 저항과 반란은 국가 수준의 교육정책의 필요를 무색하게 만들게 된다.
넷째로, 국민(혹은 학부모)모니터 시스템의 제도화이다. 국민이 국가 교육에 대한 모니터요원이 되게 하고, 혁신 제안자가 되어 교육권과 학습권을 행사하도록 해 줄 필요가 있다. 일부 이런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지만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좋은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데에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도교육청에서 교육현장모니터 요원을 구성하고 제도를 직접 운영하는 방식은 학부모들의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와 문화형성이 필요하다. 이것은 자율적 혁신을 위한 교육개혁의 목표이자 또한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도 한국인들의 교육 희망이 담기고 자녀교육에 관한 행동요령의 해석지도를 제공하는 교육열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지식기반경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분야인 인적자원의 개발도 수요자의 참여와 스스로 학습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육 분야에서 교육수요자에 대한 의식의 대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학부모의 행동원리를 적절히 이해하고 거기에 적합한 정책을 세워야 한다. 학부모의 행동체계와 그 원리에 관한 연구도 필요하다. 역으로 정책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강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