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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대입제도 발전방안 – 문제해결의 10가지 원칙과 새로운 방안 제안

#37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13.09.03

목차
1. 어떤 기준으로 대입제도를 논할 것인가?
2.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평가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3. 마무리

 

지난 달 27일 정부가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시안을 발표하자 모든 언론 및 교원 단체, 교사, 강사 등이 일제히 이에 대해 논평을 쏟아냈다.

 

신문 기사나 논평 제목에 나타난 것으로만 보면 ‘너무 자주 바뀐다’, ‘학생부담 는다, ‘사교육 조장’, ‘대입 관련 근본 문제 해소 대책 전무’ 등 우려하는 것이 더 많다.

 

이제 정부는 몇 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시안을 다듬고 10월 중 확정짓게 될 것이다. 이에 걱정스러운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 대입제도 개혁을 논의할 때 필요한 원칙과 기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를 포함해서 이해당사자들마다 제각각의 다양한 주장을 펴더라도 이를 제대로 심판하기 어렵다. 기준이 없으면 각 주장의 배경에 어떤 이해관계가 깔려 있는지 아니면 매우 순수한 의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또, 이런 기준이 없으면 ‘여론’을 방향 결정의 근거로 삼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을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둘째, 땜질식 접근이다. 대입제도는 교육과정, 교과서, 내신, 수능 등과 관련되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학 교육의 질, 더 나아가면 국가의 미래 경쟁력과도 맞닿아 있다. 또, 고교와 대학의 서열, 학벌중시, 좋은 직장의 부족 등과 같은 사회, 문화적 환경 요인도 대입제도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대입제도를 논할 때 문제가 되는 한 부분만 떼 내어서 분절적으로 논할 수 없다. 이번 대입전형 간소화와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두고 ‘소비자 민원처리 보고서’와 같다고 꼬집는 사람도 있다. 큰 그림 없는 대증요법식 접근은 기대하는 개선 효과를 거둘 수 없을 뿐더러 나중에 필연적으로 탈이 나게 되어 있다. 최소한 고교 교육과정을 향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서만이라도 충분히 고민하여 방향을 잡은 후, 그 방향에 맞게 대입제도를 고쳐나가야 한다.

 

셋째, 5년짜리 단기적 접근이다. 단기적 접근으로는 교육문제를 근본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번 정부가 시안을 발표하고 10월 중 확정하겠다는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이 불과 ‘5년짜리’라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국가는 최소한 10~20년에 걸친 교육생태계와 대입생태계의 변화상을 예측·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교육의 비전 즉 ‘큰 그림’을 먼저 그린 후 그 위에서 5년짜리 단기 개혁 계획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야 단기적-중기적-장기적 계획이 한 방향으로 일치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는 한국의 공교육이 나아갈 큰 방향에 대한 언급이 없다. 문제투성이의 현 제도를 조금씩 수선해 가면서 5년을 버틴 후 차기 정권에 바턴을 넘기겠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교육의 사명과 비전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5년짜리 단기 계획만 세우는 일은 매우 잘못된 방식이다. 이런 민원 처리식 교육개혁을 방지하려면 교육개혁의 절차(process)부터 제대로 만들고 이 절차를 충실히 따르게 해야 한다. 이미 많은 주요국들은 21세기 변화된 환경과 인재상에 맞추어 교육과정을 개정했다. 미래형 수능시험을 논하려면 미래의 교육과정이 나아갈 방향을 먼저 설정하는 것이 맞다. 당장 ‘역량통합’, ‘사회성·감성 교육 통합’ 등의 과제가 주어져 있다. PISA 2015의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 시험은 세계 공교육에 적잖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를 대비해서 역량통합교육과정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연구해 왔다. 또, 뉴미디어 시대 청소년들에게는 특히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사회성·감성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게다가 학습자를 수업에 몰입시키기 위해서는 학습자의 삶과 직접 연관된 프로젝트 수업의 비중도 높여야 한다. 새로운 수능시험을 논의할 때는, 이런 새로운 교육의 목표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과정의 잦은 개정이 불가피하고, 교육과정과 평가가 불일치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핀란드 국가교육청 사이트에는 ‘LEARNING AND COMPETENCE 2020’이 예쁜 꽃 모양의 도표로 그려져 있다. 이 이미지에는 비전과 사명, 가치와 핵심성공요인, 정책방향 등이 한 눈에 들어오도록 되어 있다. 우리 한국의 공교육도 이런 큰 틀을 먼저 잘 만들어야 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오는 10월 정책 확정을 위해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대입문제를 논의해야할지 그리고 어떤 점을 수정․보완해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고 수능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1. 어떤 기준으로 대입제도를 논할 것인가?

 

대입제도와 같이 매우 난해한 문제를 논할 때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원칙, 가치, 기준 등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합의가 없으면 어떤 결론에 이르기 매우 어렵다. 이번 시안은 ‘학생․학부모 부담완화와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이란 표현이 붙어 있다. 이것이 이번 대입제도 개혁의 목적인 것이다. 이렇게 이번 시안의 목적이 공교육의 정상화에 있는 만큼 먼저 ‘공교육 정상화’에 대한 개념부터 살피고 논의를 시작하자. 다음은 한국교육개발원의 한 연구 자료에 나오는 ‘공교육 정상화’의 정의다.

 

가. ‘공교육 정상화’의 개념부터 구체화하자

 

‘고교교육 정상화’란 교육과학기술부 고시의 교육과정 상에 제시된 고교 교육목표 달성을 위해 학교가 의도하는 교육활동을 대입과 같은 요인들에 의해 왜곡됨 없이 보다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정광희 외, 2011).

 

이는 너무 추상적이다. 이를 읽고 이번 시안이 공교육 정상화에 어떤 도움을 줄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았다. 공교육 정상화란 한국의 교육과정이 추구해야 할 원칙(principles)과 목표(goals), 핵심가치(core values)를 바탕으로 공교육이 학교 교육의 핵심역할(essential functions of school)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필자는 아래와 같이 한국 교육과정이 추구해야 할 13가지 원칙과 7가지 핵심가치, 학교교육(공교육)의 9가지 역할을 정리해 봤다.

 

▷ 한국 교육(과정)이 추구해야 할 13가지 원칙/목표
① 전인적 성장 교육(whole-person education)
② 학교의 자율성(school autonomy)
③ 학습자 자기주도성, 자기책임의식(learner autonomy & ownership)
④ 진정한 성취 및 평가(authentic achievement & assessment)
⑤ 사회성 & 감성 교육(SEL: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⑥ 삶의 기술(life skills) 교육
⑦ 학습능력(learning to learn)
⑧ 고등사고능력(high order thinking skills)
⑨ 개별화된 교육과정(differentiated curriculum)
⑩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learning for ALL)
⑪ 통합교육(inclusion)
⑫ 지역사회의 참여(community engagement)
⑬ 일관성 유지와 미래지향(coherence and future focus)

 

▷ 한국 교육(과정)이 지향해야 할 7가지 핵심가치
① 공평(equity)
② 협력과 협동(collaboration & cooperation)
③ 존중(respect)
④ 자기유능감(self-efficacy)
⑤ 윤리성 & 진정성(integrity)
⑥ 탐구(inquiry)
⑦ 다양성(diversity)

 

▷ 공교육의 9가지 역할
① 출신환경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동등한 교육기회 제공
②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개성 발휘를 돕는 역할
③ 미래의 직업에 필요한 지식/기술/(평생학습)역량 향상
④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준비 및 선발 기능
⑤ 사회적 계층이동 촉진 기능
⑥ 책임 있는 민주시민의 소양을 함양하는 사회화 기능
⑦ 인류가 발전시킨 지식, 문화, 기술을 배우고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역할
⑧ 보육의 역할
⑨ 생태계의 보존, 공존 등 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한 삶의 방식을 배우게 하는 역할
(출처: 이찬승, 2012)

 

교육에 있어서 원칙과 가치는 왜 중요한가? 원칙은 교육과정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이 되며, 교육과정의 기획, 우선순위, 교육의 성과를 검토할 때도 기준이 된다. 핵심가치 역시 학교교육을 지탱하고, 일관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신념이자 가이드라인이며 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정책적 판단이나 선택의 기준이 된다.

 

세계의 주요국이나 주 들은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 교육 비전과 사명을 달성하고자 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과 가치를 먼저 명확히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핀란드의 예를 보자.

 

‘학습과 역량 2020’ (핀란드 국가교육청 교육과정의 기본전략 틀)

(출처: 「Learning and Competence 2020」,
바로가기 http://www.oph.fi/download/135542_learning_and_competence_2020.pdf)

 

이상과 같이 공교육 정상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나서,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시안’에 대해 논함으로써 이 시안이 ‘무엇을 위한 시안인가?’ 그리고 ‘이 시안들이 공교육 정상화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좀 더 명확한 토론이 가능하길 바란다.

 

나. 대입제도 발전방안에 대한 논의의 기준을 만들자.

 

이미 앞에서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논의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조차 없는 것이 문제임을 밝힌 바 있다. 이는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이해를 염두에 둔 주장들을 걸러낼 수 없게 하고, 논의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며, 합의에 이를 가능성을 낮출 것이다. 앞에서는 교육과정의 편성 및 운영 차원에서, 한국의 공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을 살펴보았지만 이제는 이보다 범위를 좀 더 좁혀 대입제도의 발전방안을 논의할 때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과 가치를 살펴보려 한다. 이는 정책 결정 단계에서 충돌이 일어날 경우, 심판의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가치충돌의 한 예를 보자. 정부의 이번 시안에 의하면 수능 시험을 종전처럼 EBS 교재에서 70% 이상을 출제하겠다고 했다. 이런 조치가 수험생의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일부 덜어주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2, 3이 되면 이런 정책으로 인해 고등학교의 교실에서는 EBS 교재가 교육과정을 대체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는 심각한 파행이다. 교육부가 한 입으로는 공교육 정상화를 부르짖고 다른 입으로는 스스로 교육과정 파행을 조장하는 격이다.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국가가 확고한 교육 원칙과 가치를 가지고 있을 필요성을 느낀다. 교육이 지향하는 가치와 원칙이 분명했다면 이런 결정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대입제도 개선을 논의할 때 ‘최소한의 기준’은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우선, 어떤 기준(= 지향하는 가치와 원칙)이 필요한지를 알기 위해 대입제도 및 대입전형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충돌현상들을 살펴보자.

 

1) 전형방식/요소 관련 충돌 현상
① 대학의 선발 자율성과 공교육 정상화 저해
② 전형 간소화와 다양성 훼손의 충돌
③ 일관성 유지와 적시변경 불가의 충돌
④ 학습부담 경감과 편식학습의 충돌
⑤ 대학의 선발 자율성과 교육 불평등 증가
⑥ 모집단위 특성 살리기와 지원자 미달 가능성

 

2) 교육과정 관련 충돌 현상
① 문․이과 통합 운영과 사교육 및 학습부담의 증가
② 교육과정 운영 자율성과 편식학습 증가 혹은 쉬운 교과 선택
③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과 대학입시에 유리한 쉬운 교과 선택

 

3) 내신제도 관련 충돌 현상
① 내신비중 강화와 성적 부풀리기 및 부정 발생 가능성 증가
② 내신비중 강화와 내신 사교육 증가
③ 내신비중 강화와 변별력 부족을 이유로 내신 무력화와 고교등급제 실시 가능성 증가
④ 내신비중 강화와 대학별 고사(논술, 면접, 실기) 강화
⑤ 내신 절대평가 도입과 특목고의 상대적 유리함 발생
⑥ 내신비중 강화와 교사 부담 증가
⑦ 내신 절대평가 강화와 교사와 학생간의 평가 결과에 대한 시비 증가

 

4) 수능시험 관련 충돌 현상
① 문․이과 통합 수능도입과 학습부담의 증가
② 평가 과목 축소를 통한 학습부담 경감은 협소한 교육과정 운영으로 고교에서 담당할 교양교육이 소홀해짐
③ 수능비중 완화와 변별력 부족
④ 논․서술형 수능을 도입하여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면 채점의 어려움 등 실현가능성 문제 발생
⑤ 교육과정과 연계 강화를 위해 수능을 교과 학력검사로 전환하면 기존 수능의 통합교과적 고등사고력 측정 불가능
⑥ EBS 연계 출제는 EBS 교재가 고교 교육과정을 대체해 고교 수업의 파행 초래

 

5) 논술 고사 관련 충돌현상
– 논술고사의 필요성과 지도, 채점의 어려움/사교육 증가

 

6) 사회적 배려 전형 관련 충돌현상
– 대학의 공공적 책무성과 적임자 선발의 불일치 발생
이상과 같은 충돌현상들에 대해 현재의 한국 사회는 어떤 요소를 더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지를 판단해 보자.

 

다. 대입제도 문제해결을 위한 10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앞으로 대입제도와 대입전형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는 한국의 공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매우 중대한 문제다. 현실적으로 평가가 교육과정을 규정하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논의의 원칙이나 기준을 정하고 들어가면 논의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더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소수의 당사자들과 관련된 특정한 분야의 이해가 과도하게 반영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원칙1 – 큰 그림 먼저 그리기 원칙
큰 그림이라 할 수 있는 10~20년 앞을 내다보는 중장기 비전을 수립한 후 그 큰 그림에 맞춰 단기적 목표를 세울 때만 비전이 달성될 수 있다.

 

• 원칙2 – 공교육 정상화 / 교육본질 우선의 원칙
–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증가가 충돌할 때는 원칙적으로 공교육 정상화를 우선시한다.

 

“대입제도 논의에서 항상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사교육비의 문제는 대개 핵심적인 요인에 종속되는 것일 수 있다. 종속적인 요인인 사교육비 문제를 대입제도 개선 논의에서 핵심으로 놓게 되면, 정작 중요한 교육의 본질적 목적이나 기능 문제는 차선으로 밀리게 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지금까지 대입제도 개선의 변화를 보면 대학의 선발 자율권의 확보와 고교 교육의 정상화의 무게 중심축이 지그재그식으로 반복된 경향이 있지만, 또 하나 중요한 작용인(作用因)이 되고 있는 것이 사교육비 경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대입제도 논의에서 핵심으로 삼아야 할 것은 사교육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을 어떻게 하면 본래 기능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이며,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광희 외 한국교육개발원, 2011).”

 

– 교육적 목적에 더 가까운 절대평가와 선발적 목적에 더 가까운 상대평가가 충돌할 때는 원칙적으로 교육적 목적을 우선한다.
– 평가의 타당성과 공정성이 충돌할 때는 이해당사자를 설득해서 원칙적으로 타당성을 높이는 쪽을 지향한다.
– 대입전형을 지나치게 간소화하면 고교교육, 대학교육 모두 획일적인 교육과 획일적인 인재를 선발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적정 수준의 전형 간소화를 지향해야 한다.

 

• 원칙3 – 공공적 책무성 우선의 원칙
대학의 선발 자율성과 공공적 책무성이 충돌할 때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공적 책무성을 우선시한다.

 

• 원칙4 – 관련 요소 동시 검토의 원칙
대입전형에 관련되는 한 특정 요소를 개선할 때는 이 요소와 상호 관련이 깊은 다른 주요 요소를 함께 검토한 후 개선한다.

 

• 원칙5 – 시뮬레이션 및 교사 판단 중시 원칙
교육생태계는 복잡계 그 자체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새롭게 도입하는 정책이 실제 어떻게 작동할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충분히 시뮬레이션을 해 봄으로써 실패확률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이때 현장 교사들의 참여와 의견 청취, 판단을 중요시한다.

 

• 원칙6 – 절충(A and B)의 원칙
둘 다 버리기 어려운 이해가 충돌할 때는 2분법적 접근(A or B)을 통해 어느 것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절충(A and B)도 적극 고려한다.

 

• 원칙7 – 불포기 · 일관성 유지의 원칙
한국은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불만 여론이 일면, 바로 그 정책을 폐지하는 경우가 너무 잦다. 새로운 정책의 도입 초기에 부정적 요소가 나타난다고 하여 이를 바로 실패로 규정하고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시도가 그렇듯, 교육정책도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떤 바람직한 변화를 추구할 때 예상되는 문제점이나 부작용은 완화하거나 해결할 일이지 이것 때문에 바람직한 변화 자체를 포기하거나 유보해서는 안 된다.

 

• 원칙8 – 여론에 따른 결정 지양의 원칙
교육정책을 도입할 때 도입과 폐지의 근거로 여론의 찬반 비율을 드는 경우가 많다. 교육정책의 도입여부 결정을 여론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고 타당하지 않다. 교육문제의 경우 여론조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단기적이고 개인적인 이해관계만을 중점적으로 고려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교육문제는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이 옳은지 일반 대중이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다. 따라서 여론의 동향은 참고의 대상에 그칠 일이다. 여론의 방향이 옳지 않을 때는 여론을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 원칙9 – 정치적 판단 배제의 원칙
교육정책을 결정할 때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행태는 절대적으로 중단되어야 한다.

 

• 원칙10 – 자발적 책무성, 사명감, 투명성 우선의 원칙
대입전형이 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교한 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관련자들을 관리할 때, 평가를 통한 압력과 징벌적 보상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관련자들에게 자발적인 사회적 책무성 제고와 투명성 강화를 우선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이상의 원칙들은 아직 더 다듬어져야 하겠지만 이를 기준으로  최근 정부가 발표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의 각 항목을 평가해 보기로 한다.

 

 

2.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평가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앞에서 설정한 대입제도 문제해결을 위한 10가지 원칙으로 지난달 27일 정부가 발표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시안을 평가하고, 문제가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가. 대입전형 간소화

 

대입전형 간소화는 다양한 인재 선발을 불가능하게 하고 고교 교육을 획일화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수능 한 가지만 가지고 대입전형을 실시한다고 상상해 보라. 고교 수업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 또, 대입전형이 지나치게 간소화되면 모든 대학들이 비슷한 기준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기 때문에 대학의 특성이 없어지고, 기존의 대학 서열화를 고착시킨다. 즉, 간소화는 다양성을 훼손한다. 문제해결 [원칙2]를 적용하여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학생부의 신뢰도가 낮은 상태에서 도입하는 현 간소화 시안은 획일성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 교사, 사교육 전문가들의 의견 청취와 시뮬레이션을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 후 몇 년간 시행을 해 보고 보완하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다.

 

나. 학생부 위주 전형

 

현재처럼 수능이 대입전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황에서는, 고교 교육이 문제풀이 교육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대입전형에서 학생부 비중 강화와 수능 영향력 축소 방향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질 높은 서술형 평가, 수업과 연계된 수행평가(글쓰기, 토론, 실험 등)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와 같은 문제가 가장 큰 당면 과제이다. 출제와 평가의 전문성 향상, 성적 기록에 대한 부담 경감, 성적 기록의 방식 개선과 같은 문제들이 모두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 학생부의 질과 신뢰도는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학생부 위주의 대입 전형은 교과 성적이 대입에 과도하게 반영되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따라서 교과와 비교과를 고르게 반영하고 정성적 평가까지 반영할 수 있도록 입학사정관 전형을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수능의 비중을 줄이고 내신의 비중을 높이려는 상황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은 그 중요성이 더 커진다 하겠다. 그동안 문제가 적지 않았다고 하여, 학생부 심층평가란 이름으로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한 재정지원을 끊거나 줄여 그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지는 않아야 한다. 필자의 문제해결 10가지 원칙 중 ‘불포기 · 일관성 유지의 원칙(원칙7)’을 지키는 것이 꼭 필요한 사안이다. 입학사정관 전형은 지금까지 있었던 문제점을 보완하고, 평가의 질이 담보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적정 수준으로 지속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 성취도 평가 도입과 대입전형 반영 유예

 

지금까지는 고교의 내신 평가가 9단계 상대평가였다. 하지만 현행 2009 개정 교육과정은 모든 과목이 선택형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소수학생들이 선택하는 과목도 개설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9단계 상대평가 자체의 적용이 불가능할 수 있어 절대평가로의 전환이 불가피했던 면이 있다. 실제 현실에서는 교사수급과 수업시간표 작성의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선택형 교육과정이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절대평가인 성취평가를 중학교 1~2학년에 이미 도입했고 내년에는 중3은 물론 고1부터 고교에서도 성취평가를 하게 된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성취평가를 2020학년도 대입전형에 반영할지 여부에 대하여 2014~2016년 일선 고교의 성취평가제 운영 결과와 정착 정도를 평가한 결과를 바탕으로 2016년 하반기 중에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2019년까지 성취평가의 도입을 유예한 셈이다. 그 이유는 성취평가를 위한 준비가 안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2년 전, 이 제도의 도입을 발표할 때 이미 그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혹은 2년 사이에 대안을 마련했었어야만 한다. 지금 와서 신뢰도 부족, 성적 부풀리기 등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유예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적 가치 우선의 원칙(원칙2), 불포기 · 일관성 유지의 원칙(원칙7)에 따라 성취평가를 2020년 대입전형에 반영하도록 확정하는 것이 옳다. 예상되는 문제점을 1~2년 안에 보완하는 것으로 하고 2020년부터 대입전형에 반영하는 쪽으로 확정을 했어야 한다. 이번에도 절대평가로 인한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평가에 머무르게 된다면, 1996~2004년에 이어 두 번째로 절대평가 도입에 실패하는 것이어서 앞으로 절대평가를 도입한다는 말은 다시 꺼내기 어려울 것이다.

 

절대평가인 성취평가 도입에 또 다른 장애요인이 있다. 국제고, 외고, 자사고를 그대로 둔 채로 절대평가를 실시할 경우, 그런 학교들이 좋은 성적을 얻는 데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므로 이에 대한 불공정성과 불만에 대해 사회적 비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런 것도 예상하지 못한 채, 지난 정부에서는 절대평가인 성취평가를 하겠다고 덜컥 발표한 꼴이다. 이런 정책을 만든 전임자는 처벌되어야 한다. 도입만 하고 제도가 실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을 방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칙2]와 [원칙7]을 지키며, 절대평가로 나아가야 한다. 물러서면 안 된다. 절대평가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며(예: 국제고, 외고 등의 일반고 전환과 비평준화지역 학교의 평준화), 이를 계기로 일선 교사들에게 교육과정 편성과 평가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물론 강도 높은 준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혼란과 문제점들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 학교생활기록부 교과 기록 신뢰성 확보

 

학교생활기록부 교과 기록 신뢰성 확보를 위해 ‘평가종합매뉴얼’을 만들어 보급하고, 성취평가제가 공정하고 신뢰롭게 운영될 수 있도록 ‘성취평가지원체제’를 구축하고, 교육부는 고교 현장의 학생평가를 모니터링하고 교원연수 및 컨설팅을 지원하기 위해 ‘성취평가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하는 안을 발표했다. 또, 현장 점검, 지도,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모두 필요하고 고려해볼 만한 사항들이다. 하지만 좀 씁쓸한 것은 불신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핀란드처럼 ‘투명성’, ‘윤리성’, ‘도덕성’을 바탕으로 제도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게 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해보길 바란다. 물론 비리가 발견되었을 때는 일벌백계를 하는 것이 옳다. 이점에 있어서는 핀란드의 접근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많은 핀란드 교사들은, 영미가 그렇듯이 외부 기관이 측정한 표준화 시험의 결과를 가지고 교사의 책무성을 요구한다면 다른 직장을 찾을 것이라는 의견이고 알려져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핀란드 교사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교직에 대해 사회적인 위신과 명성, 존경과 신뢰를 기대한다. 마치 의사가 그렇듯이. (『The Global Fourth Way』, 2012, 59쪽)”

 

아울러 어떤 사회적 의사결정이든 양적 지표를 가지고 할 경우, 부패와 왜곡이 일어난다는 캠벨의 법칙(Campbell’s law)도 귀담아 들었으면 한다.

 

“어떤 양적 사회적 지표이든 그것이 사회적 의사결정에 더 많이 쓰이면 쓰일수록 더 많은 부패의 유혹에 빠지고, 모니터 하고자 하는 사회적 과정이 더 많이 왜곡되고 변질되기 쉽다.(『The Global Fourth Way』, 2012, 37쪽)”

 

교육부가 각 대학 입학전형의 교교에 대한 영형평가제를 실시할 때도 ‘자발적 책무성, 사명감, 투명성 우선의 원칙(원칙10)’을 고려했으면 한다.

 

마. 새로운 수능모형 모색

 

현재의 수준별 수능제도를 폐지하기로 한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앞으로 희망 전공별 교육과정 운영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수준별 교육과정은 실제적의 가치에 비해 혼란이 더 크다. 따라서 폐지는 바람직하나 선택형 교육과정과 수능의 불일치란 새로운 문제가 남는다. 이는 7차 교육과정과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잉태된 문제다. 이는 필자가 제시한 ‘관련 요소 동시 검토의 원칙(원칙4)’와 ‘시뮬레이션 및 교사 판단 중시 원칙(원칙5)’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이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게 되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뒷받침된 탄탄한 제도라 하더라도 한국적 상황에서는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는 교훈 말이다. 이런 상황들은 앞으로 한국 땅에서 ‘선택형 맞춤 교육과정 운영이 실제 작동 가능할 것인가?’라는 강한 의문을 갖게 한다. 많은 학생, 학부모들은 적성을 살리는, 즉 전공 적합성에 맞춘 진학준비보다는 취업가능성과 서열이 높은 대학이나 학과에 입학하는 데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현 수준별 수능의 폐지와 함께 정부는 현재의 제도를 유지하는 안을 포함하여 3가지 안을 제시하였다. 그중 ‘문 · 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를 배우도록 하고 평가하는’ 제3안이라고 부르는 ‘문 · 이과 완전 융합안’에 대한 긍정적 의견들이 적지 않다. 이는 그동안 선택형 수능제도로 인해 소외되었던 사탐, 과탐 과목의 고른 학습이(융합과학과 공통사회 교과목을 통해) 고교 교양교육의 질을 높이고, 대학에 진학했을 때 학생들이 전공할 분야의 기본지식을 탄탄히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등교육 보편화 시대에 대학교육의 질 향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고교 졸업자 수의 감소로 입학정원을 채우기 어려운 대학이 증가하면서 대학 수학에 필요한 영역이나 과목을 지정하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문 · 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를 고교에서 필수적으로 배우게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현재와 같이 편식을 조장하는 수능은 개선되어야 한다. 자연계 수험생은 상대적으로 공부하기 어려운 과학 과목을 공부하면서 수학도 더 어려운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문 · 이과 분리형 시험 제도는 이공계 기피현상의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은 ‘선택형’이란 도입 취지는 좋았지만 고교 교육과 대학 교육의 연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대학에서 전공 학습에 필요한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입에 유리한 교과목을 선택함으로써 선택형 교육과정의 도입 취지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문 · 이과 완전 융합안’은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

 

이렇게 ‘문 ․ 이과 완전 융합안’은 장점이 많다. 하지만, 국영수를 포함한 시험 과목의 난이도와 반영 비율을 지금보다 낮추고, 등급도 현재의 9등급에서 5등급 정도로 낮출 것을 제안한다. 사회적 계층 격차가 교육격차로 대물림되는 것을 막고, 대학의 수직적 서열구조를 완화함으로써 고교 교육을 조금이라도 덜 경쟁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5단계 정도로 줄이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수능의 난이도나 반영비율을 낮출 때 변별력이 부족해 질 것이란 점을 들어, 융합안은 대학별 고사 강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때 어떤 판단이나 선택을 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대학은 이런 수능을 ‘공교육 정상화 우선의 원칙(원칙2)’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대학의 서열이 견고한 것이 고교 교육을 왜곡하는 가장 큰 원인의 하나이고, 이를 어떻게든 완화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변별력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추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 후에, 다른 대학보다 더 잘 가르치기 경쟁을 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사회는 대학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원래는 제3안이 제1안이었다고 한다. 청와대의 개입으로 3안으로 밀려난 것이다(매일경제 ‘1년지대계 대입제도’, 8월 29일자). 이는 ‘정치적 판단 배제의 원칙(원칙9)’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문 · 이과 완전 융합안’을 도입할 경우, 이공계열로 진학할 학생들이 고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미적분II, 기하와 벡터과목 그리고 심화된 과학탐구와 사회탐구는 대학에서 교양과정을 개설해 해결하면 될 것이다. 현 한국의 여건상 이를 고교가 담당하는 것보다 대학이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

 

‘문 · 이과 완전 융합안’을 도입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새로운 수능을 단계적으로 논 · 서술형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정부 및 학교들은 대체로 현재 수능의 5지 선다형 출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큰 문제다. 국가 차원의 논술형 수능으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는 전교조의 주장(보도자료, 2013, 8월 27일)은 매우 타당하다. 수능 시험이 대부분 5지 선다형 객관식인 한, 모든 고교는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을 계속할 것이고 이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역량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기 어렵다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논 · 서술형 시험은 채점이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것의 검토를 배제하거나, 미루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논 · 서술형 수능이 필요함이 분명하다면 일단 도입하는 쪽으로 큰 방향을 분명히 정하고, 채점의 어려움 등은 해결해 내야 할 과제로 봄이 타당하다. 구더기가 무서워 계속 장 담그기를 보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가치의 충돌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객관식 수능을 유지하려는 것은 객관성, 행정 편의성 등의 가치를 공교육 정상화란 교육적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것이다. 이는 공교육 정상화를 한 입으로 외치면서 속으로는 거꾸로 가는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렇게 가치가 충돌할 때 공교육 정상화 우선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원칙2).

 

수능을 가능한 한 빨리 미국의 구 SATI(지금의 SAT 추리시험)처럼 논술형/서술형을 포함하는 시험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학교 수업에서 일상적으로 논 · 서술 수업을 하게 해야 한다.

 

수능 3안에 대해 전교조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성취평가제는 대학서열해소 이후 도입해야 한다.”
고등학교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는 교육적 타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왜곡된 입시구조 하에서는 내신무력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성취평가제는 특목고와 자사고 학생들을 대거 입학시키기 위해 활용될 공산이 크며, 내신무력화에 따라 수시에서는 논술, 정시에서는 수능의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성취평가제가 교육적으로 현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역별, 학교별 균형 선발을 원칙으로 강제해야 하며, 나아가 대학서열체제 완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보도자료, 전교조, 2013. 8.27.)

 

전교조의 이런 방향에 대해서 대체로 동의하지만, 성취평가제를 대학서열체제 해소 이후로 하자는 주장은 현행 상대평가제를 유지하자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다. 차라리 국제고, 외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과 함께 성취평가제를 실시하면서, 대학서열완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수능 개선안에 대해서 이번 정부가 내놓은 시안을 포함하여 지금까지의 접근들이 과연 얼마나 옳을까? 지금까지 국책기관이 연구한 자료를 포함하여 공교육 개혁에 대해 전문성이 높은 분들도 수능 I, 수능 II처럼 수능을 이원화하는 것이 수능이 나아갈 미래 방향이라고 얘기해왔다. 수능 I, 수능 II 체제는 ‘모든 수험생을 대상으로 ‘기초공통시험(= 수능 I)’을 실시하고, 고등학교 내신 상위 몇 % 이내 혹은 ‘기초공통시험’ 몇 점 이상과 같은 방식으로 응시 자격을 제한하여 ‘교과목별 선택시험(= 수능 II)’을 시행함으로써 수능을 이원화하는 것’을 말한다(이양락 외 2010). 이는 미국의 학업적성시험에 해당하는 비교적 쉬운 SATI(=SAT Reasoning Test), 교과목별 학력고사에 해당하는 중간 정도의 SAT II(SAT Subject Test)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보인다. 필자는 이런 접근에 대해 반대한다. 우선 한국에서 생각하는 수능 I은 100% 객관식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적 현실에서 수능 II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까? 작동하기 어렵다. 아마 서울대 정도는 몰라도 어떤 다른 대학도 이를 선뜻 선택하고 싶지 않아 할 것이다. 전공 적합성과 상관없이 많은 학생들이 서울대 입학을 희망할 가능성이 높다. 연고대가 우수학생을 놓치면서까지 전공적합성을 고수하려고 할까? 전공적합성이 학생에게 최고의 가치인가? 아니다. 더 많은 학생들은 취업에 유리한 전공을 선호할 것이다. 혹은 사회적으로 인기가 높은 직업(예: 변호사)을 준비하는 데 유리한 전공을 택할 가능성도 높다. 이는 개인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적 가치 우선의 원칙보다 더 우선시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회보장제도, 사회적 안전장치가 미흡한 현 시점에서 이를 나무라기는 어렵다.

 

이것이 딜레마이다. 고교에서 희망하는 전공 위주로 선택하여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 운영은 미국처럼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지 않고 대학이 비교적 균질하고 특화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수능 개선 방안은 논 · 서술형을 도입하는 수능개선을 전제로 내신을 닮은 수능을 만들고, 역으로 내신이 수능을 닮게 만드는 것이다. 수능을 교육적 타당성이 높은 수능으로 만들고 수능의 영향력을 너무 축소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현실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내신강화 + 수능 영향력 축소’라는 현 정부의 시안은 이상적인 방향이긴 하나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낮을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수능도 살리고, 내신도 살리는 방향을 찾자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수능을 약 5년에 걸쳐 논 · 서술형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높여가자는 제안이다. 최소한 30~40%의 수능 문제는 논 ․ 서술형으로 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필요하면 2일에 걸쳐서 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채점은 다른 나라처럼 교사가 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가르친 대로 평가하는 것이니 어려울 일도 아니다. 공정성 시비를 줄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는 지금의 말 많고 부작용이 많은 기존의 논술을 대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바. 논술 위주 전형

 

논술 전형은 주로 상위권 대학이 수시 전형에서 요구하는 시험이다. 지금까지 너무 어렵고, 대학마다 문제 유형이 제각각이라 마침 준비한 것이 나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손을 댈 수 없어 ‘로또 논술’이란 별칭까지 얻은 시험이다.

 

이번에 정부는 ‘고교와 학생이 준비할 수 있는 논술고사 시행’을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고교 교육과정 수준에서 출제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인데 대학은 정부의 이런 권유를 따라야 한다. 현재의 논술을 당장 학교에서 지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교사들의 전문성 향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논술준비를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대학이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 계속 지금까지와 같은 난해한 논술을 출제한다면 이는 대학의 공공적 책무성을 저버리는 처사다. 대학은 적격자 선발의 가치보다 ‘공교육 정상화 우선의 원칙(원칙2)’을 따라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지금과 같이 논술이 특정 수험생에게만 요구되는 전형요소가 아니라 모든 수험생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논술을 중단하고 수능시험에 매우 낮은 단계의 논술 문제를 출제해서 학교에서 모든 과목에 걸쳐 일상적으로 논술 교육이 이루어지게 해야 할 것이다.

 

지문을 읽고 그것을 요약하게 한 다음, 읽은 내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자기 생각을 쓰게 할 수도 있고, 진지한 생각을 필요로 하는 질문을 두어 개 주고 답하게 하는 방법, 다른 사람의 코멘트에 대해 피드백을 제공하는 방법, 현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이나 논제에 대해 자신을 입장을 밝히고 3~4개 정도의 근거로 뒷받침하게 하는 정도의 논술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논술고사와 관련하여 우리사회가 한 가지 간과하는 큰 문제점이 하나 있다. 현재의 논술은 상위권, 중위권 대학 중심으로 실시되는 전형이며, 논술로 뽑는 학생 수는 전체 입학생의 15% 미만이다. 논술은 분석력, 논리력을 키우는 수단이기 때문에 일부 학생이 아니라 우리나라 초중고 모든 학생들이 키워야 할 필수 역량이다. 따라서 수능을 논 · 서술을 보강한 시험으로 바꾸고 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에서 논술, 구술 능력을 일상적으로 개발시켜 주어야 한다. 이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계속 객관식 시험문제 풀이 중심의 교육을 해결하지 못하고, 논술을 특정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하면서 창의성 교육을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정책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논술 역량을 기대하지 않는 것은 매우 비교육적인 생각이다.
선진국들은 공부를 못하는 아동들일수록 기대를 낮추지 않고 대학에 보내려고 애쓰나 한국 사회는 공부 못하는 아동들에 대한 기대를 너무 쉽게 낮춘다. 이런 태도를 갖는 사람들은 ‘계층 고착화’, ‘교육 불평등’을 말할 자격이 없다. 논술, 구술 능력은 모든 학교에서 모든 과목에 걸쳐 가르치고, 모든 아동들이 배워야 할 능력이기 때문에 수능시험도 이런 유형으로 빨리 바뀌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현실성이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필자가 말하는 논 · 서술형이란 질문 하나에 스스로 열린 답을 쓸 줄 아는 것에서부터 하나의 짧은 글을 읽고 저자의 생각에 대해 비판하는 것까지, 즉 낮은 단계의 논술로부터 차츰 본격적인 논술로 나아가는 안임을 밝혀 둔다.

 

사.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대입전형

 

정부는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대입전형으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위한 고른 기회 입학전형을 활성화하고 확대를 유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사회통합 측면에서 ‘고교 유형, 지역, 소득 계층’ 등에서 다양한 학생을 균형적으로 선발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기대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은 대학평가를 통한 인센티브 제공인 듯하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전형만으로는 사회통합은 불가능하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여건이나 불리한 환경에 사는 학생의 입시성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인정하자.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농산어촌 등에서 절대평가 내신성적 A와 서울의 한 외고의 내신성적 A를 동일하게 인정하자고 대중을 설득하고, 나아가 사회적 합의까지 이끌어 내야 한다. 필자는 우리 사회가 진정 사회통합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염원한다면 상대평가를 할 때 고교 등급제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논리로 농산어촌의 A와 도시 외고의 A를 같은 점수로 인정해주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시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만큼 잘 한 것은 도시의 그 학생에 비해 잠재적 능력이 적지 않다고 봐야 한다. 이는 ‘공공적 책무성 우선의 원칙’(원칙3)에 해당된다. 이는 중등교육에서 모든 교육적 활동을 왜곡시키는 대학서열을 완화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비윤리적인 성적부풀리기가 일어나지 않기 위한 제반 조치를 사전에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 EBS 70% 연계 출제

 

고 2~3의 경우, EBS 문제집이 수업에서 교육과정을 대체한다. EBS에서 70% 이상을 출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정책을 유지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사교육 경감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학습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일까? 사교육 경감과 학습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좀 있다고 해서 이런 큰 반칙을 정부가 범해도 된다는 말인가? 목적이 좋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원칙과 가치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무원칙한 정책을 쓰는 한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이런 정부 시안은 ‘공교육 정상화/교육적 가치 우선의 원칙’(원칙2)과 정면 배치되는 처사다.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3. 마무리

 

지금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어떻게 고치든 그런 방식으로는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교육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분절적 접근은 대입제도 문제해결을 위한 10가지 원칙 중 ‘관련 요소 동시 검토의 원칙(원칙4)’과도 정면 배치된다. 교육개혁의 세계적 대가인 마이클 풀런 교수도 자신의 저서 『All Systems Go(2010)』에서 시스템 전반에 걸친 개혁을 해야만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앞에서 제시한 핀란드의 ‘학습과 역량 2020’ 도표가 담고 있는 내용처럼 국가 교육비전, 사명, 정책, 그리고 이런 교육 비전과 사명을 달성하고자 할 때 반드시 지켜 나갈 ‘핵심가치’를 다수 국민의 의견과 소망을 담아서 먼저 만들기를 바란다. 늦어도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아울러 논 · 서술형 수능 도입과 고교 격차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고, 외고, 자사고의 일반고화 추진과 함께) 절대평가 점수를 대학이 공공적 책무성 관점에서 과감히 수용하고, 그 뒤엔 대학이 ‘가르치기 경쟁’을 함으로써 한국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

 

앞으로 교육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때는 교육과정의 총론 틀 속에 다른 주요국들처럼 한국 교육이 추구할 핵심가치를 분명히 서술하고, 이것이 정책 결정에 판단의 자료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아울러 필자가 앞에서 제시한, 문제해결의 원칙 10가지도 우리 교육문제를 해결할 때 참고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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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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