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먼과 운동하는 뇌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포스트휴먼의 특징들이 예술, 과학, 문화 곳곳에 스며들어 우리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은 그것이 과학을 통해서든, 예술을 통해서든, 혹은 사회와 인간 의식 저변에 깔려있는 생각인 철학을 통해서든 인간과 기계, 자연과 문화와의 경계를 돌아보게 하고, 인간이 지구에, 자연에, 동물에,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 즉, 타자(Others)에 하고 있는 행동들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인간이라는 물질이기에 인간중심주의라는 맥락 안에 놓여있다.
교육은 오랫동안 인간중심주의에서 학습자와 교사를 이분화시켜 놓고, 학습자의 지적 성장에 대해서 강박적으로 논의해왔다. 본고의 저자는 포스트휴먼 담론과 최근 인지뇌과학과 교육신경과학에서 내놓고 있는 결과들이 교육자들이 갖고 있는 현장적용 강박증, 이론과 교육현장 분리의 관습 등을 벗어나 학습자와 배움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선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분야에서 반복적으로 쳇바퀴 돌고 있던 학습이론, 인간중심주의 기반 교육철학, 프로그램화된 현장 적용 등의 고리를 답습하지 못해 스승을 찾아다니던 저자에게 최근에 폭발적으로 출간되고 있는 읽을거리들은 그래서 매우 반갑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결과들은 ‘신체, 마음 그리고 뇌의 상호연결성(interconnectivity of the body, mind, and brain)’을 데이터를 토대로 알려준다. 배움은 뇌의 독립적 영역이 관할하여 단순하게 정보를 처리해 나가는 인지적 과정만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기존의 추측하던 ‘사고하는 뇌’의 관점을 벗어나 ‘운동하는 뇌’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뇌의 운동이 순차적으로 혹은 단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해석하던 것에서 벗어나 뇌의 운동은 다목적적이며 다재다능하며 매 순간 환경을 만나며 순식간에 방향을 바꾼다는 것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을 연구할 때, 학습자를 기존의 학습이론을 토대로 유형화하고 구분하는 것이 어쩌면 오히려 실제 배움의 과정을 보지 못하게 하고 밖을 맴돌게 했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뇌과학은 신생학문으로 스스로 자기교정 중에 있으며 학계 내부에서도 일관된 연구결과만을 내어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박사논문을 마무리할 무렵인 2013년 2월 컬럼비아 대학에서는 사범대 교수와 석박사 학생들이 최근 뇌과학 연구결과를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일주일 동안 오픈 강좌를 열었다. 뇌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결과들을 소개하며 뇌과학은 앞으로 성장할 것이지만 아직은 초기이며, 적용에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여러 차례 당부했었다. 뇌과학 연구결과를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시기상조일 수 있다는 뇌과학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의를 가진 교육자들은 뇌친화적 교수(brain-compatiable teaching) 혹은 뇌기반 학습(brain-based learning)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하면 수업 중에 뇌의 운동을 활발하게 일어나게 하고 작업기억을 활성화시킬까?, 시냅스를 보존시키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가지치기를 감소기키기 위해 교실 환경을 어떻게 바꾸어 볼까? 등.
뇌기반 교육은 뇌가 가장 효과적으로 학습하는 방식을 알아내기 위해 뇌과학, 인지과학, 교육학 등 여러 학문의 연구가 결합되어(Jensen, 1998), 뇌의 작동원리를 이해하여 그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Caine & Caine, 2017). 즉, 뇌기반 교육은 학습자의 뇌에 관심을 갖고, 페다고지, 즉, 교사의 현장에서의 전문적이고 의도적이며 진지한 교수실천의 변화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에 향해 있다.
교육자로서 우리의 머릿속에 내재하고 있는 하나의 강박은 학습자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그를 바탕으로 학습자들이 어떻게 세계와 관계하고 있는가, 즉 인간중심주의의 관점에서 학습자가 어떻게 학습하는지를 좀 더 쉽게 알고 싶어 한다. 이는 당연하며 유아교육을 포함한 모든 교육 분야에서 이 강박과 노력은 언제나 다른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포스트휴먼 사조든, 뇌과학적 지식이든, 이를 재빠르게 현장 혹은 연구로 연결하려는 시도를 우리들이 갖고 있는 강박이자 습관이자 에너지로 보지만, 이를 교육 분야에서 수용하는 과정에서 접점과 이질적인 부분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뇌과학에서 보여주고 있는 최근 연구결과와 포스트휴머니즘 사조는 유사한 부분이 많다. 첫째, 인간존재의 조건에 궁금증을 갖고 있다는 점, 둘째, 세계와 관계 맺는 인간의 모습을 인지 능력에 초점을 두고 기술하지 않는다는 점, 셋째, 운동성과 내부과정에 관심을 가진다는 점 등이다. 앞의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아이들이 놀면서 스스로 배워가는 현상을 인간 주체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넘어 내부과정, 운동성, 행위주체성, 연결성, 네트워크, 얽힘으로 풀어나간다. 즉,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어떤 유형의 학습자가 어떤 유형으로 배우는가를 넘어서 교사가 아이들과 만나 실제로 생활하는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얽힘과 네트워크, 그 운동성과 생산성을 긍정하며, 그 창조성을 인간을 성장시키는 배움으로 보게 이끈다.
인간의 의식은 기억, 인식, 지각, 지능, 자기이해, 존재감과 감정 등과 같은 속성들을 모두 지칭한다. 최근 뇌과학 연구결과는 이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인간의 뇌이며, 환경에 대한 즉각적 반응이 뇌활동에서 기인한다는 해석을 넘어서게 해준다. 지능은 어디에 ‘있다’라고 과연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Pepperell, 2017, p.39). 움직이는 생명체 가운데 가장 복잡한 신경계를 가진 인간은 중추신경계를 중심으로 몸 전체가 세계를 지각하도록 하는 신경다발을 보유하고 있다(임부연, 2020). 따라서 아이들이 놀면서 세계와 마주하는 경험은 두뇌에만 저장되거나, 자극에 대한 단순한 반응이 아니며, 그 운동성을 우리는 훨씬 더 폭넓게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다른 어떤 물질이나 환경적 자극보다 뇌라는 기관이 최상위성을 가진다는 특권성을 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뇌를 다르게 해석해 볼 것을 제안한다.
더 깊은 철학적 문제와 뇌과학적 진보가 서로 마주하여 평행선에 서서 교육과 배움에 대해 고민할 때 우리는 배움을 뇌의 특정기관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며, 자극(환경)-반응(뇌운동)으로 이분화시키는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으며, 교사와 학습자로 나누어 학습자의 지적 성장만을 배움으로 보는 가벼운 시선을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교육은 그것이 지식이든, 사회성이든, 자기회복이든, 타자를 만나는(encountering with others) 가장 주체적인 행위이며, 그것이 바로 인간성(humanity)의 표현이다.
따라서 미래교육담론에는 포스트휴먼 철학과 뇌과학을 빌어 기계가 아닌, 또한 뇌가 아닌 ‘인간’에 대한 논의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기계역할 증대로만 설명하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더 깊은 탐구가 필요하고, 포스트휴먼 사회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가치를 묻는 것이 필요하다(임부연, 2020). 이미 과학, 예술, 사회학과 철학에서는 인간행동을 포함한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을 예측가능한 것으로 여기며 유형을 나누고, 결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결정주의적인 우주관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는 사회 현상 그 자체에서 무엇이 발생하는지 그 과정을 경계 짓지 않고 보려는 시도들로 탈인간적이다.
포스트휴먼 철학과 뇌과학 연구가 보여주는 의미있는 이론과 결과들이 교육분야 학계에서 지나치게 빠른 적용(application)의 형태로만 논의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포스트휴먼과 뇌과학 역시 휴먼을 제외한 외부세계만 다루다가 그냥 지나가 버리는 담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교육분야는 비교적 거시적 관점에서 교육문제를 접근하는데, 특히 Joel Spring(2011)과 같이 교육정책과 담론의 힘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론이나 연구결과들이 손쉽게 이용되는 현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해왔다. 필요한 언어만을 선별적으로 채택하거나 이용하는(adopting or appropriating languages) 현상은 연구도구주의가 관습처럼 굳어져 갈 위험이 있는 응용학문 영역인 교육학 분야에서는 더 우려가 된다.
뇌과학의 연구결과와 포스트휴먼 개념을 통해 우리는 인간 자체를 다시 적극적으로 사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진경은 2019년 11월 16일, 「포스트휴먼이 던지는 철학적 물음들」이라는 주제로 한 교육 관련 학회의 강연에서 포스트휴먼 시대에 교육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됨을 강조하며 세 가지 고민을 당부하였다.
⑴ 어떤 원칙을 갖고 교육하는가?
⑵ 어떤 방식으로 교육하는가? -경제학적 측면에서
⑶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뇌과학과 포스트휴먼 연구는 과학적 결정론에 기반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감각기관과 운동하는 뇌를 포함하는 신체를 가진 ‘인간’으로 뇌는 신체와 연동되어 있으며 뇌는 신체라는 물질성(materiality)에서 사고하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이진경, 2019년 강의). 뇌를 가진 학습자는 ‘생각하는 기관’인 뇌를 통해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와 만나면서 기존 뉴런들을 다르게 연결하고, 가지치기하느라 바쁜 ‘운동하는 기관’인 뇌를 통해 세상에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키워나간다. 네트워크 뇌과학에서 설명하듯(Bertolero & Bassett, 2019) 운동하는 뇌는 특정부위에서 특정과제를 수행한다기보다는 분산되어 있는 네트워크에 의해 구현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배움이 일어나는 내적 과정을 최근 뇌과학의 연구결과에 기대어 살펴보면, 학습자가 규정된 지능 혹은 학습유형을 갖고 있고 독립적으로 환경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탐구해 나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신체와 연동된 뇌가 다채로운(혹은 지루한) 학습 환경을 만나면서 네트워크를 다르게 구현하며 활발하게(혹은 느슨하게) 운동한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2018년에 열린 세계인문학포럼(The 5th World Humanities Forum)에서는 변화하는 세계 속의 인간상(The human image in a changing world)이라는 주제로 각국의 인문학자들이 모여 새로운 인간상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하였고 기조강연의 주요 주제가 ‘포스트휴먼’ 담론이었다. Mariyam(2018)은 ‘나는 변화한다 고로 존재한다(I change therefore I am)’라는 주제로 정체성에 대해 언급하며, 지금까지 데카르트적 ‘나’를 확실하고 고정된 것처럼 여겨온 것에 대해서 거리를 두었다. 포스트휴먼 사조는 지금까지 ‘사고하는 뇌’에 우위를 두었던 것에서 ‘운동하는 뇌’로,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으며, 침투가능하며, 따라서 변화가 가능한 잠재성이 있는’ ‘유연한(vulnerable) 뇌’로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
인간행동은 단순하고 패턴화되는 부분이 있어 인공지능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가 가능할 수 있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노동대체이며(이진경, 2019년 강의), 배움의 과정을 설명해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포스트휴먼 담론과 최근의 뇌과학 연구결과는 교육자로 하여금 ‘인간이 세상을 배워나가는 현상’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르게 질문하고 사고해 볼 수 있도록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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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sen, E. (2012). 수업혁명1-학습부진 탈출편. (이찬승, 김성우 역, Teaching with poverty in mind). 서울: 한국뇌기반연구소 (원저 2011 출판)
Mariyam, T. (2018). I change therefore I am: The construction of female identity in the works of Tahmima Anam. The 5th World humanities forum 2018 자료집.
Pepperell, R. (2017). 포스트휴먼의 조건-뇌를 넘어선 의식. (이선주 역, The posthuman condition). 서울: 아카넷 (원저 2009 재출간)
Spring, J. (2011). The politics of American education. New York: Routledge. Vandenbroeck, M. (2017). Introduction: Constructions of truth in early childhood education: A history of the present abuse of neurosciences. (pp.1-19). Constructions of neuroscience in early childhood education. New York: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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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선(2020). 새로운 교육담론과 실험적 실천: 뇌과학, 놀이 그리고 페다고지(임부연, 정낙림, 조상식, 정광순, 곽영순, 최승현, 류미향, 전가일, 이진희, 이연선 공저, 미래학교를 위한 놀이와 교육 Ⅰ-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BK21플러스 어린이 교육문화 생태계 시리즈1, pp.335-366). 경기도: 교육과학사.
임부연(2020). 이미지와 어린이 놀이의 생태성: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에 기반한 놀이중심 미래학교에 대한 소고(임부연, 정낙림, 조상식, 정광순, 곽영순, 최승현, 류미향, 전가일, 이진희, 이연선 공저, 미래학교를 위한 놀이와 교육 Ⅰ-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BK21플러스 어린이 교육문화 생태계 시리즈1, pp.11-58). 경기도: 교육과학사.
이진경(2019). 포스트휴먼과 인간학: 포스트휴먼이 던지는 철학적 물음들. 2019 한국교육인류학회 추계학술대회 강의 자료 및 내용. 2019년 11월 26일.
컬럼비아 대학에서 국제교육을 전공했으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서 연구원으로도 근무했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이름과 뜻을 같이하며 교육을 바꾸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