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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다

#1616 김덕년, 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교육위원장 2026.10.14
금산간디학교 학생들과 함께한 하루를 통해 주도성이란 혼자 계획하고 책임지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과 장소, 생태계의 관계 속에서 함께 판단하고 조율하는 ‘관계적 자율성’이라고 강조합니다.                                                        

 

 

금산간디학교 학생들과 보낸 하루

 

주도성은 학생이 자기 삶의 방향을 묻고 선택하며 책임지는 힘이다. 그러나 요즘 학교에서 주도성은 계획표를 지키는 능력, 과제를 스스로 제출하는 능력, 정해진 기준 안에서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심하게는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택할 수 있는 범위와 허용되는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도 많다. ‘스스로 하라’는 말이 때로는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지 말고 혼자 해결하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한다.

 

얼마 전 금산간디학교 학생들이 온배움터를 찾았다. 이른 아침 학교를 출발한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릴 때, 손에는 예초기와 호미, 낫, 목장갑이 들려 있었다. 아직 잠에 취한 학생도 있었고, 버스 안에서 나눈 이야기를 이어가는 학생도 있었다. 누군가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해했고, 누군가는 익숙하지 않은 도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단순한 체험학습자로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늘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함께 지낼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다.

 

 

협의로 시작하다

 

온배움터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눈 뒤 학생들은 학교 곳곳을 둘러보고 큰 온돌마당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길은 풀로 덮여 있었고, 손길을 기다리는 밭도 보였다. 청소할 곳이라고 해서 양호한 것은 아니었다. 그늘진 곳에는 마른 잎이 모여 있었고,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는 흙과 작은 돌이 드러나 있었다. 학생들은 설명을 듣기 전에 만만치 않을 것을 감지했다. 어디가 미끄러운지, 어떤 곳이 사람이 다니는 길을 막고 있는지, 어떤 풀은 뽑아야 하지만 어떤 풀은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에 따라 하루 고생길이 달라질 것이다.

 

큰 온돌마당에서 ‘온배움터, 함께 배우며 살리는 곳’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는 말은 어른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표현일 수 있다. 그러니 중학생들에게는 생소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는 말은 사람에게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장소의 상태와 계절의 흐름, 도구의 쓰임과 풀이 자라는 방식에서도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 학생들은 왜 이곳에 왔을까.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누군가 이미 정해 둔 답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안 서로의 판단이 달라지고 그 판단이 다시 장소를 바꾸는 과정을 경험해야 한다는 뜻일까. 이 질문은 학생들이 흙과 풀과 도구를 마주한 자리에서 훨씬 구체적인 의미를 얻었다.

 

낮 시간에는 농사일, 청소, 풀베기, 풀 뽑기를 했다. 바로 금산간디 학생들의 주도성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곧바로 흩어지지도, 어른의 지시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고른 것도 아니었다. 먼저 모여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어떤 일은 안전을 위해 경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는지, 어떤 일은 두세 명이 함께해야 하는지를 의논했다. 농기구를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학생과 처음 손에 잡아 보는 학생이 있었고, 허리를 오래 굽히기 어려운 학생도 있었다. 누군가는 무거운 도구를 들 수 있었지만 세밀하게 풀을 가려내는 일에는 서툴렀고, 누군가는 속도는 느렸지만 주변을 꼼꼼하게 살폈다. 역할을 나누는 일은 능력을 한 줄로 세우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힘이 어디에서 필요할지를 찾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의견이 한 번에 모이지 않았다. 청소부터 끝내자는 학생과 밭의 풀을 먼저 뽑아야 한다는 학생이 있었고, 넓은 구역을 맡아 빨리 끝내자는 의견과 작은 구역을 정해 꼼꼼하게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예초기를 사용하는 일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도구를 다루는 일에는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말한 뒤 다른 친구가 말하는 동안 조급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이 맡은 일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 보인다며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긋남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말을 들으며 공동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학생들은 무엇을 먼저 할지, 누가 어느 정도까지 맡을지, 중간에 다시 역할을 바꿀 수 있는지를 조금씩 합의했다.

 

주도성은 자기 의견을 크게 말하는 학생의 몫으로 독점되지 않았다. 말수가 적은 학생도 다른 친구들이 지나치기 쉬운 젖은 바닥이나 돌멩이, 사람의 이동 경로를 가리키며 자신의 판단을 보탰다. 빨리 하자고 말하던 학생이 그 지적을 듣고 작업 구역을 좁히기도 했고, 힘든 일을 피하려던 학생이 한 구역을 친구와 나누어 맡기도 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지금 이 장소에 무엇이 필요한가’, ‘다른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만나면서 방향을 바꾸었다. 선택은 혼자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선택의 조건을 함께 살피는 일이 되었다.

 

교사들은 무엇을 했을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결정을 대신하거나 작업 방법을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어느 구역을 맡을지 의논할 때에는 곁에서 전체 상황을 살피되 먼저 결론을 말하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이 일을 한 사람이 맡으면 어떤 어려움이 생길까?”, “도구를 바꾸면 더 안전하고 수월해질까?”와 같은 질문을 되돌려 주었다. 질문은 학생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말이 아니었다.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지 보게 하고,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사람과 장소를 넓혀 주는 도움의 방식이었다.

 

 

더디 가더라도 함께 가야

 

협의가 끝나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계획과 실제 사이의 차이가 드러났다. 풀은 생각보다 질겼고, 한 번에 뽑히지 않았다. 도구를 잡는 자세가 익숙하지 않아 금세 팔이 아픈 학생도 있었고, 작업 속도가 빠른 학생은 벌써 다음 구역으로 가고 싶어 했다. 한쪽에서는 예초기의 움직임이 생각처럼 되지 않아 작업이 더뎠고, 다른 쪽에서는 풀을 모아 두었지만 어디에 둘지 정하지 않아 다시 옮겨야 했다. 학생들은 그때마다 처음 세운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이 구역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하고, “여기까지 하고 다음 일로 넘어갈까, 아니면 사람을 더 보탤까”를 다시 물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주도성의 일부가 되었다. 혼자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추는 대신, 무엇이 어려운지 설명하고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아들이는 것이 공동의 일을 계속하게 했다.

 

물론 모든 조정이 매끄러웠던 건 아니다. 누군가는 친구가 자기 몫을 다하지 않는다고 느꼈고, 누군가는 자신이 맡은 일이 계속 바뀌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열심히 했는데도 눈에 띄는 결과가 적어 속상해하는 학생도 있었다. 땀이 나고 손에 흙이 묻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처음의 의욕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때 교사는 “조금만 더 참아 보자”고 독려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힘든지, 지금 역할이 적절한지, 쉬는 시간을 어떻게 정할지 함께 살폈다. 어떤 학생은 잠시 물을 마신 뒤 다른 역할로 바꾸었고, 어떤 학생은 혼자 하던 일을 친구와 나누었다. 책임을 끝까지 진다는 것은 정해진 역할을 무조건 견디는 일이 아니라, 공동의 목적을 놓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상태와 다른 사람의 필요를 함께 고려하는 일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

 

금산간디학교 학생들과 함께한 하루는 교육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었다. 그들이 하루 동안 온배움터에서 했던 일은 효율성 측면에서는 어떻게 평가받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교육적 측면에서는 매우 좋은 사례였다.

 

도구를 잘 다루는 학생은 사용법을 보여 주었고, 장소를 잘 살피는 학생은 어디를 남겨 두어야 하는지 설명했다. 힘이 센 학생이 모든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손이 빠른 사람과 꼼꼼한 사람이 서로의 방식을 조정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는 철학은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학생인지 뒤집는 구호가 아니다. 사람·장소·도구·생태계가 서로의 조건이 되는 자리에서, 누구도 혼자 완성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학생은 장소를 읽는 법을 배우고, 장소는 학생에게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며, 도구는 사람의 움직임과 협력 방식을 바꾼다. 생태교육은 자연을 교과서의 소재로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연결망 안에서 내가 한 선택이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어렵게 하는지 알아차리는 교육이다.

 

청소를 시작하기 전에 한자리에 모인 시간은 일을 미루는 시간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맞추는 시간이었고, 각자의 선택이 다른 사람과 장소에 미칠 영향을 살피는 시간이었다.

 

금산간디학교의 한 학생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가장 큰 장점으로 ‘질문’을 꼽았다. 실제로 하루 종일 학생들은 온배움터에 대해, 함께 사는 방식에 대해, 이곳에서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에 그치지 않았다. 이미 들은 설명을 자기 경험과 연결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다시 묻고, 다른 사람의 답을 들은 뒤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냈다. 질문은 정해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세계를 자기 눈으로 해석하고 다음 행동을 선택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멈추어 살피고, 혼자 판단하기 어려워 다른 사람에게 묻는다는 뜻에 가깝다. 학생들은 왜 이 풀은 뽑고 저 풀은 남겨 두는지, 청소한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힘든 일을 공평하게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질문에 대한 답도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계절과 장소, 도구의 상태와 함께 일하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질문은 정답을 얻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상황을 더 정확하게 보고 책임 있게 움직이기 위한 방법이 되었다.

 

 

생태교육과 주도성

 

‘주도적으로 하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 주도성은 혼자 계획하고 혼자 실행하며 혼자 결과를 책임지는 능력이 아니다. 금산간디학교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말했지만 고집하지 않았고, 맡은 일을 책임졌지만 혼자 떠안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필요하면 방법을 바꾸고, 공동의 일을 위해 자기 역할을 조정했다. 때로는 속도를 늦추고, 때로는 도움을 청하고, 때로는 처음 선택한 일을 내려놓는 것도 주도적인 행동이다. 주도성은 고립된 자기관리 능력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고 조율하는 힘이다.

 

그곳에서는 각자가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 곧 어울림이 함께 나타난다. 농삿일과 청소, 풀베기와 풀 뽑기는 서로 다른 일이지만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다거나 더 사소하다고 말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역할 속에서 일상은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학생을 같은 기준에 맞춰 줄 세우는 방식과 다르다. 각자의 힘과 관심,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일을 완성할 수 있도록 관계를 조직하는 방식이다. 다만 어울림은 모두가 같은 마음이 되는 상태가 아니다. 불편함과 충돌이 남아 있더라도, 그 차이를 없애지 않고 조정할 방법을 함께 찾는 상태에 가깝다.

 

생태교육이 말하는 주도성은 바로 이런 관계 속에서 자란다. 학생에게 무조건 혼자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판단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고 그 판단의 결과를 다시 성찰하도록 돕는 일이다. 선택권은 혼자 원하는 것을 고르는 권리가 아니라, 사람과 장소와 생태계의 연결을 고려하면서 가능한 길을 찾는 권리다. 책임 역시 모든 결과를 개인이 감당하는 벌이 아니라, 내가 한 선택이 공동의 삶에 남긴 흔적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피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도성은 자기통제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관계적 자율성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만이 아니라, 내 선택이 다른 사람과 장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고 필요하면 선택을 조정하는 힘이다. 금산간디학교 학생들이 온배움터에서 보여 준 협의와 역할 나눔, 질문과 실행, 도움 요청과 계획 수정은 이 관계적 자율성이 실제 생활 속에서 작동하는 모습이었다. 학교가 이러한 변화를 배움으로 읽어 낼 때 학생은 혼자 살아남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함께 판단하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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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교육위원장 김덕년

구리 인창고 교장을 마치고, 현재 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G-SDGs) 교육위원장, 온배움터(구 녹색대) 생태교육연구소 소장, ‘김덕년의 행복한 학교이야기’ DJ 등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꿈꾸고 싶은 교육낭만주의자로, 교육문제를 아이들의 시각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에서 국어를 공부하고, 온배움터(옛 녹색대) 생태교육과에서 생명이 중심이 되는 교육생태계를 고민했습니다. 저서로는,  <주도성과 진로교육>(교육과실천, 2025)[신간], <주도성>(교육과실천, 2023), <아름다운 숲을 닮은 배움공동체>(케렌시아, 2022), <교사교육과정>(교육과실천, 2022), <포노사피엔스를 위한 진로교육>(교육과실천, 2021), <과정중심평가>(교육과실천, 2018),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에듀니티, 2017) 등이 있습니다. 연구로는, <고교 교육 환경 변화 전망과 과제:학생들의 시선으로>(한국교육개발원, 2018), <학생부종합전형의 내실화와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 연계방안>(한국외대,2018), <학교생활기록부 기반 면접 및 구술고사 연구>(서울대, 2017) 등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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