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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논설] 국가교육위원회는 의견 수렴한다며 이견을 배제해

#1600 편집실, <교육 제4의 길> 편집진 2026.09.17
국교위는 ‘대입제도를 국민과 함께 만든다’며 의견 수렴 행사를 치렀지만, 의제나 논의 여건을 제한함으로써, 실지로는 귀를 닫았다고 비판한다. ‘서·논술형 평가 도입’과 같이 지엽말단의 대안을 들고 나서기 전에 교육의 근본에 대해 숙의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한다.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대입제도 관련 의견 수렴’ 절차를 매듭지었다. 지난 8월 13일 국교위 회의에 보고된 문서에 따르면, 의견 수렴은 세 경로로 이루어지도록 계획했다. ‘현장토론회’, ‘국민참여위원회 숙의’, ‘대국민 온라인 의견수렴’이 그것들이다. 모두 8월 안에 매듭되도록 계획했고 그대로 마쳤다. 어떤 의견들이 모였는지 아직 알려지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수렴 결과는 내년 3월 내놓겠다는 ‘2028~2037 국가교육발전계획’에 반영할 예정이라 했다.

 

국민 의견을 모으는 이유에 대해서, 국교위는 대입제도가 “교육 현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사회적 관심”도 쏠리는 사안이기 때문에, “전문가 논의에 더해 교육 현장과 국민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실제 의견 수렴은 그다지 개방적이지 않았다. 국교위는 ‘의제’를 사전에 설정했다. “미래 사회 핵심역량을 갖출 수 있는 교육을 위해 대학입학제도 특별위원회에서 주요 의제[를] 심층 검토”해 결정했고, 그렇게 정해진 의제에 대해서만 “학생, 학부모, 교원 등[이] 논의하[는]” 구도로 행사를 꾸렸다.

 

국교위는 “국민과 함께 그리는 미래 대입제도”라는 기치를 걸고 의견 수렴에 나섰다. 다양한 생각을 모두 포용할 듯 외쳤으나 구호에 그쳤다. 본의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일련의 행사에서 국교위는 비판에 귀를 열기보다는 이견의 볼륨을 누르려는 듯 비쳤다. 의제를 구체화해 좁혔고, 국민은 옹색한 대안에 대해 찬반을 표시하는 정도로만 의견을 낼 수 있었다. 넓고 깊게 논의할 여지를 애초에 두지 않았다. 결국 여러 시각으로 검토하기보다 새로운 생각이 끼어들지 못하게 입막음하는 결과를 낳았다.

 

 

의견 수렴 의제는 구속 ‘프레임’이 돼

 

국교위는 나름의 프레임으로 대입제도 논의를 구속했다. 사전에 결정해 놓은 의제에서 그 프레임의 정체를 볼 수 있다. 그것은 “① 미래 사회를 대비한 대입제도 개편 방향”과 “② 내신 서·논술형 평가 확대 및 수능 서·논술형 평가 도입”, 두 개였다. 국교위가 만든 ‘대입제도 공론화 TF’가 결정한 듯하다. 계획 문서에 따르면, 이 조직(TF)이 “대입제도 특별위원회[가 다룬] 주요 쟁점 중 공론화가 필요한 의제를 논의하고 숙의 방식[을] 기획”하는 일을 맡았다. 의견 수렴은 이 두 개의 의제에 대한 것으로 제한했다.

 

의제가 굳어진 만큼, 국교위의 의제 자체를 문제 삼거나 더 근원적이고 심각한 의제를 올려놓고 논의할 통로는 원천적으로 막혔다. 의제를 설정하면서, 국교위는 “미래사회를 대비[해]” 대입제도가 개편되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흔히 듣는 말이어서 그러려니 넘어가게 될지 모르지만, 국사(國事)가 달린 논급이라면 엄중히 짚어야 할 속된 상식이다. 근대 교육 사가(史家)들은 교육을 사회 문제 해결에 종속시키는 생각이 학교 교육을 망쳐왔다고 입을 모은다. ‘서·논술형 평가 도입’이란 의제 역시, 뒤에 더 얘기하겠지만, 평가를 수업에 우선시하는 반(反)교육적 발상이다. 요컨대 국교위의 의제는 자의적이었다. 설정에 앞서 풀어야 했었던 질문들을 뭉갰다. 근원적으로 다시 출발해야 마땅하다.

 

 

학교 교육의 진면목은 사회적 쓸모에 있지 않아

 

교육은 사람을 이성적이고 도덕적이며 건강하게 이끈다고 믿어진다. 구성원에게 그런 교육 기회를 넓힐수록 사회는 더 발전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대체로 그런 개연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런 역사 표면이 교육을 사회 발전 수단으로 삼으려는 정책을 타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학교에서의 수업이나 활동을 특정하게 조작하면 사회가 새로워질 수 있다는 식의 몽상을 사실로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 교육이 사회를 개량하는 효과는, 학교를 수단 삼아 마구 들이쑤신 ‘성과’가 아니라, 본연대로 지켜주었을 때 얻어지는 뜻밖의 선물일 수 있다.

 

교육의 역사는, ‘AI 시대’를 굳이 구획하며 그에 맞춰 교과를 새롭게 조직하고 또 이전과 다른 수업으로 ‘인간 고유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외치는 식의, ‘미래학적’ 주장을 옹호하지 않는다. 잘 밝혀져 있듯이, 교과들은 근대 교육제도가 형성되면서 “아는 게 힘”이란 믿음이나, ‘과학’이 대중의 몽매를 깨우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배경으로 학교에 들어섰다. 교육이 국력(군사력)의 바탕이라는 신화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 관계의 인과(因果) 또는 목표-수단 연결에 대한 확증이 이루어졌던 적은 없다. 교과는 말하자면 누적적이고 집합적인 인류 지성이 빚은 것이다. 이런 전통을 잇는다면, 교육은 예컨대 ‘인간다운 삶에 입문하는 과업’이라 이를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의 굵직한 전통을 국교위는 묵살했다.

 

 

시험으로 수업을 좌우하려 드는 건 개선이 아니라 왜곡

 

“서·논술형 평가 확대 및 도입”을 공론 의제로 채택한 논리도 무리이긴 마찬가지다. “평가로 수업을 바꾸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시험 문항 형식을 코뚜레 삼아 수업을 어디론가 끌고 가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앞뒤를 뒤집은 발상이다. 평가나 그 도구인 시험은 수업의 용도대로 딸려 가야 하는 방편(方便)이어야 한다. 평가(시험, 또는 점수)가 그 자체로 규범을 내포한 교육상의 지향일 수는 없다.

 

국교위 의제는, 말하자면, ‘학생이 서·논술형 시험에서 점수를 높이도록 수업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셈인데, 이런 도발이 정당화될 수 있는 길은 없다. 평가는 본디 수업에 ‘피드백’을 낳도록 생겨난 것이다. 물론 그것이(특히 ‘총괄평가’의 경우에) 평정(評定)의 절차가 되고 성패의 잣대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제도상의 소용이나 기능에 불과하다. 교육에 내재한 질(質)의 척도로서의 위상을 꿰찰 수 있는 게 아니다. 제도와 교육을 혼동해선 안 된다. 평가(시험)의 제도적 기능으로 교육을 좌우하려 든다면 그것은 개선이 아니라 왜곡이다. 이와 같은 반박의 여지도 국교위는 막았다.

 

 

국교위는 의제를 놓고 숙의하는 데서도 폐쇄적

 

국교위는, 의식했건 못했건, 의제 선정의 이면에 도사린 ‘내부’ 교육관을 더 점검할 까닭 없이 보편적이라 믿어 넘겼다. ‘교육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며, ‘수업은 그 결과를 총괄하는 시험으로 조율되어야 한다’는 데 토를 달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상식’을 토대로, 국민에게 더 여쭈어 해결해야 할 숙제는 두 개로 집약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미래 사회’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입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개편해야 할지, 그리고 ‘내신’과 수능에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해도 괜찮을지 묻기로 한 것이다.

 

의제 결정에 대한 왈가왈부를 덮어두고, 실제 의견 수렴 과정에서 두 의제를 어떻게 다뤘는지만 보더라도 국교위는 여전히 폐쇄적이었다. 토론과 숙의를 위해 국교위가 내놓은 ‘발제’는, 미래를 위해 ‘창의적 사고력’을 키워야 하고, 그 목표를 향해 서·논술형 평가로 수업을 이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논리에서는 ‘국민 의견 수렴’이 결국 서·논술형 평가 도입에 대한 여론을 헤아려보는 절차 정도로 충분하게 된다.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는 ‘교육’의 방향이 정해졌고, 그런 교육은 서·논술형 평가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남는 일은 국민이 허락할지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국교위가 말하는 ‘서두르지 않는 개편’은 사실 지나치게 성급해

 

의제 설정의 논리가 허술하다고 자각해선지, 아니면 서·논술형 평가 도입 논란이 거세질 걸 우려했는지 모르지만, 국교위 발제자는 이번의 시도가 “서두르지 않는 개편”이라고 강조했다. 아래와 같은 슬라이드를 화면에 띄우면서 굳이 그 말을 부연하기까지 했다.

 

개편의 방향

서두르지 않는 대입제도 개편의 길

➤ 충분한 준비를 기반으로 대입제도 개편을 추진

➤ 중학교-고등학교-대입의 순차적 적용을 통한 안정적 추진

➤ 수업-내신평가-수능의 일체화를 통한 교육의 정합성 확보

➤ 교원의 전문성과 AI를 바탕으로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 제고

 

국교위는 지금 2028년부터 2037년까지 시행될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야말로 서두르지 않는 계획이 필요한 계기이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다고 해명하는 위 자료는 실상 국교위 계획이 매우 성급하다는 사실을 내보이고 있다. 자료에 비추어 보건대, 서두르지 않는다는 말은, 서·논술형 평가를 바로 도입하려는 게 아니라, 대입에서 거리가 제법 있는 중학교에서부터 적용해 다듬으면서 서서히 고등학교 내신평가와 대입 수능으로 전이 확대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본다면, 과연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듯 느리고 신중한 계획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본연을 지켜내며 ‘백년대계’의 대안을 모색하려는 충정에서 보면, 국교위 계획은 지나치게 성급한 것이다. 다시 일러 말하면, 서·논술형 도입과 AI 활용 같은 방안을 긴 시간에 걸쳐 시행하므로 서두르지 않는 것이라 내세우고 있지만, 시행하려는 대안 자체가 성급히 만들어져 미숙한 것이라면, ‘서두르지 않는다’는 호소에는 의미가 없다. 잘못 들어선 길을 아무리 신중하게 걸어간들 ‘본연의 교육’이란 목적지에 가닿게 될 리 없다.

 

교육개혁의 문제를 국민 숙의에 부친다면서, 세부 대안에 대해 찬반 의사를 타진하는 일로 그 과정을 꾸며선 성급한 것이기 마련이다. 그런 절차는 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하면 욕먹기 십상인 대안을 여론 조사와 진배없는 숙의 과정으로 우회하여 관철하려는 꼼수에 불과하게 된다. 진정으로 서두르지 않고 바른 개혁을 도모하려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지엽적인’ 논쟁에서 의제를 골라선 안 된다. 그런 논쟁만 다수결이란 계책으로 넘어선다 하더라도, 더 근원적인 질문이나 이견이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선, 개편이 늘 잠정적인 봉합에 그치게 된다. 국민 숙의로 서·논술형 도입의 재가를 얻어낸다고 치자. 그러나, 이를테면, 교육부가 대입제도를 전국 획일로 규제하는 현행 체제를 무너뜨려야 옳다면, 그 재가가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

 

 

국민 숙의는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해야

 

개혁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금언은, 결정된 대안을 천천히 시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다는, 개혁의 기본 방향을 숙의하는 데 빈틈없고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책을 차분히 집행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행의 신중은 방향이 바를 경우에만 의의를 지닌다. 교육개혁 이야기에서는 흔히 핀란드 사례를 들먹인다. 핀란드 경우가 교훈이 되는 포인트는 다면적이겠지만, 그 요체는 근원적인 사안을 ‘끝장’ 숙의에 부쳤고, 결국 범국민적인 합의에 이르렀다는 점에 있다고 보겠다. 구체적으로, 학생을 뛰어나게 보다 처지지 않게 받치는(‘선별 체제’가 아닌) ‘종합학교 체제’에 합의했고, 그런 ‘이질성’의 학교 체제에서 교육의 질을 확보하려면 전국 획일 체제가 아니라 교원 자율 체제가 마땅하리라는 혜안에 이른 것이다.

 

국교위가 2주 정도 들여 해치운 국민 의견 수렴 행태를 되돌아보자. 서·논술형 평가 도입 여부에 대한 ‘다수결’에 필요한 통계치는 곧 얻게 될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이 서·논술형 평가 도입에 대해 “취지는 좋다”고들 한다. 큰 사고 터지지 않게 점진적으로 시행한다면, 그 도입을 기조로 하는 대입 개편은 성공이라 평가될지 모른다. 그러나 ‘좋다’고 여겨지는 그 ‘취지’는 어떤 것인가? 미래 세대에게 창조적 사고력을 장착시키는 것인가? ‘AI 교육’에 유효하다는 것인가? 사고력 함양이나 AI 시대를 위한 검증된 교육 처방이 있기는 한가?

 

학교 교육은 어쩌면 모든 교과를 각각의 본질에 충실하게 가르칠 때 비로소 정합성을 띠게 되고, 사고력이든 AI 대처 능력이든 자연스럽게 배양해 내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국교위는 “수업-내신평가-수능의 일체화”라는 희한한 정합성의 개념을 들먹이며 서·논술형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때 ‘정합성’이 과연 교육의 정합성에 합당할지 의문이다. 수능 시험 과목에만 치중하고 출제 경향만 따라가는 오늘날의 수업이나 학습에선 이미 교육적 정합이 깨져 있지 않은가. 이 상태에서 서·논술형의 평가로 방향을 틀겠다는 국교위가 추구하는 ‘정합’이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해 볼 길이 없다. 이런 의혹을 두고 보더라도, 국교위는 서·논술형 평가 도입부터 타진하려 들기 전에, 교육 정합성에 대해 근원적으로 숙의할 장을 열어야 했다. 아무리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야말로 서두르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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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제4의 길> 편집진 편집실

<교육 제4의 길> 편집실에서는 논급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안에 대하여 적절한 형식으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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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1. 미래학전공자 수정 삭제

    안녕하세요, 평소에 글 잘 살펴보고 있습니다. 미래학 전공자로서 AI 시대에 맞춰 새롭게 교과를 조직하고 이전과 다른 수업으로 인간 고유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미래학적 접근이라고 작성해 주신 것에 대해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 댓글을 작성합니다. 미래학의 기본 원칙은 미래는 아무도 확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기에 미래학은 단순히 기술 변화에 맞춰 교육과정을 재편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미래학은 미래 사회에 맞춰 인간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를 펼쳐나갈 수 있도록 자발성을 키우고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데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해당 내용에 대해 다시 살펴봐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수정 삭제

      교바사 칼럼에 대한 관심과 함께 좋은 의견 주신 데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저희 편집실 역시 주신 의견에 대해 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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