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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이찬승의 학습과학 특강(39) – “배운 것이 기억으로 자리 잡기까지: 기억 응고화의 비밀”

#1589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26.09.02
배운 내용은 이해한 순간 곧바로 오래가는 기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응고화 과정과 수면 등을 거쳐 안정화됩니다. 따라서 간격 복습, 인출 연습, 기존 지식과의 연결을 수업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수학 시간이다. 교사는 인수분해 공식을 칠판에 크게 써놓고, 예제를 풀며 설명한다. 학생들은 집중해서 듣는다. 몇몇은 열심히 필기한다. 설명이 끝나자 학생들은 “알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일주일 뒤, 같은 문제를 보여주면 많은 학생들이 “어라? 이게 뭐였지?”라고 말한다. 배운 내용이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공식을 정확히 기억하거나 풀이를 이어가지 못한다.

 

교사는 답답해한다. 분명히 수업에서 설명했는데 왜 기억하지 못할까? 학생도 억울해한다. 분명히 이해했는데 왜 막상 문제를 보면 풀지 못할까?

 

이 차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 중 하나가 기억 응고화(memory consolidation)​다. 새로 형성된 기억이 시간이 지나며 보다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말한다.

 

물론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가 모두 기억 응고화에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기억하고 있는 내용을 떠올리거나 문제에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수업 중에 이해하는 것과 배운 내용을 오래 기억하며 활용하는 것은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해한 내용은 어떻게 오래 남는 기억이 되는가

 

교사와 학부모가 빠지기 쉬운 오해가 있다. 학생이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면, 나중에도 그 내용을 기억하고 활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생은 수업 중 작업기억(working memory)에서 새로운 정보를 잠시 유지하고 다룬다. 동시에 장기기억에 있는 기존 지식을 떠올려 새로운 내용과 연결한다. 인수분해를 배우면서 이전에 배운 곱셈의 전개를 떠올리는 것이 그 예다.

 

이처럼 새로운 내용을 이해하는 동안에도 기억은 형성되기 시작한다. 다만 수업 중에는 교사의 설명을 듣고 칠판의 풀이를 보며 내용을 따라갈 수 있지만, 며칠 뒤 혼자 문제를 풀 때는 필요한 지식과 풀이 방법을 스스로 떠올려야 한다. 따라서 설명을 들으며 이해했다는 것만으로, 배운 내용이 나중에도 혼자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안정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억 응고화는 새로 형성된 기억을 안정화하는 과정이다. 이를 작업기억에 들어 있는 정보가 시간이 지나 장기기억이라는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학습으로 생긴 변화가 유지되고, 기억을 뒷받침하는 연결이 재조직되는 과정에 가깝다.

 

또한 ‘응고’라는 말처럼 기억이 한 번 굳으면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기억은 이후의 경험과 학습에 따라 수정되거나 재구성될 수 있다.

 

 

기억 응고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기억 응고화는 크게 시냅스 수준과 뇌 시스템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다. 두 과정은 하나가 끝나야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 엄격한 순서라기보다, 서로 다른 수준과 시간 규모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시냅스 수준의 응고화

 

학습은 뉴런, 즉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 일부는 단백질 합성을 비롯한 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이 과정은 학습 이후 몇 분에서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설명을 듣는 순간의 이해만으로 학습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기억을 뒷받침하는 변화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뇌 시스템 수준의 응고화

 

새로운 사실이나 경험을 기억할 때는 초기부터 해마와 대뇌피질이 함께 관여한다. 해마는 경험의 여러 요소를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을 지탱하는 뇌 영역들 사이의 관계가 재조직된다.

 

이는 기억이 해마에만 임시로 저장되었다가 대뇌피질로 옮겨가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기억의 종류와 기존 지식 등에 따라 변화의 양상과 속도도 달라질 수 있다.

 

수면은 이러한 기억의 안정화와 재조직을 돕는 중요한 조건이다. 잠자는 동안 학습과 관련된 신경 활동이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이 관찰되며, 이는 기억 응고화를 뒷받침하는 기제로 연구되고 있다. 그렇다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응고화가 일어나지 않거나, 잠을 자기만 하면 배운 내용을 모두 기억하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왜 이것이 학교에서 중요한가

 

기억 응고화 연구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습을 뒷받침하는 과정이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에 인출 연습과 간격 학습 등에 관한 인지심리학 연구를 함께 살펴보면, 수업을 설계하는 데 유용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시험 전날의 벼락치기만으로는 부족하다.

 

벼락치기로 배운 내용도 장기기억에 남을 수 있다. “밤새 외운 것은 작업기억에만 머문다”는 설명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몰아서 공부하는 방식은 당장의 시험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배운 내용을 오래 유지하는 데는 간격을 둔 학습보다 불리할 수 있다. 밤을 새운다면 충분한 수면이 제공하는 도움도 받기 어렵다.

 

시험 직전에는 내용이 익숙하고 잘 떠오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시험 직후의 성적만으로 학습이 얼마나 오래 남았는지 판단해서는 안 된다.

 

둘째, 한 번에 몰아서 하기보다 간격을 두고 다시 다루자.

 

같은 내용을 여러 차례 학습하더라도, 한 번에 몰아서 하는 것과 간격을 두고 하는 것은 효과가 다를 수 있다. 오래 기억하는 데는 대체로 간격을 둔 학습이 유리하다.

 

이때 단순히 자료를 다시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먼저 배운 내용을 스스로 떠올려보는 것이 좋다. 기억에서 내용을 꺼내는 인출 연습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하게 할 뿐 아니라, 이후의 기억에도 도움을 준다. 인출 연습과 간격 학습은 다양한 학습 상황에서 효과가 확인된 전략이다.

 

다만 그 효과를 응고화할 시간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다. 앞서 배운 내용을 다시 떠올리는 과정, 학습 맥락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이 관련된다.

 

‘학습 당일, 다음날, 일주일 뒤’는 활용할 수 있는 복습 일정의 한 예다. 모든 학생과 내용에 통하는 고정된 최적 일정은 아니다. 학생이 얼마나 기억하는지, 얼마나 오래 기억해야 하는지를 살피며 간격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셋째, 단순 반복을 넘어 의미를 연결하자.

 

반복해서 읽거나 외우는 활동도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복에만 머무르기보다, 새로운 내용을 기존 지식과 연결하고 자신의 말로 설명하는 활동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정보의 의미를 생각하고 관련 지식과 연결하는 활동을 정교화라고 한다. 정교화 시연(elaborative rehearsal)은 이러한 연결을 통해 정보를 되새기는 방식이다.

 

인수분해를 예로 들어보자.

 

• “인수분해 공식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반복해서 외운다.” → 단순 반복
• “인수분해 공식이 왜 성립하는지, 이전에 배운 곱셈의 전개와 연결해 설명한다.” → 정교화

 

후자는 공식을 고립된 기호로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알고 있는 수학적 관계 속에서 이해하도록 돕는다. 다만 학생이 관련 지식이 부족하거나 잘못 연결할 수도 있으므로, 교사의 설명과 피드백이 함께 필요하다.

 

 

교실에서 실천하려면

 

이러한 연구가 주는 메시지는 학생의 뇌에서 응고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교사가 정확히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배운 내용을 이해하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떠올리며, 필요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학습 기회를 설계하라는 것이다.

 

첫째, 설명 직후의 이해를 학습의 완성으로 보지 말자.

 

명확한 설명은 중요하다. 그러나 학생의 “알겠습니다”만으로 배운 내용이 오래 남을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설명을 마친 뒤에는 학생이 자신의 말로 핵심을 설명하거나, 도움 없이 짧은 문제를 풀어보게 하자. 그리고 며칠 뒤에도 다시 확인하자. 설명을 따라갈 수 있는지와 나중에 스스로 해낼 수 있는지를 함께 살피는 것이다.

 

둘째, 수업을 지난 내용의 인출로 시작하자.

 

수업 시작의 짧은 시간을 지난 시간이나 지난주에 배운 내용을 떠올리는 데 활용하자.

 

“지난 시간에 배운 인수분해 공식을 적어보자.”
“이 공식이 성립하는 이유를 곱셈의 전개로 설명해 보자.”

 

먼저 자료를 보지 않고 답해보게 한 뒤, 교과서나 교사의 설명으로 확인하고 수정하게 한다. 학생이 어려워하면 작은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목적은 기억하지 못한 학생을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떠올리고 배울 기회를 주는 데 있다.

 

셋째, 수업 마지막에 그날 배운 것을 꺼내게 하자.

 

수업이 끝나기 전, 학생에게 배운 내용을 정리해 보게 하자.

 

“오늘 배운 핵심 내용을 책을 덮고 두 문장으로 설명해 보자.”
“오늘 배운 공식으로 이 문제를 풀고, 왜 그렇게 풀었는지 적어 보자.”

 

이 활동은 학생에게 인출 기회를 제공하고, 교사에게는 학생의 이해와 기억을 확인할 자료를 준다. 다만 수업 직후 잘 답했다고 해서 오래 기억한다고 단정하지 말고, 이후 수업에서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

 

넷째, 간격 복습을 의도적으로 설계하자.

 

한 주제를 한 번 다루고 끝내기보다, 이후 수업에서 다시 만날 기회를 마련하자. 월요일에 배운 것을 수요일에 떠올려보고, 다음 주 월요일에는 관련 문제를 다시 풀어본다. 몇 주 뒤에는 다른 단원과 연결되는 문제에 활용해 볼 수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매번 같은 설명을 처음부터 되풀이하는 일이 아니다. 학생이 먼저 기억에서 꺼내보게 하고, 기억이 불확실하거나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확인해 보완하는 것이다.

 

복습 간격과 문제의 난도는 학생의 반응에 따라 조절하자.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면 간격을 줄이거나 단서를 제공하고, 쉽게 해낸다면 간격을 늘리거나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다섯째, 정교화와 적용의 기회를 제공하자.

 

공식을 외우는 것과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양자택일로 만들 필요는 없다. 필요한 내용을 익히면서, 그 의미와 쓰임을 생각하게 하자.

 

“이 공식은 곱셈의 전개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식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이 문제에서 이 공식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이 설명을 어려워하면 교사가 먼저 연결의 예를 보여주고, 이어서 학생이 비슷한 내용을 설명하도록 도울 수 있다. 기억이 안정된다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능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문제에서 무엇이 같고 다른지 비교하고, 어떤 지식을 언제 사용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맺으며

 

배운 내용이 오래 남는 기억으로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 듣고 이해했다고 해서, 나중에도 기억하고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수업은 학생들이 그 시간에 “이해했다”고 느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며칠 뒤, 몇 주 뒤에도 배운 내용을 떠올리고 필요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수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간격을 두고 다시 떠올리고, 기존 지식과 연결해 설명하며, 다양한 문제에 적용하는 기회가 필요하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도 이러한 학습을 뒷받침한다.

 

기억 응고화는 이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지만, 좋은 수업의 모든 원리를 대신하는 설명은 아니다. 교사가 설계해야 할 것은 단지 기억이 안정될 시간이 아니라, 이해가 기억으로 이어지고, 기억한 지식이 활용으로 이어지는 학습 경험​이다.

 

수업의 성과는 설명이 끝나는 순간에 모두 드러나지 않는다. 배운 내용이 학생에게 남아 이후의 생각과 배움에 쓰일 때, 그 수업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참고 문헌

 

• Dunlosky, J., Rawson, K. A., Marsh, E. J., Nathan, M. J., & Willingham, D. T. (2013). “Improving students’ learning with effective learning techniques: Promising directions from cognitive and educational psychology.” Psychological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 14(1), 4-58.
• Ericsson, K. A., & Kintsch, W. (1995). “Long-term working memory.” Psychological Review, 102(2), 211-245.
• Squire, L. R., & Alvarez, P. (1995). “Retrograde amnesia and memory consolidation: A neurobiological perspective.” Current Opinion in Neurobiology, 5(2), 169-177.
• Xie, L., Kang, H., Xu, Q., et al. (2013). “Sleep drives metabolite clearance from the adult brain.” Science, 342(6156), 373-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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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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