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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발행인 칼럼_4]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1572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26.08.05
근대 학교가 국가·산업의 요구로 만들어졌고, 한국 교육도 학생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억눌러 왔다고 진단합니다. 교사가 학생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학교를 학생 편으로 되돌리는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라고 제안합니다.  

 

 

학교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학교가 학생을 가르치고 성장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처음부터 학생만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은 아니었다. 국가는 시민을 길러내기를 원했고, 산업사회는 규율 있는 노동력을 필요로 했으며, 대학은 학생을 선발해야 했다. 학교는 그 다양한 요구에 응답하며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학교는 학생을 위한 곳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학교는 여러 요구와 기대가 만나는 공적 기관이다. 그 속에서 학생은 과연 학교의 중심에 머물러 있었는가.

 

 

학교는 언제부터 학생을 위한 곳이 아니었는가

 

근대 학교는 처음부터 학생 개인을 위해 설계된 기관이 아니었다. 19세기 산업화 시대에 국가는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균일한 인력을 필요로 했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규율 잡힌 시민을 원했다. 학교는 그 요구에 응답하며 탄생했다. 모든 학생이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을 배우고, 같은 방식으로 평가받는 구조는 효율적인 인력 양성을 위한 설계였지, 각각의 아이가 잘 자라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었다.

 

교육철학자 거트 비에스타(Gert Biesta)는 학교 교육의 목적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자격 부여(qualification), 사회화(socialisation), 그리고 주체화(subjectification)가 그것이다. 자격 부여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게 하는 것이고, 사회화는 기존 사회 질서 안으로 학생을 편입시키는 것이다. 주체화는 학생이 독립적인 존재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비에스타는 현대 학교가 첫 번째와 두 번째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세 번째를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교육 역시 이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입시라는 단일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교육에서 학생은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된다. 무엇을 배울지, 어떤 속도로 배울지, 왜 배우는지를 학생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교육과정은 국가가 정하고, 진도는 교사가 이끌며, 목표는 대학이 결정한다. 학생은 그 흐름 안에서 열심히 따라가는 존재일 뿐이다.

 

 

시스템을 위한 학교, 아이를 잃은 교육

 

학교가 시스템을 위해 작동할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개별 아이의 이야기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은 보충이 필요한 존재로 분류되고, 진도를 따라오지 못하면 낙오자의 언어로 설명된다. 지적 호기심이 교과 범위를 벗어나면 수업의 방해 요소가 된다. 학교가 아이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학교에 맞추어야 한다.

 

발달심리학자 피터 그레이(Peter Gray)는 현대 학교 교육이 아이들의 자기주도적 학습 본능을 체계적으로 억압해 왔다고 주장했다. 인류 역사에서 아이들은 놀이와 탐색을 통해 스스로 배워왔다. 그런데 학교는 이 본능적 욕구를 교사가 통제하는 학습 활동으로 대체했다. 배움의 동기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환경이 오래될수록, 아이는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힘을 잃어간다.

 

이것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대체로 호기심이 많다. 질문도 잦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활기는 점점 사라진다. 중학교 교실은 침묵이 지배하고, 고등학교에서 질문은 거의 사라진다. 이 변화가 단순히 사춘기의 문제인가. 아니면 시스템이 아이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아 간 것인가.

 

 

학교는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

 

학교가 학생을 위한 곳이 되려면, 먼저 학생을 교육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은 이상론이 아니다. 학습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이 이 방향을 지지한다.

 

학생이 배움의 필요를 스스로 느낄 때 학습 동기가 높아지고, 자신의 속도로 이해를 구성할 때 장기기억이 더 잘 형성된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사실이다.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을 제창한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Deci & Ryan)은 인간의 내재적 동기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충족될 때 자라난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교실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빼앗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학생이 선택할 수 없고, 자신이 유능하다고 느낄 기회가 적으며, 교사와의 관계는 평가로 매개된다.

 

교사가 이 사실을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학급에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앉혀 놓고 각자의 속도와 필요에 반응하기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정해진 진도는 밀리고, 평가는 다가오고, 행정 업무는 쌓인다. 학부모는 옆 반과의 진도를 비교하고, 다음 학년 교사는 인계받은 학생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이런 조건 속에서 교사 개인에게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칫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학교가 학생을 위한 공간이 되는 것이 거대한 제도 개혁이 끝난 뒤에야 시작되는 일은 아니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교사의 행정 부담을 덜고, 평가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 — 이런 구조적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변화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교사 한 사람이 학생 한 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지금 시작할 수 있다. 왜 이것이 재미없는지, 무엇이 어려운지, 어떤 방식으로 배울 때 더 잘 이해되는지를 묻고 그 답에 반응하는 것 — 이것이 학교를 학생의 편으로 돌리는 가장 작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학교가 국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는 지금 이 순간 그 안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이 당연한 명제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한국 교육이 지금 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교실 적용 팁>

 

1. 학생에게 배움의 이유를 물어보자.
단원을 시작하기 전, 학생들에게 “이것을 왜 배운다고 생각해요?”라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수업의 성격이 달라진다. 교사가 이유를 설명하는 것과 학생 스스로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답이 틀려도 괜찮다. 이 질문을 받은 학생의 뇌는 이미 배움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다.

 

2. 선택의 여지를 조금이라도 만들자.
모든 수업에서 자율성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과제 주제를 두 가지 중에서 고르게 하거나, 발표 방식을 학생이 결정하게 하거나, 심화 탐구 주제를 스스로 정하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작은 선택이 쌓일 때 학생은 자신이 배움의 주체라는 감각을 조금씩 회복한다.

 

3. 유능감을 확인받을 기회를 의도적으로 설계하자.
학생이 “나는 이것을 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하려면, 성공 가능한 과제가 있어야 한다. 너무 쉬운 것도 아니고 너무 어려운 것도 아닌, 약간의 노력으로 해낼 수 있는 수준의 도전을 제공하는 것이 교사의 기술이다. 그 경험이 반복될 때 학생은 어려운 과제 앞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4. 학생의 이야기를 수업 안으로 들여오자.
학생의 경험, 관심사, 일상의 언어가 수업 내용과 연결되는 순간, 학교는 학생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 된다. 수학 문제의 주인공을 학생 이름으로 바꾸는 것, 사회 시간에 학생의 동네 이야기를 사례로 쓰는 것, 국어 시간에 학생이 좋아하는 장르의 텍스트를 함께 읽는 것 — 이런 작은 시도들이 학교를 낯선 곳에서 자기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바꾼다.

 

 

참고 문헌

 

• Biesta, G. J. J. (2010). Good education in an age of measurement: Ethics, politics, democracy. Paradigm Publishers.
• Deci, E. L., & Ryan, R. M. (2000). The “what” and “why” of goal pursuits: Human needs and the self-determination of behavior. Psychological Inquiry, 11(4), 227–268.
• Gray, P. (2013). Free to learn: Why unleashing the instinct to play will make our children happier, more self-reliant, and better students for life. Basic Books.
• Ryan, R. M., & Deci, E. L. (2017). Self-determination theory: Basic psychological needs in motivation, development, and wellness. Guilfor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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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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