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보호국’ 논쟁을 환영하는 이유
|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계기로 촉발된 ‘교권보호국’ 논쟁을 계기로, 단순한 조직 신설이 아니라 교사 개인이 아닌 시스템이 책임을 분담하는 실효적인 교권 보호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
최근 ‘교권보호국’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의 흥행이 도화선이 됐다. 흥미로운 점은 원작 웹툰과 제작 소식이 알려졌을 당시의 비판적 시선과 달리, 드라마 공개 이후에는 오히려 본질적이고 거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드라마는 가상의 설정이지만, 극 중 사건들은 상당 부분 실제 사례에 기반한다. 다소간의 각색을 감안하더라도 현실은 드라마보다 참혹했다. 수많은 비극 속에서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드라마 같은 통쾌한 해결은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힌 5화가 큰 울림을 준 이유 역시 현실에서는 결코 쉽게 허락되지 않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분노와 변화를 향한 열망이, 공개 이후에도 이 드라마를 계속 회자시키는 동력이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다. 그러나 우리가 왜 이 가상의 세계에 이토록 열광하는지 그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오랫동안 교육정책을 고민해 온 입장에서 지금의 논의는 무척 반갑다. 교권 문제는 오랜 기간 교육계 내부에서는 중요한 과제로 다뤄져 왔지만, 언론과 대중의 중심 의제로 부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교권 문제가 이토록 뜨거운 사회적 화두가 된 것은 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 이후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책의 창’은 쉽게 열리지 않으며, 어렵게 열린 창도 순식간에 닫히기 마련이다. 이처럼 거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시기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소중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2010년 이후 진보교육감 시대와 진보정부를 거치며 학생인권조례 제정, 체벌 금지, 학생 인권 존중 등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왔다. 이러한 성과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충분히 높이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다만 이제는 그 과정에서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그늘 역시 함께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일과 교사의 교육권, 그리고 다수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는 일은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다. 과연 현재의 제도와 학교 현장이 이 세 가지 가치를 균형 있게 담아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냉정하고 뼈아픈 성찰이 필요하다.
현실의 학교에는 심각한 일탈행동을 반복하는 학생도 존재하며, 그 곁에는 상식의 범위를 벗어난 일부 학부모도 있다. 물론 이는 절대다수의 학생과 학부모와는 무관한, 일반화할 수 없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들이다. 그러나 예외적 사례라고 해서 그 영향까지 적다고 볼 수는 없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러한 균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적지 않은 부담과 상처를 남기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그리고 그 대응이 과연 적절했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실을 방관한 결과는 참담하다. 교사들은 무기력감 속에서 병가와 휴직을 선택하거나 결국 학교를 떠난다. 반면 문제 행동을 반복하는 학생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대응이 쉽지 않다. 심각한 사안이 발생하더라도 전학이나 졸업으로 상황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공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교사 개인에게 과도한 희생과 책임이 일방적으로 전가되어 온 셈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러한 불편한 현실을 외면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의무교육과 학생 인권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치다. 그렇다고 학부모를 잠재적 악성 민원인으로 바라보자는 것도 아니다. 교사 역시 과실이 있다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다른 직종에는 심각한 위해 상황이나 업무상 위험에 대응할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는 반면, 학교 현장은 여전히 대응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간 군인”에 비유하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그 결과 교직 사회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참교사는 단명한다”는 씁쓸한 말까지 회자된다. 적극적으로 생활지도를 하기보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학교 현장에 확산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공교육의 모습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교사의 교육 의지가 무너지면 결국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학생들이다. 교사의 수업권이 흔들리면 학생들의 학습권 역시 함께 침해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체벌 부활과 같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변화된 시대에 걸맞은 미래지향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교권보호국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단순히 ‘교권보호국’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신설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학교폭력 업무나 교권 관련 업무를 교육청으로 이관했음에도 현장의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았던 경험은 이미 존재한다. 단순한 조직 확대나 인력 증원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우리가 드라마 「참교육」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 역시 조직의 명칭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사 개인이 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즉각 대응하고, 권한을 가진 전문가가 개입하며, 법적·행정적 장치가 작동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책임을 개인이 아닌 시스템이 분담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논의가 단순히 부서 신설 여부에 머무르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학생의 심각한 일탈행동, 보복성 아동학대 신고, 학교공동체를 마비시키는 악성 민원, 무분별한 고소·고발 등에 어떻게 실효적으로 대응할 것인지가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교육청이나 교육부에 서류상 부서를 하나 더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자칫 조직만 비대해지고 현장의 부담은 더욱 커질 위험도 있다.
교권보호국이 필요하다면 그 핵심 기능은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피해 교원에 대한 신속하고 실질적인 보호다. 둘째, 교사 개인이 아닌 조직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셋째,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법적 권한과 지원 수단을 확보하는 일이다. 교권보호국은 단순한 관료 조직이 아니라 이러한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제도적 플랫폼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동시에 역할의 분업화도 시급하다. 현재처럼 교사가 수업, 생활지도, 학부모 민원 대응까지 모두 떠안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유사한 비극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위기 학생의 행동 문제와 악성 민원에 대응할 전문 인력과 지원 체계를 별도로 구축해야 하며, 교사는 본연의 역할인 교육 활동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논의를 계기로 학교 현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어렵게 열린 정책의 창이 이번에도 허망하게 닫혀 버린다면, 학교 현장에는 공교육에 대한 냉소와 절망만 더욱 깊어질 것이다. 지금은 문제를 진단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우선적으로 바꾸어야 하는지, 어떤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일지도 모른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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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이며, 교육정책 관련 다수의 저서 및 논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