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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논설] 찰스 다윈과 현장 체험학습

#1543 편집실, <교육 제4의 길> 편집진 2026.06.17
현장 체험학습의 논란을 면책 범위 조율 정도로 매듭지은 정책 행태를 비판하며,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에 빗대어 체험학습의 본연을 되짚습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비글호 항해(The voyage of the Beagle)

 

“비글호 항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그것은 내 전 생애의 길을 결정했다.” 찰스 다윈이 자서전에 적은 말이다. 그 ‘생애의 길’은 ‘진화론 창시’라 바꾸어 말할 수 있을 테고, 그 요점은 『종의 기원』 저술에 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윈의 위업은 인류의 안목에 혁명을 가져왔다. 진화론을 바탕으로 우리는 사실상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비글호 항해는 ‘과학사에서 가장 획기적이었던 탐험’이라 일컬어진다.

 

그것은 4년 9개월 남짓 걸린 ‘위대한 항해’였다. 남미 해안을 돌며, 때때로 내륙으로도 들어가서 조사했고, 타히티, 뉴질랜드, 호주 등의 지역도 탐사했다. 갈라파고스 섬들에서 새와 거북 등을 관찰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영국 해군 프로젝트였던 비글호 탐험의 ‘박물학자’ 자리에 다윈이 아닌 다른 사람이 올랐었더라면 과학사(인류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종의 기원』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진화론도 누군가에 의해 결국 주창되기는 했겠지만, 그 역사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진화론과 그 바탕에서 이루어진 과학의 진전과 사상의 큰 전환은, 비글호 항해란 현장 체험학습의 기회가 다윈에게 돌아간 ‘사건’에서 비롯된 바 크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현장 체험학습

 

지난 한 달 남짓, 우리나라에서는 현장 체험학습을 놓고 갑론을박했다. 교육 얘기를 꺼리던 대통령이 모처럼 그 ‘위축’을 문제 삼으면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교사들은, 민원과 소송 등의 탓에, 직을 걸고 감행해야 하는데 위축이 안 되고 배기겠냐고 항변했고, 교육부는 안전사고에 대한 ‘면책’ 조건을 부랴부랴 조율하여 다급히 불을 껐다. 앞으로 현장 체험학습이 얼마나 활발해질지 지켜볼 일이지만, 다시 활기 띤다고 해서 오랫동안 잊혔던 본지(本旨)까지 되살아날지는 의문이다.

 

현장 체험학습을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으레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들먹이고 ‘추억’이란 결실을 떠올린다. 학교 밖 즐거운 경험과 훗날 되돌아볼 추억이란 게 결코 무의미할 리 없지만, 학교 교육의 본령을 두고 보면, 그런 의미는 곁딸려 얻게 되는 것일 뿐이다. 본디 체험학습은 지식 전수의 정수(精髓)가 되는 과정(課程)으로 싹텄다. 어떤 교사는, 그 활동이 제도상 교사 자율에 맡겨졌으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얘기했다고 들리고, 학생들은 지루한 수업에서 해방되어 일탈을 기도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게 보통이라지만, 이 지경에 이른 현실은 우리 교육이 본연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새삼 일깨운다.

 

학교 교육에는 현장 체험학습일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하게 들어있다. 수학(修學), 수련(修練), 견학, 봉사, 진로 체험 등 각색의 형용을 달고 이루어지는 활동이 다 그런 기회이다. 교과 수업의 한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실험 실습이나 답사, 심지어 학교를 ‘빼 먹고’ 할 수도 있는 ‘가족 동반 체험’도 마찬가지로 소중한 체험학습 기회이다. 이 많은 기회가 본질에서 벗어나 형식에 흐르고 있다. 정규 수업 진도에 붙박인 활동도 아니고, 성적이 걸린 ‘고부담’ 활동도 아니라서일 텐데, 면밀한 기획 없이 그저 쉬어 가는 행사 정도로 치러지는 게 일반적이다.

 

 

체험학습을 위해선 우선 안목을 갖춰야

 

진정한 체험은 현장에 가서 직접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피부로’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느낌에 나름의 뜻을 부여하며 내면으로 새길 수 있어야 한다. 체험은 저절로 스며들거나 우러나지 않는다. 자연 경관이든, 역사 유적이든, 예술품이든, 장인(匠人)의 작업 모습이든, 그 아름다움이나 가치는 육안을 들이대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드러나지 않는다. 안목을 지닌 이들에게만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모두 헤아릴 수 없이 복잡다단한 ‘현상’의 세계에 살지만, 그 현상들을 제대로 포착하지도 못하고 또 포착했대도 수긍 갈 만큼 설명해 내지도 못한다. 볼 눈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우리가 무지한 대로 고집을 부리며 살아가게 되는 이유이다.1

 

현장 체험학습이 ‘학습’이 되게 하려면 우선 ‘눈’을 틔워 주어야 한다.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맨눈으로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밖에 볼 수 없다. 지구가 동쪽으로 자전하며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진실을 볼 식견이 있어야, 일출 일몰의 자연현상에서 자전과 공전을 ‘체험학습’ 할 수 있다. 현장 체험학습은, 말하자면, 교과 수업(지식)으로 이룬 개안(開眼)을 스스로 검증하며 세계를 읽어내는 탐구 활동이어야 제대로이다.

 

안목을 갖추지 못한 경우라도 현장 체험학습은 여러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현장 체험이 ‘뜻밖의’ 흥미나 관심을 불러오고, 그 연장에서 생겨난 ‘내재적’ 동기가 훗날 위대한 삶을 일구는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으냐 반문할지 모르겠다. 절대 불가능한 일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런 예외적인 경우에도 흥미나 관심이 난데없는 것일 리는 없다. 당연히 그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공부나 삶에 관련되는 한 그것은, 의식에 잡히지 않았을지언정, 체험 당사자의 지적 바탕에서 돋게 마련이다.

 

 

‘위대한’ 현장 체험학습 – 비글호 항해

 

비글호에 오를 때 다윈은 대학을 막 졸업하는 22살 청년이었다.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가 수십 년 전에 쓴 중남미 여행기를 이미 탐독해서 탐험하려는 열의에 차 있었고, 미지의 ‘현장’을 읽을 식견도 갖추고 있었다. 비글호 항해가 “생애의 길을 결정할” 정도의 체험학습이 되도록 이바지할 수 있었던 안목이었다.

 

다윈은 젊었어도 당시 정상(頂上) 반열의 학자들과 학구적으로 교유했다. 저명한 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였던 헨슬로(John Stevens Henslow)는 대학에서 그에게 교수이자 멘토이며 친구였고,2 지질학의 창시자라고 일컬어지는 세지윅(Adam Sedgwick)과는 함께 웨일스 북부의 지질 조사도 했었다. 그리고 지질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라이엘(Charles Lyell)의 경우, 그의 책 ‘지질학 원리’가 항해가 시작될 즈음 막 출간되었었지만, 헨슬로 교수가 구해주어서 Ⅰ권을 지니고 배에 오를 수 있었고, 그 후속편도 항해 중 부쳐 받아 끼고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비글호 항해의 임무는 지질이나 화석, 동식물 그리고 해양의 수로나 생태 현상까지 다면적으로 조사하고 자료도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런 과제에 필요한 안목을 다윈은 승선 전에 충실히 갖추었던 셈이다.

 

다윈이 유람 삼아 신기한 얘깃거리나 모을 작정으로 비글호에 올랐다면, 어마어마한 지진이나 기이한 화석 그리고 동식물의 지리적 차이와 다양성 등을 눈으로 직접 보기는 했겠지만, 그 현상들에서 진화의 기미를 읽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연선택이라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진화 기제를 떠올릴 수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그가 항해 이전에 지식을 바르게(‘암기 위주나 주입식’이 아니라, 세계를 볼 수 있게) 익히지 못했더라면, 진화론은 결코 그의 창안일 수 없었다. 물론, 진화론은 수집된 자료들을 토대로 항해 후에 이루어진 여러 학자의 후속 연구를 통해 중요한 진전을 이룬 점이 있다. 이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 연구나 이론 다듬기마저도 다윈의 안목이 있었기에 모아들일 수 있었던 증거(자료)가 뒷받침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장 체험학습 논란에서 우리 교육의 근본 문제를 봐야

 

우리가 최근 논란한 체험학습 문제를 다윈의 위업에 비추어 이야기하는 것은 비약이라 여길지 모르겠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의 기회를 두고 법석였던 사태를 5년 가까운 시간을 들였던 국가적 탐험에 대조하는 것은, 더욱이 다윈이라는 ‘천재’의 업적과 일반 학생들의 학습을 나란히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데가 물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가물가물하고 모호해진 교육(지식)의 가치나 의미를 뚜렷하게 되살피기 위해서는, 그것이 지극(至極)했던 체험학습의 원형(原型)에 비추어 보는 게 응당 필요하다. 성인(聖人)의 행적에 비추어서 비로소 심성 함양(교육)의 바른길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윈의 비글호 항해와 같은 극단의 사례에 비추어서야 현장 체험학습(교육)의 본질을 확연히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현장 체험학습’을 포함해서, 교육에서 모든 ‘체험’의 요체는 그것을 감각적으로 겪어 본다는 데 있지 않다. 체험에 앞서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관건이다. 체험의 결실은 그 준비에 달렸다. 체험으로 정련하고 굳힐 지적 기반이 준비되지 않으면 ‘현장으로 가는 것’은 헛걸음일 뿐이다. 이 점을 간과한 상태로 현장 체험학습을 외형적으로 살려 놓으면 그만이란 듯했던 정책 행태는 그래서 허망하다.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도 학교도 그리고 정부도,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는 학교(학급)가 늘기만 하면 현장 체험학습이 정상화되는 것이라 여기고 넘어가는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교육적 ‘정상’(正常)의 기준 자체가 무너져 있다고 반증하는 것이다.

 

한 달 정도의 사소한 소요(법률로 처리하고 말) 정도로 교육부는 취급하고 넘겼지만, 이번 벌어진 현장 체험학습 논란 사태는 우리 교육의 뿌리 깊은 문제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 근본적인 문제는 앞으로도 거듭, 우리 사회가 그것을 제대로 포착하고 교육의 본연을 되살릴 때까지, 여러 양태로 ‘정책’의 수면을 오르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오르내림이 지속되는 한 우리 교육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는 없다. 다만 꾸준히 악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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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여기서는 학교 프로그램인 현장 체험학습에만 걸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체험’은 우리 인생의 내막이다. 인생에서 무엇을 건지고 자신의 인생에 어떤 정체를 부여하느냐는 그 내막을 보는 각자 안목에 달린 것이다. 교육은 그 ‘안목’을 위한 것이다.
  2. 다윈은 신학부 학생이었지만 헨슬로 교수의 식물학 강의를 들었고, 그가 이끄는 학구 모임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헨슬로 교수는 다윈에게 비글호 항해의 기회가 있다고 알려주고 또 추천도 해 주었다.
<교육 제4의 길> 편집진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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