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루틴과 습관의 차이를 짚으며, 루틴이 배움과 삶의 지속적 동력이 되는 원리를 설명하고, 동기 부여보다 일상의 시스템과 루틴을 스스로 설계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임을 주장합니다. |
습관과 루틴, 구속과 자유의 길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이 갖추고 있는 아이템은 두 가지다. 동기 부여와 루틴 만들기. 동기는 ‘위하여’ 에너지를, 루틴은 ‘의하여’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동기는 앞에서 끌어당기고, 루틴은 뒤에서 민다. 끌어당기는 힘보다 미는 힘이 더 강하고 지속력이 있다. 새해 결심이 흔히 작심삼일이 되는 이유는 동기가 부여하는 에너지가 행위와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옆구리를 찌르는 것도 도움이 되긴 하지만 일시적인 자극을 줄 뿐이다. 지속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은 루틴 또는 습관이다.
습관(habit)과 루틴(routine)1은 겉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습관이 몸에 배어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행동이라면 루틴은 의식적으로 하는 일련의 행동을 가리킨다. 둘 다 일정한 패턴을 띤 행동으로, 루틴은 자신이 세운 계획에 따라 의도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만들어지는 행동 패턴이다. 나쁜 습관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몸에 배지만 좋은 습관은 초반에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루틴의 과정을 거친다고 볼 수 있다. 루틴과 습관의 경계가 애매한 이유다.
루틴은 흔히 스포츠 선수들이 보이는 일정한 행동 패턴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류현진 선수는 시합 3시간 전, 1시간 전, 30분 전에 하는 일이 정해져 있고 그때는 동료도 말을 걸지 않는다고 한다. 몸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식단을 고수하는 선수들도 있는데2, 나름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루틴이다. 반면 야구선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하는 특정한 행동은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한 개인적 의례 같은 것이다. 신체적 안정이든 심리적 안정이든 모든 루틴은 안정제 역할을 한다.
루틴은 우리를 압박하는 동시에 자유롭게 해준다. 규칙적인 생활이 만들어내는 삶의 리듬은 삶이 제대로 순항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등대의 불빛처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루틴은 우리가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준다. 규칙이 만들어내는 자유는 곧 루틴이 주는 자유이기도 하다. 좋은 습관이 좋은 삶을 만든다. 루틴을 통해 좋은 습관이 자리 잡으면 관성의 힘이 작동해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관성의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루틴은 의사결정에 드는 에너지를 덜어준다. 하던 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날마다 같은 옷을 입으면 옷을 고르는 수고를 덜게 되고 그만큼 다른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루틴에 너무 의지하다 보면 의사결정 장애가 생겨날 수도 있다. 상황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심리적 동면 상태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안정제를 과다 복용한 것이다. 습관 또한 과거의 틀로 현재를 보게 만들 수 있다. ‘경로 의존성’은 관성에 내재된 함정이다. 빛에는 그림자가 따르는 법이다.
배움터, 루틴을 만들어내는 장치
규칙적인 생활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크다. 일상의 패턴이 만들어지면 삶이 단순해지면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오랜 기간 어떤 일에 몰두함으로써 뭔가를 성취해 내는 사람들은 대개 루틴의 힘을 빌린다. 배움의 과정에서도 루틴은 많은 도움이 된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강제로나마 루틴을 만들어줌으로써 배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도와준다.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이 방황하다 길을 잃기 쉬운 것도 학교가 만들어주던 루틴을 대신할 만한 것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긴장은 압박을 필요로 한다. 어른도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도 자신을 압박해 줄 뭔가가 필요하다. 일상을 압박하는 루틴이 사라지면 대개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공허해진다.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흔히 우울증을 앓는 이유다. 수감 생활을 오래한 사람은 사회에 나와 적응하지 못하고 교도소로 되돌아가기 위해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듯 사람들에게는 일용할 압박이 필요하다. 아이들도 학교를 자퇴하고 나오면 방향 감각을 잃기 쉽다.
많은 대안학교들이 학생들의 지각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이유 또한 루틴을 만들어내지 못해서다. 초등 시기에는 지각을 하지 않던 아이들도 청소년 시기에 접어들면서 지각을 하게 된다. 아침잠이 늘어나는 생체 리듬의 변화 탓도 있고, 밤늦도록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게임을 하다 늦잠을 자기 때문이다. 십대에 들어서 부모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친구들의 영향력이 더 커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기숙형 학교들도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학생들을 어쩌지 못하는 실정이다.
자율과 자발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대안학교에서 일반학교처럼 지각생을 벌주거나 내신에 반영할 수도 없다 보니 기껏해야 공동체 규약으로 규제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루틴을 만들어내는 일은 어른인 교사도 힘든 일이므로, 구속력이 약한 규약이 아이들의 생활을 바꾸기는 힘들다. 반면 일반학교는 획일적인 시간표에 따라 학생들의 일과를 규율함으로써 루틴을 강제로 만들어낸다. 정해진 루틴을 따르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벌칙을 가함으로써 학생들을 루틴 속으로 밀어넣는다. 부작용이 적지 않지만 정해진 일과에 적응한 학생들은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해나간다.
대안학교가 루틴을 잘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자유와 자발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는 데다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수업 시간도 들쑥날쑥하고, 정해진 교과서도 진도표도 없어 교육과정이 느슨하기 때문이다. 시험도 없고 경쟁도 없다. 교사들은 친구 같다. 아이들을 긴장시키는 장치가 없는 셈이다.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적당한 긴장, 기분 좋은 긴장이 필요하다. 배움터는 아이들을 긴장시켜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장치가 없으면 대부분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던 대로 하게 된다. 그게 쉽기 때문이다.
개인보다 집단이 루틴을 만들기가 수월하다. 공부도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집단이 만들어내는 압박이 루틴의 압박에 더해진다. 교회에서는 주일예배라는 루틴의 압박과 함께 커뮤니티가 만들어내는 압박이 신도들을 긴장시킨다. 무교회주의가 확산되기 힘든 이유는 신앙(동기)만으로는 결속력을 만들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집단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함께 일상 공간과 분리된, 의례를 위한 공간도 결속력을 높인다. 이는 홈스쿨링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해 준다. 배움터 또한 집단의 의례를 위한 공간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날마다 10km를 달린다고 한다.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라고 말하는 하루키는 자신이 하루도 달리기를 빼먹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3
학교를 때맞춰 가야 할 이유는 적고 지각이나 결석을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감으로써 아이들의 몸도 마음도 단련되어 간다. 학교 대신 체육관이나 도서관을 날마다 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학교만큼 상호작용이 활발하기는 힘들다. 학교는 다양한 아이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는 것만으로 중요한 교육 기능을 한다. 교과 과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호작용의 경험이다. 아이들은 배움터에서 서로 다양한 자극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동기가 아닌 시스템에 의지하기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을 해야지 생각만 하면서 미적거리곤 한다. 내심 잘할 수 있을지 불안하거나 귀찮아서 또는 습관적으로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룬다.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 날이기에 언제까지나 미룰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숙제나 업무를 미룬 결과까지 미룰 수는 없기 때문에 낭패를 보게 된다. 행동해야 할 때 동기 부여에 의존하는 것은 신의 계시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내가 필요로 할 때 찾아오는 계시 같은 건 없다.(그런 것이 있다면 그건 이미 계시가 아니다.) 계시를 받아 움직이겠다는 심리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심리다.
교육자들은 흔히 학생에게 동기를 불어넣어 목표의식을 갖게 해주면 열심히 달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동기는 에너지를 격발시키는 초크밸브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엔진이 되지는 못한다. 나무는 태양과 땅의 에너지에 ‘의하여’ 성장하지, 하늘 높이 자라기 ‘위하여’ 성장하지 않는다. 엔진은 목적지에 가기 ‘위하여’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시스템에 ‘의하여’ 작동한다. 자율주행 자동차도 목적지가 자동차를 끌어당기는 것은 아니다. 배터리든 엔진이든 에너지를 공급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뛰어난 연주가나 선수들은 날마다 연습을 되풀이하면서 어떤 목적 의식이나 기대를 품지 않는다. 연습을 한다고 기량이 더 나아질지는 알 수 없지만 하지 않으면 미세하게라도 몸이 굳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할 뿐이다. 그렇게 루틴을 따를 수 있으려면 먼저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하나의 루틴은 다른 루틴과 맞물려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기상 후 30분 동안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으려면 먼저 기상 시간이 일정해야 하고, 그러려면 잠드는 시간이 들쑥날쑥하면 안 된다. 또 제때 잠이 들려면 여러 가지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결국 하루하루의 일과가 큰 변동 없이 유지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전기차든 가솔린 엔진차든 거기에 맞는 시스템이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
계획이라 하면 보통 장기적인 계획을 떠올리지만 하루의 계획도 중요하다. 일상의 소소한 계획과 실천이 쌓여 장기적 목표 달성으로 이어진다. ‘날마다 새 단어 10개 익히기’ 같은 작은 실천이 쌓이면 일 년 뒤 3천 개가 넘는 단어를 익히게 되는 것처럼, 별것 아닌 듯 보이는 것들이 쌓여 큰 성과를 낸다. 소소한 뭔가를 일정한 패턴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 루틴이라면, 그렇게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일상의 구조가 ‘시스템’이다. 개인이든 배움터든 일상의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상 시작이 전부나 다름없다. 첫걸음을 잘 내디디면 관성의 힘에 의해 힘들이지 않고 계속 나아가게 된다. 엉덩이가 무거워질 때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하루의 시작을 도와주는 ‘기상 후 30분 루틴’ 지키기, 하루면 할 수 있는 일을 일주일 동안 붙들고 있지 않도록 ‘시작 기한’ 정하기, 일을 세분화해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기 등 의지나 동기 부여에 기대지 않고 가볍게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요령을 가르치는 것이 동기 부여를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낫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루틴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 배움터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무작정 공부하라고 다그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할 수 있는 다양한 학습 요령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듯이, 자신에게 맞는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현명한 아이들은 스스로 그런 루틴을 만들어내어 주도적으로 움직이지만 대개는 마지못해 끌려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와 학원이 만들어주는 루틴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삶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이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 필자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기존의 PDF 파일을 제공하던 서비스를 중단합니다. 대신 아래의 ‘인쇄(Print)하기’ 클릭한 후, ‘Ctrl + P’를 누르시면 칼럼 내용을 인쇄할 수 있습니다. |
각주
교육 매체 계간 《민들레》 발행인. 저서로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이 있고, 《대안교육 20년을 말하다》, 《재난의 시대,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다》 외 여러 권을 함께 썼다. 옮긴 책으로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 《소통하는 신체》(공역)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