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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육의 문제를 푸는 책들(9) -“평균이라는 환상: 당신의 학생 중 ‘평균적인 아이’는 한 명도 없다”

#1525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26.05.21

Todd Rose, 『The End of Average: How We Succeed in a World That Values Sameness』 (HarperOne, 2016) 비평

                                                                                                                                                                                                                           

『The End of Average』의 국내 번역서 소개: 『평균의 종말』 (21세기북스, 2021)

 

 

1950년대 초, 미국 공군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훈련받은 조종사들이 잇달아 사망한 것이다. 기체 결함은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원인을 찾지 못했는데, 젊은 연구자 길버트 대니얼스(Gilbert Daniels)가 엉뚱한 질문을 던지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조종석이 평균 체형에 맞게 설계되어 있다는데, 실제로 평균 체형인 조종사는 몇 명이나 될까?”

 

그는 4,063명의 조종사 체형을 측정했다. 키, 팔 길이, 가슴둘레 등 열 가지 항목에서 ‘평균 범위’ 안에 드는 사람이 몇 명인지 세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든 항목에서 동시에 평균에 해당하는 사람은 0명이었던 것이다. 조종사들은 평균 체형에 맞춰 설계된 조종석에서, 어긋난 몸으로 매일 비행하고 있었다.

 

하버드 교육대학원 교수 토드 로즈(Todd Rose)는 이 이야기로 『The End of Average』의 문을 연다. 그가 이 책에서 하려는 말은 단순하지 않다. 조종석 이야기는 그저 흥미로운 일화가 아니라, 우리가 학교·직장·사회 전반에 걸쳐 저지르고 있는 거대한 착각에 대한 실증적 고발이다.

 

 

‘평균적 인간’은 벨기에 천문학자의 발명품이었다

 

평균이 인간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 것은 불과 200년 남짓한 일이다. 19세기 벨기에의 천문학자 아돌프 케틀레(Adolphe Quetelet)는 별의 위치를 계산하는 통계 기법을 사람에게 적용했다. 수천 명의 가슴둘레를 재서 평균을 구하고, 그 평균값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상적 인간’으로 규정했다. 케틀레의 ‘평균인(l’homme moyen)’은 곧 의학·심리학·교육학 전반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학교 제도의 설계 원리가 되었다.

 

로즈는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는 케틀레가 살던 시대의 산물인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시스템은 평균적 인간을 위해 설계되었다. 그런데 평균적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교사라면 이 문장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된다. 학교는 지금도 평균이라는 개념 위에 세워져 있다. 교육과정은 ‘보통 아이’를 기준으로 설계되고, 성적은 집단 안에서의 상대적 위치로 매겨지며, 발달은 ‘몇 학년 수준’이라는 기준으로 판단된다. 3월이 되면 교사들은 “이 학년 아이들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가지고 교실에 들어선다.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기준에 딱 맞는 아이가 공군 조종사 사례처럼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들쭉날쭉함이 정상이다 – ‘들쭉날쭉 원칙’

 

책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들쭉날쭉 원칙(Jaggedness Principle)’이다. 사람의 능력은 한 방향으로 뻗어 있지 않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언어 사용을 잘할 수도 있고, 잘하지 못할 수도 있는 식으로 각 능력이 고르게 묶여 있지 않다. 실제로 인간은 영역에 따라 강점과 약점이 엇갈리는 들쭉날쭉한 프로파일을 가진다.

 

로즈는 성인 지능 검사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를 인용한다. 추론·공간·수리·언어 능력 등 모든 영역에서 고르게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은 사람의 비율은 전체의 6%에 불과했다. 나머지 94%는 어딘가 높고 어딘가 낮은 들쭉날쭉한 프로파일을 가졌다. 다시 말해, 고르게 잘하는 사람이 6%라면, 들쭉날쭉한 것이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다.

 

교실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자. 수업 중 발표를 잘 못하는 아이가 있다. 교사 눈에는 ‘소극적인 아이’로 보인다. 그런데 그 아이가 수학 시간엔 혼자서 두 단계 앞선 문제를 풀고 있고, 미술 시간엔 반 전체를 놀라게 한다면? 우리가 ‘소극적’이라고 붙인 딱지는 아이의 일부만을 보고 내린 판단이다. 아이는 들쭉날쭉하다. 그게 정상이다.

 

로즈는 한발 더 나아가, 이 원칙이 우리가 학생에게 붙이는 딱지 전체를 흔든다고 말한다. “우수한 학생”, “학습 부진 학생”이라는 표현은 마치 그 아이 전체를 하나의 수준으로 묶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의 능력은 영역마다, 과목마다, 심지어 같은 과목 안에서도 다르다. 로즈의 표현을 빌리면, “평균은 아무도 대표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점수다.”

 

 

맥락이 사람을 바꾼다 – ‘맥락 원칙’

 

두 번째 원칙은 ‘맥락 원칙(Context Principle)’이다. 사람의 행동과 능력은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로즈는 심리학자 월터 미셸(Walter Mischel)의 연구를 소개하며, 우리가 성격이라고 부르는 것이 상황을 초월해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질이 아님을 보여준다. ‘공격적인 아이’도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지, 교사가 있는지 없는지, 실내인지 실외인지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행동한다.

 

미셸은 아이들이 또래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상황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교사가 자신을 비판했을 때, 낯선 어른이 말을 걸었을 때, 친구들이 대화에서 자신을 무시했을 때 등 아이들의 반응은 상황마다 달랐다. ‘공격적인 아이’란 없었다. 특정 맥락에서 공격적으로 반응한 아이들이 있었을 뿐이다.

 

이것은 교사에게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숨통을 틔워주는 깨달음이기도 하다. 아이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아이의 ‘고정된 성격’ 때문이 아니라 지금 그 아이가 놓인 맥락이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조종석이 몸에 맞지 않는 조종사처럼. 문제는 조종사가 아니라 조종석이었다.

 

로즈 자신이 그 산 증인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낙제로 중퇴했다. 교사들로부터 “너는 아무것도 못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ADHD 진단을 받은 그는 수업 방식이 자신과 맞지 않았고, 그 불일치가 ‘실패’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그는 검정고시로 커뮤니티칼리지에 입학하고, 야간 수업을 들으며 생계를 유지하면서 결국 하버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하버드 교수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기술했다. “나는 뒤처진 게 아니었다. 나는 그 시스템에 맞지 않았던 것뿐이다.”

 

이 고백은 책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울림을 주는 문장 중 하나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한 사람의 성공담이 아니다. 로즈는 연구자로서 수십 년간 데이터로 같은 결론을 증명해왔다. 그의 삶이 먼저 그것을 보여줬고, 그의 연구가 이를 뒷받침했다.

 

 

여러 갈래 길이 같은 곳에 닿는다 – ‘경로 원칙’

 

세 번째 원칙은 ‘경로 원칙(Pathways Principle)’이다. 발달에는 표준 경로가 없다. 읽기를 일찍 시작하는 아이도 있고, 늦게 시작하는 아이도 있다. 늦게 시작했더라도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느는 아이도 있다. 어떤 아이는 개념부터 이해하고, 어떤 아이는 경험을 통해 이해한다. 목적지가 같아도 경로는 다를 수 있다.

 

로즈는 발달심리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추적한 아동 발달 연구를 인용한다. 걷기, 말하기, 읽기 등 이른바 ‘발달 이정표’라 불리는 것들은 특정 시기에 나타나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연구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이정표에 도달하는 시기가 아이마다 크게 다를 뿐 아니라, 그 순서도 다를 수 있다. 어떤 아이는 말을 먼저 배우고 걸음을 나중에 뗀다. 어떤 아이는 글자보다 수를 먼저 이해한다. 어느 경로가 ‘더 나은’ 경로라고 말할 수 없다.

 

교육 현장에서 “이 나이엔 이 정도는 돼야 해”라는 기준을 적용할 때, 우리는 목적지만 같으면 되는데 경로까지 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읽기가 느린 아이를 ‘부진’으로 분류하는 순간, 우리는 그 아이에게 ‘다른 경로’를 가고 있다는 신호를 주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신호를 주게 된다. 그 신호가 쌓이면, 아이는 “나는 책을 못 읽는 아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굳혀간다.

 

 

교사를 위한 질문

 

로즈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묻는다.

 

“만약 우리가 개개인에 맞춰 설계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우리가 조종석 문제를 해결했던 것처럼 교실을 설계한다면?”

 

공군은 결국 조종석을 조절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 사람의 평균 체형에 맞춘 고정된 조종석 대신, 각 조종사의 몸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조종석으로 바꾸었다. 결과는? 사고율이 급감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비용도 줄었다. 평균을 포기했을 때, 모두에게 더 잘 맞게 되었다.

 

이 결말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조절 가능한 조종석은 지금 모든 비행기에 달려 있다. 처음에는 특수한 예외적 설계처럼 보였던 것이 기본값이 되었다. 교실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고 로즈는 말한다.

 

물론 이 책은 “그러니 수업을 이렇게 바꾸십시오”라는 처방전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 책이 아니다. 로즈가 원하는 것은 더 근본적인 전환이다. 교사가 들쭉날쭉함을 ‘고쳐야 할 문제’로 보지 않고 ‘출발점’으로 볼 때, 교실의 언어가 달라진다. “왜 아직도 못 하니?”가 아니라 “이 아이는 지금 어느 경로에 있지?”가 된다. “이 아이는 무엇이 문제인가?”가 아니라 “이 아이에게 어떤 맥락이 맞지 않는가?”가 된다.

 

 

그러나 남는 아쉬움

 

이 책이 설득력 있는 만큼, 읽고 나서 아쉬움도 남는다.

 

로즈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설득하는 데는 탁월하다. 평균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고, 세 가지 원칙을 통해 개개인성의 논리를 세우는 작업은 치밀하고 흥미롭다. 그러나 “그래서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이르면 책은 한 발 물러선다. 조종석 이야기로 교실의 가능성을 암시하지만, 실제 교실에서 어떻게 들쭉날쭉한 프로파일을 파악하고, 어떻게 다양한 경로를 설계하며, 30명 가까운 학생을 앞에 두고 어떻게 맥락을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는 없다.

 

이것이 이 책의 한계라기보다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설정한 역할의 경계일 수 있다. 로즈는 처방전을 쓰는 대신 전제를 바꾸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현장의 교사 입장에서는 “알겠는데, 그래서?”라는 물음이 책을 덮고 나서도 남는다. 이 책이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읽고 나서 동료 교사와 대화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맺으며: 교사들에게

 

매년 3월, 교사는 새 학생들을 만난다. 그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와 방식, 다른 강점과 약점을 지닌 채 교실에 들어온다.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이 학년 평균’과 ‘이 정도면 보통’이라는 기준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 기준에서 벗어난 아이를 문제로 여기고, 그 간격을 좁히는 것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토드 로즈는 그 습관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들쭉날쭉함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본래 모습이고, 맥락은 성격보다 강하며, 목적지가 같아도 경로는 달라도 된다. 이 세 가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거창한 교육 혁신이 아니다. 아이를 보는 시선을 조금 다른 자리에 놓는 일이다.

 

그 시선의 이동은 작지만, 그 결과는 작지 않다. 어떤 아이에게는 교사의 그 눈빛 하나가 “너는 다른 경로를 가고 있는 것”과 “너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가르는 결정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로즈가 고등학교 시절 들었던 말을 떠올린다면, 우리가 매일 교실에서 하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함께 깨닫게 된다.

 

조종석은 바뀌었다. 하지만 교실은 아직이다. 그 변화는 제도보다 먼저, 교사의 시선에서 시작될 수 있다.

 

 

<교실 적용 팁>

 

이 책은 처방전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 가지 원칙은 교실에서 바로 써볼 수 있는 질문과 태도로 옮길 수 있다.

 

들쭉날쭉 원칙 — 아이를 한 가지 잣대로 보지 않기

 

학생을 관찰할 때 “이 아이는 어떤 아이인가” 대신 “이 아이는 어떤 영역에서 두드러지고, 어떤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는가”를 물어보자. 간단한 방법으로 학기 초에 교과별·활동별로 각 학생의 반응을 짧게 메모해두는 것만으로도 들쭉날쭉한 프로파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아이는 국어가 약하다”가 아니라 “이 아이는 읽기는 느리지만 토론에서는 누구보다 논리적이다”로 바뀌는 순간, 아이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맥락 원칙 — 문제 행동 앞에서 먼저 맥락을 살피기

 

아이가 수업을 방해하거나 무기력하게 앉아 있을 때, “이 아이가 왜 이러지?”라는 질문 앞에 한 가지 질문을 더 놓아보자. “지금 이 아이를 둘러싼 맥락에서 달라진 것이 있는가?” 짝이 바뀌었는가, 자리 배치가 달라졌는가, 오늘 수업의 방식이 평소와 다른가. 맥락을 바꾸는 것은 아이를 바꾸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때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경로 원칙 — ‘아직’이라는 말을 습관으로 만들기

 

“이 아이는 못 한다”와 “이 아이는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는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같은 사실처럼 보이지만, 아이에게는 전혀 다른 신호로 들린다. 평가 장면에서든 피드백 장면에서든 “아직”이라는 단어 하나를 의식적으로 덧붙이는 연습이 경로 원칙을 교실 언어로 옮기는 가장 작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이 ‘아직의 힘(the power of yet)’이라고 부른 것이 바로 이것이다.

 

 

※ 이 시리즈는 AI 도구를 활용해 원서의 핵심 내용을 추출하고, 필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한국 교육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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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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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1. Joon 수정 삭제

    글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교직에 있을 때 교육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새삼 느낍니다. 교직에 있는 후배들이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칼럼을 많이 구독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정영교 수정 삭제

    저는 엔지니어이지만 너무나 공감하는 글입니다. 성적 위주로 Fast Following 대열에라도 뛰어들어야 했던 70년 전 우리나라의 시대적 아픔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First Mover 양육을 위한 교육의 변화를 놓고, 생각보다 큰 강 앞에서 건너가기를 머뭇거리는 동안, 나름 Fast Following 해온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후발 국가들이 저 뒤에 쫓아 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공계 분야에서 일본이 24명의 노벨상을 받은 동안, 단 한 개의 노벨상도 받지 못한 이유는 자명할 뿐, 슬픔도 좌절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육이 없는 학교”의 피해자는 학생만이 아니라 교사도 포함됨을 부끄럽게도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조상과 유전자를 가진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은 변화를 위한 시대적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변화의 불씨를 간직하고 키우시는 교바사의 노력에 진심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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