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철의 한국현대교육사(17) – “학력과 계층 형성”
| 1960년대 이후 한국에서 산업화와 교육 팽창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학력이 취업·임금·승진을 결정하는 핵심 기제로 자리 잡았고, 이는 계층 형성의 동력이 된 동시에 학력 차별과 상징적 폭력이라는 그늘도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산업화 시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같은 시기에 초등 의무교육제 완성에 이어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순서대로 교육이 급격하게 팽창했다. 어떤 희생도 감수하며 학교로 몰려든 이들이 주로 기대한 것은 교육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찾는 것이었다. 학교는 직업세계와 연결되어 있었고, 학교 졸업이라는 출구는 직업세계로 이어지는 파이프의 입구이기도 했다.
학교에서 직업세계로
학교와 직업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각 기업의 사원 채용제도다. 1950년대 후반부터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여 기업이 일괄하여 신입 사원을 채용하는 ‘공개채용제도’를 취하게 된다. 대기업의 ‘공개채용제도’는 1954년 삼성물산이 처음 시작한 이래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어 갔고 1957년에는 삼성그룹 차원에서 대졸사원 공개채용제도가 실시되었다.1
공개채용을 주요 기업들이 동일한 날에 실시하는 관행이 점차 정착해 갔다. 예컨대 1985년에는 11월 10일에 현대·삼성·대우·럭키금성·선경 등 대부분의 재벌그룹을 포함한 17개사가 동시에 공개채용 시험을 실시했다.2 정부는 이 공개채용 시험을 가급적 2학기 말에 실시하도록 기업에 요청했는데 그 이유는 ‘대학에서는 취직된 졸업예정자가 수업을 결석해도 학점을 주고 졸업장을 주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학업 결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3 한편 기업으로서는 공개채용 시험일을 각기 달리 할 경우 이중, 삼중 지원자가 나타나 채용업무 진행에 번거로움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주요 기업들이 같은 날에 실시하는 것을 선호했다.
초기에는 공개채용 시에 응시 자격을 학업 경력이나 성별에 따라 제한하는 채용 관행이 일반적이었다. 예컨대 1966년 국내의 주요 기업 채용공고를 보면 대한통운은 “1. 4년제 상대·법대 졸업예정자 2. 상고 졸업자 및 졸업예정자 3. 병역을 필했거나 면제자 4. 남자에 한함”4이라 하여 학력과 성에 따라 대상을 제한했다. 공개채용시험 외에도 학교 추천, 친구 혹은 친지의 소개 등 다른 방식을 통한 취업 경로도 존재했는데, 어느 방식이 주로 활용되는지는 학력에 따라 또 시기에 따라 달랐다. 1969년부터 1998년까지 학력별 취업경로의 유형을 <표 1>에 제시하였다.
<표 1> 실업계고ㆍ전문대ㆍ4년제대학 취업경로 : 1969-1998
| 학교 | 연도 | 취업자 | 학교
추천 |
채용
시험 |
기타* | 전공 분야
취업 |
학교 추천
(%) |
채용 시험
(%) |
전공 분야
취업(%) |
| 실업계
고교 |
1969 | 31,569 | 9,399 | 5,913 | 16,257 | 26,776 | 29.8 | 18.7 | 84.8 |
| 1978 | 110,908 | 41,108 | 13,830 | 55,970 | 96,600 | 37.1 | 12.5 | 87.1 | |
| 1988 | 193,612 | 106,746 | 19,565 | 67,301 | 160,219 | 55.1 | 10.1 | 82.8 | |
| 1998 | 148,478 | 70,758 | 5,156 | 72,564 | 114,898 | 47.7 | 3.5 | 77.4 | |
| 전문
대학 ** |
1969 | 1,951 | 741 | 517 | 693 | 1,708 | 38.0 | 26.5 | 87.5 |
| 1978 | 16,111 | 6,341 | 3,732 | 6,038 | 13,599 | 39.4 | 23.2 | 84.4 | |
| 1988 | 41,316 | 24,919 | 6,716 | 9,681 | 33,688 | 60.3 | 16.3 | 81.5 | |
| 1998 | 128,308 | 59,749 | 25,191 | 43,368 | 92,615 | 46.6 | 19.6 | 72.2 | |
| 4년제
대학 |
1969 | 13,743 | 4,569 | 4,442 | 4,732 | 10,190 | 33.2 | 32.3 | 74.1 |
| 1978 | 29,378 | 12,171 | 10,690 | 6,517 | 24,350 | 41.4 | 36.4 | 82.9 | |
| 1988 | 76,594 | 26,464 | 32,160 | 17,970 | 55,269 | 34.6 | 42.0 | 72.2 | |
| 1998 | 90,147 | 25,366 | 39,685 | 25,096 | 57,319 | 28.1 | 44.0 | 63.6 |
주) * ‘기타’에는 취업경로에서 친구 친지 소개, 실습, 부모 경영사업, 자영, 기타 등이 모두 포함됨
주) ** 전문대학은 1964년부터 1977년까지의 실업고등전문학교, 1978년부터 1979년까지의 전문학교를 포함함.
자료) 각년도 『문교통계연보』 및 『교육통계연보』. 졸업 1년 후의 조사 자료임. 매년도 각 수치는 이듬해 통계연보에 제시됨.
가장 주된 취업경로는 학교 추천과 채용시험이었는데 어느 학력이건 취업자의 거의 2/3에서 3/4 가량이 이 두 경로를 밟아 취업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실업계 고교 졸업자의 경우 시간이 갈수록 채용시험의 비중은 줄어들고 학교 추천이 절반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특징을 보인다. 달리 말해 실업계 고교 졸업자들의 경우 기업이 관리하는 공개적인 ‘경쟁’ 방식이 아니라 학교 측의 추천에 의해 우선적으로 예비 선발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통해 학교와 취업 세계가 연결되고 있었다.
‘학교 추천’을 통한 취업 방식은 학력 경쟁의 세계에서 권외에 위치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일쑤인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학력 경쟁을 유발하는 효과를 낳는다. 보다 양질의 취업 기회를 학교 추천을 통해 선점하기 위한 학력 경쟁이 실업계 고교 내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학교는 추천을 의뢰하는 기업과의 안정적인 취업 추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또 추천 결과에 대한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객관적 지표에 의거해 인기 있는 취업 기회에 학생들을 선발하여 추천하게 되는데, 그때 선발의 지표로 가장 우선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학교 성적이기 때문이다.5 즉 학교 추천이라는 ‘정성적인’ 직업 선발 방식도 학력 경쟁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전문대학 졸업자의 경우는 실업계 고교 졸업자의 경우에 비해 채용시험의 비중이 조금 높아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학교 추천을 통한 취업이 큰 비중을 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은 필요로 하는 특정 기술 분야의 사원을 그 분야와 직접 연결되는 전문대학의 특정 학과에 추천을 의뢰하여 충원하는 방식을 일반적으로 취하고 있었다. 4년제 대학 졸업자의 경우에는 학교 추천과 공개채용의 비중이 1960년대 말에는 거의 동일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채용 시험을 통한 공개채용의 비중이 늘고 학교 추천의 비중이 조금씩 줄어드는 특징을 보인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 추천 제도에 의거해 원하는 인력을 선점하려는 관행도 있었다. 기업은 특정 대학, 특정 전공의 졸업자를 선점하기 위하여 “출신학교별 간부들로 팀을 구성, 필요한 학교 학과 교수들을 찾아 학생 추천을 간청하고 그 학교 출신의 1, 2년짜리 사원들에게 매일 교통비를 주어 그 학교 주변에 침투, 막거리-티파티 등을 열어 ‘선-후배들의 대화의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소속된 회사의 PR활동”을 하게 하기도 했다.6
취업경로가 학교 추천이건 채용 시험이건 불문하고 한국의 취업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각 기업이 일괄 채용하는 ‘학교 졸업자 일괄채용’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한 후 여러 곳에서 제각기 다양한 경력을 쌓아가며 보다 나은 곳으로 전직해 가는 삶을 살기보다는 졸업과 동시에―보다 정확하게는 졸업 직전에― 일괄하여 시행되는 채용 시험이나 학교 추천을 통해 일터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때의 선발 기준은 입직 이전의 ‘경력’이 아니라 졸업과 동시에 취득되는 ‘학력’이다. 채용 시험이건 학교 추천이건 기업은 채용 시에 이전의 ‘업적’이나 ‘경력’을 고려하기보다는 보다 일반적이고 잠재적인 ‘능력’ 쪽을 중시하며, 그 능력을 보여준다고 여겨지는 지표가 학력 그리고 영어나 교양 등의 채용 시험 성적 또는 학교에서의 학업성적을 기초로 하여 결정되는 학교 추천 여부인 것이다.
동일한 급의 학교를 나와 동일한 ‘학력’을 취득한 경우라도 채용 과정에서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즉 ‘학교력’에 따라 선발에 차등을 두는 고용 관행도 적지 않게 존재했다. 예컨대 1966년 대한해운공사는 “1. 서울 상대·법대, 고대·연세대 상과 출신, 인하공대·서울공대의 조선항공과 출신으로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자(B학점 이상)”7라 하여 대학에서의 전공만이 아니라 특정 대학, 그리고 거기서의 성적 제한까지 두기도 했다. 어느 단계까지 교육을 받았는지를 말해주는 학력만이 아니라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를 보여주는 학교력이 취업 요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 관행은 오랜 기간 지속되어 1996년에 신문에 보도된 ‘ㅎ그룹’의 경우 ‘최근 10년 동안의 전국 대학 학과별 수능 평균 점수를 서류전형 입사 지원생들의 평가기준’으로 삼아 인문계열의 경우 ‘서울대 경제 54점, 연세대 경제 50점, 한양대 경제 49점, 중앙대 경영 46점, 부산대 경영 47점, 충남대 경영 42점, 전북대 법학 37점’ 등으로, 이공계열의 경우 ‘서울대 화학 53점, 연세대 화공 49점, 인하대 화공 44점, 부산대 기계 44점, 충남대 화공 41점, 전남대 화공 39점’ 등으로 가중치를 달리 하여 차등평가하기도 했다.8
‘학교졸업자 일괄채용’ 방식은 ‘종신고용제’―혹은 ‘정년제’― 및 ‘연공서열제’라는 고용관행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종신고용제’란 “학교를 졸업한 후 기업 내 정사원으로 일단 채용된 자가 취업규칙에 정해진 중대한 해고 사유를 범하지 않는 한 불해고의 원칙하에 정년퇴직까지 근속을 보장받는 고용관행”9을 의미한다. 한편 ‘연공서열제’란 업적이나 성과에 따른 차등적인 보상이나 진급에서의 차별화를 가급적 억제하고 조직 내에서의 근무연한, 즉 연공에 따라 서열화하는 방식으로 진급을 정하는 고용관행이다.
이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가 가장 대표적으로 유지되고 진화되어 온 곳은 일본이지만, 한국도 시차와 정도의 차이를 두면서 그것을 주된 고용관행으로 정착시켰다. 1971년에 정부가 발간한 「노동백서」는 우리나라 기업에서 연공서열형 임금체제와 종신고용제가 지배적이 되었다고 이미 진단한 바 있다.10 연공서열에 기초한 임금제도는 60년대 초에 이미 형성되었고, 70년대 후반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종신고용제’가 정비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11 1969년 한 시중은행의 간부는 연공서열제를 취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한 사람이 공이 있다고 해서 진급을 시킨다든지 하면 그 사람은 좋을는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과연 그렇다고 인정을 하겠느냐는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서열을 무시했을 때에는 잡음이 있을 가능성이 많아요. 자기가 볼 때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운동’을 해서 그렇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큰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포상제도가 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12
요컨대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정착한 고용관행은 특정 학교를 졸업한 신규 졸업자를 그 학교급, 학교, 전공 등 ‘학력’과 ‘학교력’에 주로 의거하여 채용하여 직업적 사회화를 시킨 후, 그들을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고용하며 보상을 제고하고 진급시켜 가는 ‘학교졸업자 일괄채용’, ‘종신고용제’, ‘연공서열제’를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이런 관행 하에서 취직은 ‘학생 생활의 종착역’이지만 동시에 ‘인생의 종착역’13으로까지 여겨진다. 그리고 이 국면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가장 주된 요인은 ‘학력’―또는 ‘학교력’―이었다.
학력주의의 정착
학력 및 학교력은 취업 단계에서 선별 효과를 발휘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학력 및 학교력은 학력별 임금격차 및 직업세계 내에서의 승급·진급의 격차로 가시화되어 이후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먼저 학력별 임금격차를 확인해 보자. <표 2>에 1971년부터 2000년까지의 학력별 임금격차 상황을 제시하였다.
<표 2> 학력별 임금격차: 1971-2000
| 연도 | 중졸이하 | 고졸 | 초대(전문대)졸 | 대졸이상 | ||||
| 임금 | % | 임금 | % | 임금 | % | 임금 | % | |
| 1971 | 16,444 | 100.0 | 27,004 | 164.2 | – | – | 47,309 | 287.7 |
| 1975 | 32,019 | 100.0 | 55,982 | 174.8 | 76,248 | 238.1 | 120,021 | 374.8 |
| 1980 | 124,435 | 100.0 | 180,919 | 145.4 | 264,762 | 212.8 | 413,317 | 332.2 |
| 1985 | 226,272 | 100.0 | 303,049 | 133.9 | 393,450 | 173.9 | 686,490 | 303.4 |
| 1990 | 476,949 | 100.0 | 569,394 | 119.4 | 668,200 | 140.1 | 1,055,950 | 221.4 |
| 1995 | 959,087 | 100.0 | 1,100,306 | 114.7 | 1,192,628 | 124.4 | 1,715,411 | 178.9 |
| 2000 | 1,261,618 | 100.0 | 1,461,083 | 115.8 | 1,508,493 | 119.6 | 2,321,652 | 184.0 |
출처: 통계청 『한국의 사회지표』 각년판
중학 졸업 취업자에 비해 대학 졸업 이상 취업자의 임금이 1971년에는 약 3배 가량에 달했고 5년 후에는 거의 4배에 달할 정도로 학력별 임금격차가 커졌으나 1980년대에 접어들어 서서히 줄어들어 1990년에는 71년도의 그것보다도 적어졌으며 2000년도에는 2배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까지 격차가 축소되었다. GDP의 상승과 소득수준의 향상이 주된 배경이었지만 동시에 여기에는 1980년대 후반의 노동운동 활성화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학력별 임금격차의 내실을 경력 요인까지 고려하여 좀 더 살펴보자. 예컨대 1980년의 고졸 취업자 경우를 보면 1년 미만 취업자의 임금은 114,573원이나 경력 10년 이상 취업자는 265,437원으로 높아졌다. 대졸 이상 취업자의 경우는 1년 미만 취업자의 임금은 265,134원이나 경력 10년 이상 취업자는 446,321원으로 높아졌다.14 같은 기간에 고졸자의 임금은 231.7% 늘어난데 반해 대졸자는 168.3% 늘어나는데 그쳐 임금 상승에서 경력이 고학력 계층보다 저학력 계층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고졸 취업자가 10년을 근속하여 임금이 상승해도 그것이 대졸 1년 미만 취업자의 임금 수준에 불과하여 경력이 학력별 임금격차를 해소해 주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학력 소지자라 할지라도 직급에 따른 심한 임금격차 문제도 있었다. 예컨대 1979년 3월의 노동청 집계에 따르면 “일반 생산직 노동자(중졸·남자 근로자)를 기준으로 할 때, 관리직 부장급은 12배 이상, 과장급은 8배 이상, 계장급은 5배 이상의 급료를 받고 있고, 대졸 기술직은 5.6배, 고졸 기능직은 2.8배, 일반 사무직은 2배 이상의 극심한 임금격차”15를 보이고 있었다. 학력 및 학교력은 이처럼 취업 단계에서만이 아니라 이후의 승급·진급 단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학력별 임금격차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1979년 2월에 「학력 및 직종간 임금격차 해소방안」을 발표했다. ‘대졸자 초임을 100으로 할 때 초급대 졸업자 90, 고교 졸업자 80이 되게 하고, 대졸 초임을 전문대졸 2년 경력과 같게 하며 임금 인상률은 고졸 이하를 초급대학 이상보다 높게 지도’16하여 국영기업체 및 100인 이상 업체부터 적용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정책은 1980년대 이후 학력별 임금격차가 더 심화되지 않도록 완화시키는데 얼마간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직업 세계와 교육 세계가 ‘학력’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관계를 사회학적으로는 ‘학력주의’라는 개념으로 명명한다. 일본의 교육사회학자 아마노 이쿠오(天野郁夫)에 따르면,
학교가 학력(學力)으로 드러나는 업적에 따라 사람들을 평가하고 또 업적에 따라 사람들을 경쟁적으로 선발하는 만큼 그 결과로 주어지는 학력(學歷)―또는 학교력(學校歷)―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의 업적의 상징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그 학력이 산업화 과정에서 확대되는 근대 부문과 근대적 직업으로 들어가는 패스포트가 될 때, 즉 교육 자격이 직업 자격의 의미를 갖게 될 때 학력주의가 성립한다.17
모든 사회 부문이 그곳으로 들어가는데 학력이라는 ‘패스포트’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자영업이나 농어업 등 부모의 가업을 계승하는데 학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것이 필요한 곳은 ‘관청’이나 ‘법원’, ‘병원’이거나 ‘회사’, ‘공장’ 등의 근대적 부문이다. 애초에는 ‘전통 사회의 바다 위에 만들어진 근대의 작은 교두보(tiny bridge-heads of modernity)’였던 그 근대적 고용 부문으로 누가 들어가는지를 결정하고, 그곳에서의 생산활동에 필요한 오리엔테이션을 제공하는 말하자면 ‘입국관리국(immigration service)’이 바로 중등학교와 대학 등 교육기관이라고 로널드 도어(Ronald Dore)는 파악했다.18
근대사회라면 어느 곳이나 학교가 발급하는 졸업증서 즉 학력이 근대 부문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자격이 되지만, 특히 그 학력이 ‘학문, 교육에 관한 이력’에서 ‘학교에 관한 이력’으로 급속히 의미 내용이 변화되는, 즉 어느 학교가 발급한 졸업증서인지에 따라―‘학교력(學校歷)’에 따라―그 효력이 현저히 달라지는 사회가 있다.19 그런 사회는 먼저 일본에서 출현했고, 1960년대 이후 한국도 그런 의미의 학력주의가 정착한 사회였다.
학력주의의 그늘
학력주의는 상향적인 사회이동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을 학교 진학을 통한 학력 취득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하여 한 사회의 교육 팽창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런데 그러한 순기능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와 사회이동의 관계에서 일본이 보이는 특질을 ‘학력주의’라는 개념으로 포착한 노르웨이의 사회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일본식의 학력주의가 지닌 또다른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선 이 제도(일본형 학력주의 제도: 인용자주)는 일단 어느 집단에 배치된 다음에는 계급의 변경이 극히 어렵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귀속주의적이다. 학력주의의 경우 생물적 출생(biological birth) 이후에 사회적 출생(social birth)이 일어난다는 점을 제외하면 귀속적으로 계급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느 계급에 소속되는가는 각 단계의 입학시험으로 결정된다.20
다른 말로 하면 학력을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은 입학시험을 통해 개방적인 능력주의적 경쟁의 형식으로 진행되더라도, 일단 학력이 취득되고 난 후에는 그것이 ‘제2의 신분’ 혹은 카스트제도처럼 귀속주의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일본의 학력주의가 지닌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력 또는 학교력은 어떻게 해서 ‘귀속주의적’으로 작동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 귀속주의적 작동 방식을 ‘학벌주의’라 하여 선험적으로 비난하기 전에 먼저 왜 사회에서는 그것을 선발 및 승진의 기준으로 그렇게 활용하는지부터 검토해 보자. 첫째는 학력이 지닌 ‘시그널’로서의 의미에 주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고용주는 사람들을 고용할 때 많은 응모자들의 능력을 식별해야만 한다. 그러나 객관적인 능력 측정 방법은 없으며 설사 그에 가까운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방대한 비용이 든다. 그래서 고용주는 응모자의 속성과 과거의 업무 경험, 학력 등 기존의 성취를 능력 시그널로 사용한다”21는 것이다. 이 시그널 이론은 특히 ‘학교 졸업자 일괄채용’ 방식이 지배적이고 종신고용제를 주로 하는 사회에서 기업주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왜 ‘경력’이나 실제적 기능보다는 학력 및 학교력을 중시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둘째로, 우리 사회에서 ‘학교력’ 자체가 발휘하는 독특한 생산 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일류대학 출신들은) 본인의 능력에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지만 그들은 사회 곳곳에 있는 동창·선후배를 이용할 수 있다. 하다못해 도장 하나를 잘 받아오기라도 한다”고 하는 L제약회사 김상무의 말22은 우리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학연 중시의 독특한 생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왜 기업들이 사원 채용에서 특정 학교력을 선호하는지, 그 선택이 갖는 나름의 ‘합리성’을 설명해 준다.
이처럼 학력 및 학교력이 그 혹은 그녀가 학교에서 학습한 지식과 학문, 기능이 무엇인지와는 별개로 그 자체로 귀속주의적인 효과를 발휘하게 되면 직업 선발의 결과가 특정 학력 및 학교력에 심하게 편중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예컨대 동아일보의 조사에 따르면, 1989년 당시 “6개 경제부처 및 산하 8개청의 국장 이상 고위관료 중 출신 지역은 영남이 37.1%, 서울 17.1%, 충청 18.6%, 호남 13.9%였으며, 출신학교는 서울대(54.2%)가 2위(고려대 9.8%), 3위(연세대 5.2%)에 비해 압도적”23인 상황이 되었다. 또 1994년 당시에도 30대 그룹의 임원 중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 52.8%를 점한다거나,24 같은 해 660개 상장회사 임원 중 43.6%가 앞의 3개 대학 졸업자25였다고 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정년까지 지속되는 학력 및 학교력의 결정력에서 비롯된 불이익은 취업 이후에 쌓은 경력이나 이루어낸 업적을 통해 만회하기 쉽지 않다. 예컨대 1976년, 대학입학 예비고사에 두 번이나 떨어진 아들에게 삼수를 강권하던 어느 아버지는 “3년 전 10여 년간 재직하던 직장에서 ‘고졸’이란 학력 때문에 밀려난 후 자식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을 나오게 하겠다는 집념을 갖게 됐다. 그는 직장동료들 간에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유능한 실력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대졸’만을 간부로 등용하는 회사 측이 이제는 고참이 된 그를 더 이상 둘 곳이 없게 되자 물러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26 인생의 특정 시점―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이 고교 3학년 말 혹은 대학입시 시점이 되는데―에서 특정 학력이라는 패스포트를 획득하는데 실패한 사람에게 이후 ‘패자부활전’의 기회는 좀처럼 부여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번 생에서 그것을 포기한’ 아버지는 결국 ‘자식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을 나오게 하겠다는 집념’ 쪽으로 사회이동의 목표점 좌표를 다시 설정하게 된다. 이것이 앞서 갈퉁이 갈파한 학력의 ‘귀속주의’적 효과였다.
이렇게 정착한 학력주의가 드리운 짙은 그늘에 대해 국가도 단순히 손놓고 있지는 않았다. 정부는 학력 차별을 철폐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취했다. 시간 순서대로 간단히 정리해 보면, 정부는 1972년 6월, 사법 및 행정고시를 비롯한 모든 공무원 임용시험에 학력제한을 철폐하고 사법 및 행정고시의 예비시험제도를 폐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27 1974년에는 「직업훈련법시행규칙」을 개정하여 기능검정수험자격 기준을 철폐해 “학력과 경력에 구애없이 기능을 소유한 자는 누구나 원하는 급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28 한편 1976년에는 채용 시험에 학력제한을 두고 있던 한전, 무역진흥공사, 석유공사 등 국영기업체에도 학력제한 철폐를 지시하는 한편, 일반 기업체에도 학력제한을 두지 말도록 ‘계몽’하는 공한을 보냈다.29 당시 상공부장관 장예준(張禮準)이 전국 3천여 기업체에 보낸 공한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당부되어 있었다.
1. 10대의 기능사원을 인간적인 바탕 위에 보살필 것. 2. 종업원을 채용할 때 출신학교나 학력에 집착하지 말고 기술과 능력에 따라 공모할 것. 3. 인문계나 상업학교 출신만을 우대하지 말고 실제 제조부문에 종사하는 사원에 대해 보수와 승급 면의 냉대를 시정할 것. 4. 기업이 필요한 기능공은 스카웃하지 말고 스스로 양성토록 할 것.30
그러나 민간의 고용 결정을 국가가 좌지우지할 수는 없었다. 예컨대 1989년의 한 일간지에 보도된 것처럼 “신입사원 원서접수를 하면서 ㄱ대학 졸업자 원서는 오른쪽 서랍에, ㄴ대학은 왼쪽 서랍, 지방대학 졸업자들 원서는 의자 밑에 따로 마련된 상자속에 분류해 받아 오른쪽 서랍은 무조건 합격, 왼쪽 서랍도 별 하자가 없는 한 합격, 의자 밑 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31는 식이 횡행해도 국가가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국가는 우리 사회에 정착한 학력주의를 직접 간접으로 경험한 한국인들의 세계관을 바꿀 수는 없었다. 동아일보사가 1980년 초 각계각층 2천2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4.5%가 ‘연줄이나 배경이 없으면 출세하기 힘들다’고 대답했다.32 여기서의 ‘연줄이나 배경’에는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지연(地緣)’도 포함되지만 또한 특정 학교 출신이라는 ‘학연(學緣)’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학연이 승진을 좌우한다는 그런 믿음이 점차 확산되어 갔다. 10년 후인 1990년에 현대사회연구소가 1,925명 행정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83.2%의 응답자가 출세의 조건으로 ‘연줄 및 배경’을 꼽았다. 다시 말해 인사의 기준이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지연·학연 등 연고에 따라 좌지우지된다고 믿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33 또 1994년 말에 매일경제신문사와 한국개발연구원 부설 국민경제교육연구소가 공동으로 기획하여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 조사에서 “고졸의 학력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직업을 얻고 대졸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해도 대학에 진학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진학한다고 답한 사람은 64.5%, 어떤 경우라도 꼭 대학에 진학한다고 답한 사람도 24.5%에 달했다.34
비단 학력·학교력에 따른 차별만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엔 ··· ‘학력차별’ 이외에도 시급히 철폐돼야 할 ‘차별’이 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는 사무계와 생산계 간의 차별이요, 또 다른 하나는 남녀 근로자 간의 차별이다”35 라는 1976년의 한 신문 사설에서 드러나듯이 사무직과 생산직 간의 다양한 형태의 차별도 직업세계에서 심각한 문제였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기본급 외에 시간급의 요소가 가미돼 구조 자체가 사무직과 다르게 편성돼’ 있기 때문에 ‘같은 고졸이라도 사무직인 경우 연한에 따라 대리·과장으로 승진하고 기능직은 그대로 일용근로자와 마찬가지’인 승진체계로 불이익을 받았고, ‘효성알미늄의 작업모자 색깔에 의한 신분 표시, 대우조선의 색깔 있는 신분증’을 폐지해달라고 요구했다.36
한편, 취업세계에는 성차별 문제도 존재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1975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미국의 10분의 1, 서독의 8.5분의 1, 일본의 7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저임금의 노동구조 속에서 여성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남성 노동자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열악했다.”37 1988년도 시점이 되어서도 성차별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해의 국내 50대 그룹의 대졸자 취업 상황을 보면 ‘남자가 95.8%고 여자가 4.2%’에 불과했고, 여성 지원자에게 ‘면접 때 아직도 전통적 성차별 가치관을 강요’한다거나 대학에 추천을 의뢰할 때에도 ‘키 몇 ㎝ 이상, 용모 단정 등의 단서가 추천 의뢰에 딸려’ 오고, 남학생들과 똑같은 가치의 학점을 따냈는데도 ‘직장의 꽃’이나 ‘커피나 끓이는 사람’이 되도록 강요당했다.38
높은 학력 또는 학교력을 취득하여 선호하는 직업세계로의 파이프에 진입하려는 경쟁은 1960년대 이후 시간이 갈수록 격화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이른바 ‘7.30 교육개혁’ 조치가 시행된 이후에는 대학 입학을 둘러싼 경쟁이 일시적으로 완화되기는 했으나 결국 최종적인 목표점인 직업세계로 들어가는 파이프의 입구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하였고 그것은 이른바 ‘학력인플레’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1984년 10월, 한국개발연구원은 “국내 노동시장의 학력별 예상 수급분석을 통해 82년부터 91년 사이 10년 동안 대학 졸업자의 수요는 1백17만 8천 명에 불과한 반면 공급은 2백9만 6천 명이나 돼 91만 8천 명의 공급과잉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39 대학 졸업자의 급증은 물론 졸업정원제의 실시와 대학 입학 정원 확대가 빚은 직접적인 결과였다. 1985년 여론은 이렇게 지적했다.
내년 2월에 졸업하는 대학생 수는 지난해보다 무려 20.6%나 늘어났다. 우리 경제의 성장추이를 생각할 때 대졸자에게 줄 일자리가 1년만에 20.6%씩 늘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 너무나 높은 우리사회의 대학진학률을 떨어뜨릴 조치도 필요하다. 고교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은 일본이 28.6%, 서독이 15.1%인데 반해 우리는 33.9%나 된다.40
결과적으로 갑자기 늘어난 대졸자들이 이전에는 고졸자가 취업하던 부문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예컨대 “최하위직 공무원인 9급행정·공안직 공무원의 경우 지난 81년에는 합격자 중 대졸 이상이 56명으로 구성비가 1.1%에 불과하던 것이 85년에는 11.3%로 5년 사이 10배 이상 증가했다. 또 대학 재학 중이거나 초급대학을 졸업한 합격자도 81년의 17.4%에서 85년에는 두 배에 가까운 30.4%로 급격히 증가했다.”41 이것을 사회학자들은 ‘학력인플레’라고 불렀다.
학력주의의 상징적 폭력성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정착한 학력주의는 한편으로는 교육열을 고조시키고 교육 팽창을 가속화하면서도 또 그 그늘로 학력별 임금격차나 학교력에 따른 승급·진급에서의 차별과 같은 문제를 야기했다. 그런데 여기서 경제적 소득이나 직급과 같은 객관적 보상에서의 학력 간 격차 문제 외에도 학력주의가 빚어낸 또다른 짙은 어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내로라할 학력을 갖지 못한 생산직 부문의 공장노동자에 대한 경멸의 시선이었다. 사회학자 구해근의 다음 지적에 귀를 기울여 보자.
사람들은 공장노동자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노동자들을 매우 경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노동자들은 낮고, 하찮고, 존경받을 수 없는 지위의 사람들로 간주되었고, 이런 사회적 태도는 일상언어와 대중매체에서 표현하는 공장노동자들의 이미지에서 자주 드러났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까지도, 이런 태도를 가장 분명하게 표출하면서 노동자들에게 큰 심리적 고통을 가져다 준 ‘공순이와 공돌이’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었다. 이는 예전의 하인과 비슷한 지위를 암시하는 것으로서, 공장에서 일하게 된 천박하고 하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뜻했다. 공순이와 공돌이라는 두 용어는 전통적인 유교적 지위체계가 육체적 노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변함없이 유지하면서 근대적 직업구조에 투사되었음을 보여준다.42
“신분적 우위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신분 하락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모두 학력을 신분 평가의 주된 기준으로 간주”43하는 학력주의의 이데올로기화가 ‘공돌이’, ‘공순이’라는 차별의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로 은연중에 “교육받지 못한 사람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에게 복종해야 하고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이데올로기를 공장노동자 스스로가 내면화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44
더구나 ‘공순이’로 불리던 여성 공장노동자는 생산직 노동자라는 차별적 시선에 더하여 성차별을 겪어야만 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1975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10분의 1, 서독의 8.5분의 1, 일본의 7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 공장노동자의 저임금 구조 속에서 여성 노동자는 남성 노동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임금을 감내해야 했다. “노동청의 『월간 노동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1977년 6월 현재 여성의 급여 총액은 월 4만 9,081원이다. 이 액수는 남성 노동자의 11만 8,174원의 41%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45 그녀들은 농촌에서 의무교육이나 중학교 교육만 마친 빈농의 딸들이었고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고등교육의 기회를 오빠나 남동생에게 양보한 채’, ‘서울에 가면 내가 하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던 공부를 동생들은 꼭 제대로 마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각오로 서울역에 내렸던 사람들이었다.46 “현실에서의 사회적·경제적 차별 위에 덧붙여진 ‘공순이’라는 이름은 이들에게 사회적 박탈감과 상실감을 가져왔고, 주변인이라는 자기비하 의식이 내면화되도록 만들었다.”47 ‘공돌이·공순이’라는 이름은 학력주의가 빚어낸 상징적 폭력의 산물이었다.
교육과 계층 형성
1960년대 이후 상전벽해(桑田碧海)라 찬탄할 수밖에 없는 변화가 이 나라 곳곳에서 펼쳐졌다. 논바닥을 가로질러 고속도로가 깔리고 한적한 어촌에 거대한 제철소가 들어섰으며 서울은 하늘을 찌를 듯한 회사 빌등으로 넘쳐났고, 곳곳에 산업단지가 들어섰다. 농촌에서 갓 올라온 이들이 매일 같이 서울역을 빠져나와 새로운 일자리와 살 곳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이 국민학교로,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그리고 대학교로 거대한 해일처럼 몰려들었다. 한편에서 진행되는 산업화·도시화와 또 한편에서 진행되는 급격한 교육 팽창, 1960년대 이후 동시에 진행된 이 두 사회적 격변은 이후 한국인의 의식과 행동, 삶을 지배하는 강력한 구조적 틀을 만들어냈다. 이 두 사회적 변화가 우리 사회의 계층 변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총체적으로 포착해 보자.
가리야 다케히코(苅谷剛彦)는 서구 사회와 비교하여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의 두 사회가 경험한 사회구조의 변화가 지닌 특질을 다음과 같이 포착한 바 있다.
30년을 한 세대로 할 때 일본과 한국 양국은 겨우 한 세대 안에 농업 중심 사회에서 피고용자 중심 사회로 직업구조가 거대하게 변화한 것이다. 농업에서 근대적 부문의 고용으로라는 사회 유동화가 급속하게 발생한 것이 이 두 사회의 특질이다. ··· 이러한 직업구조의 변화에 교육의 확대라는 추세를 결합시켜 보면 뒤늦게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과 한국 사회의 특질이 떠오른다.48
‘직업구조 변화와 교육 확대의 단기간 동시 발생’이 일본과 한국에서 확인되는데 그것은 산업혁명의 결과로 18, 9세기에 육체 노동직 중심의 노동 계급이 먼저 형성되고 난 후 오랜 시간이 흘러 20세기에 접어들어 중등교육의 팽창 현상이 나타나는 서구와 대비되는 특질이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중등교육 팽창의 결과로 육체 노동직 자제의 일부가 비육체 노동직에 참여하는 경향이 나타나지만 그 과정에서 학교교육은 육체 노동직 계층의 상향적 계층 이동에 유리하게 작동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저해하고 교란시키는 ‘재생산’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은 전통 부문인 농업 종사자의 자제가 중등교육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일부는 비육체 노동직, 또 일부는 육체 노동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단기간에 나타났고 따라서 산업화 과정에서 학교교육이 계층의 ‘재생산’보다는 ‘생산’, 즉 ‘계층 형성’이라는 구조적 효과를 발휘했다는 명제다.49 그는 1950년대 이후 일본의 직업구조 변동과 중등교육 팽창의 동시적 진행 과정에 대한 풍부하고 치밀한 실증적 검토를 통해 이 명제의 타당성을 일본의 경우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가리야가 참조한 갈리아니(Gagliagni, Giogio)의 연구에 따르면, 서구에서는 비농업 취업률의 상승 속도가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에 비해 매우 완만했다. 영국에서는 비농업 취업률이 1851년의 71.4%에서 1911년의 91.9%로 상승하기까지 60년이 걸렸고, 미국에서는 1900년의 62.5%에서 1950년의 88.1%로 상승하기까지 약 50년, 프랑스에서는 1926년의 61.3%에서 1975년의 89.7%로 상승하기까지 약 50여 년, 독일에서는 1925년의 69.5%에서 1965년의 90.1%로 상승하기까지 약 40년이 걸렸다. 그에 비해 일본에서는 1960년의 67.4%에서 1980년의 89.2%로 상승하기까지 겨우 2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50 그리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비농업 취업률이 1980년의 64.2%에서 2000년의 88.6%로 상승하기까지 2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의 경우 비농업 부문 취업자 비율이 1960년의 21.1%에서 1990년의 80.9%에 이르기까지 경제구조가 그야말로 혁명적으로 뒤바뀌는데 걸린 시간이 30년에 불과했다. 그리고 같은 기간 중학교 취학률은 30.0%에서 91.6%로, 그리고 고등학교 취학률은 18.8%에서 79.4%로 높아졌다.51 즉 산업화 과정과 후기중등교육 팽창 과정이 한 세대 안에 거의 동일한 페이스와 규모로 전개된 것이다. 따라서 교육 기회 특히 중등교육 기회의 확대와 취업 기회의 확대가 동일한 시기에 단기간에 급속도로 전개되었다고 하는 가리야의 입론은 한국에도 기본적으로 타당하다.
그렇다면 교육 팽창과 취업 기회 확대는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을 맺으며 전개되었을까. 다음 <표 3>에서 제시한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까지의 직종별 취업자의 학력 구성비는 교육 팽창이 계층 변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몇 가지 특징들을 도출해 보자.
첫째,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직종에서 취업자의 고학력화 현상이 확인된다. 중학교 졸업 이하 취업자의 비중이 줄어들고(65.9%→15.2%), 고등학교 졸업 취업자의 비중이 늘어나며(24.3%→47.4%), 전문대학 졸업자의 비중이 늘고(1.7%→13.4%), 대학교 졸업 이상 취업자의 비중이 늘어났다(9.2%→24.0%).
둘째, 직종별로 취업자의 학력 구성에 뚜렷한 차이가 확인된다. 관리·전문직의 3/4 이상은 전문대학 및 대학 등 고등교육 학력 소지자다(1975년 74.0%→ 2000년 81.9%)(이하 괄호 안의 두 수치는 1975년과 2000년 수치임). 관리·전문직은 압도적으로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 소지자가 점유하는 직종이다. 이와는 대조적인 직종은 생산직 기타 직종인데 그 대부분이 고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 소지자다(99.3%→93.6%). 이는 판매·서비스직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다(97.3%→81.4%). 중등교육 학력과 고등교육 학력 구성이 뒤섞여 있는 직종이 사무직 또는 사무직·기술공인데 그중 고교 졸업 학력 소지자는 1/2 가량(52.9%→43.9%)이다. 이들은 대부분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으로 상업고등학교 졸업자는 사무직으로, 공업고등학교 졸업자는 기술공으로 취업한 것으로 보인다. 고등교육 학력 소지자는 1/3에서 1/2 정도의 비중을 보인다(31.1%→53.8%). 학력이 직종으로의 배치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 3> 직종별 취업자의 학력 구성비: 1975〜2000
| 연도 |
학력 직종 |
중학교
졸업 이하 |
고등학교
졸업 |
전문대학
졸업 |
대학교
졸업 이상 |
계 실수 |
| 1975 | 관리·전문직 | 6.6 | 19.4 | 8.1 | 65.9 | 91,737 |
| 사무직 | 16.0 | 52.9 | 4.6 | 26.5 | 241,350 | |
| 판매·서비스직 | 67.6 | 29.7 | 1.1 | 1.5 | 78,949 | |
| 생산직 기타 | 82.0 | 17.3 | 0.4 | 0.3 | 987,024 | |
| 실수
(학력구성비) |
907,491
(64.9) |
339,597
(24.3) |
23,706
(1.7) |
128,266
(9.2) |
1,399,060
(100.0) |
|
| 1980 | 관리·전문직 | 5.7 | 24.4 | 11.6 | 58.2 | 262,375 |
| 사무직 | 11.4 | 64.4 | 5.2 | 19.0 | 575,111 | |
| 판매·서비스직 | 66.2 | 32.0 | 1.2 | 0.6 | 134,690 | |
| 생산직 기타 | 79.5 | 20.0 | 0.4 | 0.1 | 1,756,629 | |
| 실수
(학력구성비) |
1,567,120
(57.4) |
828,534
(30.4) |
68,030
(2.5) |
265,121
(9.7) |
2,728,805
(100.0) |
|
| 1985 | 관리·전문직 | 2.8 | 28.3 | 15.6 | 53.3 | 432,250 |
| 사무직 | 8.0 | 67.1 | 6.9 | 18.0 | 761,279 | |
| 판매·서비스직 | 55.8 | 37.8 | 2.7 | 3.7 | 176,577 | |
| 생산직 기타 | 66.7 | 32.6 | 0.6 | 0.1 | 2,045,747 | |
| 실수
(학력구성비) |
1,537,884
(45.0) |
1,368,510
(40.0) |
136,994
(4.0) |
375,175
(11.0) |
3,418,563
(100.0) |
|
| 1990 | 관리·전문직 | 1.9 | 24.0 | 17.4 | 56.6 | 656,221 |
| 사무직 | 3.9 | 62.1 | 10.0 | 23.9 | 1,169,478 | |
| 판매·서비스직 | 43.3 | 48.3 | 4.3 | 4.1 | 331,322 | |
| 생산직 기타 | 49.9 | 47.9 | 1.8 | 0.3 | 2,519,692 | |
| 실수
(학력구성비) |
1,459,867
(31.2) |
2,252,153
(48.2) |
291,116
(6.2) |
673,577
(14.4) |
4,676,713
(100.0) |
|
| 1995 | 관리·전문직 | 1.1 | 12.3 | 14.5 | 72.1 | 689,834 |
| 사무직·기술공 | 2.6 | 54.4 | 15.3 | 27.6 | 1,766,516 | |
| 판매·서비스직 | 26.3 | 60.3 | 9.3 | 4.2 | 220,962 | |
| 생산직 기타 | 41.6 | 55.1 | 2.7 | 0.7 | 2,542,435 | |
| 실수
(학력구성비) |
1,169,946
(22.4) |
2,579,829
(49.4) |
458,116
(8.8) |
1,011,856
(19.4) |
5,219,747
(100.0) |
|
| 2000 | 관리·전문직 | 1.8 | 16.3 | 17.3 | 64.6 | 909,097 |
| 사무직·기술공 | 2.4 | 43.9 | 21.0 | 32.8 | 2,221,496 | |
| 판매·서비스직 | 17.4 | 64.0 | 12.3 | 6.3 | 303,485 | |
| 생산직 기타 | 32.7 | 60.9 | 4.7 | 1.7 | 2,300,994 | |
| 실수
(학력구성비) |
873,163
(15.2) |
2,717,975
(47.4) |
769,851
(13.4) |
1,374,083
(24.0) |
5,735,072
(100.0) |
주) 취업자 실수는 1975년은 10인 이상 사업체의 취업자, 1980년 이후는 5인 이상 사업체의 취업자를 말한다.
자료) 『한국노동통계연감』 1976, 『노동통계연감』 1981, 1986, 1991, 1996, 2001
셋째, 시간이 흐르면서 직종별 학력 구성에 변화가 보인다. 관리·전문직은 여전히 고등교육 학력 소지자의 직종을 유지하지만, 점차 전문대학 졸업자의 비중이 높아진다(8.1%→17.3%). 사무직에서 중등교육(중학 및 고교) 학력 소지자의 비중이 점차 낮아진다(68.9%→46.3%). 이는 특히 주목할 만한 변화인데, 산업화 초기에는 상업고등학교 졸업자들이 은행이나 기업에 사무직으로 진출하는 비중이 많았으나 점차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그들이 대학 졸업자들로 대치되는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생산직 기타에서 압도적 비중을 점하는 중등교육 학력 소지자 중에서도 중학교 졸업 이하의 비중은 줄고(82.0%→32.7%), 고등학교 졸업자의 비중은 늘어난다(17.3%→60.9%). 판매·서비스직에서는 중학교 졸업 이하 소지자의 비중이 줄고(67.6%→17.4%) 고등학교 졸업자의 비중이 늘어나며(29.7%→64.0%) 전문대학 졸업자의 비중도 늘지만(1.1%→12.3%), 대학교 졸업 이상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크게 늘지는 않는다(1.5%→6.3%).
요컨대 이상에서 요약한 세 가지 변화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취득한 학력에 따라 진입할 수 있는 직종 집단이 뚜렷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대학교 졸업 이상은 관리·전문직으로, 중학교 졸업 이하는 생산직으로, 고등학교 졸업자 중 일부는 예컨대 상업계 고교의 일부 졸업생처럼 사무직으로 또 일부는 공업계 고교의 일부 졸업생처럼 기업의 기술직으로 진입했고 또 대부분은 육체노동 중심의 생산직으로 진입했다. 이는 학력이 ‘계층 생산’ 또는 ‘계층 형성’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으로 포착할 수 있다.
교육 기회의 평등
1960년대 이후의 한국에서 교육이 구조적으로 계층 재생산보다는 계층 생산의 기능을 수행하자, 학력은 이전에 농업 부문에 속해 있던 사람들의 자제를 근대적 비농업 부문으로 이동시켜 크게는 정신 노동직과 육체 노동직 계층으로 분류·배치하는 준거로 작동했다.
학교교육이 계층을 형성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이 까다로운 학술적 검토를 거칠 필요도 없이 일상적, 가시적으로 확인될수록 교육을 통한 사회이동의 달성이라는 포부는 고조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주된 ‘구조적’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열 현상이 후발 자본주의국가들 중에서도 산업화와 중등교육 팽창이 ‘동시적’으로 진행된 동아시아 사회에서 주로 나타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유교문화’ 등 문화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현상이 왜 20세기 후반에 집중하여 전개되는가를 설명하려면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산업화·도시화 과정을 통해 전통적인 경제 부문이 축소되고 새로운 근대적 경제 부문과 취업 기회가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급격히 늘어난다.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패스포트’를 발급하는 가장 지배적인 기구가 학교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사교육을 포함한 온갖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그곳으로 쇄도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그 ‘합리성’이 이끄는 교육열이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교육의 계층 생산 혹은 계층 형성을 따지는 일과는 별개로 또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상향적 사회이동 기회의 ‘개방성’ 또는 ‘평등성’을 따지는 것이다. 다케우치 요(竹內洋)의 일본의 메리토크라시와 관련된 지적에 주목해 보자.
사회이동은 산업구조와 직업구조의 변화로 인한 ‘강제이동’과 경쟁으로 인한 지위의 교체라는 ‘순수이동’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업적주의의 진전을 증명하는 것은 사실적인, 즉 전체적인 사회이동의 크기가 아니라 ‘순수이동’의 크기다. 따라서 “‘교체이동’(순수이동—인용자)의 규모를 측정하는 방법이 확립되기 전까지 현대사회의 특성이라고 하는 ‘업적주의’로의 추세를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부모보다 고학력을 취학하여 화이트칼라나 전문기술직으로 실제로 상승 이동을 하게 되면 설사 그것이 ‘강제이동’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메리토크라시적인 선발을 ‘실감’하게 된다. 전후 부흥과 성장이 일어났던 1950년대부터 60년대 전반까지 사회적 맥락은 그런 것이었다.52
다케우치 요가 말한 ‘강제이동’과 ‘순수이동’과 관련되는 유사 개념으로 절대적 이동(absolute mobility)과 상대적 이동(relative mobil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출신 계급과 도달 계급이 다른 사람들이 즉 세대 간 사회이동을 경험한 사람들이며 그런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인 총이동율(total mobility rates)이 절대적 이동률이다. 총이동률이 가리키는 사회이동율은 세대 간 계급구조의 변화에 기인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총이동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적 의미에서의 기회 구조가 개방적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53
즉 ‘절대적 이동’ 중에는 1960년대의 산업화·도시화로 인해서 광범하게 일어난 ‘강제적 이동’이 큰 비중을 점한다. 가리야가 말한 바, 일본과 한국에서 일어난 ‘교육을 통한 계층 형성’은 다케우치 요가 말하는 ‘강제적 이동’으로 인해 전개된 사회이동에 해당된다. 그런 변화의 규모가 클수록 사람들은 메리토크라시적인 선발을 ‘실감’하게 된다. 평생을 논밭에서 일하던 빈농의 자제들 중 어떤 이는 대학을 나와 넥타이 매고 양복 입고 출퇴근하는 대기업 사무직 사원이 되는 사회이동을 경험한다. 이 ‘실감’은 학력의 효과를 신뢰하게 만들어 다른 이들의 교육열까지 가열시킨다.
그런데 그 학력 취득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개방적인가, 교육 기회 자체가 평등하게 분배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달리 말해 근대적 부문으로의 진입에 필요한 패스포트를 취득하는데 상대적으로 유리하거나 또는 불리한 계층은 없는가 하는 문제다. 이는 다케우치 요가 말하는 ‘순수 이동’의 가능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와 관련해 아리타 신(有田伸)은 다음과 같은 입론을 제시한 바 있다.
한국에서의 중등·고등교육 기회의 폭발적 확대는 결코 계층구조의 순수한 개방성 증대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전반적인 교육 확대와 단순한 교육격차의 감소 추세 속에서 출신 계층은 ‘보다 미세한 교육 달성 수준의 차이’를 경유함으로써 본인의 도달 계층에 대해 이전까지와 마찬가지 영향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에서는 ‘산업화의 진전에 수반해 사회의 개방성이 서서히 증대되어 간다’고 하는 경향이 반드시 충분히 확인되지는 않는 것이다.54
아리타 신의 이런 입론의 타당성은 좀 더 실증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 그가 말하는 ‘보다 미세한 교육 달성 수준의 차이’란 바꿔 말하자면 예컨대 ‘누가 서울대에 들어가는가’ 여부에 출신 계층이 만들어내는 차이이며, 그것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확언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이 실재로서 존재하는 만큼 교육 기회의 분배는 불평등한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 기회 배분의 불평등 문제는 대중들이 쉽게 간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 사회적인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어려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교육을 통한 상향적 사회이동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고 그 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더구나 가장 강력한 교육선발 기제인 대학입시가 1969년 이후는 국가의 직접적인 관리 하에서 매년 진행되며 그 입시가 ‘객관적’인 학력 평가의 형태를 띠게 되면서 학력에 따른 선발 문제에 대해 불평등 이슈를 제기하기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개인의 출생과 성장에 작용한 가정 배경 요인, 학력 취득과 이후의 지위 획득 과정을 한 눈에 포착할 수 있는 종단적인 조사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예단하기는 어려우나, 교육이 계층 생산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이는 시기에도 엘리트 배출의 산실로 여겨진 서울대와 같은 대학의 입학 기회에서 특정 집단 출신이 상대적으로 유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에 한국에서의 엘리트 형성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보다 상세히 검토하기로 한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 필자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기존의 PDF 파일을 제공하던 서비스를 중단합니다. 대신 아래의 ‘인쇄(Print)하기’ 클릭한 후, ‘Ctrl + P’를 누르시면 칼럼 내용을 인쇄할 수 있습니다. |
각주
- 강인철 (1999), 「한국전쟁과 사회의식 및 문화의 변화」, 정성호 외, 『한국현대사의 재인식 7―한국전쟁과 사회구조의 변화』, 백산서당, 254-255쪽.
- 「大卒 就職最前線 <3> 치열한 入社경쟁」 『每日經濟新聞』 1985.10.29.(3).
- 「社說 就職과 學歷과 교육」 『朝鮮日報』 1981.9.10.(2).
- 「大學卒業生을 위한 就職受驗가이드 (1) 大韓通運」 『每日經濟新聞』 1966.9.13.(3).
- 苅谷剛彦 (1991), 『學校·職業·選拔の社会学-高卒就業の日本的メカニズム』,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특히 4장 참조.
- 「大企業 ‘人材’쟁탈전 치열」 『朝鮮日報』 1978.2.7.(1).
- 「大學卒業生을 위한 就職受驗가이드 (4) 大韓海運公社」 『每日經濟新聞』 1966.9.16.(3).
- 「대기업 입사 ‘신종 학벌’순」 『한겨레신문』 1996.10.23.(1).
- 金倉宜 (1990), 「우리나라企業의 終身雇傭制에 관한 硏究」, 『勞動經濟論集』, 13, 韓國勞動經濟學會, 117쪽.
- 「實質 賃金上昇 年 8.6%뿐」 『東亞日報』 1971.3.13.(3).
- 安春植 (1982), 『終身雇用制の日韓比較』, 東京: 論創社, p.275.
- 金麟壽 외 (1969), 「좌담회 우리는 이런 社員을 뽑는다」, 『月刊中央』, 10월, 188쪽.
- 「社說 보다 넓어진 就職의 門」 『朝鮮日報』 1973.9.27.(3).
- 노동부 (1982), 『직종별임금실태조사보고서 1981』, 노동부, 27쪽.
- 朴丁三 (1979), 「르뽀 人力難 속의 低賃金實態」, 『新東亞』, 3월, 228쪽.
- 「정부 ‘賃金格差해소안’ 확정」 『每日經濟新聞』 1979.2.14.(7).
- 天野郁夫 (1982), 『敎育と選拔』, 敎育學大全集 5, 東京: 第一法規, p.200.
- Dore, Ronald P. (1976), The Diploma Disease―Education, Qualification and Development, CA: Berkerl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2.
- 天野郁夫 (2005), 『學歷の社會史―敎育と日本の近代』, 東京: 平凡社, p.266.
- OECD敎育調査團(編), (1976), 深代惇郞(譯), 『日本の敎育政策』, 東京: 朝日新聞社[OECD (1971), Review of National Politics for Education, Japan], p.249.
- 竹內洋 (1996), 『日本のメリトクラシー―構造と心性』,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p.57.
- 「大卒 就職最前線 <4> 名門大출신 選好」 『每日經濟新聞』 1985.10.30.(3).
- 「公職者 변화의 시대 방황의 現住所 (6) 못벗어난 地緣 學緣 갈등」 『東亞日報』 1989.6.19.(3).
- 「서울출신34%, 서울대는 28%」 『朝鮮日報』 1994.4.10.(7).
- 「올 상장사 任員 줄었다」 『每日經濟新聞』 1994.9.5.(13).
- 「再修生 愼重한 대책을…(6) 一流病」 『京鄕新聞』 1976.2.6.(7).
- 「公務員시험 學歷制限 철폐」 『京鄕新聞』 1972.6.1.(1).
- 「學ㆍ經歷제한없애 노동청 能力따라 技能檢定 받게」 『每日經濟新聞』 1974.5.16.(4)
- 「政府管理業體 採用試에 學歷制限 철폐」 『東亞日報』 1976.2.21.(1).
- 「張상공, 全國企業體長에 公翰」 『每日經濟新聞』 1976.7.24.(7).
- 「公正사회로 가는 길 (12) 골 깊어지는 學歷重視」 『京鄕新聞』 1989.8.3.(10).
- 「韓國社會 그 非理와 弊習 <14> 연줄과 편가름病」 『東亞日報』 1980.8.27.(3).
- 「한국인 診斷 <22> ‘연줄’ 너무 따진다」 『東亞日報』 1990.7.8.(5).
- 「한국의 대학생 (2) 1부 經濟를 보는 눈」 『每日經濟新聞』 1995.3.3.(9).
- 「社說 ‘能力本位’의 建設」 『朝鮮日報』 1976.10.30.(2).
- 「勞使분규 계기로 본 ‘勞務관리’ 實相과 課題 <1> 職種간 차별」 『每日經濟新聞』 1987.8.25.(7).
- 길밖세상(편) (2001), 『20세기여성사건사―근대 여성교육의 시작에서 사이버 페미니즘까지』, 여성신문사, 204쪽.
- 金永模 (1999), 「제2의 入試 大卒者 취직전쟁」, 『月刊中央』, 11월, 319쪽.
- 「就職戰線 <9> 大卒量産」 『每日經濟新聞』 1984.10.3.(11).
- 「大卒 就職最前線 <9> 對策은 없는가」 『每日經濟新聞』 1985.11.6.(3).
- 「學歷인플레 公務員사회로 확산」 『京鄕新聞』 1986.2.17.(11).
- 구해근 (2002), 신광영(역),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창작과비평사[Koo Hagen (2001), Korean Workers―The culture and politics of class formation, Cornell University Press], 189쪽.
- 구해근 (2002), 신광영(역),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창작과비평사[Koo Hagen (2001), Korean Workers―The culture and politics of class formation, Cornell University Press], 193쪽.
- 구해근 (2002), 신광영(역),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창작과비평사[Koo Hagen (2001), Korean Workers―The culture and politics of class formation, Cornell University Press], 194쪽.
- 길밖세상(편) (2001), 『20세기여성사건사―근대 여성교육의 시작에서 사이버 페미니즘까지』, 여성신문사, 204쪽.
- 길밖세상(편) (2001), 『20세기여성사건사―근대 여성교육의 시작에서 사이버 페미니즘까지』, 여성신문사, 203쪽.
- 길밖세상(편) (2001), 『20세기여성사건사―근대 여성교육의 시작에서 사이버 페미니즘까지』, 여성신문사, 201-202쪽.
- 苅谷剛彦 (2001), 『階層化日本と敎育危機―不平等再生産から意慾格差社會へ』, 東京: 有信堂, p.10.
- 苅谷剛彦 (2001), 『階層化日本と敎育危機―不平等再生産から意慾格差社會へ』, 東京: 有信堂, p.11.
- Gagliani, Giogio (1985), “Long-Term Changes in the Occupational Struture”, European Sociological Review, 1(3), p.198.
- 비농업취업인구 자료는 통계청, 『한국통계연감 1961』 및 『한국통계연감 1993』 자료, 취학률 자료는 『한국의 사회지표 1979』 및 『한국의 사회지표 2005』 자료에 의거했다.
- 竹內洋 (1996), 『日本のメリトクラシー―構造と心性』,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p.14.
- 박현준 (2021), 『세대간 사회이동의 변화』, 박영스토리, 30쪽.
- 有田伸 (2006), 『韓国の敎育と社会階層―学歴社会への実証的アプローチ』,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p.263.
서울교육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식민교육사 및 교육역사사회학, 동아시아근대교육의 비교사회사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식민지 초등 교육의 형성』(교육과학사, 2000), 『근대 동아시아의 학생문화』(서해문집, 2018), 역서로는 야나기 하루오의 『학급의 역사학』(교육을바꾸는책, 2026), 가리야 다케히코의 『대중교육사회의 형성』(학지사, 2023), 고마고메 다케시의 『식민지제국 일본의 문화통합』(공역, 역사비평사, 2008)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