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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육의 문제를 푸는 책들(8) – “가르침은 언제나 누군가의 편이다”

#1513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26.05.14

 Joe L. Kincheloe, 『Key Works in Critical Pedagogy』 (Sense Publishers, 2011) 비평

                                                                                                                                                                                                                                                                                                                           

 

수업 시간에 교사는 무엇을 하는가. 지식을 전달한다. 기술을 가르친다. 사고력을 키운다. 이것이 우리가 수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그림이다. 그리고 이 그림 안에서 교사는 중립적인 존재다. 특정 이념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지식을 공정하게 전달하는 사람.

 

조 킨첼로(Joe L. Kincheloe)는 이 그림이 환상이라고 말한다. 어떤 내용을 가르치고 어떤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가. 누구의 역사를 정사(正史)로 다루고 누구의 역사를 주변으로 다루는가. 어떤 아이의 언어가 ‘표준’이 되고 어떤 아이의 언어가 ‘교정’의 대상이 되는가. 어떤 종류의 지식이 시험에 나오고 어떤 종류의 앎은 학교 밖으로 밀려나는가. 이 모든 결정들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 결정들 안에는 권력이 있고, 이념이 있고, 누군가의 이익이 있다.

 

『Key Works in Critical Pedagogy』(2011)는 조 킨첼로가 평생에 걸쳐 쌓아온 비판교육학의 핵심 논문들을 엮은 책이다. 그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계보를 잇는 북미 비판교육학의 대표적 사상가로, 2008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까지 교육을 사회 변혁의 도구로 사유했다. 이 책은 그의 지적 유산을 한 권에 담은 일종의 사상적 초상화다. 교사에게 불편한 책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책이다.

 

 

교육은 언제나 누군가의 편이다

 

비판교육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저항감을 느끼는 주장이 있다. 교육은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 학교는 기존의 사회질서를 재생산하는 기관이라는 것.

 

이것이 왜 불편한가. 교사들은 대체로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돕고 싶어서 교직을 선택했고,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 그런데 킨첼로는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라 효과다. 그리고 그 효과를 보려면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물어야 한다.

 

비판교육학의 핵심은 학교가 반드시 기존 질서를 재생산한다는 주장에 있지 않다. 오히려 학교는 기존 질서를 재생산할 수도 있고 변화시킬 수도 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는 데 있다. 교육은 언제나 어떤 가치와 관점, 어떤 미래를 선택하는 행위다.

 

그가 즐겨 드는 예가 있다. 미국의 역사 교과서는 오랫동안 콜럼버스를 ‘발견자’로, 서부 개척을 ‘문명화 과정’으로 가르쳐왔다. 이 서사 안에서 원주민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배경이 된다. 이것이 ‘사실’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서사를 만들고 유통시킬 권력을 가진 쪽이 오랫동안 그렇게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킨첼로는 이것을 가리켜 지식의 정치학(politics of knowledge)이라고 부른다. 어떤 지식이 공식적인 교육과정에 포함되는지, 어떤 지식이 배제되는지는 결코 순수하게 학문적인 결정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결정이며, 그 결정 안에는 누군가의 세계관과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있다.

 

“교육과정은 문화적 정치의 형태다. 그것은 어떤 지식이 가치 있는지, 누구의 역사가 기억될 가치가 있는지, 어떤 삶의 방식이 정상인지를 규정한다.”

 

이 말 앞에서 자신의 수업을 떠올리는 교사라면, 불편한 질문들이 따라온다. 나는 지금 누구의 이야기를 가르치고 있는가. 내 수업에서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비판적 의식이란 무엇인가

 

킨첼로의 사상적 뿌리는 파울로 프레이리다. 프레이리는 교육을 억압받은 자들의 해방 도구로 보았고, 그 핵심에 의식화(conscientization)라는 개념을 두었다. 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길러내는 것이다.

 

킨첼로는 이 프레이리의 유산을 21세기의 맥락으로 확장한다. 그가 말하는 비판적 의식은 단순히 사회 문제를 아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다.

 

한 장면을 보자. 저소득층 학생이 많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꾸 지각을 하고 숙제를 안 해온다. 전통적인 접근은 이것을 아이들의 태도 문제나 가정 교육의 문제로 본다. 비판교육학적 접근은 다르게 묻는다. 이 아이들이 살고 있는 환경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왜 이 동네에 이 아이들이 살게 되었는지, 학교의 규칙이 특정 계층의 삶의 리듬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묻는다. 문제를 개인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구조 안에서 찾는 것이다.

 

킨첼로는 이것을 비판적 교사(critical teacher)의 과제라고 부른다. 비판적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온 사회적·역사적·경제적 힘들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 힘들이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임을, 따라서 바꿀 수 있는 것임을 학생들이 깨닫도록 한다.

 

 

교사는 지식인이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는 주장 중 하나는 교사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킨첼로는 교사를 ‘변혁적 지식인(transformative intellectual)’으로 정의한다. 이 개념은 동료 비판교육학자인 헨리 지루(Henry Giroux)와 함께 발전시킨 것이다.

 

교사를 지식인으로 보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교사는 단순히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교육과정을 전달하는 기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학생들의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사 연구자(teacher-as-researcher)’라는 개념도 발전시킨다. 교사는 자신의 교실을 연구의 공간으로 삼아야 한다. 이 아이들은 왜 이것을 어려워하는가. 내 수업의 어떤 구조가 특정 아이들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가.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예시가 누구의 경험을 전제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교사 스스로 던지고 탐구하는 것이 교사의 지적 실천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따라온다. 수업 준비에, 행정 업무에, 생활지도까지, 교사에게는 이미 할 일이 넘친다. 킨첼로도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이 성찰을 포기하는 순간, 교사는 기존 질서를 재생산하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교사 자신도, 학생들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자신의 실천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않을 때, 그 실천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작동한다. 그 누군가는 교사도 학생도 아닌 경우가 많다.”

 

 

포스트형식주의 — 다른 방식의 앎

 

킨첼로가 이 책에서 발전시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 있다. 포스트형식주의(postformalism)다. 이것은 기존의 형식적 사고—피아제식의 추상적·논리적 사고를 최고 단계로 보는 관점—를 넘어서는 인식론이다.

 

전통적인 서구 인식론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는 최고의 인식 형태로 여겨진다. 감성, 직관, 몸의 앎, 이야기와 은유를 통한 앎은 그보다 낮은 단계로 취급된다. 킨첼로는 이 위계 자체가 특정 문화와 계층의 앎의 방식을 특권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것이 교실과 무슨 관계인가. 학교에서 보상받는 앎의 방식을 생각해보라. 시험에서 측정되는 것은 주로 언어적·논리적 사고다. 그런데 아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안다. 몸으로 알고, 감각으로 알고, 공동체의 이야기를 통해 알고, 실천적 경험을 통해 안다. 이 다양한 앎의 방식들이 학교 안에서 체계적으로 평가절하될 때, 그런 앎의 방식을 가진 아이들—흔히 비서구권, 노동계층, 소수자 배경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실패자가 된다.

 

한 장면을 상상해 보자.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집에서 조부모에게 들은 이야기, 마을 공동체의 지혜, 몸으로 배운 기술들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학교의 언어와 기준 안에서 이 앎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아이는 ‘배경지식이 부족한 아이’, ‘언어 발달이 늦은 아이’로 분류된다. 킨첼로의 포스트형식주의는 이 분류 자체를 문제 삼는다. 부족한 것은 아이의 앎이 아니라, 그 앎을 볼 수 있는 학교의 눈이다.

 

 

한국 교실에 비추어 보면

 

비판교육학의 렌즈로 한국 교육을 바라보면, 몇 가지 장면이 새롭게 보인다.

 

첫째, 교육과정의 정치학이다. 한국의 국가 교육과정은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드는가. 그 안에 어떤 역사관, 어떤 가치관, 어떤 계층의 경험이 전제되어 있는가. 이 질문들은 불편하지만 필요하다. 교과서가 ‘객관적 사실’처럼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정말 중립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 관점이 오랫동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왔기 때문이다.

 

둘째, 수능이라는 단일한 앎의 기준이다. 수능은 특정 유형의 인지 능력—언어적·분석적·속도 지향적 사고—을 측정한다. 이 기준에서 멀리 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실패를 경험한다. 킨첼로의 언어로 말하면, 수능은 특정 계층과 특정 앎의 방식에 유리하게 설계된 제도다. 그리고 특정 아이들이 이 기준에서 탈락하는 것은 교육의 우연한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특정 집단에게 유리한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비판교육학은 그것을 우연한 실패가 아니라 제도가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의 일부로 해석한다. 이것이 불편한 주장인 이유는, 문제를 아이가 아닌 제도에서 찾는 순간, 그 제도를 만들고 유지해온 우리 모두가 문제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교사의 역할이다. 한국에서 교사는 국가 교육과정의 충실한 전달자로 훈련된다. 킨첼로가 말하는 변혁적 지식인으로서의 교사—교육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자신의 실천을 성찰하고,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교사—는 한국 교육 시스템 안에서 어느 정도나 가능한가. 교사의 자율성이 구조적으로 제약된 환경에서 비판교육학은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가.

 

 

그러나 남는 아쉬움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따라오는 긴장이 있다. 비판교육학의 진단은 날카롭고 정확하다. 그런데 처방은 어디에 있는가.

 

킨첼로는 교사가 비판적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비판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과정이 민주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입시가 있고, 교육과정이 국가에 의해 관리되고, 학교가 관료적 구조로 운영되는 현실에서 구조에 대한 분석은 풍부하지만, 교실 수준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안내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비판교육학은 종종 이 간극에서 비판을 받는다. 구조적 억압을 날카롭게 분석하지만, 그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교사에게 실질적인 도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비판하는 것과 그 현실 안에서 구체적으로 다르게 실천하는 것 사이의 거리는 멀다.

 

또 비판교육학이 학생을 억압받은 존재로, 교사를 해방의 사도로 보는 구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 구도 자체가 또 다른 권력 관계를 내포한다. 학생을 해방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순간, 교사는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권위자가 된다. “내가 너의 의식을 깨워주겠다”는 선의 속에, 학생은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로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책은 쉽지 않다. 킨첼로의 글은 학술적이고 밀도가 높다. 교사를 독자로 상정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현장 교사가 이 책을 읽으려면 상당한 인내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맺으며: 교사들에게

 

그럼에도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그것이 교사에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가르치는가. 내 수업은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는가.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이 질문들은 불편하다. 그러나 이 불편함이 없는 교육은, 킨첼로의 언어로 말하면, 이미 어떤 답을 전제하고 있는 교육이다.

 

비판교육학은 교사에게 혁명가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성찰하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한다.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 누구의 이야기인지, 누가 이 수업에서 보이지 않는지, 어떤 아이의 앎이 이 교실에서 인정받지 못하는지를 묻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한다.

 

킨첼로는 이렇게 쓴다.

 

“비판적 교사는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올바른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올바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킨첼로가 평생 교육에서 추구한 것이었고, 이 책이 교사에게 남기는 유산이다. 교실은 중립적 공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실 안의 교사는 언제나 선택 앞에 서 있다. 그 선택을 의식하며 가르치는 것과 의식하지 못한 채 가르치는 것 사이에는, 교실이 재생산의 공간이 될지 변화의 공간이 될지를 가르는 큰 차이가 있다.

 

 

<교실 적용 팁>

 

1. 교과서를 ‘질문의 대상’으로 삼기
교과서를 전달해야 할 사실의 목록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으로 활용해 보라. “이 이야기에서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배경인가”, “이 사건을 다르게 서술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같은 질문을 수업에 한 번씩 끼워 넣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사고 방식이 달라진다.

 

2. 다양한 앎의 방식을 수업 안으로 끌어들이기
이야기, 몸의 경험, 지역 공동체의 지혜를 수업 재료로 활용하라. 특히 다문화 가정, 노동계층 배경의 학생들이 가진 앎이 수업에서 가시화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너희 집에서는 이걸 어떻게 하니”라는 단순한 질문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3. 실패를 구조의 언어로 읽기
자꾸 지각하는 아이, 숙제를 못 해오는 아이를 마주할 때 “왜 이 아이는 이럴까”보다 “이 아이가 처한 환경이 이 아이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를 먼저 물어보라. 진단이 바뀌면 접근도 바뀐다.

 

4. 수업 일지를 비판적 성찰의 도구로 쓰기
킨첼로가 말하는 교사 연구자의 실천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수업 후 5분, “오늘 수업에서 말이 없었던 아이는 누구였나”, “내가 든 예시가 어떤 아이의 경험을 전제하고 있었나”를 짧게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실천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

 

5. ‘정답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질문을 함께 가지는 사람’으로 서기
킨첼로의 표현대로, 비판적 교사는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학생 앞에서 “나도 이건 잘 모르겠다”, “이 문제는 복잡하다”고 말하는 것이 교사의 권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함께 생각하는 주체로 세우는 실천이다.

 

 

※ 이 시리즈는 AI 도구를 활용해 원서의 핵심 내용을 추출하고, 필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한국 교육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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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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