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승의 학습과학 특강(33) – “배움은 뇌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
| 보는 것과 듣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단순한 사실 뒤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으며, 학습과학은 지난 수십 년간 배움이 뇌 안에서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밝혀왔습니다. |
수업 중 이런 장면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교사가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학생은 분명히 앞을 바라보고 있다. 눈도 깜빡인다. 고개도 가끔 끄덕인다. 그런데 “방금 설명한 것 이해했어요?”라고 물으면 멍한 표정이 돌아온다. 교사는 당혹스럽다. 분명히 보고 있었는데. 분명히 듣고 있었는데.
보는 것과 듣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단순한 사실 뒤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학습과학은 지난 수십 년간 배움이 뇌 안에서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밝혀왔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교사가 수업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것들 중 상당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배움의 첫 번째 관문: 주의
배움은 ‘주의(attention)’에서 시작된다. 당연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주의가 얼마나 선택적이고,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이해하면 교실의 풍경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인간의 뇌는 주변의 모든 자극을 동시에 처리하지 못한다. 감각 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 극히 일부만 처리되고 나머지는 걸러진다.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바로 주의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 이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흰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영상을 보여 주면서 패스 횟수를 세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상 중간에 등장하는 고릴라를 알아채지 못한다. 눈에 보이고 있었지만, 주의가 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뇌는 그것을 처리하지 않았다.
교실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학생이 교사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교사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주의는 항상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교사의 설명인지, 창밖의 소리인지, 어젯밤 일어난 일에 대한 생각인지—그것은 교사가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질문, 놀라운 사례, 잠깐의 침묵과 같은 것들이 흩어진 주의를 다시 끌어온다. 중요한 순간에는 “지금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라고 직접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배움의 병목: 작업기억
주의를 기울인 정보는 작업기억(working memory)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배움의 가장 큰 병목이 발생한다.
작업기억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의식적으로 처리하는 정보를 일시적으로 유지하는 공간이다. 문제는 이 공간이 극도로 좁다는 것이다. 조지 밀러(George Miller)가 1956년 7±2개를 제안한 이후, 후속 연구들은 이 수치를 더 낮게 수정했다. 현재의 결론은 작업기억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약 4±1개의 덩어리(chunk)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는 주의가 흐트러지거나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빠르게 사라진다.
이것이 교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교사가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복잡한 도표를 제시하고, 학생에게 노트도 필기하게 하면 개념 이해, 시각 정보 처리, 필기 행위가 동시에 작업기억의 자원을 요구한다. 각각은 그리 어렵지 않더라도, 동시에 처리해야 할 때 작업기억은 순식간에 한계에 도달한다. 이것이 존 스웰러(John Sweller)가 제안한 인지 부하 이론(cognitive load theory)의 핵심이다. 학생이 “머리가 하얘진다”고 느끼는 순간은 많은 경우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작업기억의 일시적 과부하 상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한다. 작업기억은 인지적 부담만이 아니라 정서적 조건에도 민감하다. 불안하거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작업기억의 상당 부분이 그 감정을 처리하는 데 쓰인다. 인지적으로 안전한 교실이 곧 학습이 가능해지는 교실인 이유다.
다니엘 윌링햄(Daniel Willingham)은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가(Why Don’t Students Like School?)』에서 이를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작업기억은 학습의 병목이다. 이 병목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는 자신도 모르게 학생의 학습을 가로막는다.” 교사가 아무리 훌륭한 설명을 해도, 학생의 작업기억이 이미 가득 차 있다면 그 설명은 들어갈 자리가 없다.
왜 전문가는 학생을 이해하기 어려운가
작업기억의 한계는 전문가와 초보자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그리고 이것이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간극을 설명한다.
전문가는 많은 것을 ‘자동화’한 상태다. 수학 교사에게 사칙연산은 의식적 처리가 필요 없다. 작업기억을 거의 쓰지 않고도 처리된다. 그래서 작업기억을 더 복잡한 개념을 설명하는 데 온전히 쓸 수 있다. 반면 초보자들은 사칙연산부터 작업기억을 소비한다. 거기에 새로운 개념까지 얹으면 과부하가 발생한다.
교사는 흔히 “이건 쉬운데 왜 못 하지”라고 느낄 때가 있다. 과제 해결에 필요한 기능이 교사에게는 이미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것은 더 이상 노력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 그것이 아직 자동화되지 않은 학생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실감하기 어렵다. 수잔 앰브로스(Susan Ambrose)와 동료들은 『학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How Learning Works)』에서 이런 현상을 “전문가의 맹점(expert blind spot)”이라고 부른다. 이미 자동화된 자신의 사고 과정을 의식하지 못한 채, 초보자의 어려움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제시하는 것, 충분히 작게 나누지 않는 것, 자동화되지 않은 내용을 동시에 여러 개 요구하는 것—이 모든 것이 작업기억 과부하를 만들고 학습을 가로막는다.
배움의 목적지: 장기기억
작업기억이 이렇게 좁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토록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가. 답은 장기기억(long-term memory)에 있다.
장기기억은 작업기억과 달리 용량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 우리가 평생에 걸쳐 배운 모든 것—언어, 기술, 지식, 경험—이 여기에 저장된다. 그리고 장기기억에 저장된 것은 필요할 때 작업기억으로 불러내어 사용할 수 있다.
핵심은 여기 있다. 장기기억에 저장된 지식은 작업기억의 부담을 줄인다. 자전거 타기를 처음 배울 때는 균형, 페달, 방향 모두에 의식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지만, 익숙해지면 거의 신경 쓰지 않고도 탈 수 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작업기억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경지식이 풍부한 학생은 새로운 정보를 더 쉽게 이해한다. 이미 아는 것에 새로운 정보를 연결하는 것이 그만큼 수월하기 때문이다. 반면 배경지식이 부족한 학생은 새로운 정보를 기존의 것과 연결할 고리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처리해야 한다. 작업기억이 금방 가득 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이 배경지식(prior knowledge)이 학습에 그토록 중요한 이유다. 에릭 허시(E.D. Hirsch)도 『문화적 리터러시(Cultural Literacy)』에서 같은 맥락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독해력은 어휘와 배경지식의 함수다. 단어를 해독하는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텍스트가 전제하는 세계를 이미 알고 있어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하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환경의 학생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배경지식의 토대가 이미 불균등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가
장기기억에 무언가를 저장하는 것—인코딩(encoding)—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정보가 작업기억에 들어왔다고 해서 자동으로 장기기억에 새겨지지 않는다. 의미를 구성하는 처리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정교화(elaboration)’가 중요하다. 새로운 정보를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연결하고, 그것이 왜 그런지를 스스로 설명해 보고, 다른 맥락에 적용해 보는 것—이런 처리 과정이 있을 때 기억이 더 깊이 새겨진다. 반면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작업기억에서 잠깐 처리되다가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런데 기억은 만들어지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지기도 한다. 에빙하우스(Ebbinghaus)의 망각 곡선이 보여주듯, 새로 배운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급격히 잊힌다. 배운 지 하루 만에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일주일이 지나면 더욱 줄어든다. 이것은 기억이 나쁜 것이 아니라, 뇌의 정상적인 작동이다. 사용하지 않는 정보는 뇌가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해 점차 희미해진다.
그렇다면 망각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야나 와인스타인(Yana Weinstein)과 동료들이 『학습의 과학(Understanding How We Learn)』에서 제시한 답은 명확하다. 반복 읽기가 아니라 인출(retrieval)이다. 기억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행위 자체가 그 기억을 강화한다.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기억은 흐려지고, 여러 번 꺼낸 기억은 더 단단해진다. 시험이 학습의 평가 도구만이 아니라 학습 도구 자체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시험 효과(testing effect)”라고 부른다.
맺으며: 교사들에게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는 교사와 모르는 교사의 수업은 다르다. 아는 교사는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제시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에는 “지금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라고 직접 말해 학생의 주의를 끈다. 또한 새로운 내용을 학생이 이미 아는 것과 연결하도록 돕고, 배운 내용을 스스로 꺼내보는 기회를 수업 안에 설계한다.
이 모든 것은 거창한 수업 혁신이 아니다. 설명을 마친 뒤 “방금 들은 것 중 기억나는 것을 옆 사람에게 말해보세요”라고 하면 된다. 새 단원을 시작할 때 “이것과 연결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나요?”라고 물으면 된다. 수업 끝에 오늘 배운 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게 해도 된다. 수업의 큰 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흐름 안에서 작은 것들을 바꾸는 것이다.
배움이 뇌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교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지식이다. 학생이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 왜 금방 잊어버리는지, 왜 아는 것 같은데 시험에서는 틀리는지—그 이유를 알면 수업이 달라진다. 가르치는 행위가 짐작이 아니라 이해에서 출발하게 된다.
| <교실 적용 팁>
주의를 설계하라. 수업 흐름 속에서 주의가 자연스럽게 모이는 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새 개념을 꺼내기 직전, 예상을 깨는 질문 하나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게 왜 그럴까요?”보다 “여러분의 예상은 뭔가요?”가 더 효과적인 이유는, 학생 자신의 생각을 먼저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한 번에 하나씩만. 새로운 개념을 설명할 때는 복잡한 도표, 필기 요구, 추가 과제를 동시에 얹지 않는다. 작업기억은 생각보다 훨씬 좁다. 이해가 먼저고, 기록은 그 다음이다.
배경지식을 먼저 꺼내라. 새 단원을 시작할 때 “이것과 연결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나요?”라고 묻는 2분이, 이후 20분의 설명보다 더 큰 학습 효과를 낼 수 있다. 연결 고리가 생긴 학생은 새 정보를 장기기억에 훨씬 수월하게 저장할 수 있다.
정교화 질문을 수업 안에 넣어라. “이 내용이 왜 그럴까요?”, “실생활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는다면?”처럼 새로운 정보를 기존 지식과 연결하게 하는 질문이 기억을 더 깊이 새긴다. 요약 필기보다 이런 질문 하나가 인코딩에는 더 효과적이다.
수업 끝에 반드시 꺼내게 하라. 설명을 마친 후 “방금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 문장으로 옆 사람에게 말해보세요”라고 하면 된다. 거창한 시험이 아니어도 된다. 기억에서 꺼내는 행위 자체가 그 기억을 강화한다는 것—이것이 교사가 수업 설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검증된 원리 중 하나다. |
참고 문헌
• Brown, P. C., Roediger, H. L., III, & McDaniel, M. A. (2014). Make it stick: The science of successful learning. Harvard University Press.
• Dunlosky, J., Rawson, K. A., Marsh, E. J., Nathan, M. J., & Willingham, D. T. (2013). Improving students’ learning with effective learning techniques. Psychological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 14(1), 4–58.
• Hattie, J. (2009). Visible learning: A synthesis of over 800 meta-analyses relating to achievement. Routledge.
• Pashler, H., McDaniel, M., Rohrer, D., & Bjork, R. (2008). Learning styles: Concepts and evidence. Psychological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 9(3), 105–119.
• Roediger, H. L., III, & Karpicke, J. D. (2006). Test-enhanced learning: Taking memory tests improves long-term retention. Psychological Science, 17(3), 249–255.
• Weinstein, Y., Sumeracki, M., & Caviglioli, O. (2018). Understanding how we learn: A visual guide.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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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교수 전략을 정말 명쾌하면서도 쉽게 설명하셔서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내용을 ‘교사들에게’만 고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부 관료들에게’, ‘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개발원 박사들에게’, ‘시도교육청 장학사, 장학관들에게’도 고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교사들의 전문성 개발을 위한 적절한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하!! 하고 수긍했던게, 과거 그렇게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고 또 대학에서 공부를 그렇게 해놓고도 결과적으로 머릿속에 남는 것들이 무언가 돌아보면, 술술 풀련던 학습의 기억이 아니라 뭔가 순탄치않고 날 방해했던 고민거리가 있었거나 그리고 그걸 뛰어넘고 넘은 감정들이 진하게 묻어있어야 떠오르게 되는것 같습니다. 정리하기 힘든 과정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주시니 아..아 그래서 그런거였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