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문제를 푸는 책들(4) – “디지털 환상: 기술이 아이들의 배움을 해치고 있다”
Jared Cooney Horvath, 『The Digital Delusion: How Classroom Technology Harms Our Kids’ Learning – And How To Help Them Thrive Again』 (LME Global, 2025) 비평

2020년대 어느 초등학교 교실이다. 학생 30명이 각자 태블릿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 화면에는 게임처럼 설계된 수학 학습 앱이 켜져 있다. 아이들은 빠르게 화면을 터치하고, 포인트가 쌓일 때마다 작은 축하 메시지가 애니메이션 형태로 뜬다. 교사는 만족스럽다.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즐기고 있다. 이것이 21세기 교육 아닌가.
그런데 한 달 뒤 단원 평가에서 그 반 학생들의 점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앱에서는 그렇게 잘 풀었는데, 종이 시험지 앞에서는 왜 막히는가.
자레드 쿠니 호르바스(Jared Cooney Horvath)의 『The Digital Delusion』(2025)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교실에 기술을 들여오면 교육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태블릿, 노트북, 교육용 소프트웨어, 스마트보드 등. 그 믿음은 지금도 수백조 원 규모의 미국 에드테크(EdTech) 산업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 호르바스는 묻는다. 그 믿음에 근거가 있었는가?
그의 대답은 불편하다. 없었다.
저자는 누구인가
이 책을 단순한 기술 비판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저자부터 먼저 살펴봐야 한다.
호르바스는 하버드 의과대학과 멜버른 대학교에서 연구했으며, 전 세계 1,000개 이상의 학교와 함께 일한 신경과학자이자 교육자다. 그는 기술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에드테크의 가능성을 믿으며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수십 년간 데이터를 들여다보면서, 그리고 직접 교실에서 가르치면서, 그는 자신이 믿어 왔던 것이 환상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책은 그 환상을 해체하는 책이다. 그리고 동시에, 환상에서 깨어난 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말하는 책이다.
“기술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진짜 배움을 되찾자는 것이다.”
(This is not a call to reject technology. It’s a call to reclaim real learning.)
숫자가 말하는 것
호르바스는 이 책에서 398개의 메타분석을 종합해 21,000개 이상의 개별 연구를 검토한다. 그 결론은 냉혹하다.
에드테크의 전반적인 학습 효과 크기는 +0.29다. 교육 연구에서 의미 있는 학습 효과로 인정받으려면 효과 크기가 최소 +0.40 이상이어야 한다. 에드테크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모든 학생에게 노트북을 제공하는 정책인 ‘1인 1기기 프로그램’의 효과 크기도 고작 +0.16에 불과하다. 호르바스는 이렇게 말한다.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이 학생 모두에게 노트북을 지급하는 것보다 학습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제 비교 데이터도 다르지 않다. PISA 평가에서 하루 6시간 이상 컴퓨터를 사용하는 학생은 비사용자보다 66점 더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것은 50번째 백분위에서 24번째 백분위로 떨어지는 격차다. 2022년 PISA 수학 점수는 직전 평가(2018년) 대비 15점 하락하며, 평가 역사상 단일 주기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화면으로 읽는 것이 종이책으로 읽는 것보다 이해도가 일관되게 낮게 나타났다. 특히 설명문 텍스트에서 그 차이는 더 크다. 필기 노트는 키보드 입력 노트보다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수업 직후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필기 쪽이 낫고, 나중에 노트를 복습한 뒤 기억을 확인해도 필기로 적은 쪽이 기억에 더 잘 남는다. 손으로 쓰는 것이 뇌에 더 깊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왜 기술은 학습을 방해하는가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이 책은 또 하나의 비판서에 불과했을 것이다. 호르바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왜 기술이 학습을 방해하는지를 뇌과학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 이유는 ‘주의 집중’이다. 인간의 뇌는 진정한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것은 과제 전환이고, 전환할 때마다 시간 손실, 정확도 저하, 기억 형성 약화가 일어난다. 디지털 환경은 단지 빠른 전환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연간 2,500시간 이상을 디지털 미디어 소비에 쓰며, 공식적 학습에는 약 450시간을 쓰고 있다. 이 비율이 뇌의 주의 패턴을 형성한다. 그렇게 훈련된 뇌가 교실에서 조용히 한 가지에 집중하기를 요구받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두 번째 이유는 ‘공감’이다. 교육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학습에 있어 가장 강력한 효과 요인 중 하나다(효과 크기 +0.57). 그런데 공감의 효과 크기는 그보다 더 큰 +0.68에 달한다. 그런데 호르바스는 공감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생물학적 동기화(synchrony)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직접 상호작용할 때 뇌파, 심박수, 호흡이 서로 맞춰진다. 디지털 도구에는 그런 몸의 반응이 없다. 디지털 화면은 동기화되지 않는다. 팬데믹 기간 원격 수업에서 학습 손실이 그토록 컸던 것은 기술의 기능 문제가 아니라 이 인간적 연결의 단절 때문이었다.
세 번째 이유는 ‘전이(Transfer)’다. 우리가 배우는 장소는 우리가 배우는 내용의 일부가 된다. 맥락이 내용과 함께 머릿속에 저장된다. 디지털 화면에서 배운 기술은 화면 맥락에 최적화된다. 시험장에서, 혹은 실생활에서 그 지식을 꺼내야 할 때, 즉 맥락이 달라지는 순간 그 기술은 작동하지 않는다. 앱에서는 잘 풀었는데 종이 시험지 앞에서 막히는 현상의 원인이 여기 있다.
다섯 가지 환상
호르바스는 에드테크 운동을 떠받치고 있는 신화 다섯 가지를 해체한다.
첫째, “교육은 망가져 있다.”
에드테크 기업들이 자신의 제품을 팔기 위해 만들어낸 서사라고 호르바스는 말한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에드테크가 본격적으로 교실에 들어오기 전, 교육이 그토록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데 에드테크 기업들은 교육의 위기를 선언하고, 자신들이 만든 지표로 그 위기를 측정했다. 문제를 만든 사람이 해결책을 파는 구조였다.
둘째, “멀티미디어가 학습을 향상시킨다.”
참여와 학습은 다르다. 재미를 느낀다고 깊이 배우는 것은 아니다. 호르바스는 이것을 ‘듀오링고 학습(Duolingo learning)’이라 부른다. 참여도는 높지만, 기억은 적은 상태다(All engagement, little retention). 게임화된 학습 앱은 분명 아이들의 흥미를 끈다. 그런데 흥미를 끄는 것과 학습이 일어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수업이 즐거웠다는 것이 배움이 깊었다는 뜻은 아니다.
셋째, “자유로운 선택이 더 나은 학습을 이끈다.”
학생들은 쉽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쉽다고 생각되는 것은 깊이 처리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얕게 처리되고 있다는 신호다. 호르바스는 이것을 ‘유창성 착각(Fluency illusion)’이라 부른다. 술술 읽히는 것이 잘 이해되고 있다는 착각, 문제가 쉽게 풀리는 것이 잘 알고 있다는 착각. 그래서 학생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면 그들은 일관되게 덜 효과적인 학습 방식을 고른다. 자율성은 좋은 것이지만, 학습 방법 선택에서만큼은 자율성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넷째, “아이들은 혼자 배울 때 가장 잘 배운다.”
뇌는 다섯 살 무렵 이후 복잡한 지식을 자동으로 습득하는 능력을 잃는다. 말을 배울 때처럼 그냥 노출되면 자연스레 익히는 방식은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에는 통하지 않는다. 그 이후의 학습에서는 교사가 명확하게 설명하고 안내하는 직접 교수법이, 스스로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깨닫는 발견 학습보다 일관되게 더 효과적이다. 아이들에게 탐구를 허용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안내 없는 방치와 같을 수는 없다.
다섯째, “AI 튜터가 아이들을 더 똑똑하게 만든다.”
AI 튜터는 특정하고 좁은 영역에서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수학 문제 풀이 연습, 철자 교정, 특정 기술 반복 훈련 등. 그런데 그 효과가 다른 맥락으로 전이된다는 증거는 없다. AI 튜터와 함께 연습한 능력이 시험장에서, 혹은 실생활의 복잡한 상황에서도 발휘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교사에게 가장 불편한 이야기
이 책에는 교사들이 가장 불편하게 읽게 되는 대목도 포함되어 있다. 에드테크의 피해가 가장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것이다.
취약계층 학생들이 가장 많은 양의 에드테크에 노출된다. 그런데 그들을 대상으로 한 에드테크 개입의 효과 크기는 +0.18로 가장 낮은 효과 수준에 속한다. 효과적인 교수법이 가장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장 효과 없는 방식이 가장 많이 적용되고 있다. 교육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기술이 오히려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현실이다. 디지털 기기 보급과 에듀테크 플랫폼 활용이 교육 형평성의 해법으로 제시될 때, 이 데이터는 그 가정을 조용히 흔든다.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호르바스는 기술 거부론자가 아니다. 이 책의 3부는 ‘기술 중심의 흐름에 맞서 주도권을 되찾기(Pushing Back)’라는 제목 아래, 교사와 학교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담는다.
가장 핵심적인 제안은 단순하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도구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 손으로 쓰게 하라.
필기 노트는 키보드 입력보다 기억 형성에 훨씬 효과적이다. 이유가 있다. 키보드로 타이핑할 때 우리는 말을 거의 그대로 받아 적는다. 생각할 틈이 없다. 그런데 손으로 쓸 때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들어오는 정보를 스스로 추려야 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자신의 언어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뇌는 그 내용을 훨씬 깊이 처리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손으로 쓰는 행위 자체가 읽기 회로와 연결된 미세 운동 기술을 발달시킨다. 쓰기와 읽기는 뇌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 종이책으로 읽게 하라.
특히 복잡하고 긴 텍스트는 디지털 화면보다 종이책에서 더 이해도가 높다. 화면은 스크롤과 클릭을 유도하고, 뇌는 빠르게 훑는 모드로 전환된다. 종이책은 그렇지 않다. 페이지의 위치, 여백의 메모, 밑줄 친 문장 등과 같은 것들이 기억의 공간적 단서가 된다. 화면 읽기가 불가피할 때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주석 달기나 밑줄 긋기처럼 능동적으로 처리하도록 유도하라. 수동적으로 눈만 움직이는 읽기와 손을 함께 움직이는 읽기는 뇌에 남는 흔적이 다르다.
• 직접 가르쳐라.
안내된 직접 교수, 명시적 설명, 체계적인 피드백. 이것들은 오래되고 덜 화려한 방법처럼 보인다. 에드테크 기업의 홍보물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데이터는 일관되게 이 방법들을 지지한다. 교사가 명확하게 설명하고, 학생이 연습하고, 교사가 틀린 곳을 짚어주는 이 단순한 순환이 학습의 핵심이다. 화려하지 않아서 과소평가됐을 뿐, 효과는 여전히 가장 강력하다.
• 관계를 우선하라
교사와 학생 사이의 직접적이고 인간적인 상호작용은 어떤 디지털 도구도 대체할 수 없다. 교사가 학생의 표정을 읽고, 학생이 교사의 목소리에서 뉘앙스를 느끼고, 어려운 순간에 함께 있어 주는 것, 이것들은 기술이 흉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호르바스가 강조하듯,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감정적 위안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의 생물학적 기반이다. 어떤 도구를 도입하기 전에, 그 관계가 살아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러나 남는 아쉬움
이 책은 에드테크 비판서 중 가장 포괄적이고 근거가 탄탄하며, 교사들에게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책이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남는다.
첫째,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의 문제다. 호르바스가 제시하는 데이터는 대부분 상관관계다. 기술 사용이 많은 학생일수록 성취가 낮다는 사실이 기술 때문에 성취가 낮아졌다는 것을 직접 증명하지는 않는다. 플린 효과(Flynn Effect)1의 역전이 기술 때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 있지만, 여전히 논쟁 중인 문제다.
둘째, 모든 기술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게임화된 앱과 잘 설계된 지능형 튜터링 시스템은 범주가 다르다. 화면 시간이라는 범주 아래 질적으로 매우 다른 것들이 묶인다. 어떤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해로운지에 대한 더 세밀한 구분이 필요하다.
셋째, 교사 실천으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호르바스의 제안들은 타당하지만, 이미 기기 기반 수업을 수년째 해 온 교사 혹은 학교 전체가 기기 의존 구조 속에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현실적으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안내는 아직 더 필요하다.
맺으며: 교사들에게
이 책은 불편한 책이다. 교사들이 지난 10여 년간 열심히 해 온 것들, 이를 테면 수업에 기술을 도입하고,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고, 앱으로 학생 참여를 높이려 한 것들이 기대만큼 효과가 없었을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르바스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사의 실패가 아니다. 교사들이 속았다는 것이다. 수백조 원 규모의 산업이 만들어낸 서사에, 그리고 그 서사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 교육 정책에. 이 책은 그 속임을 벗겨내는 책이다.
그리고 그 아래 드러나는 것은 오래되고 단순한 진실이다. 아이들은 인간에게서 배운다. 설명하고, 질문하고, 틀린 것을 짚어주고, 막히는 곳에서 함께 생각해 주는 교사에게서. 기술은 그 교사를 도울 수 있다. 하지만 교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
“학교는 인간적으로 설계되고, 의도가 명확하며, 목적에 근거한 유일한 일관된 지휘자일 수 있다. 학교가 이 역할을 기계에 내어준다면, AI가 만들어가는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Schools may be the only consistent conductor: human in design, clear in intention, and grounded in purpose. If schools surrender this role to machines, they will not survive in the world AI is working to create.)
그 역할을 지키는 사람이 교사다. 그리고 그것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바뀌지 않는다.
| 교실 적용 팁
이번 주 수업에서 해볼 수 있는 것: 수업 중 필기를 할 때 노트북이나 태블릿 대신 노트에 손으로 직접 적게 하고, 읽기 자료는 교과서나 자료집을 펼쳐 읽게 하세요. 이렇게 말해보세요.
|
| <편집자 주>
지난 칼럼2에서는 AI가 교육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살펴봤다. 이번 호는 그 반대편에서 출발한다. 기술이 아이들의 배움을 해치고 있다는 신경과학자의 불편한 주장. 두 시각은 모순이 아니다. AI를 포함한 기술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기술이 학습에서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
| ※ 이 시리즈는 AI 도구를 활용해 원서의 핵심 내용을 추출하고, 필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한국 교육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 필자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기존의 PDF 파일을 제공하던 서비스를 중단합니다. 대신 아래의 ‘인쇄(Print)하기’ 클릭한 후, ‘Ctrl + P’를 누르시면 칼럼 내용을 인쇄할 수 있습니다. |
각주
- 플린 효과(Flynn Effect) – 20세기 내내 세대를 거듭할수록 IQ 점수가 꾸준히 상승한 현상. 뉴질랜드 정치학자 제임스 플린(James Flynn)이 1984년 처음 체계적으로 기록해 그의 이름이 붙었다. 연구에 따르면 각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평균 약 6점 높은 IQ를 기록했다. 영양 개선, 교육 기회 확대, 추상적 사고 훈련 증가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 상승 추세가 멈추거나 역전되기 시작했고, 이를 ‘역 플린 효과(Reverse Flynn Effect)’라 부른다. 호르바스는 이 역전이 교실 내 디지털 기기 확산 시기와 겹친다는 점에 주목한다.
- 교육을 다시 묻는 책들(3) – “AI 시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