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통해 본, 사회성-감성 교육

요즘 ‘아빠 어디가’ 라는 TV 프로그램이 많은 대중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자녀 양육에 서툴러 보이는 연예인 아빠 다섯 명과 그들의 어린 자녀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 낸다는 점에서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빠와 아이의 관계가 눈에 띄게 변화해 나가는 모습을 본다. 매주는 아니어도 정기적으로 1박 2일이라는 여행을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나 체험학습이 아이들의 사회성-감성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되짚어 보았다.
‘여행’으로 길러지는 사회성과 감성
이들의 주된 여행지는 화려하고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다. 대도시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매우 생소한 시골 마을이나 섬마을 등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요즘은 시골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방을 덥히기 위해서는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는 그런 방에서 잠을 청하고, 영하의 추운 날씨에 텐트에서 잠을 자는 등, 어린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무척이나 혹독해 보이는 경험들을 해 나간다.
처음에 아이들은 편리한 시설이 갖추어진 대도시에서 결핍없이 풍족하게 자라, 마냥 연약해 보이기만 했다. 실제로 프로그램 초반에 아이들은 여러모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에 서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신체적으로 고된 일정에 짜증을 내기도 하면서 수화기 너머 엄마 목소리에 눈물바람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새 처음 가보는 시골 마을에서도 어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 나서고, 시장에서 직접 찬거리를 구입하고 거스름돈을 챙겨오는 등 쉽지 않은 과제들을 씩씩하게 수행하는 태도를 가진 아이들이 되었다. 이 아이들에겐 어떠한 능력들이 길러진 것일까? 아빠와 여행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가운데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어떠한 정서적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배운다.
대도시의 편안하고 풍요로운 환경을 떠나, 당연히 누려왔던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낯선 시골 마을에서 여러 가지 험난한 경험들을 겪으며, 아이들은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따뜻하고 편안한 호텔방이 아니라 춥고 불편하기 그지 없는 텐트나 초라해 보이는 시골집에서 잠을 자고, 추운 겨울날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음 직면했을 때 당황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리던 아이들이, 이젠 작고 불편한 방에서 자야하는 상황에서도 “이 정도면 훌륭해!”라고 만족감을 표시한다.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 아이들의 말과 표정을 통해 그들 속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감성과 감사의 마음이 드러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이 어린 나이의 아이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자신감과 도전정신이 자란다.
익숙한 환경이 아닌 낯선 환경이라는 것 자체가 새로운 과제이기 때문에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작고 큰 실패와 성공의 경험들을 쌓아가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통해 학습하며 성장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여행은 특별한 경험이 된다. 여행지에서는 잠자는 것, 밥 먹는 것 하나하나가 과제가 되기 마련인데 여러 차례 실패가 이어지더라도 끝끝내 도전하여 맛보는 짜릿한 성취감도 여행지만의 특별함이다.
그 프로그램에서 5세~9세의 어린이들은 어른의 도움 없이 두세 명씩 짝을 지어 낯선 곳에서 장을 보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음식 재료를 얻으러 이웃 어르신 댁을 방문하는 등의 과제를 수행했다. 부모들의 영역으로만 여기던 것들을 직접 수행할 기회를 마주하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도전 정신과 자신감, 그에 따라오는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 과정은 아빠들에게도 어떤 깨달음의 시간이 된다. ‘돈 계산은커녕, 아직 천원과 만원도 잘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장을 보는 어려운 과제를 과연 해 낼 수 있을까’라며 조바심 내던 아빠들은 결국 과제를 수행해 내는 아이들을 보며 감탄한다.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소평가하고 있던 아이들의 능력을 확인하면서 자신의 양육 태도를 뒤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스스로 해 보도록 기다려 주는 데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 온 부모들은 여행지에서 그들의 자녀들이 예상 외로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해 내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자녀에 대해 가져 온 그들의 시각과 태도를 정비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셋째, 공감능력과 감성을 기른다.
부모와 자녀는 여행 중에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대화하면서,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사랑표현에 점차 익숙해져 간다. 그런 모습 속에서 여행이 주는 사회성-감성 교육의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또한, 대도시의 소음과 컴퓨터 및 전자기기에 너무도 가까이 노출되어 있던 아이들에게 시골 마을이나 자연은 자연스럽게 사람과 자연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기회는 아이들이 타인의 기분이나 감정에 대한 공감 능력을 높일 기회가 되기도 하며, 자연과 교감함으로써 새로운 감성을 계발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넷째, 문제 해결능력과 의사 소통 능력을 높인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면서 우리는 타인의 도움을 청해야 할 많은 기회와 마주치게 된다. 도움이 필요할 때 예의 바르고 정확하게 의사표현을 하는 능력, 도움을 받은 후에는 마음을 담아 감사의 표현을 할 줄 아는 능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아주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이다. 또한 타인을 배려하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도와주는 것 또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큼 중요한 능력이다. 아이들이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하는 그룹의 친구들과 서로 의견을 나누고, 길을 몰라 낯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며, 도움을 받은 후에는 감사의 인사를 하는 일련의 행위들을 통해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 없이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과 태도, 의사 소통 능력을 기른다.
사회성-감성 교육과 ‘아버지’의 역할
자녀들에게 더 많은 것을 누리게 하고, 보다 좋은 양질의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 대부분의 한국의 아버지들은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도 없이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더 많이 함께 놀아 주고 더 많이 소통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아빠가 절실히 필요하며, 성장 중인 아이들에게 그런 공부 외의 시간이 ‘교육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아빠 어디가’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의 모든 가정들에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10여년을 교사로 일해오면서, 필자는 많은 학부모들을 만나보았다. 자녀들의 학교에서 학부모 상담이나 행사가 있을 경우, 일부 저소득층이나 한부모 가정의 부모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부모 두 사람이 다 참여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 문화에서 자란 필자에겐, 처음엔 이 광경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었고, 교사의 입장으로서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학부모 상담을 할 때 1대1 상담이 아니라 두 부모를 앞에 두고 하는 2대 1 상담이 처음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자녀 교육이라는 것이 두 부모가 함께 해 나가는 것인 만큼 학부모 상담과 같은 학교 행사에도 두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교육열로 말하자면, 한국만큼 교육열이 높은 국가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자녀의 학교에서 열리는 학부모 상담이나 행사에 아버지의 참여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자녀 교육에 있어 아버지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듯, 한국의 아버지들이 자녀들과 함께 놀며 일하며 대화하며 사랑의 표현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절실히 실감하고, 더 많은 시간을 자녀들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자녀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이런 시간을 많이 가지면 가질 수록 그만큼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들과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함께 양로원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설 등을 찾아가 함께 봉사를 하거나, 지역의 환경미화를 위해 함께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은 어떨까? 부모와 자녀가 함께 땀흘려 일하고 대화하는 가운데 정서의 교감과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경험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여행이든, 아니면 다른 어떠한 방법이든지 간에, 그 의의는 부모와 자녀가 무언가를 함께하며 서로 대화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시간을 보낸다는 데에 있다.
이런 말을 하다가도, 우리 청소년들의 문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부정하고 싶어도 우울증, 자살, 학교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단어들이 그들의 앳된 페이지에 분명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이 글에서 논하지는 않더라도, 이런 슬픈 사건들을 예방하기 위해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의 참여와 학부모들의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와 가정과 사회가 한 목소리로 같은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교육의 성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빌어,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한국의 아버지들이여, 부디 제발 “아빠, 또 일하러가?”가 아니라, “아빠, 우리 또 어디가?” 라는 말이 자녀들의 입에서 자주 나올 수 있게 해 주시기를.
현재 사회성·감성교육연구소 소장이자 한동대학교 교육대학원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간 미국의 시애틀과 뉴욕 지역의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교사로 일하고, 뉴욕 공립초등학교의 사회성·감성 교육(Social-Emotional Learning) 실행에 관한 연구논문으로 컬럼비아대학(Columbia University)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3년부터 한국의 학교 현장에 맞는 사회성·감성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 교육을 실천하려는 교사들을 지원하는 일을 해왔다. 그 외 소외계층 아동·청소년을 위한 사회성·감성 향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메일 js248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