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부진 학생을 위한 교실 내 지원, 통념을 넘어서 – Jo Van Herwegen 교수의 웨비나 청강을 통해 본 증거 기반 중재
| 서울대 학습과학연구소가 주최한 반 헤르베겐 교수의 웨비나 발표를 통해 교사가 효과적이라 믿는 방식이 꼭 효과가 있는 것만은 아니란 연구 결과 등을 확인하며, 교사 교육에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
지난 3월 12일, 서울대학교 학습과학연구소(SNU LSRI)가 주최한 웨비나에서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UCL)의 조 반 헤르베겐(Jo Van Herwegen) 교수의 발표를 들었다. 주제는 “연구 근거를 교실 실천으로: 학습부진 학생을 위한 교실 내 지원 방안(Translating Evidence into Practice: Supporting Students with Learning Difficulties in the Classroom)”이었다.
발표를 듣는 내내 한국 교실의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를 앞에 두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쟤들은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아이들”이라며 체념과 무력감에 빠지는 교사도 있다. 현실에서는 안타깝게도 후자에 가까운 분위기가 더 흔하다.
문제는 또 하나 있다. 교실에서 흔히 시도하는 지원 방식들—보상, 칭찬 스티커, 난이도 조정, 다양한 학습 앱—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따져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믿어 왔을 뿐, 연구 근거를 통해 확인해 본 경우는 많지 않다.
반 헤르베겐 교수는 이 지점에서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학습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에게 적용하는 중재(intervention)는 정말 효과가 있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근거가 존재한다면, 왜 교사들은 그것을 교실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가?
격차는 이미 초등 저학년부터 시작된다
발표는 냉정한 숫자로 시작했다. 영국에서 특수교육 요구(SEND, Special Educational Needs and Disabilities)를 가진 학생들은 만 16세가 되었을 때 일반적으로 발달하는 또래보다 평균 30개월의 학업 격차를 보인다. 교육·건강·돌봄 계획(EHCP)을 갖고 있는 학생들의 경우 그 격차는 45개월까지 벌어진다. 거의 4년에 가까운 차이다.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 격차가 중학교 때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규 교육이 시작되는 초등학교 저학년, 즉 교육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미 빠르게 벌어지기 시작한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소폭 더 벌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숫자들이 한국 교육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학습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이 교육의 주류에서 얼마나 일찍, 얼마나 깊이 뒤처지기 시작하는지. 그리고 그 격차가 한번 벌어지면 얼마나 되돌리기 어려운지.
진단명보다 아이의 필요를 보라
반 헤르베겐 교수가 웨비나 초반에 강조한 또 하나의 핵심 메시지는 진단 꼬리표(diagnostic label)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이 아이는 ADHD야”, “저 아이는 난독증이야”라는 식으로 진단명을 중심으로 학생을 이해하려 한다. 그런데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SEND 학생의 20-80%가 두 가지 이상의 진단을 함께 받는다. 난독증이 있는 아이가 동시에 수학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ADHD 진단을 받은 아이가 언어 발달의 어려움도 함께 겪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같은 진단 안에서도 아이마다 증상의 편차가 매우 크다. “난독증 아이”라는 표현이 실제로 가리키는 아이들은 서로 매우 다를 수 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서로 다른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영역이 있다. 바로 작업기억(working memory)과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1이다. 진단이 달라도 핵심 어려움은 겹친다는 것이다. 교수는 이 사실이 교육 실천에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지원의 방향은 진단 꼬리표 붙이기가 아니라, 이 아이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중재를 여러 SEND 진단이 섞인 혼합 집단에게 실시했을 때도 강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 중재의 효과는 진단 이름이 아니라, 아이의 실제 필요와 중재의 내용이 얼마나 잘 맞는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교사가 효과적이라 믿는 방식, 연구는 다르게 말한다
웨비나의 주요 내용으로 교수는 467편의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결론은 고무적이었다. 잘 설계된 맞춤형 중재는 평균적으로 약 5개월의 학업 성취 향상을 가져왔다. 읽기(난독증 관련 879개 결과 지표 확인)와 수학 모두에서 긍정적 효과가 확인되었고, 수학 중재의 효과 크기가 읽기보다 오히려 더 높게 나타났다. 초등학교 단계의 수학 중재는 중학교 단계보다 효과가 더 컸다.
그런데 많은 교사들이 당연히 효과적이라고 믿는 방식들은 연구 결과와 엇갈렸다. 보상(reward)이 대표적이다. 잘하면 스티커를 주고, 점수를 올리면 칭찬 도장을 찍어주는 방식—이것이 SEND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효과 크기를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적 보상이 내재적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기존 연구와 맥을 같이하는 결과다.
실시간 난이도 조정도 마찬가지였다. 학생의 반응을 보며 즉석에서 난이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적응적 교수(adaptive teaching)’가 직관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연구 결과는 부정적 효과를 보였다. 수업 중 난이도가 일관성 없이 오르내리면 학생이 혼란을 겪거나 충분한 도전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테크놀로지 활용도 기대만큼 효과적이지 않았다. AI 기반 학습 앱, 태블릿 활용 수업 등이 화제이지만, 연구 결과는 테크놀로지가 중재의 효과를 유의미하게 높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일관되게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된 방식도 있었다. 명시적 교수(explicit teaching)가 그것이다. 읽기, 쓰기, 수학 전 영역에 걸쳐 명시적 교수는 가장 안정적으로 학업 성과를 높였다. 목표를 명확히 하고, 단계별로 가르치고, 충분히 시범을 보이고, 연습 기회를 구조화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피드백—구체적이고 시의적절한 피드백—역시 모든 영역에서 학습 효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나타났다.
교사는 왜 이 사실을 모르는가
여기까지 들으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연구 결과가 이렇게 분명한데, 왜 학교 현장에서는 효과 없는 방식이 계속 쓰이고 있는 걸까.
반 헤르베겐 교수는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교사의 의지나 전문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첫째, 교사들은 연구 논문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학술 논문은 유료 구독이 필요하고, 읽더라도 학술적 언어가 너무 어렵다. “이 중재의 효과 크기가 0.43이다”라는 문장이 교실 현장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둘째, 교사에게는 연구를 살펴볼 시간이 없다. 수업 준비, 행정 업무, 학부모 상담 등으로 가득 찬 하루에 논문을 찾아 읽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셋째, 학교는 비용이 적고 훈련 부담이 낮은 기성품 중재를 선호한다. 근거 기반이 탄탄하더라도 도입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중재보다, 당장 쓸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학교 현장에서 쓰이는 중재들 상당수가 엄격한 연구 설계로 검증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영국 교사들도 이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교사들은 ‘SEND 분야에서도 EEF(Education Endowment Foundation, 교육기여재단)처럼 믿을 수 있는 근거 출처가 있었으면 한다’고 공통적으로 응답했다.
MetaSENse—연구와 교실 사이의 다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 헤르베겐 교수 연구팀이 만든 것이 바로 MetaSENse 데이터베이스다. 교사가 중재의 이름으로 검색하거나, 목표로 하는 성과와 학년 단계로 검색할 수 있도록 설계된 플랫폼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효과 크기를 교사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개월 수’로 환산해서 제시한다는 점이다. ‘효과 크기 0.4’보다 ‘평균 3개월의 학업 성취 향상’이 교사에게 훨씬 와닿는 정보다. 또한 단순히 ‘효과적이다/아니다’를 넘어서, 왜 이 중재가 효과적인지, 즉 변화 이론(theory of change)을 함께 설명해 교사가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 사례도 소개되었다. Cogmed—작업기억 훈련 프로그램으로 많은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중재는, 7편의 무작위 대조 시험 결과 SEND 학생들에게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수학 학습장애 학생들을 위한 Number Race2는 효과적인 중재로 확인되었다. 이런 정보가 교사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다면, 학교 현장의 의사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
교사 교육,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발표의 마지막 부분에서 교수는 교사양성과 전문성 개발 문제를 짚었다. 흥미로운 관찰이 있었다. 최근 양성된 신임 교사들이 학습과학 기반 접근에 더 높은 열의를 보이는 반면,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교사들은 오히려 학습과학에 대한 체계적 훈련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현장 경험이 많을수록 연구 기반 지식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교수는 교사에게 필요한 것이 단순히 중재의 목록을 아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재가 왜 효과적인지, 그 원리를 이해해야 자신의 교실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명시적 교수와 피드백이 왜 효과적인지를 학습과학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교사는, 상황이 달라져도 그 원리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 그 이해 없이 방법만 아는 교사는 상황이 바뀌면 길을 잃게 된다.
이 웨비나가 한국 교육에 던지는 질문
반 헤르베겐 교수의 웨비나를 들으면서 자꾸 한국 교실이 겹쳐 보였다. 학습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 학교 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중재들, 그것이 연구로 검증된 것인지 교사가 확인할 방법이 있는가. 효과 없는 것을 열심히 하느라 정작 효과 있는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에도 MetaSENse와 같은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절실하다. 교사가 학술 논문을 일일이 찾아보지 않고도, 어떤 중재가 효과적인지를 교실의 언어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검증된 정보 창구 말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학습 어려움을 개인의 문제나 가정의 문제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반 헤르베겐 교수가 발표 내내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이것이었다. 학습 어려움은 아이의 의지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열쇠는 운이나 직관이 아니라 근거 기반 실천에 있다.
격차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시작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지금 효과 있는 것을 하고 있는가.
이처럼 학습부진 연구의 세계적 석학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서울대학교 학습과학연구소에도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 이 글은 서울대학교 학습과학연구소(LSRI) 초청 웨비나(2026년 3월 12일)에서 Jo Van Herwegen 교수(UCL)가 발표한 ‘Translating Evidence into Practice: Supporting Students with Learning Difficulties in the Classroom’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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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 – 목표 지향적 행동을 계획하고 조절하는 고차원적 인지 기능의 총칭. 주의 집중, 작업기억(working memory), 인지적 유연성, 충동 억제, 계획 수립 등을 포함한다. 주로 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점진적으로 발달한다. ADHD, 난독증, 발달성 난산증 등 다양한 학습 어려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학습 지원 중재를 설계할 때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로 꼽힌다. 한국 교육 현장에서는 ‘실행 기능’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 Number Race – 수 감각(number sense) 결핍이 발달성 난산증(dyscalculia)의 핵심 원인이라는 가설에 근거해 개발된 적응형 컴퓨터 게임. 아동의 수행 수준에 맞춰 난이도를 자동 조정하며, 수 비교 과제를 통해 수 감각 훈련을 제공한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