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영유아교육의 본질을 다시 묻다
| 우리는 지금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을 논하기에 앞서, 영유아교육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 본질을 묻는 일이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이 글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
인공지능 시대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고, 교육 역시 그 변화를 피해 갈 수 없다. 미래교육을 이야기할 때면 ‘AI 교육’, ‘코딩 교육’, ‘디지털 역량’과 같은 표현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교육 현장에서는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이러한 흐름은 점차 영유아교육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교육이 새로운 환경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일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고 있는 것일까?
인공지능 시대를 이야기할수록 교육을 설명하는 언어 역시 바뀌고 있다. 미래 역량, 디지털 리터러시, 인공지능 이해와 같은 표현들은 어느새 교육의 새로운 목표처럼 제시된다(OECD, 2021). 교육의 방향 역시 아이들이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설명되기도 한다(이용민, 2023).
하지만 영유아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이 흐름은 조금 다른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술을 배우는 일과 교육의 본질을 묻는 일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변화는 교육의 방법을 바꿀 수는 있지만, 교육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까지 대신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
영유아교육은 가장 어린 시민인 아이들이 처음으로 세상을 만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해해 가는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을 논하기에 앞서, 영유아교육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 본질을 다시 묻는 일이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 글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인공지능 시대, 영유아교육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교육 담론에서 거의 당연한 전제가 되었다. 인공지능 기술은 산업과 사회 전반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의 사회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전망 속에서 교육 역시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미래 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역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교육 담론에서는 ‘미래 역량’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게 이야기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코딩 교육이나 AI 교육이 미래교육의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는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다. 사회가 변화하고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교육 역시 새로운 환경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교육 논의는 자연스럽게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교육이라는 방향으로 모여들게 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영유아교육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말은 과연 영유아교육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주장과는 별개로, 영유아교육이 오랫동안 고민해 온 질문은 아이들에게 어떤 기술을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유아교육의 질문은 언제부터 달라졌는가?
조금만 시선을 넓혀 보면 이러한 변화는 단지 AI 교육 논의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교육을 설명하는 방식 자체가 조금씩 달라져 왔다. 과거에는 교육을 이야기할 때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지식을 배워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이 중심에 있었다. 교육과정 역시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교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속에서 구성되었다. 이처럼 교육의 관심은 비교적 분명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교육을 설명하는 핵심어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교육 담론에서 ‘학습’이라는 단어가 점점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교육과정에서는 학습 목표와 학습 성과가 강조되고, 교육 정책에서도 학생들이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지가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되었다. 교육의 방향 역시 무엇을 배웠는가 보다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역량 중심 교육’이다(Rychen & Salganik, 2003). 미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식보다 문제 해결 능력, 협업 능력, 디지털 활용 능력과 같은 다양한 역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설명하는 데 이러한 논리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래서 많은 교육 정책과 교육과정에서도 이러한 역량을 중요한 교육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자연스럽게 영유아교육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린 시기부터 다양한 경험을 통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길러 주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점점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AI 교육이나 코딩 교육이 영유아교육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배경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교육의 중심 질문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육이 어떤 경험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도록 도울 것인가의 문제라기보다, 아이들이 어떤 능력을 갖추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설명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교육의 관심이 아이들이 어떤 존재로 성장하는가의 문제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게 되는가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교육이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학습 성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교육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질문은 점차 뒤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영유아교육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영유아교육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교육철학자 비에스타1는 현대 교육 담론에서 ‘교육’이 점점 ‘학습’이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였다. 그는 이러한 경향을 ‘학습화(learnification)’라고 부르며, 교육이 단순히 학습 성과나 기술 습득의 문제로 축소될 때 교육의 본래 목적이 가려질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Biesta, 2015). 교육을 학습의 문제로만 이해하게 되면, 교육이 인간을 어떻게 성장시키는가에 대한 질문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비에스타는 교육을 이야기할 때 세 가지 서로 다른 목적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Biesta, 2015). 우리가 흔히 교육이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많은 활동들은 사실 이 세 가지 목적이 서로 얽혀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아이들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읽고 쓰는 능력에서부터 다양한 학문적 지식과 기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학교 교육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내용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비에스타는 이러한 목적을 ‘자격화(qualification)’라고 말한다.
또한 아이들은 또래와 함께 생활하고, 규칙을 배우며,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맺는 법을 조금씩 익혀 간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분위기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험들은 아이들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관계와 규범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비에스타는 이와 같은 교육적 목적을 ‘사회화(socialisation)’로 설명한다.
하지만 비에스타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마지막의 목적이다. 그는 교육이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배우거나 사회의 규범을 익히는 과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교육에는 아이들이 하나의 ‘주체(subject)’로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교육의 역할을 ‘주체화(subjectification)’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주체화라는 표현은 다소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이들이 단순히 누군가가 가르쳐 준 것을 따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생각과 목소리를 가진 존재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교육은 아이들이 이미 정해진 틀에 맞추어 성장하도록 만드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세계와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도록 돕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영유아교육의 현장을 떠올려 보면 그 의미는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만나고 스스로 선택하며 행동한다. 친구와 역할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친구의 생각을 받아들이며 놀이를 이어 간다.
이러한 경험들은 단순히 어떤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하는지를 하나씩 알아 간다. 다시 말해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단순히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넘어, 하나의 존재로서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경험을 쌓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영유아교육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경험들은 지식이나 기술의 습득이라는 틀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 탐색하고 관계를 맺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하는 과정은 오히려 아이들이 세계 속에서 하나의 존재로 등장하는 과정과 더 가깝다. 비에스타가 말하는 주체화의 의미도 바로 이러한 경험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유아교육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영유아교육은 오래전부터 교육을 조금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아 왔다. 영유아교육의 중요한 관심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에 있기보다, 아이들이 어떤 경험 속에서 성장하도록 도울 것인가에 더 가까웠다. 영유아교육에서 교육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다. 아이들이 세계와 관계를 맺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하기 시작하는 과정에 더 가깝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영유아교육의 핵심은 특정한 지식이나 기술의 습득에 있지 않다. 아이들이 충분한 시간 속에서 탐색하고,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가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인공지능 시대라고 해서 이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기술이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되는 시대일수록 교육은 더욱 사람다운 경험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누스바움2 역시 교육이 단순한 기술 훈련으로 축소될 때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능력들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교육이 경제적 효율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Nussbaum, 2010/2016).
인공지능은 정보를 빠르게 찾을 수 있지만, 아이들이 세계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경험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알고리즘은 문제의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가는 과정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영유아교육이 지켜야 할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오래된 교육의 경험들이다. 충분한 시간 속에서 세계를 탐색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경험들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영유아교육이 오랫동안 지켜 온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질문
인공지능 시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교육이 무엇을 새롭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인공지능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미래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다.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교육이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는 일은 분명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영유아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다른 질문도 함께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교육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교육이 던져야 할 질문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영유아교육은 오랫동안 아이들이 세계를 처음으로 만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가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겨 왔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아이들은 단순히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는 존재로 성장해 왔다. 그래서 영유아교육이 이야기해 온 교육의 의미는 기술의 변화 속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더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일수록 이러한 경험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질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시대라고 해서 교육의 목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교육은 여전히 아이가 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경험을 만들어 주는 일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하라리3 역시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미래 사회에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나 기술의 습득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며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Harari, 2018). 인공지능은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복잡한 문제를 계산하는 일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질 수 있지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서로의 삶을 공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능력까지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유아교육이 오랫동안 중요하게 여겨 온 경험들은 바로 이러한 인간다운 능력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갈등을 겪고, 다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경험은 단순한 학습 활동을 넘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배움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시대에 아이들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떤 존재로 성장하도록 도울 것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결국 우리가 준비해야 할 교육은 인공지능을 더 잘 사용하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일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 맺는 존재를 길러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교육의 가장 오래된 질문일 것이다.
참고 문헌
• 김용민 (2023). 역량 중심 교육과정의 역할에 대한 고찰: 2015 개정 및 2022 개정 교육과정 중심으로. 열린교육연구. 31(6), 1-21.
• Biesta, G. (2015). Good education in an age of measurement (2nd ed.). London: Routledge.
• Harari, Y. N. (2018).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전병근 역). 서울: 김영사. (원저 2018년 출간)
• Nussbaum, M. C. (2016).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인문교육 (우석영 역). 서울: 궁리. (원본 발간일 2010년)
• OECD (2021). OECD digital education outlook 2021: Pushing the frontiers with artificial intelligence, blockchain and robots. Paris: OECD.
• Rychen, D. S., & Salganik, L. H. (2003). Key competencies for a successful life and a well-functioning society. Göttingen: Hogrefe & Huber.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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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거트 비에스타(Gert Biesta)는 네덜란드 출신의 교육철학자로, 현대 교육철학과 교육이론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학자이다. 네덜란드 레이던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교육철학과 교육이론을 연구하며 학문적 활동을 이어왔다. 교육을 단순한 학습 과정으로 축소하려는 경향을 비판하며, 교육의 목적을 자격화(qualification), 사회화(socialisation), 주체화(subjectification)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교육을 ‘학습(learning)’ 중심으로만 설명하는 경향을 ‘학습화(learnification)’라는 개념으로 비판하며 교육의 목적과 의미를 다시 묻는 교육철학을 전개해 왔다. 현재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와 아일랜드 메이누스대학교 등에서 교육철학을 연구하며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교육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은 미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로, 고전철학, 정치철학, 윤리학, 교육철학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대표적인 현대 사상가이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고전학을 공부한 후 철학 연구를 이어왔으며,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법학과 윤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탐구하는 ‘역량 접근(capability approach)’을 발전시킨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교육이 단순한 기술 훈련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저서 「Not for Profit」에서 경제 성장 중심의 교육 정책을 비판하며 민주사회에서 인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로, 인류의 역사와 기술 발전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 온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그의 저서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넥서스」 등은 인류의 역사와 미래 사회, 기술 변화가 인간의 삶과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통찰력 있게 탐구한 저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동학과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후 현재는 경남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유아 교육정책을 주로 연구하며 관심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구성원의 참여와 상생을 추구하는 공동선의 가치가 영유아 교육정책에 반영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상향식 영유아 교육정책 수립 및 평가에 관심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