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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변화를 꿈꾸는가? 청소년에게 기대를 걸어보자

#1472 김덕년, 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교육위원장 2026.03.17
우리 사회가 변화하기를 고대한다면 이제는 청소년을 학생이 아닌 시민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청소년의 주도성이 숨 쉬는 사회를 만들길 바라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지속 가능한 미래입니다.                   

 

 

청소년은 정책의 대상인가, 주체인가?

 

‘등골브레이커’라는 교복, 이로 말미암아 가격 전수조사에 들어가고 정장형 교복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교육부의 움직임. 일련의 과정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교진 교육부장관 주재 간담회에서 유일한 학생 참석자인 문성호 씨는 “결국 교복을 입는 주체는 학생들인데 학생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라며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교육부와 교육청이 판을 깔아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청소년 언론 <토끼풀>의 설문조사 결과는 더욱더 충격적이다. 정부 기조인 ‘정복 폐지, 생활복 등 교복 유지’에 동의하는 학생은 27%에 불과했다. 교복과 정복 모두 폐지하자는 학생이 46%로 가장 많았다.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청소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인 청소년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교복에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과정, 학교 운영, 지역사회 정책 등 청소년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교육적’이라는 명분 아래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왔다. 청소년은 정책의 ‘대상’일 뿐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은 ‘주도성’을 핵심 키워드로 반복한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능력을 함양’,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 ‘자신의 삶과 학습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주도성을 함양’, ‘진로와 학습을 주도적으로 설계’ 등이 그것이다. 추구하는 인간상에는 ‘자기 주도적인 사람’이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교육과정이 강조하는 ‘주도성’과 현실에서 청소년이 경험하는 ‘배제’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청소년을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자신의 삶과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민’으로 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청소년(학생) 주도성(Student Agency)의 본질이다.

 

『2025 청소년 통계』(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청소년의 82.1%가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의견을 제시하는 등 사회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등학생의 사회참여 의식은 88.7%에 달한다. 응답자의 96.3%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언제나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의지나 관심의 부족이 아니다. 청소년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문화적 통로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주도성(Agency)’과 자율성

 

OECD 교육 2030 프레임워크가 정의하는 ‘주도성(Agency)’은 단순한 자기주도학습을 훨씬 넘어선다. 주도성이란 “자기 삶과 주변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능력과 의지(OECD, 2019b)”를 의미한다. 이는 세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목적의식’이다. 변화가 필요한 지점을 스스로 발견하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는 힘이다. 교복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처럼,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둘째, ‘실행력’이다. 습득한 지식과 기술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다. 은평구 청소년 공간에서 활동한 한 청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 같으면 ‘그래 은평구 망한 도시니까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했다면, 이젠 우리가 바꿀 수는 있겠지, 그런 느낌이랄까? 하면 할 수 있다는 느낌? 앞으로도 지역을 바꾸기 위한 활동에 제 능력이 되는 한 하고 싶어요.”(은평구 인권센터, 2018)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실천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이다.

 

셋째, ‘성찰’이다. 자기 행동이 공동체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태도다. 주도성은 개인의 자유만을 추구하는 자율성과 다르다. ‘왜 누군가 해결해 주지 않지?’라고 묻는 대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 행동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까지 책임지는 것이 핵심이다.

 

은평구 인권센터의 <은평구 인권 보장 및 증진을 위한 아동·청소년 인권 연구용역 보고서>(2018)가 이를 뒷받침한다. 평가보다는 믿어주고, 강요보다는 자기 결정의 기회와 권한을 준 공간에서 청소년들은 “포기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한 청소년은 지역에 대한 감정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애정이 조…금 생겼어요.” 이것이 바로 주도성이 만들어내는 변화다. 무기력에서 효능감으로, 방관에서 참여로, 체념에서 희망으로의 전환이다.

 

결국 주도성은 개인의 성장을 넘어 사회적 변화를 끌어낸다. OECD가 강조하듯, 주도성을 가진 청소년은 자신의 삶뿐 아니라 주변 세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러한 주도성을 발휘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소년은 여전히 ‘시민에서 배제’되고 있다.

 

 

청소년 주도성이 만든 사회 변화

 

미국 애틀랜타의 ‘커뮤니티 디자인 프로젝트’는 청소년 주도성이 어떻게 교육과 마을을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다. 이 지역 학생들은 사회수업 시간에 교과서 속 도시 계획 이론을 배우는 대신, 실제로 낙후된 지역의 공원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학생들은 직접 주민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설계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예산안을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수학(예산 측정), 국어(보고서 작성 및 설득), 사회(법적 절차 및 공동체 이해) 등 교과 지식을 총동원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의 설계안이 실제 도시 계획에 반영되어 범죄율이 높던 공원이 안전한 가족 쉼터로 변모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성과는 세워진 시설물이 아니다. “나의 배움이 내가 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효능감을 경험한 청소년 시민들의 탄생이었다. 이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피교육자가 아니라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체인지 메이커(Change Maker)’로 성장했다. 주도성은 이렇게 구체적인 변화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우리 곁에서도 이러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수원 지역 청소년들은 학교 담장을 넘어 지역사회 문제를 직접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동네의 유휴 공간을 찾아내어 ‘청소년 아지트’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구청에 제안서를 제출하거나, 지역 전통 시장 활성화를 위해 상인들과 협업하여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애틀랜타 사례가 미국 도시에서 가능했던 일이라면, 수원 청소년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배움이 교과서 안에 머물지 않고 ‘우리 동네’라는 실천의 장으로 확장될 때, 교육은 비로소 살아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실천”이다. 그리고 그 실천의 경험이 가장 강력한 교육이 된다.

 

 

청소년을 ‘학생’에서 ‘시민’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고교학점제 도입과 함께 학생의 선택권과 주도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 현장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애틀랜타와 수원의 사례가 주는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교육 패러다임을 ‘지식 습득’에서 ‘역량 구현’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증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마을의 환경 문제, 교통 문제, 노인 소외 문제 등을 청소년들이 직접 탐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프로젝트 수업이 정규 교육과정 속에 깊숙이 들어와야 한다. 이것이 구태의연하게 들릴지라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과제다.

 

둘째, 지역 공동체의 ‘협업적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 애틀랜타 사례처럼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공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자체, 시민단체, 전문가 그룹이 청소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실제 정책에 반영하는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청소년의 제안이 현실이 되는 경험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민주시민 교육이다. 교복 정책 결정 과정에 청소년이 배제된 현실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셋째, 실패할 권리를 보장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주도성은 성공의 경험뿐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서도 길러진다. 프로젝트가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성찰을 높게 평가하는 사회적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 시민”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주도성이 꽃필 수 있다.

 

 

청소년의 오늘이 곧 우리 사회의 내일이다

 

우리가 잘 아는 교육 격언이 있다. ‘아이는 온 마을이 기른다.’ 이제는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아이들이 온 마을을 바꾼다.’

 

교복 정책에서 배제된 청소년의 목소리는 단순한 사례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청소년을 미래를 준비 중인 “예비 시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현재의 시민”으로 인정할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마을 골목에서, 학교 교실에서, 청소년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만들어갈 때, 우리는 가장 역동적이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애틀랜타에서 공원을 바꾼 학생들, 지역에서 마을 미디어를 운영하는 청소년들, 교복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 이들이 바로 변화의 주체다. 이런 사회에서 자란 청소년은 성인이 되어서도 공동체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건강한 시민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변화하기를 고대하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청소년에게 수리 도구를 건네보자. 그들이 흔드는 작은 날갯짓이 우리 교육의 해묵은 숙제를 풀고, 더 따뜻하고 역동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거대한 동력이 될 것이다. 청소년의 주도성이 숨 쉬는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지속 가능한 미래다. 변화는 청소년의 오늘에서 시작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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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교육위원장 김덕년

구리 인창고 교장을 마치고, 현재 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G-SDGs) 교육위원장, 온배움터(구 녹색대) 생태교육연구소 소장, ‘김덕년의 행복한 학교이야기’ DJ 등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꿈꾸고 싶은 교육낭만주의자로, 교육문제를 아이들의 시각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에서 국어를 공부하고, 온배움터(옛 녹색대) 생태교육과에서 생명이 중심이 되는 교육생태계를 고민했습니다. 저서로는,  <주도성과 진로교육>(교육과실천, 2025)[신간], <주도성>(교육과실천, 2023), <아름다운 숲을 닮은 배움공동체>(케렌시아, 2022), <교사교육과정>(교육과실천, 2022), <포노사피엔스를 위한 진로교육>(교육과실천, 2021), <과정중심평가>(교육과실천, 2018),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에듀니티, 2017) 등이 있습니다. 연구로는, <고교 교육 환경 변화 전망과 과제:학생들의 시선으로>(한국교육개발원, 2018), <학생부종합전형의 내실화와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 연계방안>(한국외대,2018), <학교생활기록부 기반 면접 및 구술고사 연구>(서울대, 2017) 등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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