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논설] 수능의 악성(惡性) 뿌리를 뽑아 없앨 요량이 절실하다
지난해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 영역 불수능’을 문제 삼은 대책이 나왔다. 교육부는 그 보도자료 표제를 이렇게 적었다. “안정적 수능 출제를 위해 출제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습니다.” 출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수능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런 대응은 학교 교육을 더욱 빗가게 틀 것이다. 이젠 수능이 깊이 곪은 것을 깨닫고도 남아야 할 마련이지만, 교육부는 거죽으로 솟아 터진 흉에 ‘빨간 약’ 바르는 조치로 뭉개고 넘어갈 참이다. 사건 때마다 그래왔듯, 있던 대로 버티며 면피하는 데만 급급하다.
교육부, 영어 ‘불수능’은 출제진 탓이었다며 ‘난이도 안정책’ 내놓아
교육부는 대책을 마련한 경위를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수능 출제·검토위원 섭외부터 출제·검토까지 전 과정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영어 영역은 출제 과정에서 타 영역 대비 지나치게 많은 문항이 교체되어, 난이도 점검 등 후속 절차에 연쇄적으로 차질이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검토위원의 의견이 출제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탕으로 향후 안정적인 출제 난이도를 유지하기 위한 체계 개선 방안을 마련하였다.
교육부 발표로 미루어 보면, 작년 수능 영어 영역 출제는 시한에 쫓겼던 듯하다. 45개 문항을 갖춘 초본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그 가운데 19개 문항을 새롭게 바꾸어야 하는 사태가 빚어졌던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그렇게 많은 문항을 사실상 새롭게 출제하고 검토하기엔 수능 출제 기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출제 후반의 절차를 서둘러 밟아야 했을 테고, 다면적인 검토가 충실하게 이루어지긴 어려웠을 것이다. 교육부 대책은 이 점에만 주목했다.
교육부는 기본적으로 수능 출제·검토위원 구성이 문제였다고 보았다. “역량 있는 위원들을 충분히 위촉하지 못한” 데다가 “출제위원 중 교사 비중이 영어 영역은 33%에 그쳐 수험생의 실제 학업 수준을 반영하여 출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시도로 대책은 충분하리라고 보았다. 출제·검토위원을 선정할 때 “전문성을 심층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교사 출제위원 비중을 50%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게 이번 대책의 핵심이다.
인공지능(AI) 활용하겠다는 중장기 대책도
한편, ‘난이도 안정’에 초점을 모은 대책에 덧붙여, 교육부는 “미래형 수능 출제‧평가 기반 구축”이라는 ‘중·장기’ 대책도 내놓았다. 그 배경에 대해선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수능은 고부담 국가시험임에도 민간 숙박시설을 임대하여 출제되고 있어 안정적인 출제 환경 조성이 어렵고, 보안 문제로 인해 인공지능(AI) 활용 등 효율적인 지원 체계 구축에도 제약이 있었다. 이에 따라, ‘교육평가‧출제지원센터’ 설립을 추진하여 출제 안정성과 효율성을 제고한다. 또한, ‘인공지능(AI) 활용 영어 지문 생성 시스템’을 개발하여 출제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고, 추후 인공지능(AI)을 난이도 예측, 유사 문항 검토 등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이다.
출제를 위한 시설(‘센터’)을 짓고 인공지능을 동원하겠다는 대책은 뜬금없는데, 이런 별책(別策)을 왜 붙였는지 짐작은 간다. 교육부 말대로 영어 영역에서 “지나치게 많은 문항이 교체”되어야 했던 사태가 빚어진 데는 출제위원들의 ‘전문성’ 탓이 없지 않았겠지만, 그에 앞서 영어 영역에 특유한 난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영어의 ‘지문’을 찾아내는 일은 다른 영역에는 없는 강도의 부담일 듯하다. 외국어 지문인 만큼 출제 현장에서 창작하는 데는 위험이 크게 따를 터라 기존 문헌에서 발췌해야 할 텐데, 마땅한 것을 찾기도 힘들겠지만 사교육 시장에 유통되었던 것을 피해야 한다는 조건은 그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런 난제를 둘러 갈 수단으로 시류를 좇아 교육부는 인공지능을 떠올린 것 같다. 말하자면, 인공지능이 영어 지문을 짧은 시간에 필요대로 ‘생성’해 줄 것이고, 후보 지문이나 문항 자체가 ‘기출’과 중복되는지도 사교육 시장을 망라해 확인해 주리라 기대한 것이다. 다만, 인공지능을 키우고 출제에 이용하는 데는 문항 정보가 새 나가는 등의 ‘보안 문제’가 따라올 것을 우려한 모양인데, 이 문제는 ‘센터’를 지어 출제장을 고립시킴으로써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보았던 듯하다.
‘워치독’이라는 언론은 교육부 보도자료 베껴 보도
교육부 발표는, 대입 뉴스였던 만큼, 시중 언론 매체들이 일제히 퍼 날랐다. 으레 그렇듯, 사전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제대로 톺아봄 없이 베껴 보도했다. 인공지능이란 ‘뜨거운’ 단어는 그래도 놓치지 않고, 수능 출제에도 AI를 동원하겠다는 대목을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시류 편승 행태까지 여전했다.
이제 ‘영어 불수능 문제’를 처리하는 의례는 치러진 셈일 것이다. 다음 수능 출제에서는 경각심이 각별해질 것이고, 같은 사고가 바로 이어서 터지진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난이도 안정’이란 교육부 언약은 머지않아 빈말이었다는 게 드러날 것이며, 인공지능을 활용한다는 대책도 말 뱉어내듯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음을 뒤늦게(예산 낭비하고 나서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수능 사고는 다시 터질 것이고, 그때마다 희생양을 잡아 제사함으로써 위기를 넘길 것이다. 수능이 빚어내는 ‘교육의 악’은 못 보거나 못 본 체하며 어름어름 끌고 갈 것이다.
이번 대책은 없었느니만 못할 것이다. 내놓은 조치로는 교육상 얻을 게 없을 듯한데 수능의 목숨만 은근히 2030년 너머로 연장해 놓고 있다. ‘중장기’ 대책을 운위하며 2030년 목표의 과제까지 삽입했으니 말이다. 수능이 교육에 해(害)가 되는 만큼, 그 해악이 더 두텁게 누적되기만 할 형국이다. 이런 비판이 성급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 정당화는 교육부 발표의 흠 세 가지를 짚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출제진 탓이었다는 문제 분석은 잘못 짚은 것
교육부는 원인 분석부터 잘못했다. 출제하고 검토하는 사람들이 문제였다는 게 결론인데, 난이도와 관련해서 출제진의 요인은 부차적이다. 핵심적인 원인은 수능의 난이도를 뜻대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난이도를 조절할 객관적인 ‘기술’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불수능-물수능’ 논란이 얼마나 잦았으며, 그런데도 그 널뛰기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더 직접적으로는, 영어 영역 ‘절대평가’를 도입한 2018학년도 수능 이후 1등급 비율이 얼마나 변덕맞았는지만 살펴보아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최고 12.66%에서 최저 3.11%까지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폭으로 오르내려 왔을 뿐만 아니라, 변화가 균질한 추세를 보이지도 않고 해마다 출렁였다. 두 자릿수를 넘기는가 하면 5% 선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출제진은 어느 해나 ‘적정 난이도’를 의도했을 텐데 사실상 줄곧 실패했던 셈이다.
그렇게 난이도가 불안정했는데도 2025학년도까지는 왜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난이도에 흠결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정부를 흔들 만큼 그것이 ‘이슈화’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채점 결과로 드러난 1등급 비율에 민감하게 반응할 ‘우수한’ 응시생 집단이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데, 그들에게 마땅한 명분이 주어지지는 않았었다. 이를테면 2025학년도까지는 영어 영역의 1등급 비율이 다른 영역의 구획선인 4%보다는 높았다. 영어에서 ‘억울하게’ 1등급을 놓쳤더라도 아우성칠 명분이 버젓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엔 달랐다. 채점 결과 1등급 비율이 4%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거니와 N수생 수는 “2004년 이후 최대치”였다. 수시의 수능 최저 기준을 넘어서는 데 1등급이 필요했던(그리고 정시로 ‘의대’를 노렸던) 응시생이 비교적 많았을 것이다. 이 부류 응시생들의 ‘배경’은 상대적으로 좋으리라 짐작할 수 있으며, 그만큼 정부에 큰소리칠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영어 불수능의 ‘기습’은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리라 짐작한다. 그들의 수는 응시생의 5%도 안 됐겠지만, 언론 보도를 부추기고 정부를 흔드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작년 불수능 사건은 결국 이전과는 차별되게 그야말로 ‘문제’로 등극했다. 교육부도 대책을 만들어 냈어야만 할 만큼 ‘큰 문제’가 되었다.
난이도는 일반적으로 정답을 댄 응시자의 비율을 가리킨다. 정의상 응시자 집단의 ‘실력’ 분포에 달린 통계치이다. 즉, 난이도를 조절하려면 응시자 집단의 속성을 속속들이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작년에 그 가늠은 특히 어려웠을 것이다. N수생 응시자가 크게 늘었고 전해에 크게 늘렸던 의대 정원도 갑작스레 줄여져, 응시생 분포를 짐작하기가 매우 복잡해졌다. 출제 과정에서 난이도를 예상하기 위해서는 응시자 집단을 사전에 탐색한 모의고사 데이터가 긴요한데, N수생들은 모의고사를 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그마저 크게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특유했던 변수가 없었더라도, 수능에서 난이도 추정은 근본적으로 출제진의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응시자 집단의 속성이 혼미해지면서 작년엔 어려움이 가중되었을 텐데, 정부까지 들어 사태를 악화했다. 당시 대통령부터 나서서 공정성이니 카르텔이니 하며 출제진 구성에 ‘무작위’를 강요했다. 난이도 안정을 위해선 ‘감’을 지닌 베테랑 출제자가 특히 필요한데, 출제진 구성에서 그런 고려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불수능 원인으로 교육부는 출제진의 ‘전문성’을 탓했지만, 그 화근은 다분히 정부에 있었던 셈이다. 경솔하게 개입해 출제 진용을 헝클어 놓고는, 문제가 터지니 교사 출제자를 늘렸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그 행태나 논리 모두 어쭙잖다.
대책들은 한결같이 설익어
앞선 지적에도 내포되어 있지만, 대책이라고 내놓은 대안들이 한결같이 설익었다. 시류에 편승하듯 내놓은 “인공지능(AI) 출제 지원 체계”라는 대안을 보자.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미래형 수능 출제·평가”가 가능해질 듯이 역설하면서, “‘인공지능(AI) 활용 영어 지문 생성 시스템’을 개발하여 출제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고, 추후 인공지능(AI)을 난이도 예측, 유사 문항 검토 등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확언하기 전에, 그 발언의 타당성은 고사하고, 현실성이라도 제대로 검토했을지 의문이다.
교육부에 묻고 대답을 들어보고 싶다. 영어 지문을 생성할 인공지능은 어떻게 만들지 초벌 구상이라도 했는가? 어떤 ‘데이터’로 학습시키려는가? “유사 문항 검토”에 활용하려면 사교육 시장에 나돌아 온 모든 지문과 문항들도 학습시켜야 할 듯한데, 가능하다는 뜻인가? 지문 생성을 요구할 때 사용할 ‘명령(prompt)의 기술’은 어떻게 갖출 것인가? 그걸 갖추는 데 어떤 전문가들이 필요할지 헤아려보긴 했는가? 1년여 후 모의고사에 시범 적용한다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제대로 맞춰본 일정인가?
교육부가 인공지능을 활용하겠다면서 고심한 것은 고작 ‘보안’ 문제였던 듯하다. ‘교육평가‧출제지원센터’를 설립해서 ‘인공지능 시스템’ 내용물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으면 더 걱정할 게 없으리라 여긴 듯하다. 순진한 상상이다. 영어 문항을 출제할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매우 다면적인 사전 연구와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영어와 영문학의 측면은 물론이고 그 분야 교육과 학습에 관련된 인지 기제나 인공지능 모델의 내재적 속성까지, 제대로 만들기 위해 파악하고 투입해야 할 요소는 그야말로 무수할 것이다. 인공지능을 설사 만들어 낸다 해도, 그것을 출제 현장에서 이용하는 데도 만만찮은 조건들이 따라붙을 것이다. 이제까지처럼 ‘영어’ 교사나 교수 등으로만 출제진을 구성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도입한다는 계획이 사실상 환상에 불과해 보이지만, 실현된다고 쳐 보자. 그래서 얻게 될 영어 지문은 교육적이리라 보장되는가? 바꾸어 말해서, 이제까지 출제에 활용되었던 지문들과 인공지능이 생산할 지문들이 질에서 전혀 차이가 없으리란 뜻인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낼 법한 지문을 담은 문제지로 수많은 학생이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인공지능을 직접 고용해 활용하면서) 풀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사태에서도 교육의 양상은 정상이라 보는가? 의문은 그치지 않는다.
요컨대 교육부는 본질적인 문제 즉, 인공지능에 출제를 맡긴다는 발상이 교육상 무엇을 뜻하는지는 헤아려볼 염도 내지 않은 듯하다. 교육부의 정책 하나하나에는 모종의 교육관이 함축되어 있기 마련이다. 발표마다 그 이면을 헤아려보면, 과연 교육부가 교육을 걱정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다른 정책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번 대책도 그것에 내포된 ‘교육관’은 교육관이라 이름하기에도 부적절하다고 느껴진다.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지문을 수능 출제에 사용하겠다면서, 그런 발상이 어떤 교육을 함축하는지 먼저 검토할 필요나 감지했었는지 의문이다.
교육부는 이번에도 학교 교육을 돌보기보다 방기해
결국, 이번 대책은 학교 교육에 득보다 실을 더 초래할 것이다. 거듭 지적하거니와, 교육부는 대책을 세우면서 학교 교육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저 ‘난이도 불안정’을 제어하는 데 도움 될 듯 보이는 방책들을 그나마 어설프게 모아 엮어냈다. 다시 얘기하면, 전문성을 검증해 출제진을 구성하고 교사 출제자 비중을 높이면 된다고 보았다. 이때 ‘검증’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요건은, 교육부 발표를 그대로 옮기면, “수능‧모의평가‧학력평가 출제 이력, 교과서‧이비에스(EBS) 교재 집필 이력 등”이다.
교육부가 내놓은 ‘전문성’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교사들이 문항 난이도를 추정하는 데 능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질(교육적 가치) 높은 문항을 출제하는 데 전제되는 사명감이나 역량을 더 출중하게 갖추었으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교육방송(EBS) 수능 강의를 들어보면 느끼게 된다. 그들은 영어라는 교과를 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 그다지 고심하지 않는 듯 보인다. 강의 초점은 대체로 ‘득점 요령’에 모아져 있다. 그런 강의의 이력과 습성을 지닌, 말하자면 ‘입시 위주 교육’의 습성이 굳은 강사가 수능 출제진에 합류한다고 해서 교육의 가치를 새삼 걱정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우리 학교 교육이 시험 위주로 흐른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수능은 시험들 가운데서도 교육을 흔드는 힘이 압도적이다. 그런 시험에 휘둘리는 교육이 바를 리는 없다. 그런데도 시험(수능)의 교육 왜곡 사태가 우리 사회에서(물론, 정책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는 것은 증상이 미미해서가 아니다. 그 문제를 너무 오랫동안 안고 살아서, 이제 그것은 고쳐야 할 게 아니라 견디며 살아야 할 ‘고통’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입시 위주 수업에 뛰어난 강사를 골라 수능 출제를 맡기려는 교육부 대책은 그 고통을 심화할 텐데도 심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4의 권력’을 행사해야 마땅한 언론 매체들도 이상(異常)을 감지하지 못했다. 이번 대책의 해악은 그래서 더욱 우려된다.
대책이 어설퍼서만 문제가 아니다. 교육에 논란이 일 때마다 정부는 그릇된 정책 궤적을 되돌아보지 않는다. 소란을 잠재우는 데 필요한 희생양(‘책임자’)을 지목해 처벌하는 데 바쁘다. 거듭 이야기하건대, 수능 난이도 문제는 수능 체제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해마다 수능 응시자 집단의 성격이 같을 리는 만무하다. 그 집단은, 이를테면, 고등학교 위계화 정책이나 대입 정원 변화 등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것이고, ‘황금돼지 해’와 같은 풍속 변수까지도 그 성질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게 무수하고 복잡할 모든 변수의 작용을 분석해 낼 수 있어야 난이도 추정이 근사해질 텐데, 가능할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교육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우기며, 그 일을 해내라고 강압하고 있는 꼴이다.
이번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시한 일을 해내지 못하면 벌한다. 수능 출제를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나 수능 출제진이 이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방도는 달리 없다.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도록 강요받으면, 운에 맡기면서 가능한 최선의 전략을 찾는 수밖에 달리 길이 있을 수 없다. 결국 채택하게 될 출제 전략은 어떤 것일까? 그 구체적인 양태를 예견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교육의 측면에서 ‘꼼수’일 것이며 그래서 교육상 해로울 것이라는 점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출제진도 그렇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라는 기관 자체가(교육을 걱정해야 한다는 근본 사명은 잊은 채) 교육상 바람직한 출제가 아니라 ‘적정 난이도 확보’를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난이도에 골몰하는 일은 응시자 변별을 위해서나 필요하지, 교육을 위해서 필요한 게 아니다. 교육은 변별을 위한 과업이 아니다. 교육부도 종종 힘주어 말한다. 모든 아이의 잠재력 구현을 보장하는 게 교육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교육부는 자가당착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교육자든 교육기관이든, 정책을 따르자면(책임 추궁을 피하려면) 바른 교육을 도모하기보다 오히려 교육을 방기해야 한다. 이번 대책도 교육을 방기하는 쪽으로 수능 출제 경향을 기울일 것이다.
수능의 권좌를 당연히 여기지 말아야
한국 정부는 언젠가부터 수능을 교육의 잘잘못을 가늠하는 불가침 잣대로 옹립해 지지해 오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관성은 굳어지고 사회도 그런 관습과 문화에 절어 들었다. 교육 정책은 그런 수능의 권좌를 지속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수능의 반(反)교육성이 깊고 강한 만큼 교육 정책은 교육을 망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악성(惡性)을 도려내기 위한 노력을 적극 훼방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내놓은 수능 대책 역시 그렇다. 앞선 많은 정책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이제까지 한두 번 지적한 게 아니지만, 비판을 포기하기엔 문제가 너무 심각하고 뿌리 깊다. 그 뿌리를 뽑아 없앨 새로운 출발을 거듭 요청한다. 교육 정책을 구상할 때면 으레 교육의 가치를 헤아리는 버릇부터라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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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제4의 길> 편집실에서는 논급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안에 대하여 적절한 형식으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