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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학교 선택’ 속에 담긴 구조를 읽다

#1464 김승배, 플로리다주립대학교 박사과정 2026.03.04
미국에서는 ‘학교 선택’이 확대되며, 배정이 아닌 이동이 공교육의 기본 원리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자사고·특목고·학군 논쟁이 이어지며, 선택은 자유의 언어이자 경쟁의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의 학교 선택을 통해, 선택이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자원과 정보, 접근 조건이 얽힌 구조의 산물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토요일 오전, 한 고등학교 체육관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입구에는 각기 다른 색의 배너가 세워져 있고, 교실마다 테이블이 놓여 있다. 한쪽에서는 STEM 프로그램을 강조하고, 다른 쪽에서는 예술 통합 교육을 내세운다. 또 다른 부스에서는 “대학 진학률 00%”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 이는 대학 박람회가 아니라, 미국의 공립학교 박람회다.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매년 열리는 ‘스쿨 초이스 페어(school choice fair)’의 풍경이다(Atlanta School Choice Expo, n.d.). 이 장면은 오늘날 미국 공교육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에는 학생의 집 주소가 곧 학교를 결정했다. 학생이 거주하는 지역의 학군을 기준으로 학교를 배정하는 지역 기반 배정제는 행정적으로는 단순했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을 분리함으로써 교육 격차를 재생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Reardon, 2011).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학교 선택(school choice) 정책이다. 차터 스쿨(charter school)1, 마그넷 스쿨(magnet school)2, open enrollment3, 바우처(voucher)4 제도 등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정책적 의도를 담고 있다.

 

정책의 논리는 비교적 명확하다. 경쟁은 효율성을 높이고, 선택은 서비스의 질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교육 영역에 부분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하면 공교육의 혁신이 촉진될 것이라는 가정은 1990년대 이후 미국 교육개혁 담론의 핵심 축이었다(Chubb & Moe, 1990). 특히 차터 스쿨 확대는 지역 독점적 구조를 완화하고, 학교 간 경쟁을 통해 전반적 성과를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 확산되었다.

 

그러나 학교 선택은 단순히 ‘더 많은 옵션’을 제공하는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공교육의 자원 배분 방식과 조직행동을 재설계하는 제도적 장치다. 학생이 이동하면 예산이 함께 이동하는 미국의 교육비 배분 구조는 학교를 경쟁 단위로 전환시키며, 공개된 성취도 지표는 학교를 비교 가능한 대상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더 이상 단순한 공공기관이 아니라, 학생을 유치해야 하는 조직으로 재정의된다(Lubienski, 2003).

 

겉으로 보기에 선택은 자유의 확대처럼 보였다. 학부모는 자녀에게 더 적합한 학교를 고를 수 있고, 성취도가 낮은 학교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정책을 구조적으로 바라보면 질문은 달라진다. 선택은 정말로 모든 가정에게 동일한 조건으로 열려 있는가? 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해석하며,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는가?

 

많은 연구들은 학교 선택이 정보와 자원의 격차를 매개로 불평등을 재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산층 가정은 학교 성취도 데이터와 평판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네트워크를 통해 비공식적 정보를 공유한다. 반면, 정보 접근성과 해석 능력이 제한된 가정은 선택의 장(field)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Holme, 2002). 선택은 형식적으로는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가정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자본에 따른 다른 경로를 만들어낸다.

 

또한 학교 선택 정책은 학교 간 학생 구성(student body)을 재편한다. 일부 연구는 차터 스쿨이 학생들의 평균 성취도를 개선할 수 있다고 보고하지만, 동시에 학교 간 사회경제적 분리를 강화하는 경향도 지적한다(Bifulco & Ladd, 2007). 이는 선택이 무작위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유사한 자원을 가진 가정은 유사한 학교로 이동하며, 그 결과 학교 간 차이는 완화되기보다는 재구성된다.

 

이 지점에서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학교 선택을 자유 대 규제, 공공성 대 시장화라는 이분법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제도의 작동 방식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정책은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 설계의 산물이다. 어떤 재정 공식을 사용하는가, 어떤 정보를 공개하는가, 이동을 위한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선택의 결과는 달라진다.

 

이 글은 학교 선택의 찬반을 묻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바꾼다. 학교 선택은 어떤 구조 위에서 작동하는가. 그 구조는 학부모와 학교, 지역 사회의 행동을 어떻게 조직하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교육 격차를 완화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로 재배치하는가.

 

선택은 개인의 결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도의 산물이다. 자유처럼 보이는 이동의 이면에는 규칙, 자원, 정보 체계가 존재한다. 우리가 분석해야 할 것은 선택의 도덕성이 아니라,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설계다.

 

 

학교 선택은 어떻게 등장했는가

 

학교 선택 정책은 미국 공교육이 오랫동안 안고 있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났다. 특히 20세기 후반 이후 심화된 주거 분리와 학업 성취 격차는 지역 기반 배정제의 한계를 드러냈다. 공립학교는 원칙적으로 보편적 접근을 지향했지만, 실제로는 거주 지역의 소득 수준과 인종 구성에 따라 학교 자원이 달라지는 구조 속에 놓여 있었다(Reardon, 2011). 지역 배정제는 행정적으로는 효율적이었다. 주소를 기준으로 학생을 배정하면 복잡한 선발 절차 없이 학교 운영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주거 분리가 곧 학교 분리’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중산층 가정은 더 나은 학군으로 이주함으로써 교육 기회를 확보했고, 저소득층 가정은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학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교육 격차는 학교 내부의 문제라기보다, 도시 구조와 주거 정책과 연결된 문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대 이후 미국 교육정책 담론은 중요한 전환을 맞이한다. 1983년 A Nation at Risk 보고서 발간 이후, 공교육의 성과에 대한 위기 담론이 확산되었고, 교육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구조 개혁이 요구되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 이론적 틀이 시장 기반 개혁(market-based reform)이었다. Chubb & Moe (1990)는 공교육이 관료적 통제 구조에 묶여 있어 혁신이 어렵다고 주장하며, 경쟁과 선택이 학교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논리는 단순한 교육 철학이 아니라 정책 설계로 이어졌다. 차터 스쿨은 공적 자금을 받되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받는 학교 형태로 등장했고, 마그넷 스쿨은 특정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학생을 유치하는 모델로 확산되었다. 이후 일부 주에서는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여 공적 자금을 사립학교 선택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공통적으로 “학생을 따라가는 예산(student-based funding)”이라는 원칙을 채택했다. 즉, 자원은 학교가 아니라 학생에게 귀속되고, 학생의 이동은 곧 재정(예산)의 이동을 의미하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학교 선택이 단지 선택권 확대의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의 조직 원리를 바꾸는 시도였다는 사실이다. 전통적 공립학교 체제는 지역 단위로 운영되며 비교적 안정적인 학생 구성과 예산을 전제로 했다. 반면 선택 기반 체제는 학교를 경쟁 단위로 전환한다. 학교는 더 이상 배정된 학생을 수용하는 기관이 아니라, 학생을 유치해야 하는 조직이 된다. 경쟁 환경 속에서 학교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성과 지표를 관리하며, 외부 평판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정책 담론은 이러한 구조 변화를 ‘혁신’과 ‘효율성’의 언어로 정당화했다. 경쟁은 질을 높이고, 선택은 공공 서비스의 반응성을 강화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경향에 비판적인 연구들은 선택이 반드시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차터 스쿨의 확산이 학교 간 사회경제적 분리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되었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선택이 균등한 조건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전환은 책무성(accountability) 체계와의 결합이다. 2001년 No Child Left Behind Act (NCLB) 이후 개별 학교들의 표준화 시험 결과가 공개되고, 학교 성과가 비교 가능한 지표로 제시되면서, 선택은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과 연결되었다. 학부모는 학교 성취도를 비교할 수 있게 되었고, 학교는 공개된 성과 지표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선택은 정보 공개와 결합되면서 더욱 강력한 구조적 힘을 갖게 되었다.

 

결국 학교 선택 정책의 등장은 세 가지 구조적 흐름이 교차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주거 기반 배정제가 낳은 교육 격차에 대한 문제의식. 둘째,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공공 부문 개혁이라는 정책 철학, 셋째, 책무성 체계와 데이터 공개를 통한 비교 가능성의 확대.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면서, 공교육은 ‘지역 기반 안정 체제’에서 ‘경쟁 기반 이동 체제’로 점진적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학교의 수를 늘리거나 선택지를 추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시켰다. 학교는 더 이상 동일한 규칙 아래 운영되는 공공 기관이 아니라, 성과의 평판을 두고 경쟁하는 조직으로 재정의되었다. 학부모는 행정적 수혜자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자가 되었고, 학생은 학교로 예산을 가져오는 재원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선택은 어떻게 구조가 되는가

 

학교 선택 정책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서 드러난다. 선택은 단순히 “고를 수 있는 학교가 많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자원이 배분되는 원리가 바뀌었고, 정보가 조직되는 방식이 달라졌으며, 이동의 조건이 행정적으로 규정되었다는 뜻이다. 이 세 요소는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얽혀 하나의 구조를 형성하며, 그 안에서 학부모와 학교의 행동을 재조직한다.

 

가장 먼저 변화한 것은 자원의 흐름이다. 학생 1인당 배분 공식을 채택한 다수의 주(state)에서 예산은 더 이상 지역 단위 학교에 고정적으로 할당되지 않는다. 학생이 어느 학교에 등록하느냐에 따라 재정이 이동한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 공정한 설계처럼 보인다. 자원은 학생을 위해 존재하며, 학생의 선택은 곧 자원의 이동을 의미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공식은 학교를 경쟁 단위로 전환시키는 강력한 유인 구조를 만든다. 학생 수의 증감은 곧 재정의 증감으로 이어지고, 이는 학교 운영과 교직원 채용과 해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학교의 비용 구조가 선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학생이 일부 빠져나간다고 해서 건물 유지비나 고정 인건비가 비례적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학생 감소는 단순한 규모 축소가 아니라 재정 압박으로 작동한다. 특히 경제적·학업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더 나은 환경의 학교로 이동할 경우, 이미 취약했던 학교의 여건은 더욱 악화되며, 그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들은 한층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처럼 선택은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는 동시에, 자원의 안정성을 약화시키는 힘으로 작동한다.

 

이 재정 구조는 곧 학교의 행동을 바꾼다. 안정적 배정을 전제로 운영되던 학교 조직은 이제 학생을 유치해야 하는 조직으로 전환된다. 프로그램 차별화, 홍보 전략, 성취도 관리가 학교 운영의 중요한 요소로 부상한다. 경쟁 환경 속에서 학교는 혁신을 시도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외부에 보이는 지표를 관리하는 데 집중할 유인도 갖는다(Lubienski, 2003). 선택은 단순한 수요의 분산이 아니라, 조직의 전략화를 촉진하는 제도적 장치다.

 

이와 동시에 정보 체계가 결합된다. 책무성 체계의 강화 이후, 학교별 시험 점수와 졸업률, 대학 진학률은 공개 데이터로 제시된다. 선택은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적 판단이라는 전제를 갖는다. 그러나 데이터는 중립적 지표가 아니다. 무엇이 측정되고, 무엇이 공개되며, 어떤 지표가 강조되는가에 따라 학교의 가치가 재정의된다. 시험 점수는 종종 학교의 질을 대표하는 핵심 지표로 활용되지만, 이는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결과, 성취도가 높은 학교는 더 많은 수요를 끌어들이고, 낮은 점수를 가진 학교는 낙인 효과를 경험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정보의 활용 능력이다. 정보는 공개되었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전략화하는 능력은 균등하게 분포하지 않는다. 중산층 가정은 공식적 지표뿐 아니라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통해 학교 평판과 세부 정보를 수집한다. 반면 자원이 제한된 가정은 복잡한 지표를 해석하거나, 본인들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활용하기 위한 신청 절차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Holme, 2002). 선택은 형식적으로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실질적 선택 범위는 부모의 사회적·문화적 자본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 접근 조건이 더해진다. 선택은 단순한 선호 표명이 아니라, 신청 절차를 수행하고 통학 가능성을 감수해야 하는 행위다. 마감일을 챙기고,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며, 장거리 통학을 감당하는 일은 모든 가정에게 동일한 부담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교통 인프라, 부모의 근무 시간, 가정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이동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제약한다. 선택은 제도적으로 열려 있지만, 이동의 비용은 균등하지 않다.

 

이처럼 재정 구조, 정보 공개 체계, 접근 조건은 서로 분리된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시스템을 형성한다. 자원은 학생을 따라 이동하고, 공개된 데이터는 비교의 기준을 제공하며, 행정 절차와 교통 조건은 이동의 범위를 규정한다. 이 모든 요소가 결합되어 선택의 장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장 안에서 행위자들은 전략적으로 움직인다. 학부모는 자녀의 성향과 성적뿐 아니라 장기적 대학 진학 경로를 고려하여 학교를 선택한다. 학교는 특정 학생층을 유치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강조하고, 성과 지표를 관리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우연적이지 않다. 제도가 만들어낸 유인 구조 속에서 반응하는 결과다. 선택은 개인의 의지나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된 규칙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조적 행위다.

 

따라서, 선택은 자유의 문제라기보다, 설계의 문제다. 이동은 허용되지만, 그 이동은 제도가 정한 규칙에 따라, 그리고 가정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자본에 따라 이루어진다. 자원의 배분 방식과 정보의 조직 방식, 접근 조건의 차이는 선택의 결과를 방향 짓는다. 겉으로 보기에 유연해진 체제는 실제로는 더욱 정교한 규칙을 통해 작동한다.

 

 

무엇을 보여주는가?

 

미국의 학교 선택 정책은 종종 한국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소비된다. 한쪽에서는 이를 공교육의 시장화 사례로 보며 경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선택권 확대의 모델로 참조한다. 그러나 이 두 접근은 모두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다. 선택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선택이 어떤 구조 위에서 설계되었는가를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역시 선택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자율형 사립고와 특수목적고 논쟁, 고교학점제 도입, 학군 프리미엄, 심지어 대입 전형 다양화까지 모두 ‘선택’의 언어와 맞닿아 있다. 정책은 선택을 확대하거나 통제하는 방향으로 흔들려 왔다. 그러나 미국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선택의 확대와 축소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설계의 문제다.

 

첫째, 재정 구조를 보자. 미국에서는 학생 이동이 곧 예산 이동을 의미한다. 이 설계는 학교를 경쟁 단위로 전환시킨다. 한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중앙집권적 재정 구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특정 학교 유형에 대한 자원 집중은 이미 존재한다. 선택이 확대될 경우, 자원의 배분 공식이 어떻게 설정되는가에 따라 학교 간 격차는 확대될 수도, 완화될 수도 있다. 선택이 중립적으로 보이더라도, 재정 설계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둘째, 정보 구조 역시 중요하다. 미국은 학교 성취도와 각종 지표를 공개함으로써 선택을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결합시켰다. 한국도 학교 알리미, 대학 진학 실적, 각종 평가 지표를 통해 유사한 정보 체계를 구축해 왔다. 그러나 정보 공개는 곧 비교의 구조를 만든다. 어떤 지표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학교의 가치가 재정의된다. 학업 성취를 중심 지표로 삼을 경우, 중산층 선호 학교는 더욱 강화되고, 그렇지 않은 학교는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 정보는 투명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위계를 만든다.

 

셋째, 접근 조건의 문제다. 미국의 선택이 교통과 행정 절차, 정보 접근성에 의해 조건부로 작동하는 것처럼, 한국의 선택 역시 사회경제적 조건과 분리될 수 없다. 특정 학교 유형에 대한 준비 과정, 입학 전략, 사교육 자원의 동원은 선택을 실질적으로 비대칭적으로 만든다. 형식적으로는 열려 있는 제도라도, 실제 활용 가능성은 자원의 분포에 따라 달라진다.

 

선택은 공공성과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동시에 선택은 자동으로 공정성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선택은 하나의 정책 도구이며, 그 효과는 설계에 달려 있다. 재정 공식, 정보 공개 방식, 접근 장치의 조정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미국의 경험은 선택이 분산과 분리를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동성은 확대되지만, 이동은 균등하지 않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긴장은 반복된다. 학교 유형을 다양화하면 기회가 확대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특정 학교에 자원이 집중되고 위계가 강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선택을 둘러싼 논쟁은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의 문제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선택이 작동하는 장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이동이 발생하더라도 자원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재정 구조는 가능한가. 정보 공개가 위계를 강화하지 않도록 하는 보완 장치는 무엇인가. 접근 조건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무엇인가.

 

결국 교육정책의 핵심은 자유의 확대가 아니라, 공정한 조건의 설계에 있다. 선택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자원의 배분과 정보의 조직, 접근 조건의 설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선택은 개인의 결단처럼 보이지만, 그 귀결은 언제나 구조의 산물이다.

 

참고 문헌

 

• Atlanta School Choice Expo. (n.d.). National School Choice Week. Retrieved February 27, 2026, from
https://schoolchoiceweek.com/events/atlanta-school-choice-expo-2026/
• Bifulco, R., & Ladd, H. F. (2007). School choice, racial segregation, and test-score gaps: Evidence from North Carolina’s charter school program. Journal of Policy Analysis and Management, 26(1), 31–56.
• Chubb, J. E., & Moe, T. M. (1990). Politics, markets, and America’s schools. Brookings Institution.
• Holme, J. (2002). Buying homes, buying schools: School choice and the social construction of school quality. Harvard Educational Review, 72(2), 177–205.
• Lubienski, C. (2003). Innovation in Education Markets: Theory and Evidence on the Impact of Competition and Choice in Charter Schools. American Educational Research Journal, 40(2), 395–443.
https://doi.org/10.3102/00028312040002395
• Reardon, S. F. (2018). The Widening Academic Achievement Gap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In D. B. Grusky & J. Hill (Eds.), Inequality in the 21st Century(1st ed., pp. 177–189). Routledge.
https://doi.org/10.4324/9780429499821-33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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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정부 재정을 지원받지만 학군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율적 교육과정과 운영권을 부여받는 공립학교의 한 형태
  2. 예술·과학·국제교육 등 특정 분야를 특성화해 운영하며, 거주 학군과 관계없이 학생을 모집하는 공립학교
  3. 학생이 거주지 학군에 자동 배정되지 않고, 다른 공립학교나 학군으로 지원·이동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
  4. 정부가 학부모에게 일정 금액의 교육비를 지원해 공립학교 대신 사립학교 선택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플로리다주립대학교 박사과정 김승배

현재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교육 정책과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교육 경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 그리고 향후 진로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특히, 대학 입시 정책이 고등학교 재학생들의 학업 경로와 학교생활 전반에 어떠한 방향성을 부여하는지에 주목하고 있으며, 아울러 개별 학교들이 이러한 정책적 맥락을 어떻게 해석하고 실행에 옮기는지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단순한 정책 수용의 장이 아니라, 정책을 재해석하고 학생 경험을 매개하는 주체로서 기능함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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