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자리에서 성찰로 나아가는 교실
|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학생들의 기억이 ‘후회’에 머무르지 않고, 의미와 배움, 책임으로 이어지는 ‘성찰’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획하고 실행한 여러 활동들을 소개합니다. |
해마다 학년 말이 되면 묘한 마음의 흐름이 찾아온다. 한 해 동안 잘 해낸 일, 뿌듯했던 순간보다도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는 없었을까’와 같은 뒤늦은 후회와 자책이 먼저 떠오른다. 베테랑이라 불리는 연차가 되었음에도 교사로서의 한계를 실감하며 깊은 한숨을 내뱉게 되는, 이 시기는 나에게 참으로 쓸쓸하고 우울한 계절이다. 아이들은 훌쩍 자라 있는데, 나는 여전히 부족한 교사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자꾸만 움츠러든다.
특히 올해는 그 마음이 유독 더 깊었다. 경력 25년 만에 처음으로 저학년을 맡으며,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낯선 발달 단계 앞에서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다. 고학년 교실에서는 짧은 말 한마디로 충분히 정리되던 상황들이 저학년 교실에서는 좀처럼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모든 설명은 더 구체적이고 세밀해야 했으며, 아이를 향한 기다림은 곱절로 길어야 했다. 아이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교실의 리듬에 적응하느라 매일같이 고군분투하던 시간들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학년을 마무리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이들도 나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을까? 한 해를 돌아보는 이 시기에 우리 아이들 역시 자신이 잘하지 못했던 순간들, 선생님께 혼났던 기억, 실수했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였을까, 2학년 통합교과 마지막 교과서가 ‘기억’이라는 사실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학생들의 기억이 잘못, 자책, 실수와 같은 ‘후회’에 머무르지 않고, 의미와 배움, 책임으로 이어지는 ‘성찰’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이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한 해를 매듭짓는 나 자신에게도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후회에 머물지 않고, 성찰로 나아가기
통합교과 ‘기억’ 교과서는 이러한 교육적 의도를 펼치기에 적합한 차시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차시는 ‘그때 그랬더라면’이었다. 이미 지나간 한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해본다면 그때의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해 보고,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지 표현해 보는 활동이다. 이 차시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선택과 결과’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활동에 앞서, 아이들이 자신의 기억에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도록 사전 활동을 충분히 진행했다. 2학년 생활을 돌아보는 ‘인생 네 컷’ 그리기, 배운 교과 내용을 떠올리며 문제 만들기, 공부할 때의 나의 모습 떠올려 보기, 친구들과 생활하며 보였던 나의 모습 돌아보기 등 한 해를 여러 각도에서 되짚어 보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기억은 예상보다 훨씬 다양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모두 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떠올리지 못한 순간이었지만, 그 아이에게는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 장면이었다. 누군가는 공부와 관련된 기억을, 누군가는 친구와의 관계를, 누군가는 규칙과 예절에 관한 순간을 떠올렸다. 그 지점들은 모두 아이 각자의 삶에서 의미 있는 기억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때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이 질문을 앞두고, 후회와 성찰의 차이에 대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해 주었다. 후회와 성찰은 모두 과거의 아쉬운 지점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지만, 후회는 과거에 머물러 자꾸 뒤를 돌아보며 속상해하는 것이고, 성찰은 그 지점에서 방향을 돌려 더 나은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계속 후회만 하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이 질문에 한 남학생이 이렇게 대답했다.
“매일 술만 먹고 ‘아이고 내 팔자야’라고 말해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초등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지만, 그 웃음 속에서 아이들 스스로 ‘머무는 후회’가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웃음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후회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다.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뒤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글로 풀어냈다. 피구를 하다 다친 기억을 떠올리며 다음에는 욕심을 줄이고 조심하겠다고 쓴 아이, 구구단을 미리 연습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3학년이 되면 조금씩 예습하겠다고 다짐한 아이, 복도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혼이 났던 순간을 돌아보며 경고를 들으면 멈추겠다고 적은 아이까지. 아이들의 글에는 ‘아쉬움’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의 선택’이 담겨 있었다. 다른 사람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 아이에게는 깊이 남아 있던 기억들이 이렇게 배움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나 또한 교사의 입장에서 성찰한 점을 아이들과 나누었다.
“선생님은 매년 고학년만 가르치다가 처음으로 여러분과 같은 2학년을 맡아서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기억도 떠오르고,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는 친구에게 따뜻하게 대답해 주지 못한 순간도 생각나요. 하지만 이제 여러분을 통해 저학년 친구들의 특징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내년에는 더 친절한 선생님이 될 거예요.”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괜찮아요. 선생님 최고예요.”, “말 안 듣는 학생이 잘못한 거예요.”라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었다. 교사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성찰하며 성장해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나눈 이 시간이 그 어떤 잔소리나 훈화보다 아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과 나눔이 가져다준 따뜻한 위로와 성장
한 해 동안 매주 성실하게 써 온 주제 글쓰기 ‘소나기(소중한 나의 이야기)’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마지막 글쓰기 주제는 일 년 동안 쓴 글을 모두 다시 읽고 느낀 점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소감 중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점 재미있어졌다”, “이제는 더 쓰고 싶다”는 고백이었다.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나의 역사가 보이는 것 같다”는 문장에서는 분명한 성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기록의 힘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기록하지 않은 것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지만, 기록으로 남긴 것은 성찰의 든든한 도구가 된다. 나 역시 한 해 동안 쓴 네 편의 칼럼을 다시 읽어 보았다. 교실의 장면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교사로서의 성장과 흔들림을 돌아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기록은 나를 엄격하게 평가하기보다,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이들과도 기록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며, 3학년이 되어서도 글쓰기 과제가 없더라도 자신만의 기록을 이어가 보자고 약속했다.
학기 초에 작성했던 타임캡슐을 개봉한 시간도 잊을 수 없다. 일 년 후의 나에게 쓴 편지와 손바닥 그림을 다시 마주한 아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이런 걸 썼었어요?”, “손도 진짜 커졌어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줄넘기를, 만들기를, 태권도를 잘하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자신의 내적·외적 성장을 눈으로 확인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또한 매달 이어 오던 칭찬 활동의 마무리로 우리 반 시상식을 열었다. 아이들은 서로를 위해 트로피를 만들고 상장을 준비했다. 밥상, 다정상, 경청상, 미소상, 급식상 등 교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다양한 영역의 상들이 교실을 채웠다. 서로의 존재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이 시간은 그 어떤 상보다 값지고 따뜻했다.
<타임캡슐 개봉 후 소감 쓰기>

< 우리반 시상식 >

<내가 쓴 ‘소나기’를 읽고 소감 쓰기>


이렇게 한 해를 돌아보며 기억을 떠올리고,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서로 격려하는 성찰의 시간들로 1월을 보내고 있다. 부족함과 실수로 가득했던 기억조차 이제는 따뜻하게 다가온다. 새 학년을 준비하며 이 시간들이 아이들에게는 삶을 지탱하고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는 큰 자양분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교사로서의 나에게도 이 성찰의 시간은 내면을 단단히 하는 힘이 되었다. 비록 부족하고 서툴렀던 2학년과의 첫 만남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분명히 성장했음을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내년의 교실 앞에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여유로운 모습으로 서보려 한다. 후회에 머물러 ‘내 팔자야’를 탓하기보다는,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을 이어가는 그런 교사로 말이다. 2학년 아이들이 내게 가르쳐준 이 소중한 교훈을 품고, 나는 다시 기쁘게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 이제까지 조숙형 선생님의 칼럼을 사랑해 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희 편집실도 선생님께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저희 저널을 찾아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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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전 송촌초등학교 교사(경력 24년차)로, 대전 사회성감성 교과연구회 회원이다. 또한 비바샘 원격교육연수원 <정서격차해소, 기초학력향상, 사회성감성교육 마음트리>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소통은 안되는 시대이지만, 분명,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또 그걸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도 존재하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