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직시: 형평성 교육의 출발점
| 불평등을 정확히 직시하는 것에서 형평성 교육은 시작됩니다. 이 글은 불평등을 만드는 여러 체제적 요인들을 확인하고, 교실에서 시작하는 형평성 교육의 실천 전략과 교육자의 새로운 역할을 살펴봅니다. |
침묵은 방관이 된다
한 중학교 수학 교사가 고민에 빠져 있다. 아무리 수업을 준비해도 일부 학생들의 성취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기초가 부족해서 그래”, “동기가 부족해서 그래”라는 익숙한 설명이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어딘가 설명되지 않는 찜찜함을 느낀다.
사실 많은 교사들은 의도와는 달리 결핍 관점에 노출되어 있다. ‘학습 부진’, ‘기초 부족’, ‘뒤처진 학생’ 같은 언어는 학생을 ‘부족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문제의 원인을 학생 개개인에게 돌리는 틀을 강화한다. 그 결과 학생의 잠재력은 작게 보이고, 교사 역시 문제의 해법을 자기 책임이나 학생의 태도에서만 찾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교사의 잘못이 아니다. 결핍 관점은 교사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평가 중심 구조와 경쟁적 문화가 오랜 시간 동안 주입해 온 시스템의 산물이다. 즉, 문제는 교사가 아니라 교사를 둘러싼 환경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침묵’의 문제가 생긴다. 결핍 관점이 작동하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 우리가 질문하지 않는다면, 그 침묵은 결국 가장 주변화된 학생들을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는 방관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교실 안의 노력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교실 안 개선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 개선을 ‘교실 안의 문제’로만 바라봐 왔다. 더 나은 수업, 더 좋은 평가, 더 정교한 개별 지도… 이 모든 노력은 분명 의미 있고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해외 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듯, 학교 개선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 해결이 아니다. 교사가 수업 전략을 조금 바꾼다고 해서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학습 격차가 사라지지 않는다. 학생 성과의 차이는 개별 교사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교육 정책·학교 운영·사회적 조건이 중첩되어 형성된 구조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제적 요인들은 학생의 기대 수준, 교실 경험, 자기 인식에까지 깊이 영향을 미친다. 사회경제적 배경, 문화적 차이, 제도적 편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특정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주변화시키는 구조가 존재한다. 이 현실을 외면한 채 교실 안에서만 해답을 찾으려 한다면, 구멍 난 배에서 물만 퍼내고 구멍을 막지 않는 것과 같다.
따라서 교육자에게 필요한 것은 교실 안에서의 수업 개선과, 동시에 구조적 불평등을 인식하고 대응하려는 시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의도와는 달리 구조적 문제 앞에서 침묵하게 되고, 그 침묵은 결국 가장 취약한 학생들을 놓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러한 체제적 억압과 불평등은 교실 안에서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다음 사례들은 그 구조가 어떻게 학생들의 일상적 학습 경험을 제한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 사회경제적 배경
경제적 여건은 교실 참여의 조건을 결정짓는다. 어떤 학생은 준비물을 제때 갖추지 못하거나 과제를 도와줄 가족 구성원이 없어, 애초부터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한다. 과제 수행에 필요한 인터넷 환경이나 조용한 공부 공간조차 없는 경우도 흔하다. 반면, 사교육이나 부모의 학습 지원을 받는 학생은 더 많은 기회를 누린다. 결국 같은 교실 안에서조차 학생들은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된다.
• 언어·문화적 배경
다문화·이주 배경 학생은 교재와 수업 예시가 주류 문화에 맞춰져 있을 때 쉽게 소외된다. 한국어가 서툴면 질문하거나 발표할 기회조차 줄어들고, 교실의 토론에서도 뒤처지기 쉽다. 심지어 사투리나 말투 때문에 “표준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낮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는 학생의 학업 자신감을 크게 꺾는다.
• 제도와 평가 방식
표준화된 시험은 오직 특정한 방식에 능숙한 학생에게만 유리하다. 예컨대 빠른 계산이나 서술형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으면 ‘낙오자’로 낙인찍히기 쉽다. 또한 줄 세우기식 성적 중심 문화는 음악, 미술, 체육 같은 영역에서 뛰어난 학생들의 잠재력을 가려 버린다. 다양한 재능이 교실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다.
• 교사·학교 문화
무의식적인 편견은 학생들의 가능성을 억누른다. “저 아이는 원래 수학을 못해”라는 낮은 기대는 교사의 수업 태도와 피드백에 반영되고, 학생 스스로도 “나는 못하는 아이”라는 자기 인식을 내면화하게 만든다. 생활지도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두고 성적이 좋은 학생은 ‘실수’로, 성적이 낮은 학생은 ‘문제 행동’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반복되곤 한다.
• 물리적·제도적 환경
교실 설계와 학교 운영 또한 차별을 만들어낸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은 교실이나 활동이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아 참여 자체가 어렵다. 방과 후 프로그램이나 동아리 활동도 경제적·언어적·시간적 여건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실질적으로 닫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학생들의 성장 기회를 제한한다.
이처럼 체제적 불평등은 교사의 수업 기술 부족이나 학생 개인의 노력 문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구조적 장벽이 수업 현장에서 매일같이 작동하며,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을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뒤에서 살펴볼 ‘성장 관점’과 ‘형평성 렌즈’, 그리고 구체적 실천 전략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이러한 장벽에 작은 균열을 내기 위한 교실 차원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결핍 관점에서 성장 관점으로: 패러다임의 전환
한국 교실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바로 ‘결핍 관점(deficit perspective)’이다. “기초가 부족한 아이”, “집중력이 떨어지는 학생”, “학습부진아”라는 표현들이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관점은 학생을 ‘고쳐야 할 대상’, ‘채워야 할 빈 그릇’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학습과학의 연구 결과는 분명하다. 학습은 결핍을 메우는 과정이 아니라, 학습자가 이미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바탕으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학습과학은 새로운 학습이 기존 지식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모든 학생은 고유한 강점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교육의 역할은 이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성장 관점(growth perspective)’이다. 성장 관점은 학생의 부족함을 메우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강점과 가능성을 출발점으로 삼는 접근이다. 모든 학생은 존엄성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학습은 결핍을 보충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 위에 쌓아 올리고 확장하는 과정이다.
교사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이 아이가 무엇을 못하는가?”가 아니라, “이 아이가 이미 보여주고 있는 강점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 전환은 우리가 교실에서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학생을 부르는 방식에는 그 학생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가 학생을 낙인찍기도 하고,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교육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는 일은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교실 문화를 바꾸는 가장 직접적인 출발점이 된다.
• “학습부진아” → “개별 맞춤 학습 지원이 필요한 학생” 또는 “성장 중인 학습자”
• “학습장애아” → “다양한 학습 특성을 지닌 학생”, “특별한 학습 방식이 효과적인 학생”, “학습에 독특한 접근이 필요한 학생”
• “자폐, ADHD, 난독증” → “신경다양성을 가진 학생”, “뇌 발달과 학습 방식에 다양성을 가진 학생”, “다양한 방식으로 배우는 학생”
• “기초가 부족한 학생” → “기초를 쌓아가는 중인 학생”, “새로운 연결 고리를 만들어가는 학생”(학습의 본질을 ‘연결’로 보는 관점)
• “문제 학생” → “다른(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학생”
•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학생” → “추가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 “맞춤형 지원이 필요한 학생”
• “하위권 학생” → “자신만의 학습 리듬을 갖고 있는 학생”,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하는 학생”
• “느린 학습자” → “시간이 더 필요한 학습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학습자”
• “성취도가 낮은 학생”, “저성취자” → “잠재력을 발현할 기회를 기다리는 학생”, “더 큰 성취로 나아가는 중인 학생”, “성장의 여정에 있는 학생”
‘학습부진아’라는 낙인 대신, ‘성장 중인 학습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기대의 무게가 달라진다. 이것은 단순한 말 바꾸기가 아니다. 언어가 바뀌면 사고가 바뀌고, 사고가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형평성 렌즈: 새로운 관점으로 보기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체제적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여기서 ‘형평성 렌즈(equity lens)’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완전히 달라지듯, 교육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이 달라진다. 형평성 렌즈를 쓴다는 것은 교육의 모든 과정을 “이것이 가장 주변화된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어도 학생들의 배경은 제각각이다. 어떤 아이들은 맞바람을 맞으며 출발하고, 어떤 아이들은 뒷바람을 타고 달린다. 교사가 이런 차이를 보지 못하면 공평한 기회를 보장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학급에서 발표 수업을 계획할 때:
• 기존 관점: “모든 학생이 발표 기회를 똑같이 갖도록 하자.”
• 형평성 렌즈: “한국어가 서툰 다문화 학생,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의 학생, 내향적인 성격의 학생이 이 발표 수업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이처럼 형평성 렌즈를 쓰면 교실 속 작은 장면에서도 보이지 않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관점이 교실을 넘어 학교 전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공평한 학교란 모든 학생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각자의 성장을 기뻐하며, 누구나 도전적인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이다. 또한 학업·정서·진로 준비와 같은 성과가 단순히 인구통계적 배경에 따라 예측되지 않는 학교이다. 다시 말해, 형평성이란 인종·성별·가정 형편·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성공에 필요한 지원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교는 이러한 학교를 만들어가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해야 할까? 여기서 중요한 도구가 바로 형평성 질문이다. 형평성 질문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즉 진정한 ‘북극성(True North)’이 어디 있는지를 가리켜 준다. 그래서 교사는 학습 증거를 탐구하는 순간에도 잠시 멈추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 “나는 이 학생의 강점을 먼저 바라보고 있는가?”
• “나는 모든 학생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순히 학생의 결과물을 평가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의 인간적 가치와 잠재력을 발견하게 하고, 학생의 필요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이끌어 준다.
실천 전략: 교실에서 시작하는 형평성 교육
1) 성장 관점 질문하기
성장 관점은 교사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학생을 바라볼 때 부족함보다 강점과 가능성에 초점을 맞출 때, 수업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교사는 매일의 수업과 평가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 “이 활동에서 각 학생이 가진 강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성공 경험을 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
•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모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이 아이가 이미 보여주고 있는 강점은 무엇인가?”
또한 아래의 질문들은 수업의 전 과정을 점검하는 간단한 체크리스트가 될 수 있다.
• 수업 준비 단계: “이 수업은 누구에게 특히 어려울까? 그 학생을 위해 무엇을 미리 깔아줄 수 있을까?”
• 수업 진행 단계: “지금 이 순간, 침묵 속에 남아 있는 학생은 누구인가?”
• 평가·피드백 단계: “이 평가와 피드백은 이 학생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는가, ‘부족함’만 강조하고 있는가?”
2) 다양성을 자산으로 활용하기
교실에 모인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배경과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장애물이 아니라 서로에게 배우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교사는 학급의 다양성을 문제로 보는 대신, 교육을 풍성하게 만드는 힘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 다문화 학생의 언어적 배경을 활용한 협력 학습
•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의 경험을 나누는 토론
• 서로 다른 학습 스타일을 인정하고 활용하는 수업 설계
• 학생들이 서로의 강점을 발견하고 인정할 수 있는 기회 제공
3) 구조적 장벽 인식하고 제거하기
교실과 학교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학생들의 배움과 참여를 방해하는 장벽들이 존재한다. 교사는 이런 장벽을 의식적으로 살펴보고, 모두가 동등하게 배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거해야 한다.
• 과제나 활동에서 경제적 부담이 되는 요소는 없는가?
• 특정 문화나 배경에 친숙한 내용만 다루고 있지는 않은가?
• 평가 방식이 특정 학생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는가?
• 물리적 환경이나 수업 진행 방식이 누군가를 배제하지는 않는가?
4) 동료와 함께 성찰하기
혼자서는 놓치기 쉬운 편견과 가정(假定)들을 동료들과 함께 점검하자. 교사 협력의 힘을 키워야 한다. 혼자 수업 개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료 교사들과 함께 질문을 던지고, 서로의 수업을 돌아보며, 가장 주변화된 학생들을 위한 구체적 실천을 만들어가야 한다.
• “우리 학급에서 침묵하는 학생들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적절한가?”
•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 “이 학생의 강점을 어떻게 더 잘 발견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가 비교적 큰 틀의 전략이라면, 이제 질문을 조금 더 좁혀 보자.
“그렇다면 나는 내일 교실에서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오늘 교실에서 바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작은 실천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문제 학생’이라는 말 대신, 마음속으로라도 “다른 접근이 필요한 학생”이라고 불러 보기
• 한 시간 수업 중 한 번은, 조용한 학생에게도 부담이 덜한 방식(짝과 상의 후 말하기, 포스트잇으로 의견 쓰기 등)으로 참여 기회를 주기
• 과제를 설계할 때 “이 활동에 돈이 드는 요소는 없는가?”를 한 번만 더 점검하기
• 평가 후 피드백에서 “이번에 잘 안된 이유”보다 “다음에는 무엇을 바꿔 보면 좋을지”를 한 줄이라도 적어주기
• 수업이 끝난 뒤 2분만 투자해 “오늘 수업에서 가장 소외되었을 수 있는 학생은 누구였을까?”를 떠올려 보기
이 작은 실천들은 당장 구조적 장벽을 허물지는 못하지만, 그 구조 속에서도 학생의 경험을 바꾸는 첫 움직임이 될 수 있다.
교육자의 새로운 역할
진정한 교육 개혁은 기술적 문제 해결이 아니라 체제적 억압을 직시하고 형평성을 추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는 교육자에게 새로운 역할을 요구한다.
① 비판적 성찰자: 기존의 관행과 구조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② 변화의 주체: 불공정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③ 옹호자: 가장 취약한 학생들의 목소리가 되어준다.
④ 학습자: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⑤ 협력자: 동료들과 함께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결국 학교 개선은 결핍을 보완하는 일이 아니라 학생이 가진 힘을 키워주고, 그 힘이 발휘될 수 있는 조건을 교사가 만들어 주는 일이다.
가능성과 희망의 공간을 만들어가기
처음에 언급한 그 중학교 수학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나은 교수법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체제적 불평등을 인식하고, 자신의 교실에서부터 이를 개선해 나가려는 용기이며, 이러한 노력이 개별 교사의 선택이 아니라 모든 교육자의 책임임을 깨닫는 것이다.
교사가 이러한 성찰과 실천을 포기한다면,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구조 앞에서 침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성장 관점에서 다시 출발할 때, 교실은 결핍의 공간이 아니라 가능성과 희망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교육은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그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우리는 교실 안의 기술적 개선을 넘어 교실 밖의 구조적 문제까지 함께 다뤄야 한다. “모든 아동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현실이다. 그리고 이 현실을 만드는 첫걸음은 침묵을 깨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며,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교실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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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항상 좋은 글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저도 이런 문제에 대해 늘 관심갖고 있어서 이번 칼럼을 읽으며 더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냥 한아이의 부모이고 소시민이라, 방향은 알고 바라보지만 과연이 이것이 바뀔까?라는 의문과 좌절이 늘 함께 입니다. 하지만,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에서 올려주시는 글들로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날개짓하고 파동을 일으키고 생각이 살아있다면 행동하고 방향을 향해 변할것이다 라는 희망도 갖게 됩니다. 제가 경험할 수 있는것은 딸아이와 그 주변의 아이들 저와 같은 부모들, 제가 뵙는 선생님들이 전부이지만, 다들 그 자리에서 사투하고 노력하는 면면을 보면 결국은 다들 비슷한 곳을 바라보고 그곳에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교실은 결핍의 공간이 아니라 희망의 공간이다..라는 말을 새깁니다. 그렇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에게는 사랑스럽고 마음아픈 조카아이가 있습니다. 동남아에 사는데, 외국인들이 많이 오가는 일터에서 자란 아이라 언어혼란으로 말을 못하는 줄 알았는데 결국은 9살이 되어도 자발적으로 말을 많이 하지않고 간단한 의사소통만 하더라고요. 큰병원 검사로도 알수 없고, 발달의 문제일수도, 언어혼란일수도 애매한 경계에서 회색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아이입니다. 몇년전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한국에서 살고싶다고 했을때, 저는 진심으로 그냥 시골동네 같이 조용한 그곳 동남아에서 그냥 살길 바랬습니다. 한국의 교실로 아이가 들어왔을때 선밖의 아이가 될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많은 것이 발달했고 많은 지원이 있고 체계적이며 교육 보조 인력도 있지만, 우리 사회와 교육이 품을 수 있는 스팩트럼이 그리 넓지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교실 안에 그어 놓은 바둑판 같은 선들에 들지 못하면 왠지 튕겨져 나간 바둑돌이 되지 않을까..제겐 너무 사랑스럽고 친절하며 잘웃는 아이인데 말입니다. 그쪽 나라의 스승의 날에 반친구들이 선생님께 드릴 꽃을 가지고 학교에 갔는데 조카애는 미쳐 그걸 챙기지 못한걸 알고 속상해 하면서 친구의 꽃을 뺏아서 선생님께 드리려했고, 그걸 엄마가 저녁에 알게 되서 아주 아주 큰 꽃다발을 사들고 선생님댁까지 찾아가서 드리고 왔다 합니다. 친구꺼를 뺏으려한 행동이 나쁜 것이라는것도 깨닫고 선생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아이구나 하고 놀랐던 날이라 합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넓직넓직한 교육의 품에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생각 저 생각 해봅니다. 늘 감사합니다 이찬승 대표님.
진심 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조카분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많이 움직였습니다. 선생님께 꽃을 드리고 싶었던 그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본 어머니의 행동이 참 아름답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 아이는 친절하고 잘 웃고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인데, 우리 교육이 그 아이를 온전히 품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 저도 공감합니다.
“교실 안에 그어 놓은 바둑판 같은 선들”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남습니다. 우리 교육이 품을 수 있는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 그것이 바로 형평성 교육이 지향하는 방향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궁금이님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고민하고 나아가겠습니다. 조카분이 어디에서든 따뜻하게 성장하기를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