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 연례대로 정부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성취 수준이 유의하게 향상되는 등의 성과”를 내세우는 발표였다. 그런 내용을 곧이 받아들이기도 어렵지만, 더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국가 수준의 평가 프로젝트 자체이다. 지금 평가는 탈선해 있다. 교육 현실을 제대로 읽어내는 작업으로서 명실상부한 교육 평가가 필요하다. |
“성취 수준이 유의하게 향상되는 등 성과”가 있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24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 이런저런 논란이 불거졌을 때와 비교한다면 사회 관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언론에서는 여전히 꽤 비중 있게 다뤘다. 사실 국가 수준에서 학업성취도를 매년 평가하고 살피는 일은 산업으로 치면 한 해의 총생산을 결산하여 앞으로의 성장을 기약하는 일과 같다. 산업 못지않게 교육이 사회 생존에 결정적인 만큼, 모든 구성원이 그 귀추에 주목할 만하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교육부는 2024년 평가를 통해 확인하게 된 교육 ‘성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중3 국어와 고2 수학에서 성취 수준이 유의하게 향상”되었다는 통계 추이를 짚어 강조했다고 한다. 중3 국어에서 ‘3수준 이상’의 비율이 2023년 61.2%에서 2024년 66.7%로 5.5% 포인트 증가했고, 고2 수학에서는 ‘1수준’ 비율이 2023년 16.6%에서 2024년 12.6%로 4.0% 포인트 감소했다. 네 단계로 구분된 ‘성취 수준’에서 ‘4수준’이 가장 높은 범주이다.
교육부의 성과 강조는 객관적이며 합리적으로 보인다. 언급된 통계치를 보면, 중3 국어에서 성적이 높은 학생의 비율이 높아졌고, 고2 수학에서는 성적이 낮은 학생의 비율이 전해에 비해 줄었다. 이런 변화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다’고 검증되기까지 했다. 숫자로 드러내고(측정하고) 통계로 검증한 결과를 근거로 주장을 정당화하는 관행은 학계를 넘어 정부나 일반 공론에서도 일반화된 지 오래다. 이번 교육부의 성과 발표도 그런 구색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숫자(점수)나 통계적인 ‘검증’에 근거했다고 해서 으레 타당하고 또 신뢰할 만한 이야기려니 여기면 위험하다. 계량화나 검증에는 언제나 드러내지 않은 많은 전제가 깔려 있기 마련인데, 그 전제들은 종종 허구이거나 꼼수로 판명되곤 한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경계가 필요하다. “성취 수준이 유의하게 향상”되었다는 발표는, 거기에 포함된 ‘성취 수준’이나 ‘유의’(有意) 그리고 ‘향상’ 등의 용어가 실지로 무엇을 뜻하는지 엄밀히 따져 볼 수 있기 전까지는, 받아들이길 유보해야 한다.
평가와 결과 발표는 늘 의문의 여지를 지녀
과연 ‘중3 국어’ 성취도는 향상되었을까? 확인하려면 먼저 ‘3수준 이상’의 비율이 높아진 게 실지로 성취도가 향상됐다는 사실을 뜻하는지 뜯어볼 필요가 있는데, 3수준 이상이라는 범주부터 모호하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3수준은 “교육과정 성취 기준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고 수행한다”는 ‘특성’을 가리킨다. 이런 특성을 가진 학생의 비율이 증가했다면, 교과를 ‘상당 부분’ 아는 학생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므로, 바람직한 성과라고 해석할 수 있을 듯도 하다. 그러나 ‘상당 부분’이 과연 어떤 수준인지 모른 채로 그 해석을 받아들이기는 꺼림칙하다.
과거에 ‘성취 수준’을 둘러싼 논란까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평가 초기에는 성취 수준을 “우수, 보통,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등 네 범주로 구분했었다.1 용어가 평이해서 범주가 뜻하는 바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해는 막연한 것으로, 사람 따라 분분했다. 엄밀한 해석을 두고 논란이 적잖게 일었다. 기초학력을 제대로 정의해라, 기초의 기준이 너무 낮지 않으냐 등등, 다양한 문제 제기가 당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성취 수준을 숫자(1~4)로 표시하기로 변경한 데는 그런 소란도 작용했다.
숫자로 바꾸어 표시함으로써 기존 논란은 좀 잦아들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수준의 의미가 뭉개져서 문제가 됐다. 일상어로 이름했던 경우에도 모호하긴 했지만, 숫자로 수준을 표시하자 그 뜻은 아예 가려졌다. 원성이 많아선지 이번 발표 자료에서도 각 수준에 대해 “일반적인 특성”을 설명해 놓았는데, 여전히 요령부득하다. 예컨대, ‘2수준’에 대해서는, “교육과정 성취 기준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수행한다”고 해설했다. ‘부분적으로’와 같은 한정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테고, 의도한 뜻을 정확히 짐작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요컨대, ‘3수준 이상의 비율이 증가했다’는 결과를 놓고 ‘긍정적인 교육 성과가 났다’고 해석할 수 있는지는 현재로서 확연하지 않다. ‘수준’의 의미도 모호하거니와, 왜 3, 4 수준을 묶어서 이야기하는지 등도 석연치 않다. 이런 의문들은 사실 교육부가 보도자료에 담아 내놓은 내용 전반에 대해서 든다. 결국 이번 발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는 평가 과정이나 발표 내용 등을 더욱 깊고 정밀하게 검토한 후에나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성취 수준의 뜻이나 조작적 정의만 문제가 아니라, 평가 전반에 결부된 다양한 개념, 측정, 분석, 해석 등에 두루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우리 사회의 교육관을 비틀어
따져 들고 보면, 평가 결과 발표는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데도 전문가건 일반인이건 교육계에서건 언론계에서건, 그 내용을 고스란히 재생산하며 퍼 나른다. 이번 보도 기사들만 보아도 교육부가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을 대부분 베끼고 있으며, 나름의 해석과 인과 분석을 곁들인 기사들도 있지만 결국 정부 이야기를 ‘사실’로 인증해 주고 있다. 성취도 향상을 보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듯하다느니, 청소년의 디지털기기 사용이 이런저런 추세를 낳고 있다느니 하는 식으로 나름 풀이하면서 말이다.
정부가 어떤 ‘문제’에 주목하고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우리 교육 이야기는 크게 흔들린다. 이번 발표에서도 보면, 예컨대, ‘정의적 특성’에 대해서도 평가(조사)하며 관심을 두고 있다. “교과 관련 정의 특성, 사회·정서적 역량, 진로 성숙도” 등이 그 대상이다. 여러 특성 가운데 왜 이런 특성들을 평가하는지 그리고 실제 평가(측정)는 타당한지, 제기될 법한 많은 의문은 덮여 있다. 어쨌거나 그것들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포함되어 있고, 그래서 ‘교육 가치’가 되고 학교에서도 특별히 취급될 터이다.
정의적 특성에 대한 발표를 좀 더 들여다보면 ‘자기 이해’라는 항목도 보게 되는데, ‘진로 성숙도’의 하위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그 측정도 진학과 직업 결정의 맥락에서 자기를 잘 파악하는지에만 초점 맞추고 있다. 말하자면, ‘나’에 대한 이해는 ‘진로’와 관련해서만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한편, 학생들이 ‘나’(자아)를 어떻게 여기고 또 ‘내 삶’이 자리해야 하는 ‘세계’(사회)를 어떻게 읽는지는 교육의 과정에서 늘 눈여겨보아야 할 성장의 핵심 측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국가 수준 ‘교육’ 평가의 안중에 없다. 우리 교육 담론에서도 그런 관심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교육 당국의 간과나 무관심 탓일지 모른다.
정부가 무엇에 주목하고 어떤 ‘측정치’로 그것을 이야기하는지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측면에 대해서는 아예 다루지 않음으로써 ‘투명하게’ 방기해 버린다. 이를테면, 국가 수준 평가에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대한 표집이 없다. 평가 결과를 놓고 ‘고등학교’가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할 때, 그곳에는 ‘직업계’에 대한 할애가 없다. ‘고등학교’는 모름지기 ‘일반’ 고등학교여야 한다는 식의 전제이다. 그렇게 배타적으로 평가한 결과는 ‘웃프다’. 수학과 성취도는 중학교에서보다 ‘고등학교’에서 높게 나타난다. ‘수포자’는 필경 고등학교 단계에서 더 생겨날 텐데, 정부의 ‘통계’에선 역전의 추세를 보게 된다. 많은 수포자를 ‘빼고’ 평가했으니 당연하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본디 사명을 가다듬어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우리 학교 교육의 현실을 제대로 읽으며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기초 과업이다. 자연 현상과 달리 교육의 면모는 ‘보고 만지며’ 실증적으로 다룰 수 있게 파악하기 어렵다. 교육의 현실을 보기 위해서는 숫자로 포착하는 측정/평가의 작업이 필요하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그런 작업 가운데 가장 ‘국가적’이며 포괄적이다. 이 작업에서 교육의 어떤 측면을 문제 삼고 또 그 문제를 어떻게 드러내며 논의하는지에는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총체적 지혜가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환류되어서는 집합적 교육관을 이룬다.
교육 영역만의 일이 아니다. ‘국가 수준’의 현실은 개별적인 일상과 경험만으로 파악할 수 없다. 방대하고 체계적인 조사가 요구된다. 통계는 그래서 생겨났다. 본디 국정을 위한 실무였다. 지배자나 정부는 세금 징수나 징병 등을 위해서 ‘통계’가 필요했다. 영어의 ‘통계(statistics)’라는 단어 자체가 ‘국가(state)’에서 비롯했다. 전제나 독재의 체제에서 통계는 으레 지배와 착취를 위한 정보 수집이었겠지만, 민주 체제에서 그 초점은 마땅히 문제를 바르게 포착하려는 작업이어야 할 것이다. 국정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 병폐와 처방을 찾는 조사와 분석이어야 할 터이다.
통계 사업들은 늘 탈선할 소지를 지닌다. 특히, 정치적 득세만을 노려 유권자에게 맹목적으로 아첨하거나 이념적 세뇌까지도 불사하는 경향이 공공연해지면서, 통계는 왜곡과 선동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의견/여론 조사용 질문을 두고 다투는 일은 정치배들 사이에서만 일어나고 있지 않다. 교육정책 관련 통계를 두고도 정부와 학부모, 교사들이 심심찮게 다투고, 학부모들 사이에 그리고 교사들 사이에도 우격다짐이 비일비재하다. 현재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는 이러한 탈선과 다툼의 역사적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성취 수준을 네 개 범주로 나누고 그 이름을 숫자로 표시하게 된 것은 논란과 다툼의 소산이다. 이 외에도 대립은 많았다. 평가를 표집해서 할 것이냐 전집에 대해서 할 것이냐에 대해선 매우 격하게 다퉜다. 한때 전집 평가를 고집하며 정부가 성적을 학교별로 공개하는 데 열을 올린 적도 있었다. 학교와 교사의 경쟁을 부추기는 수단으로 평가를 이용했고, ‘이념적 대립’의 전선을 조성하기까지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사실 본디 사명에서 거듭 멀어져 왔다.
관성이겠지만, 이번에도 보도자료에 정부는 평가의 ‘시행 목적’을 이렇게 기술했다. “국가수준의 학업 성취 수준 파악 및 추이 분석을 통한 학교 교육의 성과 점검 및 교육정책 수립의 기초자료 확보.” 과연 당국은 이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학업 성취’ 또는 ‘학교 교육의 성과’를 어떻게 규정할지부터 원점에서 숙의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트렌드’에 휩쓸리고 ‘밀어붙이기’에 능한 장관의 ‘상식’에 휘말리는 등의 행태로는 결코 목적에 다가갈 수 없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우리 교육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사명을 새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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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