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교육연구 30선(제1회) – 아이들은 왜 불행해졌을까
| 이 글은 우리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위기에 대한 근본 원인으로 한 연구팀이 찾아낸 내용에 주목합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에 대한 과보호로, 그래서 그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힘을 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청소년 정신건강 위기의 실상
카페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였다.
“우리 애가 중학교 들어간 뒤로 완전히 달라졌어요. 화내고 짜증내는 횟수가 늘어서 집에서 맨날 다투고… 처음엔 사춘기인 줄 알았는데요.”
옆 테이블 엄마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 있었다. 함께 있던 다른 엄마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우리 애도 요즘 집중을 10분도 못해요. 숙제하다가도 멍하니 있고, 성적도 계속 떨어지고…”
“저희도 그래서 병원에 갔어요. 단순한 사춘기가 아니라 ADHD에 우울증까지 있다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부모 모임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심지어 마트에서도 비슷한 걱정들이 들려온다. 처음엔 ‘사춘기’나 ‘일시적인 증상’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겉보기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 같지만, 뭔가 아이들이 예전과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충격적인 발표에 따르면, 10대의 42%가 ‘지속적인 절망감’을 느낀다고 한다. 우울감, 불안, 무기력이 더 이상 몇몇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 통계 뒤에는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가, 우리가 아끼는 아이들이 있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로 병원을 찾은 18세 이하 아동·청소년이 27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매년 평균 19%씩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카페에서 들었던 그 걱정 어린 대화들이, 우리 주변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학업 부담과 SNS 노출, 또래 간 비교 스트레스”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이 전부일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SNS를 탓한다. 치열한 입시 경쟁과 끝없는 비교 문화를 정신건강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물론 그것들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한 연구팀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냈다(Gray et al., 2023). 그것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기에, 정작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변화이기도 하다.
“수십 년에 걸쳐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고, 돌아다니고,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잃어왔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놓친 중요한 진실이 숨어 있었다. 우리는 범인을 찾으려 했다. 스마트폰일까, SNS일까, 입시 경쟁일까. 그런데 한 연구팀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진실을 들려주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실수하고, 일어설 기회를 잃어버렸다.”
사라진 골목길의 추억
기억이 나는가? 방과 후 골목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시간을. 친구와 싸웠다가도 금세 화해하며 함께 뛰어다니던 그 오후를. 때로는 무릎이 까지고, 때로는 길을 잃기도 했지만, 그 모든 순간이 우리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던 시간을.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 그런 시간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1969년, 초등학생의 절반이 혼자 또는 친구와 걸어서 학교에 갔다. 2009년에는 그 비율이 13%로 줄어들었다. 숫자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이렇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고, 그들의 세계는 점점 더 작아졌다.
“위험하니까 안 돼.”
“혼자 가면 안 돼.”
“엄마, 아빠와 함께만.”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들이었지만, 그 말들이 쌓이고 쌓여 아이들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었다.
적절한 위험이 주는 성장의 기회
한 아이가 놀이터에서 높은 미끄럼틀 난간 위를 걷고 있다. 엄마의 심장은 쿵쾅거린다. “위험해!”라고 소리치고 싶다. 하지만 그 순간, 아이는 자신만의 작은 모험을 하고 있다.
균형을 잡으며 ‘내가 할 수 있구나’를 느끼고 있다. 떨어질까 봐 무서워하면서도 ‘한 발, 또 한 발’ 내딛으며 용기를 기르고 있다. 그 작은 성취가 쌓이고 쌓여, 훗날 인생의 큰 도전 앞에서도 “해낼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우리가 아이들을 모든 위험에서 보호하려 할 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용기까지도 함께 포장지에 싸서 창고에 넣어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해낸다는 기적
“엄마, 나 혼자 할 수 있어!”
아이가 처음으로 신발 끈을 묶었을 때, 처음으로 계란을 깨뜨려 후라이를 만들었을 때, 처음으로 친구와의 다툼을 스스로 해결했을 때, 그 순간 아이의 눈에 떠오르는 빛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단순한 성취감이 아니었다.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깨달음인 동시에, “내가 이 세상에서 무력한 존재가 아니구나”라는 확신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어떨까? 학원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집으로. 모든 시간이 정해져 있고, 모든 선택이 어른의 몫이다.
“뭐 하고 싶어?” 물어봐도 아이들은 머뭇거린다. 스스로 무언가를 원해 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뭐가 재미있어?” 물어봐도 대답하기 어렵다. 자신만의 재미를 발견해 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정의하는 진짜 놀이
연구자들이 유치원생들에게 여러 그림을 보여주고 물었다. “이건 놀이야?”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은 어른이 함께 있는 그림을 놀이라고 하지 않았다. 진짜 놀이는 자기들만의 시간이고, 자기들이 만드는 세계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프로그램을, 더 안전한 환경을, 더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려 애썼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순했다.
“자기만의 시간, 자기만의 선택, 자기만의 실수.”
질문을 바꿔보자
“우리 아이가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신에,
“우리 아이가 위험을 스스로 헤쳐나갈 힘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아이가 실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신에,
“우리 아이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아이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대신에,
“우리 아이가 스스로를 지킬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질문이 바뀌면 답도 달라진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도 달라진다.
적절한 거리두기가 만드는 성장
사랑한다는 것이 항상 가까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믿고 기다리는 것이고, 때로는 떨리는 마음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아이가 넘어질까 봐 손을 내밀기 전에, 잠깐 기다려보자. 아이가 스스로 일어설 힘이 있는지. 아이가 실수할까 봐 미리 말해주기 전에, 잠깐 지켜보자.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순간이 오기를. 아이가 외로울까 봐 계속 함께하기 전에, 잠깐 믿어보자. 아이가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더 많은 보호가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힘이다. 보다 완벽한 환경이 아니라, 불완전한 세상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골목에 울려 퍼지는 그날까지. 아이들의 눈빛에 다시 호기심이 반짝이는 그날까지. 우리는 조금씩, 한 걸음씩 물러서는 용기를 배워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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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실수할 기회를 빼앗아 버린것에 대해 반성합니다. 사랑 할수록 떨어져 봐야하는데 말입니다.
수업 중에도 아이들이 선택하고 실수한 뒤 배움의 공간,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줘야겠어요. 학생들의 주체성을 맨 앞에 두는, “질문을 바꾸면 답이 달라집니다.” 라는 말씀을 통해 성장의 주체로서 학생들을 생각해봅니다.
두 아이가 이미 성인이 된 부모의 입장에서, 또 맞벌이부부로 산 환경 덕분(^^)에 두 아이는 일찌감치 스스로 학습준비물을 챙기고, 스스로 간식을 준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너무 일찍 어른이 된 듯한 느낌, 과하게 독립적인 인격체가 된 듯해서 걱정이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 부모에게 “멀리서 지켜보라, 실수할 기회를 주라”라는 부모의 역할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범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어 있을까?
멋지네요^^
적어도 넘어졌을 때 그냥 주저앉아버리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는 힘은 길러졌을 겁니다. 그리고 굉장히 큰 자산일 거에요.
범사회적 안전망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가 스스로 일어날 힘을 가졌다고 해도 주변의 무기력이나, 사회적 제도나 문화가 뒷받침이 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피해를 볼 수도, 상처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사회는 혼자서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저도 늘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자신의 상황을 점검해보고, 계획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이런 모든 일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경험이다! 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그 힘은 분명 우리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