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의 교육 사유(思惟) : 할머니와 ‘마을’, 교사와 학교 그리고 경쟁
| 인류가 오늘날의 ‘영장’으로 진화하는 데 교육은 결정적으로 요구됐던 기제였습니다. 교육 문제 역시 진화의 구속 아래 있을 터이기에, 스승의 날인 오늘, 가르치고 배움의 진화를 되돌아볼 만하겠습니다. |
인류 문명은 교육(문화 전승)의 토대 위에 세워져
사람은 무력하게 태어나서 ‘만물의 영장’으로 자란다. 아기로서 사람은 개미의 공격도 받아내지 못한다. 침팬지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엄마 젖을 찾아 빨고,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걷는다. 다른 동물에 비해 성장에 매우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은 인간의 핵심 속성이다. 오늘날엔 20년 가까이 자라야 성인으로 인정된다. 그래도 실지로는 대부분 홀로 서지 못한다.
제구실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아이’에게는 긴 시간의 보호와 가르침이 필요하다. 인간(Homo sapiens)은 그러도록 진화했다. 모두 갖춰 태어나지 않고, 많은 것을 태어난 후에 갖추도록 진화했다. 인간의 뇌는 생후에 3배로 커지고, 신경세포도 그 과정에서 급격하게 증가하며 오묘하게 연결되어 간다. 그런 뇌가 인간이 지구의 지배종이 되는 근간이었다.
유별나게 긴 인간 발달 과정의 골자는 교육이다. 몸이 성체(成體)로 변신하는 과정이란 점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이 된다는 뜻의 요체는 생물적이기보다 문화적이다. 몸이 다 자랐다고 해서 ‘사람 됐다’ 하지 않는다. ‘도리(道理)’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바꾸어 말해 삶의 양식인 문화를 내면화해야 한다는 요건으로, 교육을 통해 충족되는 조건이다.
‘교육’의 뜻은 다양하게 매겨지지만, 그 개념적 공분모는 문화 전승이다. 문화는 한 사회에서 대대손손 다듬어지며 축적되어 오는 것으로, 사회생활의 규범으로 작용하면서 또한 다양한 문명의 이기로써 일상의 질도 규정한다. 문화 전승으로서 교육은, 말하자면, 전통으로 정련한 ‘사람의 도리’를 후대에 전수하며, 꾸준한 생존과 번영의 지혜도 키우는 사회적 과업이다.
다른 동물은 태어나며 유전자라는 생물학적 상속만 받지만, 인간은 문화적인 유산을 더 얹어 받는다. 이 상속은 형식적 비형식적 교육을 통해 생의 자산이 된다. 덕분에 인간은 선조가 쌓은 정보와 기술 그리고 지혜를 발판으로 한 단계 올라선 수준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인류는 그렇게 ‘기하급수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오늘의 문명을 세울 수 있었다.
교육자의 원조를 할머니와 ‘마을’에서 찾을 만
문화 전승을 포섭하는 인류 진화에는 ‘가르치는’ 인자가 개입해야 한다. 세대를 이어 줄 다리가 필요하다. ‘할머니’가 그 다리 몫을 맡는다.1 할머니는 폐경으로 번식의 기능을 잃지만, 동물 세계에서 드물게, 생을 이어가며 딸의 육아 부담을 덜고 또 젖도 일찍 떼도록(터울도 짧아지도록) 돕는다. 가족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유전자의 ‘진화 적합도’를 높인다.
진화 압력대로 생명을 늘리며, 할머니는 선대의 문화 자본을 후대로 넘겨주는 주체가 된다. 긴 생애 과정에서 습득한 정보와 지혜 그리고 기술 등을 암암리에 전수한다. 인류는 대대로 ‘조상의 어깨’ 위에서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선대의 시행착오를 피하며 번영을 추구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영장류들과 계통을 달리하는 진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의 가까운 친족 침팬지에겐 사실상 문화유산이 없다. 침팬지 아기들은 거의 모든 생존 문제를 생물학적인 유산만 가지고 홀로 해결해야 한다. 서로 가르치거나 서로에게서 배우지도 않으며, 어느 개체가 운 좋게 새로운 것을 알아낸다 해도 이웃이나 후대로 전수할 통로도 없다. 이런 차이가 오래전 진화의 가지를 갈랐고, 그들과 우리의 삶은 오늘날 매우 다르다.
인간은 문화 상속을 위해 ‘선생(先生)’의 할머니에게만 의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붙어야 한다’는 말은 진화적 사실이다. 사람은 서로에게서 배우도록 진화했다. 할머니가 돌보던 아기들은 자라 형제자매와 동네 아이들을 따라 배우기 시작하고, 더 자라면서는 마을 어른들, 특히 본받을 어른들을 주목(선망)하며 ‘사람 구실’을 체득해 간다.
문명화는 교육을 학교 제도로 일괄시키며 문화 전승을 약화해
마을(사회)이 커지고 분업이 확대되면서, 문화 전승에는 더 전문적인 스승과 제도가 필요하게 된다. 씨족적인 연대를 넘어 이념적인 결속이 필요하게 되는 사회 단계로 접어들면, 성년식과 같은 공동체적 신화와 역사를 전승하는 제도가 생겨나고, 도제제도와 같이 전문화된 기술과 지식을 전수하는 체제도 나타난다. 오늘날의 학교는 이런 제도적 진화를 거쳐 생겨났다.
인류 사회는 광대하고 복합적이며 다층적이다. 사회(집단)마다 고유하게 전승해야 할 문화를 지닐 마련이지만, 이제 ‘교육’(전승)은 국민국가라는 구획 안에서 학교 제도로 일괄되었다. 이 제도는 보편적인 듯 보이지만, 그것이 빚는 교육은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 전수할 ‘문화’를 선별 조직하는 데서도 다르고, 전승(교육) 결과가 어떠해야 하는지 기대하는 데서도 다르다.
우리 학교 제도는 문화 전승의 폭과 깊이를 줄이는 쪽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사회(공동선) 지탱에 필요한 습관이나 규범의 전수에 소홀해진 지는 오래고, ‘과학’의 범주로 좁혀 든 교과과정에서마저도 ‘소비자 선택’의 이름으로 이기적인 전략 ‘코스’를 장려하고 있다. 문화는 명시적이기보다 ‘숨겨진 교육과정’으로 전수되는 바 크지만, 그런 과정은 이제 거의 고갈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학생(개인)의 ‘성공’을 추구한다. 성공의 기준은 시험 점수(진학) 또는 돈벌이(취업)이다. 교육을 이렇게 ‘특화’하는 데는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정책 결정자나 교사들도 동참한다. 기저귀를 떼기 전부터 의대 진학을 겨냥한 ‘선행’이 유행하고, ‘명문’으로 부상했다고 정부의 찬사를 받는 고등학교는 수능모의고사를 매주 시행한다는 비결을 자랑한다.
교사는 이제 제자의 성공 전략가이어야 한다. 고등학교에서 흔히 보듯, 교사들은 대입 전형 방식에 맞춰 교과를 가르치고 학교생활기록부를 다듬으며, 수능 점수 높이 받은 학생에겐 으레 의대 진학을 권유한다. 진화상 원조인 ‘할머니’의 본능적 자애를 교사에게서 느낄 수 없고, ‘인간적’ 흠모에 묻어 암암리에 학생에게 전수되던 스승의 품격도 비웃음 사게 된 지 오래다.
오늘의 교육 문제에 수백만 년 이상의 진화 역사가 스며있을지도
스승이 없다는 탄식을 오랫동안 들어왔다. 스승의 날에는 그 소리가 더욱 증폭된다. 이제는 교사도 스스로 스승이 아니라고 자조하며 스승의 날도 없애자고 제안한다. 이런 형국에서 교사 개개인의 사명감이나 역량을 탓하는 것은 희생양 잡기에 불과하다. 학교 제도가 교육(문화 전승)을 편협하고 천박하게 뒤틀기에 이르는 ‘진화’는 매우 거시적으로 장구하게 일어났다.
인류는 문화 전승의 진화 토대 위에 오늘의 문명을 구축했지만, 정작 그 문명이 초래한 생태계는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협력하는 인류의 고유성을 퇴색시키고 있다. 인간의 ‘자연 정복’으로, ‘자연선택’에 맡겨졌던 생존 원리는 사실상 ‘사회 선택’에 이양됐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자연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에 적응해야 하기에 이르렀다.
사회 선택의 생태계에서 진화 적합도는 다분히 ‘메리토크라시’의 원리로 가늠된다. 살아남기 위해서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 입증은 ‘학력’을 요구한다. 인류는 학력 경쟁에 목매게 됐다. 대학 서열을 파괴하고 절대평가를 도입하면 ‘야만적 경쟁’을 해소할 수 있다지만, 사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진화의 역사와 현대 문명이 인류를 교육/경쟁의 협곡으로 몰고 있다.
교육의 발전 또는 혁신을 외치며 흔히 교사(학교)를 비난하고 제도를 탓한다. 일상 경험으로 쉬이 이해할 수 있고, 틀린 이야기만도 아니다. 과연 ‘좋은’ 교사들이 없어서 학교는 학생들의 성적을 높이지 못하는 듯하고, 대입제도는 갈수록 학생들을 못살게 구는 듯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학교와 교사나 제도는 원인이 아니라 문제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인류가 오늘날의 ‘영장’으로 진화하는 데 교육은 결정적으로 요구됐던 기제였다. 오늘의 교육 문제는 수백만 년 이상 걸린 진화 담금질에 부수하는 현상일지 모른다. 우리는 쉽게 교사와 학교를 비난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파충류의 뇌’도 지니고 살 듯이, 교육 문제 역시 진화의 구속 아래 있을 터이다. 스승의 날인 오늘, 가르치고 배움의 진화를 되돌아볼 만하다.
각주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