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린 시민을 위한 국가의 약속
| 이 글을 통해 필자는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자에게 영유아교육에 대한 9가지 과제를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반드시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설계되고 구체화되길 바랍니다. |
우리는 또다시 묻지 않고 지나치려 한다.
아이를 낳으라면서, 그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왜 묻지 않는가?
출생률이 곤두박질치고, 돌봄의 공백이 일상이 된 지금, 우리가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여기에 있다. 누가 아이들을 키울 것인가?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게 할 것인가? 그러나 이 질문 앞에서 정치권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격변 이후 급박하게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도 가장 어린 시민들을 위한 교육에 대한 정책적 응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든 양육과 교육을 부모의 손에 맡긴 채, 국가는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치는 출생을 장려하면서도 정작 아이들이 살아갈 조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급박한 정국 속에서 치러지고 있지만, 영유아교육 공약의 부재는 단지 준비 시간의 부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그 이전부터 영유아교육이 국가 정책에서 우선순위로 다뤄지지 않았고, 충분한 고민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영유아교육은 여전히 국가 교육체계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채, 출생과 돌봄의 부속물처럼 취급되고 있다. 결국, 가장 어린 시민들을 위한 교육이 정치의 언어에서 다시금 지워지고 있는 셈이다.
일부 후보들은 저출생 대책, 돌봄 확대, 가족 지원 등 복지 중심의 정책을 앞세우고 있지만, 정작 영유아교육을 국가의 공적 책임 아래 제도화하겠다는 일관된 철학이나 구조적 정책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유보통합, 3~5세 의무교육, 교사 처우 개선, 장애영유아의 권리 보장 등은 오랜 시간 논의되어 온 핵심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체적인 공약으로는 채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간헐적으로 제시되는 영유아교육 정책들도 대부분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공립 기관 확충이나 유보통합과 같은 방향 제시는 의미가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제 정비, 예산 확보, 교사 정책과의 연계 등 실행 가능한 계획은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민간과 사립 기관에 다니는 대다수 영유아를 고려하지 않은 접근은 오히려 교육 기회의 격차를 더욱 확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책임이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가 외면할수록 그 책임은 가정과 현장에 전가된다. 그리고 그 무게는 결국 부모와 아이들의 삶에 고스란히 쏟아진다. 영유아교육은 국가의 선택이 아니라, 공동선(共同善)으로서 반드시 보장해야 할 사회적 책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약속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정치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질문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이 글은 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자에게 보내는 필자의 공개 제안이다. 영유아교육은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가정과 교사, 그리고 아이들이 마주한 현실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정의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이제 정치가 응답해야 한다.
이번 칼럼은 필자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에서 발행하는 교육칼럼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안해 온 문제의식과 실천 방향을 바탕으로, 그간의 논의와 현장의 목소리를 하나의 책임 체계로 정리한 정책 제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표를 얻기 위한 포장된 수사가 아니다. 아이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겠다는 정치의 약속이며, 그것을 실현할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계획이다. 이제는 익숙한 문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의 논의와 실천을 하나의 책임 체계로 단단히 엮어야 할 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아이들의 삶이 놓여야 한다.
가장 외면당해 온 자리, 영유아교육의 현재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영유아교육은 하나의 체계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유아교육과 보육이라는 이원화된 구조는 제도, 행정, 재정, 인력 운영 전반에 걸쳐 분절된 채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현장의 혼란과 불균형을 반복시키는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같은 지역,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기관 유형에 따라 서로 다른 기준과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영유아교육이 국가가 보장해야 할 ‘교육권’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에서 유보통합 추진의 방향성이 본격화되며 통합추진단이 구성되고 정책 청사진이 제시된 것은 분명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유보통합은 제도화되지 못한 채 행정적 실험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새로운 정부의 출범 이후 이 흐름이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우려는 현재 진행형이다. 유보통합은 단순히 두 제도를 합치는 문제가 아니라, 영유아를 차별 없는 주체로 바라보는 국가의 철학과 책무를 구조적으로 재편하는 일이다. 이 연결을 끊지 않고 이어나가는 정치적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제도적 이원화의 여파는 영유아교육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정책은 일관성을 잃었고, 기관 간 격차는 더욱 뚜렷해졌으며, 현장은 그 틈을 스스로 메우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교사와 부모는 행정이 그려낸 이상과 현실이 허락하는 조건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그 간극을 스스로 메우고 있다.
이러한 균열은 특히 민간과 사립이 주도해 온 영유아교육 현장에서 더욱 깊게 드러난다. 전체 기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간과 사립 기관은 제도적 보호의 바깥에서 자율성과 생존 사이를 오가며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정책은 국공립 확충에만 치우쳐 있었고, 민간기관에 대한 실질적 지원과 구조적 재편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민간과 사립 기관을 더 이상 책임의 바깥에 둘 수 없다. 공공성을 함께 감당하는 교육 주체로서 그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국가의 역할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교육의 질 역시 균질하게 보장되지 않고 있다. 방과후 과정, 급간식, 현장 체험활동 등에 대한 실질적 무상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교사당 영유아 수는 여전히 과도한 수준이다. 교사들은 불안정한 고용 환경과 낮은 처우 속에서도 교육의 전문성을 지켜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체계적 지원 없이 유지되는 헌신은 결국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 영유아교육 정책은 아이들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할 수 없다.
특히 장애영유아에 대한 국가의 대응은 여전히 매우 미흡하다. 통합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지는 배치는 실제로는 ‘고립’에 가까운 현실일 수 있으며, 특수교사 부족과 조기 개입의 미비, 가족 지원의 공백 등은 장애영유아의 발달권과 학습권을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있다. 정작 가장 많은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이 오히려 가장 적은 교육적 지원을 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영유아교육이 상호 존중과 공정한 기회를 핵심 가치로 삼는 교육의 길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지금의 영유아교육은 분절된 제도와 이어지지 못한 정책, 그리고 현장의 고요한 인내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익숙한 문제를 반복해서 나열하는 일이 아니라, 그간의 논의와 실천을 하나의 책임 체계로 단단히 엮는 일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아이들의 삶이 놓여야 한다. 이제는 영유아교육을 이름뿐인 제도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국가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과거를 계승하고 현재를 조율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영유아교육의 국가 모델이 정치를 통해 실현될 수 있을지 이번 선거는 그 분기점이 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과제, 차기 대통령에게 제안하는 아홉 가지 약속
이제부터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오랜 시간 흩어져 있는 조각들을 하나의 체계로 엮고 제자리걸음만 해온 약속들을 이제는 실행의 문장으로 바꿔야 한다. 영유아교육이 더 이상 주변 정책이 되어선 안 된다. 국가 교육정책의 출발점이자 사회적 정의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가장 어린 자리에서부터 변화는 출발해야 한다. 다음 대통령은 아래 아홉 가지 과제를 단순한 공약 수준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설계하고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 이 약속들이 실현될 때 영유아교육은 비로소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첫째, 유보통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 책임이므로 즉시 실행하라. 유보통합은 방향이 아니라 실행이어야 하며, 그동안 어렵게 축적되어 온 논의와 실천의 흐름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아이들을 동일한 교육의 권리 안에 두겠다는 국가의 약속이자, 교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구조적 전환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 중심의 행정 일원화, 교사 자격의 통합, 통합 교육과정과 질 관리 기준 마련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제도적 정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보통합이 일방적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현장 구성원들의 참여와 합의, 상생의 과정을 바탕으로 공동의 책임과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는 사회적 실천이 되어야 한다.
둘째, 3~5세 유아를 대상으로 한 의무교육을 도입하라. 누리과정이라는 이름 아래 무상지원은 이뤄지고 있지만 교육은 여전히 선택의 영역에 머물러 있으며, 그로 인해 지역과 가정의 여건에 따라 교육 기회의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아이들의 교육적 보장을 단지 복지정책의 범주에서 다룰 것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의무교육의 제도화는 국가가 교육의 책임 주체임을 분명히 하며 정책의 지속성과 예산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기반이 된다. 또한 아이들이 어디에 살고 있든 누구나 질 높은 교육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출발선의 평등을 실현하는 핵심 장치이기도 하다. 방과후 과정, 급간식, 현장체험 등 교육 전반에 대한 실질적 무상화 역시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교육에 대한 가계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을 넘어 아이들이 일상에서 안정감 있게 배우고 자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셋째, 민간과 사립 영유아교육기관을 국가 책임 체계 안에서 보다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하라. 현재 영유아의 대다수는 민간과 사립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 기관은 일정 부분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기반과 운영 안정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국공립 확충은 분명 필요한 방향이지만 그것만으로는 현실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이제는 공적 책임을 전제로 민간기관의 교육적 역할과 지속 가능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의 내실화, 질 관리 기준 정비, 교사 처우 기준의 현실화, 평가와 컨설팅 체계 강화 등 제도적 기반을 보다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는 민간을 통제하거나 대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운영 주체들이 함께 공적 책무를 나누고 교육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공동으로 지켜나가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넷째, 영유아 교사를 교육 주체로 존중하고, 교사 대 영유아 수를 감축하라. 영유아 교사는 단순한 돌봄 인력을 넘어 아이들의 성장과 배움, 관계와 일상의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 주체다. 그러나 여전히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과중한 행정 업무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교육의 본질을 지켜내기 위한 개인의 헌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한 명의 교사가 담당하는 영유아 수가 과도하게 많은 현재의 구조는 교사의 교육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아이들의 학습권과 안전권 역시 위협하고 있다. 교사 대 영유아 수 감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책무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인건비 보조 확대, 교실 공간 확충, 보조교사 배치 등 파격적인 재정 지원을 포함한 종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 구조에서는 어떤 교육개혁도 현장에서 실현될 수 없다. 이제는 영유아 교사의 처우 개선, 행정업무 경감, 양질의 근무환경 조성, 전문성 향상을 위한 재교육 체계 구축 등을 통해 교사들이 안정적으로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교사에게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며, 아이들에게는 교육의 질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다. 교사의 존엄이 지켜질 때 비로소 아이들의 권리도 온전히 보장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장애영유아의 교육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라. 장애가 있는 영유아에게 교육은 선택이나 시혜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 권리다. 그러나 통합교육은 여전히 형식적 배치에 머무르고 있는 듯하다. 특수교사 부족, 조기진단 체계의 미비, 가족 지원의 공백 등으로 인해 장애영유아는 교육적 소외와 고립에 놓여 있다. 진정한 통합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특수교사 확충, 조기 발견 및 개입 체계 정비, 통합지원실 운영 확대, 가족을 위한 정보 제공과 돌봄 연계 등 전 생애에 걸친 국가의 책무를 보장해야 한다. 이는 장애가 있는 아이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기초이다. 가장 많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도달하는 정책, 바로 그 지점에서 국가의 품격이 드러날 것이다.
여섯째, 디지털 환경에 대한 균형 잡힌 교육 철학과 대응 체계를 마련하라. 디지털 기술은 이미 영유아의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으나 그에 대한 교육적 대응은 여전히 도입 여부나 제한 중심의 접근에 머물러 있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디지털 학습은 아이들의 감각과 관계성, 그리고 탐색 능력을 약화할 수 있으며 이는 영유아교육이 지향해야 할 본질적 가치와 충돌하는 지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술 활용이 아니라 아이들의 몸과 감각, 관계성을 중심에 두고 기술과 조화롭게 만날 수 있는 교육적 철학과 정책적 방향을 수립하는 일이다. 나이별 노출 기준, 건강권 보장, 교사·부모 대상 디지털 이해 교육 등의 제도적 대응은 그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기초가 되어야 한다. 기술은 교육을 보완할 수 있지만 교육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곱째, 놀이 중심 미래교육이 실현될 수 있도록 국가적 실행 기반을 강화하라. 영유아기는 배움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시기이며, 아이는 놀이를 통해 세계를 탐색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 의미를 구성해 나간다. 우리 교육과정은 이미 놀이 중심을 표방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현장에서 교육은 활동 중심, 지식 위주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놀이가 선언에 머물지 않고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유연한 시간 운영, 놀이 환경에 대한 재정 지원, 교사의 놀이 이해와 실행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 체계 정비 등 구체적인 정책 과제가 뒤따라야 한다. 또한 놀이가 특정 시간이나 공간에만 국한된 활동이 아니라 아이의 삶 그 자체임을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 전환 역시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에서도 아이의 놀이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보호자와 교사가 함께 놀이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기 정부는 놀이를 영유아의 권리이자 배움의 본질로 인식하고 이를 지속 가능한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여덟째, 지역 간 영유아교육 격차를 해소할 국가 차원의 공공 인프라 전략을 마련하라. 영유아교육은 지역에 따라 접근성과 질이 달라지는 구조적 불균형 속에 놓여 있으며, 국공립 기관의 분포, 교육 여건, 교사 수급의 안정성은 도시와 비도시 간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방과 도서·산간 지역의 소규모 기관은 재정과 인력 부족 속에서 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으며, 국가의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지원 없이는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중앙과 지방이 협력해 지역 맞춤형 인프라 확충, 교사 인력 재배치, 소규모 기관에 대한 운영 안정화를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영유아 누구도 거주지나 기관 규모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제한받아서는 안 된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전국 어디에서나 신뢰할 수 있는 공공 영유아교육 체계를 실현할 국가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아홉째, 교육·복지·보건이 연계된 영유아 통합지원체계를 구축하라. 자녀를 돌보는 부모들은 교육, 복지, 보건 등 여러 기관을 오가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처럼 분절된 행정 체계는 부모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행정에는 반복과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돌봄 공백, 발달 지연, 심리·정서 문제 등 복합적인 지원이 필요한 가정일수록 통합적 접근이 절실하다. 이제는 지역 단위에서 교육·복지·보건 서비스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상담, 진단, 사례 관리를 아우르는 ‘영유아 통합지원센터’ 구축을 국가정책으로 본격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부모에게는 접근성과 신뢰를 제공하고, 아이에게는 조기 개입과 지속 가능한 지원 기반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특히 취약 가정과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에게 실질적인 혜택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차기 정부는 아이의 삶을 중심에 두고 분절되고 흩어진 행정을 연결하며 정책 체계를 일관되게 재구성해야 한다.
가장 어린 시민에게 응답하는 정치, ‘교육을 바꾸는 사람’을 기다리며
본 칼럼에서 제안한 아홉 가지 정책은 단순한 공약이 아니다. 각각은 영유아교육 현장의 절실한 요구에서 비롯된 과제이며, 함께 얽힐 때 비로소 영유아교육을 국가 책임 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 하나의 구조가 된다. 지금의 분절된 제도, 불안정한 교육 현장, 교사와 부모의 과중한 부담, 아이들의 불균형한 출발선은 우리가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현실이다. 영유아교육은 복지의 부속물이 아니라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가장 본질적인 교육정책이다.
정치는 이 과제 앞에서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아이 한 명의 삶을 책임지는 정책이야말로 국가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민감한 지표다. 유보통합, 의무교육, 민간과 사립 기관 지원, 교사 처우 개선, 놀이 중심 미래교육 강화, 통합지원체계 구축 등은 서로 분리된 의제가 아니라 함께 작동할 때 효과를 발휘하는 상호 연결된 책임의 체계다. 차기 정부는 이 과제를 정권의 유불리에 따라 접근하지 말고 사회적 정의의 기준에서 응답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묻는다. 정치는 가장 어린 시민에게 어떤 미래를 남기려 하는가? 이제 막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이 사회는 지금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 아이의 삶에서 출발하는 정치는 결국 이 사회가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가장 작고 어린 시민에게 정직한 약속을 건네는 것, 그것이 정치가 시작해야 할 첫 번째 책무다. 차기 대통령은 그 약속을 실천에 옮기고, 이 시대의 ‘교육을 바꾸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아동학과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후 현재는 경남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유아 교육정책을 주로 연구하며 관심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구성원의 참여와 상생을 추구하는 공동선의 가치가 영유아 교육정책에 반영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상향식 영유아 교육정책 수립 및 평가에 관심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