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⑯] 몸-뇌 학습 도구 : 체화된 인지
| 학습과학은 뇌가 학습하는 원리에 관한 기존의 인지·신경과학 연구를 교수학습 실천과 연결합니다.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 교육계에서 학습과학을 실제 수업에 적용한 사례 및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그 첫 시리즈로 쉽고 재밌는 ‘켈리 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
기존 인지 모형과 교육 방식의 한계
‘인지(cognition)’는 단순히 ‘생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감정, 지각, 기억, 그리고 언어를 포함하여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신경 처리 과정을 말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르치는 모든 것의 핵심 대상이다. 이제부터 인지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마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인지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먼저, 뇌는 감각 입력(sensory input)을 받는다. 그런 다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뇌는 그 반응을 수행하도록 몸에 신호를 보낸다. 즉, 1) 입력, 2) 처리, 3) 결정, 4) 출력 순으로 매우 간단하다. 뇌는 이 모든 과정에서 최고위에 있는 절대 권력자, 독재자, CEO로서 그 밑에 있는 것들을 지휘하는 존재다.
이 오래된 이야기는 아마 학교에서 한 번쯤 접했을 것이다. 사실, 이 관점은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의 존재를 뇌와 몸, 두 부분으로 구분한 데카르트의 이 관점은 한 세기 이상 신경과학과 대중문화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1940년대에는 『도노반의 뇌(Donovan’s Brain)』라는 책과 영화도 있었는데, 여기서는 인간의 뇌만을 통 속에 보존해두고, 그 뇌가 자신을 관리하는 과학자를 초능력으로 조종한다. 흥미롭지 않은가? 통 속에 담겨 있는 뇌, 몸 없이 뇌만 남은 존재라니!
이러한 뇌에 관한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교육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로 사용해 왔고, 지금도 (좋지 않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전달(transmission)’이다. 즉,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구조다. 마치 새로운 정보를 통 속의 뇌에 바로 주입하듯, CEO처럼 군림하는 뇌는 ‘그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뇌의 기본 임무는 정보를 보유하고, 필요할 때 부하들에게 이를 배포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지식은 무기고와 같다. “이 단어 목록을 암기하라. 이 문법을 익혀라. 이 언어 기능(function), 사용역(register), 말뭉치(corpus)를 살펴보라.” 이것이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작업하는 대상은 당신의 ‘뇌’이지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체화된 인지와 학습의 원리
문제는, 이 이야기 자체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뇌와 몸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뇌는 통제실에 앉아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이 아니다. 몸도 인지 과정에 참여하며, 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신경계를 살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두개골 안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뉴런(neuron, 신경세포)들은 머리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퍼져 있다. 이 뉴런들 또한 뇌의 일부이다. 장(腸)에 있는 5억 개의 뉴런을 포함한 신경계는 단순히 뇌와 ‘연결된’ 것이 아니다. 이들은 뇌의 일부이며, 이들이 없다면 우리는 생각할 수도, 언어를 이해할 수도, 기억을 형성할 수도 없다.
와, 정말 대담한 주장 아닌가! 몸이 인지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주장은 지난 10년 동안 신경과학의 중심적인 화두였다. 이것이 바로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모든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언어 교사로서 우리가 알아야 할 핵심은 다음과 같다. 뇌는 감각 및 운동 피질을 사용하여 기억과 정신모형(mental model)을 형성한다. 다시 말해, 고양이를 볼 때 활성화되는 감각 뉴런의 발화 패턴이, 반복된 경험을 통해 축적되면서 뇌 안에 ‘고양이에 대한 정신모형’을 형성하게 된다. 여기에는 시각적, 청각적, 체성감각(촉각)적 요소와 신체로부터 오는 다양한 신경 신호가 포함된다. 고양이가 움직이는 방식도 고양이에 대한 정신모형의 일부가 된다. 예를 들어, 고양이가 걷는 모습을 볼 때 우리 자신의 다리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뉴런과 동일한 뉴런들이 (낮은 강도로) 활성화되어 고양이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한다. 실제로 다리가 움직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뇌에서는 고양이의 행동을 ‘자신의 몸을 통해’ 이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걷거나, 점프하거나, 공을 툭 치는 데 사용하는 운동 뉴런의 패턴이, 고양이가 걷고, 점프하고, 공을 툭 치는 동작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된다. 또한 고양이에게 물렸을 때의 아픔, 발톱에 긁혔을 때의 고통, 그리고 고양이를 봤을 때 느끼는 본능적인 반응까지도 이 모든 것들이 고양이에 대한 정신모형에 통합된다. 몸으로부터 오는 감각 신호로 부호화되는 의미, 몸을 움직이는 운동 신호로 부호화되는 의미,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체화(embodiment)’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결국,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세상을 경험해온 우리의 몸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뇌와 몸은 또 하나의 놀라운 기능이 있다. ‘고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실제 고양이를 본 것처럼 시각, 청각, 운동 등 몸과 관련된 신경 회로가 활성화된다. 고양이라는 단어 또한 고양이 모형의 일부인 것이다. 예를 들어, “고양이가 소파 위로 점프했다”라는 말을 들으면 고양이, 소파, 점프에 해당되는 일련의 신경 발화 패턴이 활성화되면서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은유적 표현도 뇌가 특히 잘하는 일 중 하나이다. “값이 오른다”거나 “수수께끼를 푼다” 같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추상적인 개념과 언어도 이러한 신경 시뮬레이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지가 체화된 것이라면, 즉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우리 몸을 통해 경험한 것에 기반한다면, 지식을 뇌에 주입하는 방식, 다시 말해 ‘통 속의 뇌’에게 가르치는 식의 교육은 옳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이전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학습 또한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언어 학습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서 ‘가장 잘’이라는 표현은 빼는 게 맞을 것이다. 경험을 통한 학습이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언어란 우리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경험한 것들을 말과 연결시키는 데서 비롯된다. 언어 학습은 체화되어 있다.
이야기의 힘: 언어 학습의 최적 도구
이제는 명확해졌을 것이다(아니, 이미 알고 있었을 거라고 장담한다). 학생들에게 단어 목록을 암기시키고, 문법 규칙을 연습하게 하며, 조용히 앉아 있도록 하는 방식은 학습을 힘든 길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정글을 마체테(machete, 큰 칼)로 헤치며 나아가는 것과 같다. 언어 학습에 그림, 소리, 동영상을 활용하면 그 길에 약간의 포장을 더하는 정도이고, 짝 활동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단어 학습에 제스처를 활용하는 것은 군화를 신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러한 체험학습도 항상 쉽게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더욱 강력하고 유연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마치 거친 길도 달릴 수 있는 험비(Humbvee, 오프로드용 지프차) 같은 도구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강력한 도구가 이미 존재한다. 우리 대부분이 이미 그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진정한 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강력한 도구, 체험학습 도구는 심지어 가만히 앉아 있을 때조차 온몸을 학습에 몰입시킨다. 그게 무엇일까? 바로 이야기다!
생각해 보자. 이야기는 체화된 경험을 응축한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타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앞에서 설명했듯이, 우리의 뇌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마치 자신의 경험처럼 처리한다). 이야기는 시각 이미지, 소리, 동작으로 가득 차 있으며, 설령 그 일부가 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개인적인 삶의 경험을 기반으로, 상상 속에서 이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등장인물을 머릿속에 그려 보고, 목소리를 상상하며, 감정과 신체적 감각까지 느낀다. 심지어 등장인물이 차(tea)를 들어 올릴 때면 팔 근육이 미세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이는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언어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우리 뇌는 신경 발화 패턴으로 저장된, 삶의 경험에 대한 기억들을 다시 활성화한다. 결국, 우리는 이야기를 직접 살아간다. 이야기를 체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야기는 다른 어떤 정보 전달 방식보다 뇌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사실, 우리는 이야기를 처리하도록 설계된 존재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연구 결과와 개인적인 경험 모두가 이야기의 강력한 효과를 보여준다. 연구에 따르면, 이야기를 통해 전달된 정보는 목록이나 강의 형식의 정보보다 일반적으로 두 배 더 빠르게 학습되고, 두 배 더 오래 기억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단어 목록을 암기하도록 했다. 첫 번째 그룹은 자유롭게 암기하도록 했고, 두 번째 그룹은 단어를 활용해 이야기를 만들도록 했다. 예상대로, 이야기를 만든 그룹이 훨씬 더 많은 단어를 기억했는데 그 차이는 더욱 놀라웠다. 이 그룹은 무려 2배에서 7배나 더 많은 단어를 기억했다(Bower, et al., 1969)!
그렇다면 개인적인 경험은 어떨까? 학술 논문과 소설 중 어느 쪽이 더 흥미로운가? 학습 매뉴얼을 읽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것 중 무엇을 더 선호하는가? 친구가 사무실 직원들의 이름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과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들려주는 것 중 어느 쪽을 더 기억할까?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가 언어 학습 도구로서 가진 가능성을 과소평가해 왔다. 신경과학은 이야기의 역할이 단순한 오락이나 영감 제공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중립적인 언어를 신경과학적, 심리학적 수준에서 의미 있는 경험으로 변환한다.
자, 이제 당장 내일부터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자. 감동적인 영상을 보여주고,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서로 공유하도록 하자. 단, 이야기를 들려줄 때 어휘 사전 학습이나 문법 연습 같은 학습 과제를 잔뜩 부과하는 함정에 빠지지는 말자. 이야기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면, 대부분의 언어 학습 과정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대신, 다독(extensive reading, ER)처럼, 이야기를 ‘체화된 인지’를 담아내는 도구로 활용하는 데 온전히 집중하자.
어때, 데카르트?
| 이 칼럼은 코리아테솔(Korea TESOL)의 ELT 잡지 <The English Connection>(Summer 2023 Volume 27, Issue 2)에 영문으로 실린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박사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원본은 https://koreatesol.org/content/english-connection-tec에서, 더 긴 버전은 <MindBrainEd Think Tanks>(mindbrained.org)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커티스 켈리(Curtis Kelly)는 교육학 박사이며, 일본 간사이대학교(Kansai University) 영어과 교수이다. 인생 사명은 "교실에서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인기 있는 강연자이자 작가로서 500회 이상의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며, 35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다. 대표적 저서로는 『Significant Scribbles(중요한 낙서)』(Longman), 『Active Skills for Communication(능동적 의사소통 기술)』(Cengage), 『Writing from Within(내면으로부터의 글쓰기)』(Cambridge) 등이 있다. 뇌과학과 언어교육을 연결하는 무료 잡지 <MindBrainEd Think Tanks>의 구독을 독자들에게 적극 권유한다. ctskelly@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