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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영국의 실패가 주는 경고 :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3가지 방식

#1270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25.04.25
목차

1. 시스템의 실패: 개인을 넘어선 구조적 문제

1) 과부하(Overloaded): 중앙집권의 한계

2) 권력 집중(Overpowered): 견제와 균형의 실패

3) 과속 상태(Overdrive): 단기적 사고의 함정

2. 제도 개선을 위한 방향성

3. 한국 상황에의 적용: 대선을 앞둔 성찰

4. 시민사회의 역할과 미래 방향

5. 결론: 시스템 개혁을 통한 국가의 재구성

 

 

샘 프리드먼의 『실패한 국가: 왜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고칠 것인가』(Failed State: Why Nothing Works and How We Fix It, 2024)는 최근 내 손에 들어온 가장 시기적절한 책이다. 6월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은 우리가 진정으로 물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그것은 바로 ‘누가 권력을 잡느냐’가 아니라, ‘어떤 시스템으로 국가를 운영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영국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프리드먼이 영국에서 발견한 시스템적 실패는 놀랍게도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매우 흡사하다. “문제는 정치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움직이는 국가 제도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낡고 무너졌다는 데 있다”는 그의 진단은 한국의 정치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들려온다. 이 책을 읽으며 필자는 우리의 대선 후보들이 표를 얻기 위한 공약 경쟁을 넘어, 국가 시스템 자체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임을 절감했다.

 

 

시스템의 실패: 개인을 넘어선 구조적 문제

 

프리드먼은 책의 서두에서 명확하게 문제의 핵심을 짚는다. 그는 개별 정치인의 역량이나 도덕성보다 시스템 자체의 붕괴에 주목한다. 이 관점은 한국 사회에도 크게 울림을 준다. 우리는 항상 정치인 개인의 부패나 무능을 비난하지만, 그들이 작동하는 시스템 자체를 분석하고 성찰하려는 시도는 부족했다.

 

또한 그는 “영국에서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번갈아 집권했지만, 국가 기능의 저하는 지속됐다”고 지적한다. 이는 한국 정치에서도 똑같이 관찰되는 현상이다. 보수와 진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국민들은 새로운 희망을 품지만, 결국 근본적 변화 없이 유사한 실망으로 귀결되곤 한다. 정치 성향이 다른 정부가 들어서도 근본적인 국가 시스템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이러한 시스템적 실패는 사회 전반의 극심한 이념적 양극화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여야 간의 대립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가 이념적으로 둘로 갈라져 상대방의 악마화, 혐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현상이 극에 달해 심리적 내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리드먼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적 분열이 시스템 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분열된 사회에서는 어떠한 개혁 시도도 ‘적’의 음모로 해석되어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은 “건강한 민주주의는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정치적 현상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전반의 기능 장애로 이어지고 있다. 상대방을 적으로만 바라보는 사회에서는 정치인들도 장기적 국가 발전보다 ‘우리 편’을 결집시키는 데 집중하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사회 시스템의 분열과 마비를 초래한다. 결국 이러한 양극화는 프리드먼이 진단한 시스템 실패의 원인이자 결과로 작용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프리드먼은 시스템 실패의 본질을 단지 정치의 실패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를 과부하(Overloaded), 권력 집중(Overpowered), 과속 상태(Overdrive)라는 세 가지 틀로 정리해, 민주주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과정을 분석적으로 추적한다. 이 세 가지는 민주주가 어디서, 어떻게 작동을 멈추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열쇳말이다.

 

과부하(Overloaded): 중앙집권의 한계

 

프리드먼이 책에서 분석한 첫 번째 핵심 문제는 ‘과부하’다. 그는 “중앙정부는 너무 많은 일을 떠안고 있고, 너무 큰 압박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영국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권한을 지속적으로 축소해온 과정은 중앙집권적 행정 체계를 고수해온 한국의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프리드먼은 중앙정부의 과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에 실질적인 권한과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지방자치단체에 적절한 자율성과 무엇보다 세금 징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한국의 지방분권 논의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영국이나 한국과 같이 중앙집권적 국가에서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다양한 기금에 경쟁적으로 신청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구조’에 갇히게 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는 창의적 정책보다는 중앙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기획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지방정부의 재정 자율성 문제에 대한 지적이다. “지방정부는 자체 수입원이 부족해 중앙정부의 지원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구조는 지방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분석은 한국 지방자치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을 담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지방정부도 중앙정부의 교부세와 보조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실질적인 자치권 행사에 적지 않은 제약을 받고 있다.

 

프리드먼의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는 한국 사회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메시지다. 이처럼 중앙정부의 과부하를 해소하고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은 단순히 효율성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건강성과 직결된 과제인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교육은 중앙집권의 폐해가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는 분야다. 교육 정책이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설계되고 집행되다 보니,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예외 없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왜곡된다. 교사들은 수시로 하달되는 단편적 사업과 정책 지침에 시달리며, 이를 형식적으로 따르거나, ‘가라’와 ‘편법’이 일상화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대응 모드로 버티고 있다. 교육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자율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교육 자치 역시 지방자치의 본질적 일부임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권력 집중(Overpowered): 견제와 균형의 실패

 

두 번째 핵심 문제는 ‘권력의 집중’이다. 프리드먼은 “행정부의 권력이 입법부를 압도하면서 견제와 균형이 무너졌다”고 지적한다. 영국 의회의 법안 심의 기능이 약화되고, 행정부가 이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그의 분석은 오늘날 한국 국회의 현실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는 “의회의 법안 심의 과정이 형식적으로 진행되어 행정부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한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영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역시 입법부가 수적으로는 야당이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협치의 부재와 대통령의 반복적인 거부권 행사로 인해 견제와 균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거부권 정국’이 반복되고, 정치적 타협은 실종된 채 권력기관 간의 극단적 대립만 격화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행정부의 독주를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하는 견제 구조의 불완전성은, 영국과 한국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구조적 결함이다.

 

특히 한국의 대통령제는 이러한 권력 집중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검찰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행정권력이 재편되며, ‘검찰 공화국’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었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들이 수사와 기소 중심의 사법적 방식으로 처리되면서, 이른바 ‘국정 운영의 사법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회적 갈등을 정치적 대화와 타협이 아닌 극단적 행정 조치로 해결하려 했던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령’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상징하는 사건이자,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일대의 참사였다. 이는 프리드먼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 증상이기도 하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에 대한 행정부의 지속적인 견제와 무력화 시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는 프리드먼이 지적한 “행정부가 입법부의 견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한국 정치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사법부 또한 독립성과 중립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주요 판결에 대해 정치적 관점에서 상반된 해석이 제기되고, 이로 인해 삼권분립의 실효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프리드먼이 말한 “법률의 질이 저하되고, 이를 보완하려는 사법부의 개입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는 분석은 한국의 현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처럼 행정, 입법, 사법 각 영역이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상호 견제와 균형의 구조가 무너진 현실은 프리드먼이 영국에서 분석한 ‘권력 집중’ 문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는 특정 정부나 정치인의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 시스템 전반에 내재한 구조적 결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과속 상태(Overdrive): 단기적 사고의 함정

 

세 번째 문제는 ‘과속 상태(Overdrive)’다. 프리드먼은 “24시간 뉴스 사이클과 미디어의 압박으로 인해 정부가 단기적 대응에 치중한다”고 분석한다. 이로 인해 장기 전략의 수립이 어려워지고, 정책의 일관성도 무너지게 된다는 지적은 단기 성과에 몰두하는 한국 정치의 현실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그는 이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정부와 미디어 사이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관계”를 꼽는다. 이러한 관계는 깊은 정책적 사고를 저해하고, 정치인들이 일시적 인기와 이미지 관리에 집착하게 만든다. 실제로 보리스 존슨과 리즈 트러스의 실패는 그들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만든 구조적 결과라는 것이 프리드먼의 핵심 진단이다.

 

한국 정치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SNS, 24시간 뉴스,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선정적 미디어 환경이 정치적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있다. 깊이 있는 정책 논의보다는 자극적인 발언과 이미지가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정치인들은 장기적 비전보다 당장의 여론 반응과 지지율 변화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최근에는 극단적 성향의 유튜브 채널이 여론을 주도하거나, 대통령의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될 정도로, 정치와 미디어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마치 영국의 정치인들이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집중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정치인들의 공약은 종종 충분한 검토 없이 발표되고, 실행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이처럼 미디어의 즉각성과 정치의 즉흥성이 결합된 ‘과속 상태’는 영국과 한국 모두에서 민주주의의 심층적 작동을 방해하는 구조적 함정이 되고 있다. 진정한 정치적 리더십은 당장의 주목보다 깊이 있는 질문과 장기적 관점을 견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제도 개선을 위한 방향성

 

프리드먼은 문제 진단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개선 방안도 제시한다. 가장 핵심적인 제안은 “시스템의 진짜 변화는, 누군가 권력을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하위와 중간 계층이 스스로 매력적인 파트너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즉, 하향식(top-down) 개혁의 한계를 지적하며, 진정한 변화는 아래와 중간 수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기존 정치인들이 권력을 나누어 유지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더 끔찍한 것이 코앞에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시스템 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한 것으로, 한국 정치에도 중요한 메시지다.

 

그가 제안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지방정부에 실질적인 권한과 재정 자율성 부여: “세금 부과 권한을 포함하여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정책 추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프리드먼은 이 부분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적절한 자율성과 무엇보다 세금 징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지방정부에 실질적인 권한을 이양하는 방안을 상세히 제시한다.

 

• 의회 내 위원회 기능 강화: 한국 국회는 형식적으로 상임위원회 중심의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정당 중심 운영과 정치적 배분 관행으로 인해 위원회의 독립성과 정책 감시 기능이 크게 약화되어 있다. 상임위원장직이 여야 협상의 지분처럼 나뉘는 구조는 위원장을 정책 리더가 아닌 정치적 대리인으로 전락시키고, 위원회를 ‘거쳐가는 절차’로 만들고 있다. 반면 영국은 상임위원장을 의원 전체의 비밀투표로 선출해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고 있으며, 의회 본연의 감시 기능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프리드먼은 기득권 정치인들이 권력을 나눌 줄 모르고 더 많이 가지려고만 할 때, 더 큰 위기가 닥친다고 경고한다. 위원회의 실질적 기능 회복은 권력 공유의 정치 시스템으로 가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 공공 서비스의 역량 강화: “민간 위탁에 의존하기보다 공공 부문의 자체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공공 서비스의 질을 근본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 프리드먼은 영국 정부가 민간기업에 공공 서비스를 외주화하면서 발생한 비효율과 예산 낭비 문제를 지적하는데, 이는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한국에서의 사회서비스, 교육, 의료 분야 민간 위탁1 과정에서 나타나는 서비스 질 저하와 공공성 훼손 문제는 프리드먼의 분석과 정확히 일치한다.

 

•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 제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높이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프리드먼이 강조하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보다 실질적 감시 기능에 충실한 의회 활동”의 필요성은 한국 정치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 상황에의 적용: 대선을 앞둔 성찰

 

프리드먼의 분석은 6월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에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영국의 실패 사례는 한국 대선에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 행정부의 과부하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의 권력 구조는 견제와 균형을 어떻게 상실해 왔는가? 우리의 정치가 단기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것은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기 대통령은 어떤 시스템적 개혁을 추진할 것인가? 우리는 대선 후보들에게 단순한 정책 공약이 아닌, 국가 시스템 자체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요구해야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질문이 중요하다:

 

• 지방분권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구현할 것인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지방정부에 실질적인 권한과 재정을 이양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헌법과 법률로 자치 권한이 제도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 의존 구조, 공모사업 중심 운영, 중앙집권적 행정 관행 등으로 인해 자치가 실제로 구현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세 확대와 지방교부세 개혁을 통해,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 국회의 견제 기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행정부에 대한 효과적인 감시와 견제를 위해, 국회의 기능 강화가 시급하다. 상임위원회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국정감사의 실효성을 높이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 장기적 국가 비전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초당적 국가 비전과 정책 수립 기구가 필요하다. 영국의 국가인프라위원회(National Infrastructure Commission)2처럼,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전략을 수립하는 독립 기구의 설립을 고려해 볼 만하다.

 

• 현장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 것인가?
프리드먼은 진정한 시스템 개혁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가 아니라, 아래와 중간 수준에서 자율성과 책임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교사, 간호사, 경찰 등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과 결정권을 부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민사회, 지역 행정, 일선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실질적 주체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정책 결정 구조를 수직적 전달 체계에서 참여형·분권형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의 역할과 미래 방향

 

프리드먼의 책은 정치인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역할도 강조한다. “아래로부터의 자율적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그의 지적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진정한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도 매우 중요한 메시지다. 시민사회가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정치권에 압박을 가해야 하며,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 참여 모델을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단순한 이념 대립이 아닌 실질적인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결론: 시스템 개혁을 통한 국가의 재구성

 

『실패한 국가』를 읽고 나서 가장 크게 와닿은 것은, 진정한 변화는 단순히 정치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재구성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프리드먼의 표현대로 “복잡한 시스템은 위에서 명령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

 

6월 대선을 앞둔 지금, ‘당신은 영국의 실패를 한국에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시스템적 변화를 추구할 것인지’ 후보들에게 묻고 싶다. 중앙집권적 구조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균형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단기적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장기적 국가 비전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 그리고, 온 사회가 심리적 내전 상태에 빠진 이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통합의 정치로 나아갈 수 있는가? 이 4가지 핵심 질문들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실현 가능한 비전을 제시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대선 후보들이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 화려한 수사와 표를 의식한 단기적 공약이 아니라,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정직하고 책임 있는 해답을 우리는 요구한다.

 

더 나은 정치를 가능하게 하려면, 우리는 어떤 시스템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것이야말로 지금 한국 사회가 대선 후보들에게 던져야 할 가장 절박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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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한국에서의 사회서비스, 교육, 의료 분야 민간 위탁 – 한국은 복지관, 방과후학교, 보건사업 등 공공서비스의 다수를 민간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는 행정 효율성과 전문성 강화를 명분으로 확대되어 왔으나, 공공성 약화, 서비스 질 불균형, 종사자 처우 열악, 정부 책임 회피 등의 구조적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민간 위탁이 공공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책임성, 지속성, 공공성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2. 영국의 국가인프라위원회(National Infrastructure Commission) – 장기적이고 초당적인 국가 인프라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2015년 설립된 독립 자문기구이다. 교통, 에너지, 디지털, 수도 등 핵심 인프라 분야에 대해 30년 단위의 전망과 정책 권고를 제공하며, 정부는 그 권고에 대해 수용 여부를 공식적으로 답변해야 한다. 정치적 변화와 관계없이 일관된 국가 인프라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 제도이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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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1. 교사 수정 삭제

    존경해마지 않는 이찬승님의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이번 선진국의 사례로 짚어보는 한국교육의 진단으로서 뜻깊게 읽었습니다. 내용 중 한 가지 영국의 사례로서 한국에 적용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지방분권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확대입니다. 영국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사회도 지방자치를 위해 점진적으로 많은 시도를 해왔지만, 제 생각에 그 시도는 실패에 가깝습니다.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진단이 없어도 지방에 한 번 살아보면 그 폐해를 여실하게 느낍니다. 교육계에 한정하여도 지방교육청의 독창적 자율성은 기대할 수 없고 방만하고 주먹구구식 운영의 사례들만 보입니다. 현재도 이런 상태인데 권한을 더 이양하고 자율권을 주는 것은 겉으로는 민주주의 올바른 이념에 맞는 것 처럼 보이겠지만, 기실 절대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정말 자세히 들여다 보면 처참한 수준입니다.

    1. 현직 교사 수정 삭제

      동의합니다. ‘~이어야 한다’는 ‘~이다’에 대한 정확한 파악 하에 전략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장에 뿌리를 두지 않은 이데올로기적 접근의 폐해를 지난 20년간 진보주의 교육에서 보아 왔습니다.

    2. 이찬승 수정 삭제

      네, 그 정도 수준이군요. 지방정부와 교육기관이 스스로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는 자치 역량을 갖출 때, 비로소 진정한 분권과 혁신도 가능해지겠지요. 우리의 미흡한 자치 현실 알려주셔 감사합니다

  2. 궁금이 수정 삭제

    저는 교육계에 몸담고 있지는 않지만, 항상 제공해 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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