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 구조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 향후 초·중등 교육정책의 방향과 교육부의 구조 개혁을 고민하며 –
|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이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교육개혁이 왜 늘 실패하는지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교육 권력의 해체와 더불어 교육부 권력의 구조적 재편을 희망합니다. |
1. 들어가며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선고로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언급되었듯, 윤석열 정부는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향후 역사는 보다 엄밀한 기준으로 이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평가 중 ‘교육’에 국한해 논의하고자 한다. 물론 막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정권을 평가하기엔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윤석열 정부만을 문제 삼기 전에, 과거의 정부들도 진보·보수 정권을 불문하고 교육 분야에서 성공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학계와 연구자들의 여러 논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과거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교육이 퇴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수 감소로 인한 교육재정 축소, 학령인구의 급감, 그로 인한 과원 교사 증가와 신규 인력 부족은 이미 예견된 문제다. 이러한 상황을 단지 글로 차분히 풀어내기엔, 교육 현장의 현실은 훨씬 더 참혹하다. ‘난세에 영웅이 등장한다’는 말도 있지만, 지난 역사들을 돌이켜 보면 과연 교육계에 영웅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인지 회의적이다.
2.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윤석열 정부(이하 ‘윤정부’)의 교육개혁
결국 윤정부의 교육개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는 교육부의 역사가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윤정부의 교육개혁은 이전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구호에 그쳤으며, 오히려 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러 사업들이 추진되었으나, 대부분 현장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대표적인 예는 공약과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이다. 전 국민과 교육계의 반대로 인해 교육부 장관이 사퇴하고 정책은 철회되었지만, 이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었다. 장관 교체로 상황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이후에도 현장에는 무리한 교육개혁의 여파가 남았고, 오히려 전임 장관이 더 나았다는 의견까지 제기되었다.
특목고 및 자사고 존치, 고교 무상교육 폐지 등의 정책은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을 심화시켰다. 수능 ‘킬러문항’ 폐지는 오히려 ‘준킬러문항’ 증가라는 부작용을 낳았으며, 무리한 의대 정원 증가는 초등학생 ‘의대반’ 개설이라는 기현상까지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이들 정책은 사교육비 급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실제로 사교육비가 30조 원을 돌파했지만, 대책은 기존의 반복일 뿐이었고, 교육부는 실질적인 대응 없이 오히려 지역 및 학교 간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늘봄학교 역시 교육개혁의 핵심으로 대대적인 추진이 있었지만, 기존 시스템의 명칭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물론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최근 한 광역시에서는 늘봄 운영 중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며, 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늘봄연구사와 늘봄전담사 등을 선발했지만, 정권 교체 이후에도 이 정책이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개인적으로는 차기 정부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며, 유사한 기능은 남더라도 ‘늘봄’이라는 명칭과 일부 추진했던 정책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AI 디지털교과서(AIDT) 사업도 대표적인 논란거리다. 1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설문조사(2024년 12월, 국회 교육위)에서 학부모와 교원의 86% 이상이 반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장관이 나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에게까지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며 강행했다. 교육부 내부에서도 부정적 의견이 팽배했지만, 결국 도입이 강행되었다. 이것이 장관의 독단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다른 ‘손’이 있었던 것인지, 차기 정부에서 밝혀질 일이다. 교육계 내부에서는 새 정권이 출범하는 6월 이후, AI 디지털교과서는 사실상 폐기되거나 단순 참고 자료로 축소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이미 관련 업체들도 대규모 인력 감축에 돌입하고 있다.
민간업체들은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는다. 대다수 학부모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정부가 이처럼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란 쉽지 않다. 현장에 시범 도입된 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평가 역시 매우 냉혹하기에,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 정책이 정권 교체 후에 사라질 것이란 전망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정책이 ‘눈먼 돈’을 둘러싼 일시적인 프로젝트였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과거에도 교육부가 추진한 대규모 사업들은 정권 교체와 함께 소멸되었고, 학교는 그 실험의 대상이 되었으며, 교사들은 반복되는 시범사업에 소모되며 자존감을 잃었다. 수백, 수천억 원을 써서 사업을 하고, 그것을 폐기하는데 천문학적인 금액을 쓴다. 놀랍게도, 교육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스스로 이런 일을 반복하고 있다.
윤정부 교육정책의 ‘화룡점정’은 의대 정원 증원이었다. 명확한 근거나 설득력 있는 논거 없이 2,000명의 증원을 밀어붙였고, 이를 반드시 정권 내에 마무리하겠다는 약속은 결국 정권이 먼저 끝나면서 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교육비 폭증, 초등 의대반 개설, 응급실 폐쇄, 전문의 이탈, 의대생 수업 거부 등 유례없는 사태들이 벌어졌고, 결국 해당 정책은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교육부는 의대생 복귀 시 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과연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허언에 가까운 전례가 많았던 교육부이기에 기대하기 어렵다.
교육부는 스스로의 과거를 지우는 데 가장 능숙한 부처라는 평가도 있다. 전 정권의 정책을 부정하고,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검찰보다도 더 기민하고 야욕적으로 움직인다는 비판까지 제기되며, 교육개혁이 검찰개혁보다 어려운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윤정부가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교육을 이처럼 파괴적으로 운영한 것의 중심에는 폭력적인 행정 방식과, 교육부를 사조직처럼 활용한 이들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
정권이 바뀌면, 교육부는 언제나 새 정권에 충성하기 위해 자신을 부정해 왔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계기 교육, 문재인 정부의 고교학점제 및 고교 무상교육이 대표적이다. 윤정부의 과거 교육정책 폐지 및 무시로 이어지는 반복된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누리과정 예산 논란, 국정교과서 도입 등에서도 교육부는 그때그때의 권력에 따라 입장을 번복하며 권력의 시녀 역할을 자처했다. 현재 교육부를 신뢰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이 모든 것이 교육부만의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 결국 정권이 교육부를 그렇게 만들었고, 고위층이 이를 조장해 온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반복되다 보니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하게 들린다.
그 결과, 교육부 내부의 사기는 급속히 저하되고 있으며, 공직자들 사이에서도 교육부는 기피 부처로 인식되고 있다. 서울신문(2025.04.03.) 보도에 따르면, 사무관들 사이에서 교육부 기피 순위가 상위권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잦은 정책 변경과 과중한 업무, 자신이 만든 정책을 부정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자존감 상실도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 인정은커녕 비난만 받는 상황에서, 조직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자신이 없으면 조직을 해체하거나, 권한을 타 기관에 이관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정권 말기가 되면 ‘생색내기용’ 정책이 난무한다. 교육부는 2025년 9월부터 전국 50곳에 ‘스터디카페’를 만든다고 발표했다(이데일리, 2025.04.09.). 보도자료에는 ‘사교육 없는 자기주도 학습 모델 창출’이라고 소개됐지만, 다음 정권이 이를 이어받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국 자료로만 남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명백한 예산 낭비로 보인다. 왜 교육부가 지자체에서 할 일을 나서서 홍보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스스로를 희화화하는지 의문일 뿐이다.
3. 왜 교육개혁은 늘 실패하는가?
앞서 필자는 비슷한 주장을 여러 차례 반복한 바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부라는 교육 권력의 구조를 재편하지 않는 이상, 교육개혁은 실현될 수 없다. 정권 차원에서는 단편적인 사업만 난무할 뿐, 실제 학교 현장은 변하지 않고, 사교육 의존도는 날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공교육이 황폐화된 원인은 교사나 학교에 있지 않다. 이는 기형적으로 작동하는 교육 권력의 구조 때문이며, 그 이면에는 정치권의 오판, 직무유기, 그리고 무능이 자리잡고 있다. 정치권은 여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개혁이라 착각하며, 교육 현장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이런 접근은 결코 교육적으로 실효성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없다.
조심스럽게 예측하건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든 교육부나 교육 권력을 해체 수준으로 개혁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부의 무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 한 국회의원이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교육부 해체를 주장했을 때 국민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교육부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었지만, 그 또한 실패로 귀결되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고, 정치 성향이 강한 인물을 중심에 배치하면서 교육적 중립성과 신뢰를 잃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교육부를 개혁하지 않고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든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일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교육부는 90% 넘는 국민이 반대한 국정교과서를 추진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교육부는 이를 자성하며 추진 인사에게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같은 인물들이 교육부 내에서 영전되었다. AI 디지털교과서 사업 또한 정권이 바뀌면 같은 전철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교육부는 지금까지의 흐름을 잘 알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실패한 정책을 주도한 이런 인물들이 주요 정책 요직을 맡는 현실 자체가, 한국 정치와 교육계의 민낯을 보여준다.
곧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지만, 과연 누가 교육부를 개혁할 수 있을지, 초중등 교육 정책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지금이 교육개혁의 골든타임”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정작 개혁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외면했고, 직무를 유기한 채 자리를 영광으로 여긴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교원단체 출신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오판에 불과하다.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교원단체 출신 인사들이 교육부 요직에 앉았지만, 현재 학교 현장의 상황이 그 결과를 증명한다. 그들 역시 관료들과 유착하며 신선놀음을 하다 조용히 사라졌고,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관료들 탓에 개혁이 어려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역량과 의지의 문제였다.
교육부는 고등교육, 초중등교육, 평생교육, 그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 아니다. 국민 다수는 교육부총리가 사회부총리를 겸임한다는 사실조차 납득하지 못한다. 교육부는 이전 정권의 정책을 철회하고, 새 정권의 특정 사업에만 몰두하는 조직이 되어버렸다. 정권이 끝나는 5년 후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안타깝게도, 시·도교육청 역시 이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등교육과 평생교육을 제외하더라도, 초중등교육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역할을 담당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는 전무했다. 교육부, 국가교육위원회, 시·도교육청, 지역교육청 등 권력 기관이 너무 많아, 학교 입장에서는 누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교원단체들의 교육 권력에 대한 무지와 외면 또한 교육개혁 실패의 한 축이다. 그간 학교 현장의 교원이나 교원단체에서 제안한 기형적인 제도들이 정책화되어, 결국 그 피해는 현장이 감당해왔다. 스포츠강사, 학교폭력전담조사관, 늘봄연구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교사와 학교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도입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장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교육부가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과거 정책에 대한 학습과 교육 권력의 재편만이 이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교원단체들은 회원 수에만 집착하며, 그 외의 가치와 기능에는 무관심한 모습이다.
교육개혁 논의는 결국 입시제도에서 다시 마주친다. 가정의 경제가 무너질 정도로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현실에서, 그 근본 원인이 수능 제도에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손대려 하지 않는다. 공정성이라는 명분 아래, 정치권은 여론을 의식해 제도 개선을 회피한다. 그 결과, 더욱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한 사교육이 성행하며, 이제는 유아 대상의 의대반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학생들은 병들고, 가정경제는 파탄에 이르지만, 정치권과 교육 권력은 이를 외면한다. 교육부가 비난을 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악순환을 끊으려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동시에 교육 권력, 즉 권력 카르텔을 해체해야 한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 모두, 선거와 정권 초기에 입시제도를 건드려선 안 된다는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다. 결국, 눈에 띄는 일부 사업에 의존하고, 표심을 자극할 만한 몇몇 아이템에만 몰두한다. 교육부는 이 틈을 노려 정치권을 포섭하거나 이용한다. 정권 초기 1~2년만 견디면 5년간 안심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 속에서 교사와 학생들의 희생은 끝없이 이어지고, 학생의 고통은 학부모의 고통으로 전이된다.
4. 나가며: 교육부 권력 재편에 대한 희망
2025년 6월, 대한민국은 새로운 정권을 맞이하게 된다. 국정 과제와 공약을 통해 몇 가지 정책이 제시되겠지만, 그저 새로운 정책 몇 개로는 초·중·고 교육 현장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진정 필요한 것은 교육부 권력의 구조적 재편이다.
산적한 문제들을 외면한 채, 일회성 사업 몇 가지로 현장을 포장하는 방식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문제는 정치권의 인식이며, 교육부의 일하는 방식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살아남는 교육부는 생존에 최적화된 조직이 되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만들어내고, ‘학교 줄 세우기’와 입시 강화, 그리고 맘카페 여론에 편승한 달콤한 유혹을 던지는 일에 익숙하다. 그러나 그 독이 든 성배에 더는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교육대통령’을 내세우며 교육개혁을 이야기하는 여러 단체들도 마찬가지다. 말은 무성하지만, 구체적인 비전도 실행 계획도 부족하다. 특히 교육부에 대한 이해는 놀라울 정도로 낮다. 결국 그들이 내세우는 개혁은 또다시 관료들에 의해 문서로만 존재하는 ‘유령 개혁’으로 전락하고 만다.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또 다른 메시아가 등장해 개혁을 외치겠지만, 그 또한 현실을 마주하자마자 본질을 외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교육위원회와 시·도교육감협의회는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로는 신기루에 가까웠다. 교육 자치의 실현은 요원했고, 개혁에 대한 의지조차 찾기 어려웠다. 교사 출신 국회의원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소수인 이들이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출신성분을 떠나 미래지향적이며 교육적인 방향으로 고민하는지도 의문이다.
교육정책과 교육부 개혁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 교육부의 개혁은 곧 교육 권력의 재편이며, 이는 초·중등 교육정책이 학교 중심, 현장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전제 조건이다. 이를 간과한다면, 교육은 마지막 기회를 잃을 것이며, 학령인구 감소와 교단의 노령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축소 속에서 더는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곧 국가의 미래 동력을 상실하는 일이다.
지금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기능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있으며, 이 구조 속에서 학교 현장은 점점 숨 쉴 공간을 잃어가고 있다. 여론을 의식한 각종 단기 사업들은 현장을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또 한 번의 기회를 마주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경험상 후자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교육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개혁은 이상과 선언이 아니라,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책임 구조를 재편하는 일이어야 한다.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과 국가의 미래를 중심에 두고 추진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교육개혁은 교육 권력의 해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초·중등 교육정책은 교육부가 아닌 국가교육위원회와 시·도교육감협의회로 이관되어야 하며, 교육부는 방향 설정과 교육연구 중심의 조직으로 기능이 재편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교육부가 수많은 사업을 주도하면, 시·도교육청 및 지역교육청과의 기능 중첩이 발생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교 현장에 전가된다.
교육부 내부 구성의 문제도 시급하다. 현재 교육부의 중심은 행정고시 출신 사무관 집단이다. 이들의 행정적 역량은 인정받을 수 있으나, 학교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그들이 기억하는 학교는 과거 자신의 학창 시절이며, 오늘의 교육현장을 읽어내는 데 필요한 감각은 부족하다. 이들은 주로 사업을 만들고 하달하는 데 집중하며, 학교는 성과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런 구조가 수십 년간 반복되며 학교 현장은 피로와 갈등에 지쳐왔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앞으로 교육부의 구성도 달라져야 한다. 현장 경험이 있는 교육전문직 비율을 확대하거나, 행정고시 자체의 존속 여부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 알려진 바로는 현재 교육부 내 교육전문직 비율은 10%도 되지 않는다. 이것이 교육부의 현실이며, 한계다.
정권 초기에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구체적인 설계가 시작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골든타임을 잃게 될 것이다. 사실상 지금도 그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교육개혁을 외치다 외면당하고, 손가락질 받고, 결국 고립되는 사람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더는 비판받는 것이 두려워 아름답고 추상적인 말로만 포장하거나 현실에 타협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개혁은 늘 어렵고, 세상의 연구자들은 점점 말을 아끼는 쪽으로 기운다. 어쩌면, 모두가 포기하려는 그 순간이 대한민국 교육의 마지막 기회이자 희망일 수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이며, 교육정책 관련 다수의 저서 및 논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