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문해력을 찾아서
| “정보의 홍수와 대폭발의 시대, 탈진실과 뇌썩음에 맞설 수 있는 문해력이 절실하다. 시험만 잘 보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교실, 앞만 보고 달리는 선착순 학교에서는 문해력이 숨을 쉴 수 없다.” [본문 중에서] |
탈진실과 뇌썩음, 해법은 있나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가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뇌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 이는 자극적인 쇼트 폼 콘텐츠를 과잉 소비해 집중력 저하, 문해력 약화 등 지적 퇴화가 심각해지는 현상을 꼬집은 단어다. 생물학적 뇌 기능은 멀쩡한데 지적·사회적 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앞서 2016년에는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하기도 했다. 탈진실(脫眞實)은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의 신념과 감정에 대한 호소가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을 말한다. 당시는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파를 반영한 것인데, 옥스퍼드에 따르면 그 단어는 그해, 전년 대비 20배나 사용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 와중에 최근 우리나라 청소년의 문해력이 떨어져서 큰일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심심한 사과’를 ‘사과가 왜 심심하지’, ‘사흘’을 ‘4일’, ‘금일’은 ‘금요일’, ‘중식 제공’은 ‘짜장면 줘요?’, ‘우천(雨天) 시’는 ‘우천이 어디에 있는 도시?’로 받아들이는 청소년이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우스개로 지어낸 말이 아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제578돌 한글날을 맞아 전국의 초·중·고 교사 5,848명을 상대로 실시한 ‘학생 문해력 실태 조사’에서 학생들의 문해력 부족으로 당황하거나 난감했다며 직접 밝힌 사례 중 일부다. 조사에 참여한 교사 10명 중 9명은 “과거에 비해 문해력이 저하됐다”고 답했다.1
정보의 홍수 속에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탈진실’이 대세가 되어 ‘뇌썩음’에 놓인 이들이 증가하는 현실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방치하기엔 사태가 꽤 심각하다. 여러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대안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즉 문해력과 이를 위한 시민교육 강화다.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사는 법
‘문해력’(文解力)을 사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명사」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간혹, 문해력을 문맹률 정도로 아는 이들도 있는데, 문맹률이 단순히 읽고 쓸 수 있느냐를 나타내는 지표라면, 문해력은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에 더해 그것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훨씬 깊고 넓은 개념이다. 조금 더 풀어 말하면, 문자 언어 중심인 텍스트를 수용하는 능력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 텍스트를 다룰 줄 아는 능력,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능력, 자기 목소리를 담은 텍스트를 직접 제작하고 유통할 수 있는 능력까지 아우르는 개념2이다.
그런 까닭에, 특정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것을 문해력과 직접 연결하는 것이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문해력의 핵심은 (단어의 뜻이 아니라) 글을 통한 의사소통이며,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또, 청소년들이 과거 세대에 비해 어휘력이 하락했다는 지적도 그 어휘들이 대개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도 손아귀에 디지털 기기를 쥐고 있는 ‘초연결 사회’에서는 문해력에 대한 새롭고 더 넓은 관점이 필요하다.
20세기까지 인류가 쌓은 지식과 사상 등에 관한 자료는 대부분 문자 위주의 인쇄매체였다. 그러나 불과 20여 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디지털 자료의 비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유튜브와 SNS(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생산되는 정보의 양은 나날이 급증하고 있어 어휘력을 넘어 매체 문해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오늘날 인터넷 사용자들은 매일 250경 바이트의 데이터를 생산해 낸다. 인류가 생산한 정보 중 90%가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생성된 것이다. 페이스북은 매일 20억 명의 활성 사용자가 이용하며, 1분당 평균 51만여 개의 댓글과 29만 3천여 개의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3 IT 분야 컨설팅 기업인 IDC에 의하면, 2025년에는 하루에 생산하는 데이터의 양이 2016년 대비 10배를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4 숫자가 어마어마해서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와 같은 정보의 홍수는 우리를 지혜롭게 해 주었을까? 그 양과 속도를 감당하지 못할 때, 우리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심사숙고보다는 인지적 지름길에 자신을 내맡겨 자신의 부족(무리)으로 정보의 출처를 좁혀버리기 일쑤이다. 게다가, 그조차도 한 다리 건너 전해진 간접 정보에 의존하다 보니, 단순화하고 자극적으로 바뀐 상황에 열성적으로 빠져드는 일이 허다하다. 정보의 홍수와 대폭발의 시대, 탈진실과 뇌썩음에 맞설 수 있는 문해력이 절실하다.
우리 사회의 문해력은 어디쯤
어휘력의 차원을 넘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평생 필요한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문해력은 어느 정도일까? 앞선 한국교총의 조사 결과와는 다른 해석이 필요한 실증적인 조사가 지난해에 발표되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총 31개국 16~65세 성인 약 16만 명을 대상으로 언어능력, 수리력, 적응적 문제해결 수준을 비교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결과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 2013년 시행한 1주기 조사 이후 두 번째 조사로, 우리나라는 총 6,198명이 참여했다.5
우리나라 성인의 언어능력, 수리력, 적응적 문제해결력이 OECD 국가의 평균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문해력으로 여겨지는 언어능력은 10년 전에 비해 평균 점수가 24점이나 하락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인의 역량은 모두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했지만, 16~24세 청년층만 보면 OECD 평균보다 높았다. 우리나라 청년층(16~24세)의 언어능력과 수리력은 OECD 평균보다 각각 3점, 1점 높았고, 적응적 문제해결력은 OECD 평균보다 6점이나 높았다.
역량 수준이 가장 낮은 연령은 56~65세로, 이 나이대의 언어능력, 수리력, 적응적 문제해결력은 OECD 평균보다 무려 56점, 46점, 25점이나 낮았다.
이러한 결과는 10년 전(2013)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의 문해력은 25세쯤 정점을 찍고 급속하게 떨어지는 데 비해, 핀란드, 스웨덴, 일본을 보면 우리와 비슷하거나 낮았지만, 35세 즈음까지 꾸준히 상승하다가, 완만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국제적으로 비교한 두 조사로만 본다면, 학교를 다니는 시기엔 문해력이 좋았다가, 학교를 마치고 나면 문해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셈이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일단 화살은 청소년에게 몰려 있다. 하지만, 한자어 위주의 자료로 청소년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판별하겠다는 것은 치우친 잣대이다. 국한문 혼용의 교과서와 신문, 간판 등으로 늘 한자를 접하던 장·노년층과 달리 요즘 청소년은 학교의 일주일 1시간 한문 수업 이외에는 한자에 노출될 일이 없었기에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청소년이 즐겨 사용하는 ‘케바케, 갠소, 주장미, 스압, 솔까말, 금사빠, 열폭, 졌잘싸, 혼코노, 킹받네’를 장·노년층이 얼마나 이해할까? 그런 줄임말을 모른다고 장·노년층을 문해력이 낮다고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낯선 한자어를 제대로 모른다고 청소년 문해력이 낮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법 난해한 글로 가득한 수능 시험에선 어떤 결과가 나올까? 국어 영역은 A3용지 16쪽 분량에 빼곡하게 채워진 글과 그에 딸린 문제 45개를 80분 동안 풀어야 한다. 고교 국어교사, 대학교수, 시인들도 90점을 넘기 힘든 이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맞는 청소년들이 수두룩하다.
영어 영역을 보면 더욱 놀랍다. 45개 문항을 70분 안에 푸는 시험인데, 듣기 17문항이 포함되어 있다. 수능 감독관은 다 알겠지만, 앞쪽 듣기 평가가 시작되면 수험생들은 자투리 시간을 쪼개 뒤쪽 40번 언저리의 문항을 살핀다. 그리고 듣기가 시작되면 다시 앞쪽으로 넘어와 문제를 풀고, 문항 사이의 짤막한 틈새 시간에 다시 40번으로 넘어가 문제를 풀다가 다음 듣기가 시작되면 앞쪽으로 넘어온다. 이런 쳇바퀴를 듣기 17문항이 끝날 때까지 계속한다. 앞뒤 문제를 동시에 풀다가 자칫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 감독관이 더 진땀을 흘릴 지경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험생은 그걸 천연덕스레 해낸다. 영국의 최고 명문대인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입학생을 대상으로 같은 시험을 치렀더니, 그 결과가 우리 학생들 상위 수준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수능 상황만을 고려한다면, 흔히 문해력이라 부르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언어 이해 및 활용력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시험 보는 능력만으로는 해당 분야 전문가 수준을 뛰어넘는 결과마저 보인다. 어쩌면, 청소년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연령은 앞의 OECD 조사에서 세 영역 모두에서 평균보다 한참 낮은 결과를 보인 ‘56~65세’이다. 연륜이라는 것이 세월이 흐른다고 저절로 쌓이는 것은 아닌지라, 새로운 사상, 문화와의 소통을 게을리하면 디지털 알고리즘의 표적이자 먹잇감이 되기 쉬운 까닭이다.
청소년 문해력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해서 안심할 것 또한 아니다. 아직 우리 교육과정이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까닭에 현실 판단과 적용, 시민 역량이라는 측면의 문해력은 그다지 높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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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받는 스마트폰 문자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 같지만, 절박한 누군가는 열어보게 되어 있고, 그중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 수능 시험 잘 본다고 피해 갈 수 없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절실한 이유이다. 디지털 공간은 개인정보 유출, 사생활 침해와 같은 개인적 문제뿐만 아니라, 허위 조작 정보, 편향, 극단화, 여론 왜곡 등의 사회적 문제를 모두 안고 있는 곳이다. 인쇄 매체의 경우에는 그러한 편향이 비교적 적은 반면, 디지털 매체는 편향에 빠지는 정도가 극심하여 디지털 문해력을 기르기 위한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다.
원론적인 민주주의 교육을 넘어 사회 현안을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사회 교과에 민주시민 교육이 포함돼 있지만 학교 현장은 현대사나 시사 현안을 다루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그 공백을 유튜브가 메우고 있는 것”이라며 “무늬만 민주시민 교육이 아닌, 토의·토론, 독서 등을 통해 현안을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6
문해력은 어떤 계층이나 연령은 높고, 누구는 더 낮다는 관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전방위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뒤덮고 있기에 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상황 맥락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요,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대한 통찰력도 갖추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사건과 현상, 난감한 주제에 악성 유튜버의 구독자 신세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문해력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문해력을 비롯한 사회적 역량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출렁이는 변화무쌍한 것이다. 즉, 문해력은 일생을 통하여 형성되는 것이며 결코 완성이란 없는 것, 늘 현재진행형이어야 하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그 시작은 어디가 되어야 할까?
많은 이들이 그 시작으로 꼽는 것은 꾸준한 독서이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6명 정도는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고, 연간 독서량도 평균 3.9권에 그친다.7 적신호가 켜졌다. 그나마 학생 독서량이 성인의 10배에 이른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또, 월 소득 500만 원 이상 고소득층의 독서율은 200만 원 이하 저소득층 독서율의 5배가 넘어, 부유할수록 책을 많이 읽고, 가난할수록 책을 멀리한 것으로 조사가 되었다. 전반적인 독서율 저하와 소득에 따른 독서 격차 해소를 위해 공공도서관 확충, 동네 서점 지원 등을 통한 독서 생태계 활성화가 시급한 시점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지역 도서관을 없애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자치단체장이 있다. 대구시는 2023년 작은 도서관 264곳의 예산을 전액 삭감했고, 서울 마포구청은 작은 도서관을 독서실과 카페로 만들겠다고 했으며, 한때 공립 작은 도서관이 다른 지역보다 많아 ‘책의 도시’로 불렸던 고양시는 관내 공립 작은 도서관 5곳을 2025년에 폐관할 방침을 세웠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왜 이러는 걸까? 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정책의 우선순위, 예산 사용 계획이 달라진 것이다. 도서관이 어떤 곳인지는 굳이 말을 보태지 않아도 그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대학을 세운다면 그 첫 건물은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도서관 드나들며 책을 가까이 하는 걸 싫어하며 불안해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은 어쩌면 자기 지역 시민들의 문해력이 떨어지기를, 그래서 자신이 맘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해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책이 청소년 유해 도서로 지정되어 학교 도서관에서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경기도교육청은 각 학교에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일부 유해한 성교육 도서에 대해 선정성, 동성애 조장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는 다수 민원이 있으니 조처해달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이는 보수 기독교 단체가 일부 성교육 도서의 선정성을 문제삼아 폐기를 요구한 민원에 따른 조치였다. 이러한 공문을 빌미로 한 고등학교는 ‘채식주의자’를 유해 도서라며 폐기했고, 중학교 두 곳에선 열람을 제한했다.8
문해력의 시작이요 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도서관과 책을 이런 식으로 취급하고도 ‘문해력 부족’ 타령을 노래하는 우리 모습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문해력을 높이기, 어디까지 해 봤니
문해력, 교사라면 평생 고민해 온 문제이다. 언론이 띄워주기까지 하니 그 아니 반가우랴! 물 들어왔을 때, 부지런히 노 저어 보자.
먼저, 다양한 교육 상황에서 다양성을 높이는 방식이어야 한다. 생물학적으로도 이종교배는 유전적 다양성을 높여 생리적 능력이나 질병 저항력, 환경 적응력의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다. 사회적으로도 소셜 믹싱(social mixing)이라 하여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시도한다. 다양한 소득 계층이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주택과 민간 분양 주택을 같은 지역이나 같은 단지 내에 혼합함으로써 특정 계층이 한 지역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고, 사회적 연결망을 다채롭게 형성하여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것이다. 교육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한데 모여 학습할 수 있게 하거나, 교과 간의 연계와 융합 수업, 지역사회와의 소통 등으로 배움의 형식과 내용에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이웃과 사회, 관계에 대한 성찰을 얻을 수 있다.
또, 교육과정 설계를 직선형(linear)에서 나선형(spiral)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대학입시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으로 시험 잘 보는 문해력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고3 상위권 학생 수준이면, 해당 분야 전문가나 모국어 사용자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직선형 배움으로 속도전을 벌여 얻은 결과 지상주의의 산물이며, 여기엔 적잖이 착시가 끼여있다. 깊이 있게 배우거나 체화하지 못한 채 앞만 보고 직진한 결과, 비판적 사고나 도전, 창의성에서는 뒤처지고 마는 것이다. 속도보다는 방향에 우선순위를 두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끊임없이 ‘왜’라고 묻고 따지며 스스로 동의할 수 있을 때 수용하는 나선형 배움을 기본에 두어야 한다.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극단주의가 힘을 얻은 데는 우리 모두가 은연중에 직선형 배움을 유지하는 데 일조해 온 탓이다. 문제는 선동가, 유튜버만이 아니다. 그 저변엔 극단적인 능력주의 경쟁교육이 있다. 공부만 잘하면, 아니 시험만 잘 보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교실, 앞만 보고 달리는 선착순 학교에서는 문해력이 숨을 쉴 수 없다. 다 가질 수 없다면 속도를 줄여야 한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있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민주 사회는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사회이다. 그 무엇 하나 같지 않은 이들이 모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서로 충돌하면서 심각한 갈등이 빚어지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 갈등을 평화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최선책을 차근차근 찾아나간다.
일찍이 원효는 자신의 시대가 처한 혼란과 갈등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면서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쟁(諍)을 통한 화(和)’라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의견이 다를 경우, 우선 각자 그 의견들을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이 의견을 말할 때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경청이고 쟁(諍)이다. 열심히 듣고는 상대방의 주장에 담긴 진리의 일단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보다 나은 대안의 경지로 일리들을 모아 도달하는데, 그것이 바로 화(和)의 단계다.9 최재천 교수가 제안한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 숙론(熟論)과도 맥이 닿는다.
다름과 차이 앞에서 얼굴을 붉히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품격을 갖춘 토론의 장이 곳곳에 마련될 필요가 있다.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지혜로 화이부동(和而不同)하면 될 일이다.
개인적인 노력도 당연히 필요하다. 자기 스스로는 자기 정체성의 복잡도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학술, 취미, 일상 등에서 다양한 부족에 자신을 밀어넣음으로써 본인의 자아상을 나날이 재구성하자. 접촉의 폭이 넓고 다양한 사람일수록 회복탄력성, 관용도, 포용력이 높다. 마치 다양한 미생물과 접촉함으로써 면역력을 높이듯, 우리가 속한 집단 역시 다양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오래도록 생존하고 번창할 수 있다.10
그리고 틈틈이 작은 글이라도 쓰자. 글쓰기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글을 통해 우리는 바깥 세계를 탐색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표현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쓰기 및 읽기 능력을 개발하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학생들이 문학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다양한 유형의 글쓰기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 어떤 정치인은 1시간 회의에서 혼자 50분을 말했다고 자랑스레 떠들어댄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다. 자신과 모두를 위해 듣기에 힘쓸 일이다. 그렇게 할 말이 많으면, 써서 남기면 된다.
문해력과 광장의 공생과 선순환
문해력 논쟁의 핵심은 무엇이어야 할까? 적어도 청소년 문해력이 높고 낮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시대적 상황이 요구하는 수준의 문해력을 갖추었는지, 더 나은 문해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아쉽게도 생명체의 노화라는 섭리에 갇힌 우리는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속도 조절은 가능한 영역이다.
부족의 문화 굴레에서 나와, 책을 함께 읽으면 말하는 법과 묻고 듣는 법을 서로 배워야 한다. 책 속 지식은 물론이요, 이야기할 주제를 찾아 나누는 법, 인간과 세상을 보는 법, 차이를 알고 존중하는 법을 광장에서 나누자.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된다.
진짜 배움은, 배움의 궁극적 지향은 자기 생각으로 살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딱 한 번 사는 인생,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살다 간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로봇일 뿐이다. 조종당하지 말자! 그러려면 우리 교육은 끊임없이 ‘왜’라고 묻고 답하는 시공간이어야 한다. ‘왜’라는 질문은 사회적 접촉을 길러낼 뿐 아니라 집단 착각의 연쇄가 벌어질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고 근절해 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군중의 함성이나 권위자의 목소리가 이끄는 유혹을 견뎌낼 힘을 기를 수 있다. 이는 나와 너의 개인적 판단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전체의 생존과 건강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하다.11
문제가 있는 기존의 관행, 제도의 틀을 깨는 ‘긍정적인 일탈’을 감행하자. ‘왜 안돼?’라고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문해력은 점점 깊어질 것이며, 심화된 문해력은 광장을 서로 섞일 수 있게 만들고, 다시 광장은 우리의 문해력, 시민 역량을 키워줄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우리 아이 문해력 키워볼까’ (한겨레신문 2024.10.14.)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162476.html - <디지털 세상에서 읽고 쓰는 힘>, 옥현진 외(visang, 2024) 11쪽.
- <집단 착각>, 토드 로즈(21세기북스, 2024) 254쪽.
- 김지윤·제임스 김의 데이터로 보는 세상 – ⑪ 빅데이터와 미래사회(문화일보 2018.1.17.)
https://munhwa.com/news/view.html?no=2018011701032809000001 - ‘한국 성인, 언어력·수리력·문제해결력 모두 OECD 평균 미달’ (뉴스핌. 2024.12.10.)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41210000589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80593.html (한겨레신문 2025.2.4.)
-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42738 (KBS뉴스 2024.4.18.)
-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163737.html (한겨레신문 2024.10.22.)
- 서부지법 폭력사태, 화쟁의 시민교육이 절실하다 (한겨레신문 2025.1.20.)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178839.html - <집단 착각>, 토드 로즈(21세기북스, 2024) 118-119쪽.
- <집단 착각>, 토드 로즈(21세기북스, 2024) 80-81쪽.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35년 동안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쳤다. 『선생님과 함께 가는 고전 소설 여행』(공저), 『선생님과 함께 가는 현대 소설 여행』(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세계문학) 서평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양서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종옥교장선생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칼럼에 감사드립니다.
가장 인상적인 문구: 화이부동, 긍정적 일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