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⑩] 신경과학의 통찰 : 학생들이 좋아하는 수업
| 학습과학은 뇌가 학습하는 원리에 관한 기존의 인지·신경과학 연구를 교수학습 실천과 연결합니다.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 교육계에서 학습과학을 실제 수업에 적용한 사례 및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그 첫 시리즈로 쉽고 재밌는 ‘켈리 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
커뮤니카드가 전한 뜻밖의 메시지
대학에서 신입생 대상으로 <비즈니스 영어 입문> 과정을 강의할 때의 일이다. 수강생이 각각 65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가르치기가 쉽지 않은 수업이었다. 그날은 강의가 연이어 있었는데 수업을 막 마친 후 놀라운 일이 있었다.
‘어? 이럴 수가! 정말 이상한데!’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작성한 커뮤니카드(communicards, 학생들이 수업 후 간단한 감상이나 의견을 작성하는 피드백 카드)에는 평소보다 긍정적인 피드백이 훨씬 많았다. 평소에는 “수업이 좋았다”는 학생 몇 명, “과제가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학생 몇 명, 그리고 “옛 친구를 만났거나 생일 파티를 했다”는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거의 모든 학생이 “오늘 수업 정말 좋았어요!”라고 적었다. 긍정적인 피드백 일색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일까?
무엇이 달랐을까?
‘어디 보자. 내가 뭘 했었지?’ 그날도 매주 하던 대로 비즈니스 영어 읽기와 퀴즈를 진행했고 특별한 건 없었다. 사실, 읽기 자료는 지난주에 다뤘던 내용, <United Breaks Guitars(유나이티드 항공이 내 기타를 깨부수네요)1>가 훨씬 흥미로웠다. 부당한 대우를 받은 한 승객이 위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제작했으며, 이 영상이 유나이티드 항공사에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초래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수업이야말로 칭찬받아 마땅했지만, 커뮤니카드에 적힌 피드백은 “오늘 퀴즈 어려웠어요.” 같은 평범한 말뿐이었다.
읽기 자료나 퀴즈 때문도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또 뭐가 있을까? 말하기 활동도 떠올랐지만 그 역시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특별한 것도 없었고, 무엇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저 늘 해오던 대로 학생들에게 간단한 대화 표현을 가르치고, 다이애딕 서클(dyadic circle2)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연습하게 했을 것이다. 즉, 같은 상호작용을 3~4명의 서로 다른 파트너와 반복적으로 연습하게 한 것이다. 보통은 수업 당 한 번 정도 진행하는데 그날은 세 번이나 했고, 그래서 학생들은 약 10명의 다른 짝과 연습했다. 생각해 보니, 그날은 시간 부족으로 학생들이 좋아했던 마무리 영상 시청도 생략했다. 평소라면 태국 생명보험사에서 만든 감동적인 4분짜리 광고 영상 <Thai Garbage Boy(태국 쓰레기 소년)>을 보여주는데, 그날은 시간 관계상 바로 커뮤니카드를 작성하게 했다.

커뮤니카드는 학생들이 교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다. 수업이 끝날 때면 나는 커뮤니카드를 나눠주고 자신에 대해 영어로 몇 줄씩 쓰게 한다.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내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종종 이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수업에 대해서는 쓰지 말고 가급적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라고 해도 수업에 대해 쓰는 학생이 몇 명은 늘 있는데 가끔은 그 내용에 놀라기도 한다.
그날은 특히 놀라웠다. 강의를 들은 130명 학생 대부분이 수업이 너무 좋았다고 쓴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답은 명확했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답을 알 것 같았다. (앞서 언급한 힌트에서 당신도 짐작했을 것이다.) 바로 다이애딕 서클 덕분이었다. 평소에는 한 번만 하던 것을 세 번이나 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학생 각자가 10명이나 되는 많은 짝과 상호작용하게 된 것이다. 학생들이 좋아했던 건 바로 이것이었다.
상호 작용을 하는 짝이 4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난 것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발달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대학교 1학년 시기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하고 자율성을 갖게 되는 인생의 중요한 단계로서, 도덕성 발달 과정상 ‘친구’를 사귀는 것이 필수적인 시기이다. (장 피아제(Jean Piaget)와 로렌스 콜버그(Lawrence Kohlberg)의 도덕성 발달(moral development)을 검색해 보라.) 나는 이 도덕성 발달 이론과 친구의 필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날 받은 학생들의 긍정적 피드백이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는 신경과학의 또 다른 이론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뇌(social brain)’와 그것이 학습에서 하는 역할이다. (이에 대해서는 대니얼 리버먼(Daniel Lieberman)과 루이스 코졸리노(Louis Cozolino)의 사회적 뇌(social brain)를 검색해 보라.)
사회적 뇌, 인간의 슈퍼파워
기본적으로 사회적 뇌는 ‘정신화 네트워크(mentalizing network)’를 말한다. 이는 우리의 뇌 일부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역할을 한다. 이 네트워크는 사회적 상호작용 중에 타인의 의도나 감정을 이해하려고 할 때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에 위치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우리가 특정 작업에 집중하지 않을 때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뇌의 일부로, 공상에 잠기거나,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거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등 고차원적 정신 활동을 담당한다. 이 네트워크는 뇌의 기본 모드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리버먼(Lieberman)도 이에 동의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뇌야말로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 짓고 진정으로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요소라는 것이다. 어떤 영장류도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에 있어서 세 살짜리 아이를 능가하지 못한다. 이러한 인간의 능력은 대륙과 세대를 초월해 수백만 명이 협력할 수 있게 하고, 복잡한 사회적 구조를 이룰 수 있게 해준다. 리버먼은 이것을 인간의 ‘슈퍼파워(super power)’라고 부른다.
우리는 주변에 그 증거가 넘쳐나는데도 우리 자신이 얼마나 사회적 존재인지, 우리의 사회적 본성을 종종 잊곤 한다. 교실에서 가장 심한 벌은 타임아웃(time out, 아이가 문제 행동을 했을 때 일시적으로 혼자 있게 함으로써 스스로 반성하게 하는 방법)이고, 감옥에서는 독방 감금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다른 사람들이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풀어 가는지 읽거나 보는 데 쓴다. 또 스포츠 같은 단체 활동에 참여하거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 소통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데 사용한다. 이와 관련하여 리버먼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페이스북이 인터넷에서, 아니 다른 어디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플랫폼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이 공간이 우리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욕구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라는 게 단지 우연이기만 할까?”(Lieberman, 2012, p. 25)
사회적 뇌와 학습의 관계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다. 한 번은 학생들에게 학교에 오는 주된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모든 학생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실제로, 친구가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일 정도로 매우 해롭다. 이는 단지 앞서 언급한 도덕성 발달을 위한 필요성 때문만이 아니다. 학생들 삶의 전반적인 웰빙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일본에서 학생들의 우울증에 대해 연구했을 때, 대학생의 20% 이상이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으며, 그중 대부분이 여학생이라는 사실에 놀랐다(Tomoda et al., 2000). 이는 한국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한편, 학생들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는 고등학교 마지막 6개월과 대학교 첫 6개월이라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의 연결망이 부족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우울증을 예방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친구의 존재이다!
바로 그거였다. 그래서 신입생들이(그렇다. 1학년 학생들이다!) 그 수업에 대해 그렇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유가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4명이 아닌 10명과 상호작용을 하며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게 그렇게도 좋았던 것이다. 모든 연결은 안전감과 편안함의 기반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가 이러한 연결에 대한 학생들의 절박한 욕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수업에서의 상호작용을 사소한 일이나 방해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를 자살 예방이나 학생들의 웰빙을 보장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명백히 틀렸다. 리버먼은 우리의 사회적 뇌가 ‘슈퍼파워’라고 했다. 그러나 또 어떤 말을 했는지 아는가? 학교가 ‘크립토나이트(kryptonite)’3라는 것이다(2013). 이 말은 학교가 인간의 사회적 능력(슈퍼파워)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학생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억압하기보다는 적극 수용하고 지지해야 한다. 존 카밧진(Jon Kabat-Zinn)의 말처럼 우리는 그 흐름을 타야 한다4.
다이애딕 서클의 숨겨진 힘
이제 다이애딕 서클(dyadic circles), 정확히 말하자면 다이애딕 라인(dyadic lines)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방법을 사용하는데 여러분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를 권한다. 다이애딕 라인은 학생들이 짝을 이루어 상호작용을 한 뒤, 한쪽 줄의 학생들이 오른쪽으로 한 명씩 이동하면서 같은 활동을 계속 반복하는 방식이다.

언어 학습 측면에서 볼 때도, 다이애딕 서클은 영어교육(English Language Teaching)에서 가장 강력한 교수 기법 중 하나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수업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언어 학습의 대부분을 개인적인 활동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으며, 짝 활동이나 모둠 활동에서도 상호작용을 단 한 번만 시킨다. 예컨대, 짝에게 어디 사는지 묻는 대화를 단 한 번만 시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번의 상호작용은 피상적인 학습에 그칠 수밖에 없다. 다이애딕 라인을 사용해 반복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 처음에는 단순히 단어를 말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던 학생들이 점차 의미에 집중하며 말하기를 하게 되는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점점 능숙해지면서 더 높은 수준의 숙련도에 도달한다는 건 바로 이런 과정이 아닐까? 아! 물론, 다이애딕 서클은 크립토나이트에 대한 최고의 해독제이기도 하다.
그날 내가 1학년 수강생들에게서 얻은 중요한 교훈을 요약하면 이렇다. 학생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회적 연결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수업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학습을 매개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여러 파트너와 상호작용할 기회를 가질 때 학생들이 수업을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 이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내 수업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학생들의 연결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내 모든 수업 설계의 기본 요소가 된 것이다.
| 이 칼럼은 코리아테솔(Korea TESOL)의 ELT 잡지 <The English Connection>(Summer 2021 Volume 25, Issue 2)에 영문으로 실린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박사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원본은 https://koreatesol.org/content/english-connection-tec에서, 더 긴 버전은 <MindBrainEd Think Tanks>(mindbrained.org)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Reference>
• Lieberman, M. D. (2013). Social: Why our brains are wired to connect. OUP. Oxford.
• Tomoda, A., Mori, K., Kimura, M., Takahashi, T., & Kitamura, T. (2000). One‐year prevalence and incidence of depression among first‐year university students in Japan: A preliminary study. Psychiatry and clinical neurosciences, 54(5), 583-588.
각주
- 이 영상은 데이브 캐롤(Dave Carroll)이라는 뮤지션이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부주의로 인해 자신의 기타가 파손된 사건을 토대로 제작되었다. 항공사의 부적절한 대응에 분노한 그는 이 사건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내 큰 호응을 얻었고, 이것은 고객 서비스의 중요성과 브랜드 관리 실패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 언어 학습에서 주로 사용되는 상호작용 기법.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대화를 나누고, 짝을 바꿔가며 대화를 반복 연습하는 활동이다.
- 크립토나이트(kryptonite)는 슈퍼맨의 초능력을 무력화시키는 물질로, 강점을 약화시키는 요소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는 학교가 인간의 슈퍼파워(즉, 사회적 능력)를 약화시킨다는 의미로 쓰였다.
- “파도를 멈출 수는 없지만 서핑을 배울 수는 있다(You can’t stop the waves, but you can learn to surf).” 마음챙김(mindfulness)으로 유명한 존 카밧진의 유명한 말. 삶의 도전이나 어려움을 피하기보다는 그 흐름을 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커티스 켈리(Curtis Kelly)는 교육학 박사이며, 일본 간사이대학교(Kansai University) 영어과 교수이다. 인생 사명은 "교실에서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인기 있는 강연자이자 작가로서 500회 이상의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며, 35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다. 대표적 저서로는 『Significant Scribbles(중요한 낙서)』(Longman), 『Active Skills for Communication(능동적 의사소통 기술)』(Cengage), 『Writing from Within(내면으로부터의 글쓰기)』(Cambridge) 등이 있다. 뇌과학과 언어교육을 연결하는 무료 잡지 <MindBrainEd Think Tanks>의 구독을 독자들에게 적극 권유한다. ctskelly@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