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IB를 넘어 숙의 교육과정으로 – IB 확산 정책에 대한 비판적 검토
| “만약 IB가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이를 굳이 비싼 비용을 해외에 지불하고 수입할 필요가 있는가? 만약 IB가 좋은 프로그램이라면, 그 장점을 수용하여 국가 교육과정 자체를 개선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IB 논쟁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시사점과 향후 과제는 무엇인가?” [본문 중에서] |
‘IB를 도입한다는 것’의 의미
최근 IB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확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IB 도입을 공교육 혁신의 유력한 방안으로 여기고, 몇몇 시도교육청에서는 학교 현장에 IB 도입을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IB의 타당성과 효과성에 대한 공유가 교육계에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IB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교육혁신을 위한 의미 있는 경험으로 자리 잡을지 예견하기 어렵다.
IB는 ‘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약자로 ‘국제 표준 고교 졸업 자격 기준 교육과정’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IB가 등장한 이유는 국제기구 주재원 등의 자녀들이 어느 국가 학교를 다니든 이들 학교 간에 통용되는 졸업 자격 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 입학을 앞둔 경우 고등학교 졸업 자격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국제기구 주재원이 어느 국가에 발령받더라도 그의 자녀들이 대입에 불이익을 겪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스위스에 있는 비영리 민간 단체인 IBO가 국제 고등학교 교육과정인 DP(Diploma Programme)를 개발하였고, 이후 중학교 과정인 MYP, 초등학교 과정인 PYP까지 개발하게 되었다. 이어 IBO는 IB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학교에 대한 인증과 질 관리 시스템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IB는 기본적으로 ‘외국인이 다니는 국제학교 사이에 통용되는 교육과정’이다. 우리나라의 송도채드윅국제학교 같은 학교의 교육과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IB에 대한 논쟁은 이러한 국제학교 교육과정을 국내 공교육 학교에 도입한다고 했을 때 제기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이다.
우리나라 공교육 학교는 법적으로 국가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 현행 2015/2022 개정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이와 동시에 IB를 운영한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IB를 운영한다는 것은 IBDP 과목을 선택과목(국가 교육과정 고시 외 과목)으로 개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우리나라 중학교와 초등학교에서 IB를 운영한다는 것은 새로운 과목을 개설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교육과정을 IB 프레임워크에 따라 재구성하여 운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교사들은 IBO에서 마련한 각종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학교는 IBO 본부에 운영비(연간 1천만 원 이상)를 납부해야 한다. 이들 학교는 4~5년 동안 관심학교, 후보학교를 거쳐 최종적으로 인증학교로 승인된다.
이렇게 볼 때,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만약 IB가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이를 굳이 비싼 비용을 해외에 지불하고 수입할 필요가 있는가? 만약 IB가 좋은 프로그램이라면, 그 장점을 수용하여 국가 교육과정 자체를 개선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일부 교육청에서는 혁신학교 정책을 중단하고 IB 확대를 추진하는 데에 정치적 진영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일부 학교와 교사들이 IB에 관심을 갖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IB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인가? 기존 혁신학교에서의 교육과정 재구성 운동과 IB 교육과정 도입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IB 논쟁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시사점과 향후 과제는 무엇인가?
IB 도입·확산 정책이 정당화되려면?
우리나라에서 IB가 주목받게 된 이유는 IB를 통해 한국 교육의 고질적 병폐, 즉 입시 위주의 교육과 획일화된 평가를 극복할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IB가 주목받기 이전부터 교육과정-수업-평가 혁신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져 왔다. 2010년 이후 혁신교육의 흐름이 확산되면서 교육과정 재구성, 배움중심수업, 성장중심평가 등의 노력이 한국교육의 고질적인 병폐를 일부 바꿔온 것도 분명하다. 문제는 IBO나 교육청이라는 외부적 권위에 의해 IB가 학교 현장에 무맥락적으로 도입되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IB를 참고하여 교육과정-수업-평가 혁신의 흐름을 새롭게 진화시켜야 하는 것인지, 만약 IB를 참고로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참고해야 하는지 등이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IB를 도입·확대하고자 하는 정책은 IB 본부의 엄격한 관리 및 심사를 받는 관심학교, 후보학교, 인증학교를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학교는 IB 본부에 비용을 지불하여 연수를 받고, IB 본부가 제공하는 교육과정 프레임워크에 따라 국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운영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교육부나 교육청, 연수원이 해야 할 일을 외국 민간 기관에 위탁하는 셈이다. 이 정책이 정당화되려면 IB 교육과정 프레임워크의 우수성 자체를 검증해야 하고, 외국 민간 기관에 교사 연수 및 교육과정 컨설팅을 위탁하는 정책의 타당성과 효과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IB 교육과정의 특징과 장단점
이를 검토하기 위해 우선 IB 교육과정 프레임워크의 특징과 장단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IB PYP(IBO, 2007)와 MYP(IBO, 2014)를 대상으로 <IB 교육과정 프레임워크에 대한 비판적 고찰>(교육과정연구 제42권 제2호)이라는 논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첫째, IB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는 ‘교육과정 질 관리’를 위한 체계적인 틀이다. IB 운영의 목적은 세계 각국 인증학교의 교육과정 질을 관리하여 학생의 졸업 자격을 균등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체계적인 틀이 필수적이다. 국내 공교육이 IB를 도입하려는 목적은 졸업 자격 인증이 아니다. 하지만 IB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는 교사들의 교육과정 재구성 작업에 체계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IB는 교육과정-수업-평가 전반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틀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백워드 교육과정 설계를 차용한 것이다. 백워드 교육과정 설계는 ‘학생이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도록, 교육목표부터 평가, 수업 순으로 거꾸로 설계하는’ 방식이다(Wiggins & McTighe, 2000). IB에서 말하는 ‘탐구 진술’, ‘탐구 질문’이 백워드 교육과정의 ‘빅 아이디어’, ‘핵심 질문’에 해당한다. 여기에 접근하는 통로가 ‘핵심 개념’과 ‘세계적 맥락(초학문적 주제)’이다.
셋째, IB는 연역적 방식의 프레임워크이다. 연역적 방식은 추상적 논리적 원리로부터 구체적인 상황을 만들어 간다. IB는 초학문적 주제, 세계적 맥락, 핵심 개념 등 선정된 원리를 바탕으로 교사가 단원을 설계하는 연역적 방식의 프레임워크이다. 이에 중심이 되는 것은 ‘개념(concept)’이다. IB 교육과정에는 학교 급별로 적용될 수 있는 개념, 그리고 이를 활용해야 할 맥락(global context)이 목록화되어 제시되어 있다. IB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Erikson과 Lanning이 제시한 ‘개념기반 교육과정’을 차용하고 있다(Erickson & Lanning, 2014).
이는 듀이와 경험중심 교육과정(Dewey, 1938)이나 아이즈너의 예술적 교육과정(Eisner1979)과는 다른 방식이다. 이들이 보기에 개념을 선험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의 교육과정은 학생의 다양한 삶의 경험이나 교육의 예술적 과정을 생생하게 살리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점은 IB가 여러 가지 교육과정 프레임워크 중 하나의 접근법일 뿐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를 절대시하는 경향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넷째, IB 프레임워크는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과 학생의 개념 탐구 과정을 단계적으로 안내할 수 있다. ‘핵심 개념’과 ‘탐구 질문’을 중시하는 IB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는 단편적 지식 습득 혹은 무의미한 활동을 넘어 전이 가능성이 높은 핵심 아이디어를 탐구하는 데에 체계적인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은 곧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 한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IB는 도구적 합리성을 주로 강조한 탈가치적 프레임워크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이를 세칭 ‘답정너’에 비유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정해져 있고 교사는 빈칸만 채우는 방식의 프레임워크이다. IB와 유사한 틀을 갖고 있는 백워드 교육과정에서도 중요한 교육목표에 대해서는 교사가 주도적으로 숙의하기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IB 교육과정 프레임워크에서는 ‘학습자상’, ‘교육과정 주제’, ‘핵심 개념’ 등 중요한 교육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고, 교사는 주로 단원 설계나 평가계획 등에 집중하게 되어 있다.
둘째, IB 프레임워크에는 개방적인 질문이 생략되어 있다. IB 프레임워크에는 학생에게 ‘사실적 질문, 개념적 질문, 논쟁적 질문’을 제기하게 되어 있으나, 정작 이 프레임워크를 활용해야 할 교사에게는 교육과정 숙의에 필요한 개방적인 질문이 제기되어 있지 않다. 교육과정 개발 이론의 원조 격인 타일러에 의하면 교육과정 개발에 필요한 논거는 교사가 숙의해야 할 질문으로 구성되어야 한다(Tyler, 1949). 교육과정 개발에 필요한 숙의란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학교가 추구해야 할 교육목표는 무엇인지,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떤 학습경험을 선정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조직해야 하는지에 대해 교사들이 하나하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IB 교육과정 프레임워크 자체만으로는 이러한 숙의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그래서 IB 학교로 인증받으려면 IBO에서 개발한 장기간의 연수를 거쳐야 한다. 이 연수 과정에서 교육과정 개발에 필요한 숙의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으나, 이는 연수의 효과이지 교육과정 프레임워크 자체의 효과라고 보기 어렵다.
개방적 질문이 생략된 IB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는 다양한 가능성을 배제하는 폐쇄적 모델이 될 수 있다. IB 프레임워크는 ‘개방적인 질문’ 대신 ‘빈칸’으로 표상되는 ‘체계적 틀’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체계성은 IB의 장점이자 폐쇄성이라는 단점이 될 수 있다.
셋째, IB 교육과정의 이론적 배경인 ‘개념기반 교육과정’ 자체의 한계도 지적할 수 있다. ‘개념’은 개별적인 사실이나 학습 내용 등을 서로 연결하는 교육과정의 핵심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을 IB처럼 초등학교 과정 7가지, 중학교 과정 18가지로 확정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이 개념만으로는 포섭되기 어려운 개별 교과의 내용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교사가 개념을 스스로 생성해 내는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적극적인 사고와 성찰,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교사가 IB 프레임워크에 제시된 개념 중 하나를 골라 교육과정 운영에 적용하는 것은, 마치 학생에게 논술형 문항이 제시되어야 할 평가 상황에 선다형 문항이 제시된 것과 유사할 수 있다.
또한, 빈이 지적했듯이, 교육과정 조직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개념’뿐만 아니라 ‘화제(topic)’, ‘사회적 쟁점(issue)’, ‘학생의 흥미(interest)’ 등 다양하다(Beane, 1997). 핀란드 교육과정은 이를 포괄하여 ‘현상(phenomenon) 기반 교육과정’을 지향한다. 이를 고려해 볼 때, 특정 개념을 교과 통합의 원리로 명시하는 것은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할 우려가 있다.
또한 IB가 강조하는 개념 기반 교육과정은 자칫 인지적 영역의 교육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좋은 교육과정은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지향한다. 전인적인 성장은 ‘인지적, 정의적, 심동적 영역’, ‘지성, 감성, 시민성’ 등의 조화로운 균형을 의미한다. 발도로프 교육과정은 이러한 맥락에서 영성적 차원까지를 추구한다. 하지만 IB 프레임워크로 이러한 차원을 담아내기 어렵다.
넷째, IB는 ‘탈맥락적 교육과정’으로 흐를 수 있다. 이는 IB가 ‘국제 표준 프레임워크’라는 점에서 피하기 어려운 한계이다. 그렇기에 각국의 고유한 현장성을 풍부히 담기 어려울 수 있다. IB가 제시한 핵심 개념이나 세계적 맥락이 구체적인 현장과 유리된 의미, 탈맥락적인 의미로 수용될 수도 있다. 듀이가 강조했듯이 모든 학문적 개념은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학생들이 학문적 개념과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연결하도록 하는 ‘교과의 심리화’가 필요하다(Dewey, 1916). 따라서 좋은 교육과정을 만들려면 ‘연역과 귀납’, ‘추상과 구체’를 모두 고려해야 하며, ‘구체에서 추상으로, 추상에서 다시 구체로 나아가는 변증법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IB 프레임워크가 이러한 문제의식까지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섯째, IB 프레임워크는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을 활성화하는 매개가 될 수도 있지만, 교육과정 재구성을 ‘빈칸 채우기 활동’ 차원에 머물게 하여 ‘교사의 탈전문화’ 현상을 낳을 수도 있다. 태너와 태너는 교사의 교육과정 실행 수준을 ‘모방적 수준’, ‘매개적 수준’, ‘창조적 수준’으로 구분하였다(Tanner & Tanner, 1980). ‘모방적 수준’은 기존의 국가 교육과정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수준을, ‘매개적 수준’은 이를 학교 상황에 맞게 변형하여 적용하는 수준을, ‘창조적 수준’은 교육과정을 새롭게 개발하는 수준을 말한다.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실행되었던 교육과정 재구성은 이 중 매개적 수준에 해당한다. 향후에는 교육과정 재구성을 넘어 교육과정을 새롭게 창조하는 수준으로까지 교사의 교육과정 전문성이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특정 프레임워크의 빈칸을 채우는 방식은 오히려 교육과정 재구성을 모방적 수준으로 회귀시켜 교사의 탈전문화를 낳을 수 있다. IB에서 학생상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만, 교사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그 결과 IB는 ‘교사 배제 교육과정(teacher-proof curriculum)’으로 비판받을 소지마저 있다. 교사 배제 교육과정은 교사의 전문성이나 역량을 특별히 고려하지 않아도 균등한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관점에 따른 것이다. 이는 극단적으로 말해, 주어진 틀만 잘 따르면 투입 요소(교사의 전문성)와 상관없이 동일한 산출물(학력 수준)이 나올 수 있다는 관점이다. IB 프레임워크가 이러한 한계를 지닌 근본 원인은 IB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졸업 자격을 보증하는 교육과정 프레임워크이자 교육과정 질 관리 시스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IB의 체계적인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한 교사는 IB 프레임워크를 잘 다루는 능숙한 숙련자 또는 퍼실리테이터가 될 수 있지만, 교육과정의 창의적 개발자, 학교 공동체의 숙의를 이끄는 교육과정 리더가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IB를 넘어 ‘교사 숙의 교육과정’으로
이상에서 언급했듯이 IB는 분명 수준 높은 교육과정 프레임워크이다. 하지만 IB는 다양한 교육과정 패러다임 중 하나를 차용하여 이를 체계화한 것에 불과하다. 외국인 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국제 공통 기준’이 필요할 수 있겠으나, 이를 한국 공교육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학교 교육과정의 다양성과 교사의 전문성을 획일화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교육 당국이 해야 할 일은 IB이든 다른 것이든 우수한 교육과정 모델을 참고하여 더 좋은 국가 교육과정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국가 교육과정도 훌륭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가 교육과정과 IB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나라의 국가 교육과정이 교수요목(syllabus, 가르칠 내용 목록)에 가깝다면, IB는 프레임워크(framework, 교육과정 설계 틀)에 가깝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가 교육과정에는 교육목표와 교육내용은 풍부하게 담겨 있으나 이를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구조화하여 가르치고 평가해야 할지는 온전히 교사 몫에 달려 있다.
그래서 혁신교육 확산 이후 교사들이 ‘교육과정 재구성’ 운동에 나섰다. 국가 교육과정을 참고하되 그것을 자기 교실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바꾸어 적용했다. 그 성과는 매우 놀라웠다. 드디어 ‘교과서 진도 나가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교사가 교육과정 전문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육과정 재구성 운동은 참고할 만한 준거가 매우 부족했기에 때로는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몇몇 혁신학교에서는 체계적인 학교 교육과정을 개발하였으나, 혁신학교마다 또다시 비슷비슷한 결과가 만들어지는 ‘혁신의 동형화’ 현상이 생기기도 했고, 이를 흉내 내기만 하는 ‘무늬만 혁신학교’도 생겨났다. 그리고 일정한 프레임워크가 없다 보니 교육과정 재구성 운동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혁신교육의 흐름을 이어가되,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프레임워크는 IB의 ‘빈칸 채워넣기 방식의 프레임워크’가 아니라 ‘좋은 질문이 있는 프레임워크’여야 하고, 교사의 교육과정 전문성 신장의 방법은 ‘비싼 비용의 연수 참여하기’가 아니라 ‘교사의 숙의를 활성화하기’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향후 우리가 개발해야 할 대안적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첫째, 교육과정 숙의를 유도하는 프레임워크를 개발해야 한다. 숙의는 민주주의의 중심 원리이다. 숙의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나 다수결 원칙의 한계를 넘어서 실질적 민주주의, 성숙한 단계의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교육과정 개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나 전문가의 의견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 운영의 주체인 교사의 의견이 반영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숙의가 이루어질 때 좋은 교육과정이 개발될 수 있다(Walker, 1971). 교사가 함께 모여 학교의 상황과 학생의 상태를 분석하고 이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심사숙고하며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집단지성을 담아내는 그릇이 프레임워크이다.
둘째, 교육과정 숙의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프레임워크 안에 좋은 질문을 담아야 한다. 좋은 교육과정에는 “우리 학생들을 어떤 인간으로 성장시켜야 할 것인가?”,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만들어 갈 미래사회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를 위해서 우리 학생들이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야 한다. 타일러가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과학적 교육과정 이론을 시작했다면(Tyler, 1949), 애플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교육과정사회학을 개척했다(Apple, 1979). 지금 이곳의 교육과정에 필요한 새로운 질문은 지금 이곳의 교육과정의 주체가 스스로 제기해야 한다.
셋째, 교육 당국은 IB 학교를 양적으로 확대하는 데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국가 교육과정을 개선하고, 다양한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를 개발하고, 이 과정에 교사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IB의 장점은 IBO의 주관에 따라 전문적 연구를 통해 프레임워크를 개발하였고, 이에 따라 교원 연수, 학교 인증, 교육과정 질 관리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에 있다. IB를 통해 좋은 효과가 나타났다면 이는 IB 프로그램 자체의 효과성 때문만이 아니라 교원 연수 등을 통한 전문성 계발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원 연수보다 더욱 전문성 신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교육과정 자체를 개발하는 경험이다.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스스로 좋은 질문을 개발하고 이에 대한 답을 숙의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교육과정의 본질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교육 당국은 특정 교육과정 프레임워크 도입을 강조하기보다 교사들이 스스로 한국적 현실에 적합한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필자가 속한 <좋은교육과정연구소>에서는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개발한 ‘좋은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를 2025년 2월 초에 공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교사의 교육과정 숙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참고 문헌
• 이형빈(2024). IB 교육과정 프레임워크에 대한 비판적 고찰, 교육과정연구, 14(2), 55-79.
• Apple, M.(1979). Ideology and curriculum.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 Beane. J. A.(1997). Curriculum integration: Designing the core of democratic education. New York: Teachers College Press.
• Dewey, J.(1916). Democracy and education: An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education. New York: Macmillan.
• Dewey, J.(1938). Experience and education. New York: Macmillan.
• Eisner, E.(1979). The educational imagination: On the design and evaluation of school programs. New York: Macmillan.
• Erickson, H. & Lanning, L.(2014). Transitioning to concept-based curriculum and instruction: How to bring content and process together. CA: Corwin Press.
• IBO(2007). Making the PYP Happen: A Curriculum Framework for International Primary Education. 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
• IBO(2014). MYP: From Principles into Practice. 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
• Tanner, D. & Tanner, L. N.(1980). Curriculum development: Theory into practice. New York: Macmillan.
• Tyler, R.(1949). Basic Principles of Curriculum and Instruct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이형빈 역(2024). 타일러 교육과정과 수업 설계의 기본 원리. 서울: 살림터.
• Walker, D.(1971). A Naturalistic Model for Curriculum Development. School Review, 80, 51-65.
• Wiggins, G. & McTighe, J.(2000). Understanding by design (2nd Ed.). VA: Association for Supervision & Curriculum Development. 강현석 역(2008). 거꾸로 생각하는 교육과정 개발. 서울: 학지사.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 좋은교육과정연구소 소장이다. 저서로 『백워드로 설계하고 피드백으로 완성하는 성장중심평가』(2022), 『교사를 위한 교육학 강의』(2020), 『교육과정-수업-평가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2015), 역서로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2014) 등이 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칼럼 잘 읽었습니다.
IB를 선망하면서도 못 미더워하는 복잡한 시선과 오해 그리고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지난 15년 가까이 충분히 설왕설래가 있었고, 제가 그간 읽었던 단행본이나 연구보고서들 중에 가장 날카롭고도 비판적이면서도 훌륭한 대안을 담은 미래지향적인 칼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혜안에 깊이 공감합니다.
현 시국이 어둡고 답답합니다. 세상은 늘 그랬고, 그 돌파를 위해 교직에 몸담은 우리는 늘 교육으로 밝은 미래를 꿈꿔 왔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교육에 목말랐고, IB도 그 혁신에 주춧돌 혹은 디딤돌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결코 종착역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