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톺아보기⑨ – 사교육 정책이 초래한 사교육 문제의 수렁
| 교육 정책이 사교육 문제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짚어본다. 사교육 문제를 비용 과다의 문제로 치환해 버린 정책이 화근이라 지적한다. ‘증거 기반’을 외치며 실증적(경제학적) 분석을 빌려 정책의 길을 잡는 행태도 사태를 악화한다고 비판한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더라도, 교육의 가치와 규범을 논의하며 풀어가야 하리라는 뜻을 비친다. |
‘사교육 문제’는 우리 교육에서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이 되었다. 들어서는 정부마다 국정과제로 내걸며 사교육 문제 해결을 장담해 왔지만, 사태가 나아진 바는 없다. 정부의 ‘경감’ 대책들은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켜 왔다. 사교육 문제를 푼다며 교육 전반에 망조(亡兆)를 들였다. 정책 당국은 사교육 문제에 고부라져, 더 중히 다뤄야 할 교육 문제들을 가벼이 또는 없는 듯이 취급하면서, 기존의 문제를 덧나게 하거나 새로운 문제를 더 초래하기까지 했다.
사교육 정책의 형국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놓는 해결책마다 온갖 부작용으로 학교 교육 자체를 망가뜨리고 있으며, 이런 난항은 좀체 바로잡힐 기미가 없다. 어찌 된 까닭일까? 여러 측면에서 설명해 볼 수 있겠지만, 원인의 요체는 정책 당국이 ‘사교육 문제’ 자체를 잘못 짚는 데 있다.
사교육 문제는 곧 사교육비 문제라는 정책 인식
정부는 사교육 문제가 곧 ‘사교육비’ 문제라 여겨 왔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과외’와 ‘과외비’가 사회 이슈로 떠오른 지는 오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그 문제는 ‘사교육비’라는 용어로 용태를 바꾸어 한층 부각했다. 그즈음 우리나라 교육재정에서 사교육비는 공교육비를 넘어서고 있었고, 이런 사실을 알리는 연구 보고서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과외 부담’에 예민해져 있던 상황에서 ‘사교육비 과다’라는 뉴스는 사회의 관심과 원성을 증폭시켰다.1 이 와중에 ‘과외 금지’ 시책을 위헌이라 규정한 판결이 2000년에 내려졌고, 정부는 크게 당혹했다. 강제적인 과외 금지가 근간이었던 기존 정책을 더 이상 구사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과외가 걷잡을 수 없이 창궐할 것이란 불안을 안고, 정부는 황급히 대책을 찾기 시작했다. 결과로 생겨난 대책들이 한결같이 ‘사교육비 경감’을 외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교육’이 아닌 ‘비용’을 문제 삼는 경향은 당연히 정치적으로 일었다. 자녀의 ‘교육 경쟁력’을 키우려는 가정의 관심과 부담이 확산하면서, ‘교육 고충’을 덜어주겠다는 약속은 온갖 발림으로 선거 공약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2007년 대선에서는 드디어 ‘반값 사교육비’ 공약이 등장했고, 그것을 내건 후보가 당선됐다. 사교육비를 줄이는 일이 국정과제의 우선순위에서 다른 모든 교육 문제를 압도하게 되었다.
‘반값 사교육비’ 공약을 반영하는 국정과제는 ‘사교육 대책’에 간명한 목표를 부여했다. 대선 당시 사교육비는 30조 원 정도로 얘기되곤 했었는데, 말하자면 그 규모를 15조 원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정책 목표가 된 것이다. 이제 사교육 정책이 주목해야 할 것은 사교육비 통계치가 되었다. 2007년부터는 정부가 ‘사교육비 실태 조사’ 2를 공식 통계 업무에 처음 포함하기도 했는데, 이 조사 결과가 공약 이행 여부를 판가름하는 공식적인 잣대가 되었다.
당시 공약(公約)은 결국 공약(空約)이 되었다. 그래도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이어지는 정부에서마다 거듭 출현했고, ‘반값’이라는 허풍은 빠졌지만, 사교육비 조사로 산출되는 통계치를 줄이겠다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었다.
교육부가 가장 최근에(작년 6월에) 내놓은 ‘사교육 경감 대책’에서도 정책 꼴은 여전하다.3 이 대책의 보도자료는 ‘추진 배경’을 서술하는 데서 시작한다. 서두에 “학생 사교육비 급증”이라 적고, 바로 이어서 “’22년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원(전년比 11.8% 증가)으로 역대 최고”라고 부연하면서, “초·중·고생 사교육비 작년 26조 사상 최대”라는 언론의 보도 제목을 인용하여 주까지 달고 있다. 여기 모든 숫자는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서 온 것이다. 장(章)을 넘겨 ‘현황 분석 및 진단’의 부분을 보면, “학생 사교육비 가파르게 상승”이라고 위급함을 알리는 투의 어구를 앞세우고 있다. 여기에도 “’07년 조사 시작 이래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10~’12년•’20년(코로나19) 제외하고, 지속 증가”라는 ‘통계적’ 설명을 붙이고 있다.
교육부는 사교육 경감 대책이라면 마땅히 사교육비 통계 추세를 역전시키려는 것이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사교육비 증가를 잡거나 절대 액수를 줄이는 것이 정책 목표여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에서 2012년 사이에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예외적인 사례를 정책 문서에 굳이 삽입한 데서도 그런 목표에 대한 맹신이 보인다.4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교육을 안중에 두지 않아
사교육비 증가 추세가 멈추거나 학생 1인당 비용이 줄어든다면, 과연 사교육 문제는 그만큼 해결된 것인가? 교육부의 믿음을 따른다면 그렇다. 사교육 문제란 다름 아닌 사교육비 과부담이기에, 부담이 준다면 문제가 해결되는 징후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사교육 문제를 규정하는 교육부의 인식에는 근본적인 어그러짐이 있다. ‘교육’ 문제와 ‘비용’ 문제를 동일시하고 있는데, 이 두 개념은 결코 동질적일 수 없다. 교육의 양상과 비용의 증감이 같은 차원의 구조와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학교 교육이 문제인(그르쳐진) 사태를 ‘교육 본연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정의해 보자. 물론 여기에서 ‘본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터이다. 그렇더라도, 느슨하지만, ‘미숙한 사람이 인격을 갖추도록 성숙한 사람이 교과를 가르치며 이끄는 일’이라거나, ‘한 사회의 미숙한 구성원을 성숙한 시민으로 키우는 일’ 등으로 본연을 풀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또 가정해 보자. 다시, ‘미숙’이니 ‘성숙’이니 ‘인격’이니 하는 말이나, ‘가르친다’ ‘이끈다’ ‘키운다’ 같은 말들에 대해 끝없는 논란이 일 것이다. 그런 논란을 모두 인정하더라도, 적어도 ‘어떤’ 본연을 상정하고 학교 ‘교육’ 문제를 운위한다면, ‘비용 부담’을 거론할 계제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교육이 본연에서 벗어나지 않게(즉, 문제가 없게) 하려는 일에(이를테면 성숙한 시민으로 키우는 일에) 집중하면,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이야기는 기껏해야 부차적인 것이 된다. 돈이 있고 없고가, 물론, 얼마나 본연에 가까운 교육을 할 수 있느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이때 영향은 비용이 교육에 연루된 조건으로서 고려할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지, 비용 자체가 독립적으로 ‘교육 문제’가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본체인 교육이 잘되느냐 못 되느냐를 떠나서, 오직 비용이 더 드느냐 덜 드느냐는 사안만으로는 교육 문제를 구성할 수 없다.
‘사교육’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위 논리를 이어가면, 사교육도 교육의 본연을 구현하는 것일 수도 있고 본연에서 벗어난 것일 수도 있다. 교육 문제를 본연에 비추어 규정한다면, 전자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고 후자 경우만 문제가 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고 안 되고는 ‘비용’과 관계없다.5
이 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사교육 문제를 비용에다 엮는 정책적 정의를 채택했다는 사실은, 교육이라면 마땅히 함축해야 할 가치와 윤리의 속성(즉, 본연을 구성하는 속성)에 대해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사교육 정책은 비용 경감을 목표로 삼음으로써, 그것이 ‘교육’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지녀야 할 가치와 윤리를 내버렸다는 뜻이다. 이렇게 팽개쳐진 교육적 당위성을 되살려 따진다면, 이제까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사교육 문제’를 다뤘다고 인정할 수 없다. 사교육비 통계의 오르내림은 사교육 속성의 변화와(본연의 흔들림과) 무관한 현상이다. 그 두 현상 사이에 우연 이상의 관계가 있을 수 없다. 오직 비용 통계치에만 눈을 박아 온 ‘사교육 대책’은 돈 문제에만 관심을 두었지, ‘교육’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하겠다.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교육을 버린 결과
이런 사실은 사교육(과외) 대책의 역사를 조금만 들춰보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사교육비 경감을 외치며 통계치를 들먹이기 전까지, 사교육 논란에서는 대체로 ‘교육’을 문제 삼았다.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면서 학생들의 건강이 나빠지고 체육이나 예술 활동도 위축되면서 전인교육이 어렵게 되었다든가, ‘주지 교과’(국영수) 중심으로 주입과 암기 위주로 수업이 이루어지면서 교육과정 목표를 총체적으로 구현할 수 없게 되었다든가 하는 지적들이 일반적이었다. 사교육 정책 논의에서 이런 지적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사교육 문제는 이제 사교육비 문제로 치환되었다. 총액이든 1인당 지출액이든, 사교육 정책은 오직 공식 통계상의 사교육비를 제어하는 데 목표를 둔다.
비용 경감에 집착하는 사교육 정책은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사교육비를 끌어내릴 수단이 될 만하면 모두 동원했다. 그렇게 동원된 수단의 핵심이 바로 학교와 EBS이다. ‘싸고 질 높은’ 사교육 서비스로 사교육 시장의 고비용을 끌어내리라는 주문이, 사교육 정책을 통해 이 두 ‘공영 기관’에 끊임없이 내려갔다. 그런 주문에 응해, 오늘날 학교와 EBS는 부지런히 ‘수능 강의’하며 ‘입시 컨설팅’한다. 이런 사교육비 경감 사업이 확장되면서 당연히 전인교육을 추구하고 교육과정 목표를 총체적으로 실현하려는 노력은 설 자리를 잃어 왔다. 그런 노력이 교육의 본연을 살리는 일이라면, 사교육 정책은 ‘교육 정책’의 이름으로 꾸준히 교육의 본연을 퇴색시켜 온 셈이다. 교육 정책이 사교육이란 ‘빈대’ 잡으려다 우리 교육의 ‘초가삼간’을 거의 다 태웠다.
이제까지 얘기에, 아래와 같이 반문할지 모르겠다.
교육의 본연이 무슨 대수인가? 전인교육이니 교육과정의 총체성이니 하는 것에 무슨 그리 대단한 게 걸려 있는가? 그것들에 조금 손상이 가더라도 ‘민생’을 우선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가정에 사교육비 부담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사회 전체의 편익과 비용을 따져본다면, 사교육비 줄이는 데 매몰되더라도 사교육 정책은 이제까지처럼 가는 게 합당하지 않은가?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과 그 부담 고통에 비하면 교육 본연을 훼손해서 생겨나는 비용은 미미하지 않은가?
비용과 편익을 바로 계산해 숫자로 답할 길은 없다. 사교육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은, 맞든 틀리든, 적어도 공식적으로 계산되어 나온다. 그러나 교육이 본연을 잃었을 때 사회에 생겨나는 ‘비용’을 숫자로 이야기할 도리가 없다.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이 본연을 벗어나서 야기되는 문제는 그만큼 체감하기 어렵기도 하고,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알아차리기도 어렵다는 뜻도 된다. 그것은 어린이와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더 많아지는 것일지도 모르고, 모두가 오직 의사나 ‘건물주’ 되겠다고 희망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며, 우리 사회에 ‘묻지 마 범죄’가 느는 것일지도 모르며, 외국으로 유학하거나 이민하는 인구가 느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부패하고 정책 결정을 망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교육 문제를 증거 기반의 정책으로 풀자?
최근 ‘경제학적’ 분석이 각광받고 있다. 사교육 정책과 관련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인정받는 듯하다. 교육부의 ‘사교육정책연구센터’가 한 대학의 ‘경제연구소’에 위탁되어 있으며, 국가교육위원회도 ‘사교육 원인 분석과 대책’ 연구를 경제학자들이 주축인 팀에 맡겼다. 경제학적 분석은 으레 결과를 숫자로 내놓으며, 특히 비용과 편익을 비교해 정책을 제안하는 버릇을 지니고 있다. 특히, 주로 숫자로 이야기하는 만큼, ‘실증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정책이 ‘증거 기반’이 되고 ‘데이터 기반’이 되도록 기여하고 있다 칭송받는다. 이런 정책 풍토에서 숫자로 짚어내지 못하는 여기 사교육 이야기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경제학적으로 구사되는 수학적 언어에 미혹되지 말아야 할 터이다. 철학과 이론이 받쳐주지 못할 때 그 언어는 공허하다. 그것들은 인간사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가치나 윤리를 다루지 못한다. 복잡한 정책 이야기를 숫자로 풀면 명쾌해 보이며 뇌리에도 쏙쏙 박힌다. 경제학적 분석이 많이 팔리는 것은 다분히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숫자로 푸는 과정에서 경제학적 분석은 실질에서 크게 벗어난다.
측정하기 어려운 것들을 모종의 전제만 앞세우고는 숫자로 정의하고 만다. ‘허수아비 논법’과 비슷한 데가 있다. 이를테면, 행복을 완전하게 잴 수 없는데도, ‘최근 한 주일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1에서 7 사이 점수로 표시하시오’라는 식의 설문으로 측정하고는, 표시된 점수를(사실은 ‘허수아비’인데도) 행복의 지표로 간주한다.
정책 요인들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단순화해 버린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한없이 많을 것이고, 그 요인들 사이의 관계도 복잡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적 분석은 손에 쥔 몇 개의 요인(측정값)을 단순하게 함수 관계로 엮어 그 풀이를 컴퓨터에 맡긴다. 그렇게 행복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을 감행한 결과를 토대로 행복 증진을 위한 ‘실증적’(또는 ‘증거 기반의’) 정책 대안을 내놓는다. 행복을 나타낸다는 함수 풀이 결과 ‘허수아비 점수’에 정적(正的) 관련을 보이는 변수는 행복 증진을 가져오는 요인이며 그 점수에 부적(負的) 관련을 보이는 변수는 행복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해석한다. 정책 대안은 물론 전자의 변수를 키우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내용이 된다.
경제학적 분석에서 ‘사교육 문제’는 으레 ‘사교육비 액수’로 계량화되고 있다. 그 액수를 늘리고 줄이리라 가정되는 요인들을 함수로 얽어 요인별 영향력의 ‘의미 수준’을 계산하는 것이 실증적 분석의 요체이다. 계산 결과에서 액수를 줄이는 데 ‘의미 있는’ 영향력을 보이는 요인을 골라, 그것을 조장하라는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이런 것이 ‘사교육 원인과 대책’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의 대강이다. 여기에서 ‘사교육 문제’가 왜 ‘사교육비 액수’이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런 ‘조작적 정의’는 사전에 주어져 있다. 분석자들은 그냥 받아들인다. 분석을 발주한 교육부나 국가교육위원회 같은 기관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마침 그것이 ‘데이터’로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글의 것과 같은 이야기는 경제학적 분석의 이야기에 비해 고리타분하다고 받아들여진다. 전통적인 이야기이고 과학 기술의 발달을 반영하는 수학 언어들도 구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상적이고, 이야기를 실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것은 ‘철학’을 다뤄야 하기 때문이며, 실질에 정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 이야기에서 가치나 규범 요소를 뺄 수는 없다. 오래 해오던 이야기라 지루하다고 배제한다면, 그것은 ‘교육’ 이야기가 못 된다.
경제학적 분석에서와 같이 철학의 이슈를 건너뛰는 이야기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숫자 이야기가 단순하고 알아듣기 쉽다고 그 결과 위에 정책을 세워선 안 된다. 그런 행태는 어두운 데서 물건을 잃어버리고는 빛이 있다고 밝은 곳으로 옮겨가 찾는다는 우화 속의 어리석은 짓과 다름없다. 알고 보면 우리가 바로 그런 우스꽝스러운 풍조 속에 빠져 있다. 교육은 더욱 피폐해 가는데 말이다.
실증적인 분석(수학적인 수사)의 빈궁함을 직시하고, 교육 문제를 비용 문제로 와전해 버리지 않는다면, 사교육 정책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것은 명실상부하게 교육 정책이어야 한다. 교육의 본연이 무엇인지 함께 숙의하고, 그 본연을 모든 교육의 장에서(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사교육 시장에서나)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너무 멀고 오래 걸릴 이야기 아니냐, 숙의한다고 본연을 어떻게 그릴지 합의할 수 있겠느냐, 학원 같은 데서도 교육이 본연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등등 회의할 여지는 물론 무한하다. 그러나 ‘교육 정책’이고자 하면 달리 길이 없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는 글은 뒤로 미룬다.
각주
- 1990년대 후반 논란되었던 ‘사교육비’ 문제는 오늘날의 사교육비와는 다른 항목의 비용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연구가 문제 삼았던 것은, 수업료나 교과서 비용과 같이, 공교육비로 감당되어야 할 게 ‘사부담’으로 떠넘겨져 있는 교육재정 현실이었다. 핵심은 공교육 재정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는데도, 당시 ‘사교육비’ 논란은 그 용어의 모호함 탓으로 ‘과외비’ 문제에 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교육비’는 오늘날과 같이 ‘교육 수요자’들의 부담을 포괄적으로 표시해 주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이런 변화와 그 부작용에 대해서는 <사교육 톺아보기②> 「‘과외’에서 ‘사교육’ 이야기로, 결국 ‘돈’ 이야기로」와 <사교육 톺아보기 ③> 「사교육비 경감 대책, 학교를 시장에 내놓았다」에서 이미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 이 조사는 현재 ‘초중고 사교육비조사’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
- 과거와 달리, 발표 제목을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아닌 ‘사교육 경감 대책’으로 잡았다. 비용에 국한하여 대응하는 좁은 정책이 아니라는 뜻을 담으려 했는지 모르지만, 대책을 내놓는 논리나 대책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과거와 다른 점은 사실상 없다.
- 2010~2012년의 추이를 주목하도록 굳이 부연한 것이 목표 의식을 내비치려고 한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 흥미롭게도 현재 교육부 장관이 그 시기에도 장관으로 재직했다.
- 노파심에서 덧붙이건대, 사교육을 위한 비용 부담이 현실 생활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중요하고 엄연한 일상의 문제이다. 굳이 교육에 관련지어 지칭한다면, 학교 교육 시행에 관련된 제도의 문제라거나 학교 교육을 ‘이용하는’ 우리의 관습과 문화의 문제라고 이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에서 비용 문제가 ‘교육’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교육이 잘 되고 못 되는 데 대한 이야기와 교육(또는 사교육)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같은 차원(개념이나 현실의 면<面)>)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