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눈으로 한국은행 보고서 읽기
| “국가기관인 한국은행에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를 냈다고? 무언가 맥락이 모호하긴 하지만,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순 없어도 사연이 있을 테다. 교사의 눈으로 따라가 보자.” [본문 중에서] |
한국은행. 일반인이 갈 일이 없는 곳이다. 주로 현금을 사용하던 시절, ‘Bank of Korea’ 선명한 지폐나 주화로 만나던 곳이다. 무언가 고풍스런 분위기의 건물과 국명을 그대로 쓰는 은행이 주던 권위가 묵직하던 은행. 그 은행이 보고서를 냈다.
한국은행이 경제성장률이나 통화 정책, 환율이나 금리 등에 관한 보고서를 내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어서 따로 할 말이 없고 내가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2024년 8월에 낸 보고서는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1이었다. 제목만 본다면, 교육부나 한국교육개발원(KEDI)에서 했음직한 연구 보고서다. 그런데, 이게 한국은행에서 한 연구라니. 약간은 어안이 벙벙하다.
잠시, 한국은행법을 보자. 제1조를 보면,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나와 있다. 주요 업무나 기구로는 금융통화위원회를 구성하고, 화폐의 발행, 금융기관에 대한 예금과 대출 등의 업무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국가기관에서 그런 보고서를 냈다고? 무언가 맥락이 모호하긴 하지만,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순 없어도 사연이 있을 테다. 교사의 눈으로 따라가 보자.
한국은행이 ‘교육’으로 간 까닭은
한국은행이 본업에나 충실할 것이지 왜 ‘입시경쟁 과열’에 관한 보고서를 냈을까? 하지만, 탓할 일은 아니다. 배움의 가치와 즐거움은 멀어지고, 무한경쟁과 줄 세우기만 득세하는 작금의 교육 현실을 생각할 때, 하나의 기관이라도 더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교육 종사자로서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이다.
물론, 가장 많은 교육 관련 연구 보고서는 한국교육개발원의 몫이다. 이미, 한국교육개발원은 ‘주요국들의 대학입시에서 고교 내신성적 반영 방법 및 시사점’(2012), ‘대학 입시 정책의 방향과 개선 방안’(2017) 등을 통해 꾸준히 자기 목소리를 내 왔다. 또, ‘유아 사교육 실태 및 영향 분석’ 보고서(2011)를 통해, 교육비 탓에 추가 출산 포기자가 무려 43%에 이를 정도로, 사교육비 부담은 이미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우리의 교육 문제는 매우 독특해서 해외에서도 관심사다. 영국의 BBC는 우리의 수능을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힘든 시험…사회적 지위 결정”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BBC는 지난 14일 치러진 한국의 수능시험 풍경을 전하며 한국에서 수능시험이 지니는 의미도 짚었다. BBC는 “수능 시험은 수년간 이뤄진 정규 교육의 정점이자 대학, 직업, 사회적 지위까지 결정짓는 터닝 포인트”라며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중대한 시험이라고 소개했다.
이처럼 곳곳에서 연구 결과를 쏟아내고 보도를 이어가도 고질적인 사교육비, 무한경쟁, 줄 세우기와 학력 차별 등이 나아지는 징후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강남의 한 유명 학원 입학시험에는 초등학생 1,800명이 몰려 중고생 위주의 사교육 시장이 초등은 물론 그 아래까지 확산하는 상황이다. SNS에는 대치동 초등 사교육 로드맵까지 나와 있다. 이른바 ‘세 번의 고시’로, 좋은 영어유치원에 보내려는 ‘4세 고시’, 초등 영어학원 입학을 위한 ‘7세 고시’, 황소수학 입학을 위한 ‘황소 고시’ 등이다. 여기에 이들 학원의 입학시험을 도와주기 위한 보조 학원이나 과외도 성행하며 대치동 사교육 생태계를 촘촘하게 만든다.2
현실이 이러한데도 교육부가 손 놓고 AI 디지털 교과서(AIDT)에만 매달려 있는 새, 한국은행이라도 나서 주니 우리는 ‘불역열호(不亦說乎)’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 안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먼저 이러한 전제로부터 시작한다.
| 1. 입시경쟁 과열은 사교육 부담 및 교육 기회 불평등 심화, 사회 역동성 저하, 저출산 및 수도권 인구 집중, 학생의 정서불안과 낮은 교육성과 등 우리나라의 구조적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교육 시스템을 넘어 사회 전반의 안정과 성장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2. 그동안의 입시경쟁은 사교육비 증가로 가계에 큰 부담을 주었으며, 교육 기회 불평등을 초래했다. 3. 이러한 사교육 불평등은 소득계층과 거주지역에 다른 상위권대 진학률의 큰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
보고서는 진학률 격차 확인을 위해 부모의 소득 수준과 거주지, 학생의 잠재력 변수를 교차 비교한 모형으로 상위권대(서울 소재 8개 대학과 전국의 의대·치의대·한의대·수의대) 진학 결과를 분석했다. 조사 대상은 2005년 당시 중학교 1학년생을 매년 추적 조사한 데이터(한국교육종단연구 원시자료)를 바탕으로, 이들의 중1 때 수학 과목 점수(학생 잠재력)와 2012년 재학 대학을 비교하였다.
먼저, 소득 수준 상위 20%가 나머지 하위 80%보다 학생 잠재력이 똑같이 최상위 수준이어도 상위권대 진학률이 2배 가량 높았다. 상위권대 진학률 격차 중 약 25%는 학생의 잠재력, 나머지는 75%는 ‘부모의 경제력 효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국은행은 분석했다.
이어, 2018년 서울대에 진학한 학생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서울 출신은 전체 일반고 졸업생의 16%지만 서울대 진학생의 32%를 차지했고. 그중 서울 ‘강남 3구’ 출신은 전체 일반고 졸업생의 4%인데 서울대 진학생의 12%(3배)에 이르는 등 진학률 격차가 매우 컸다.
또, 학생의 학업 능력(잠재력) 순위에 따른 진학률은 서울 출신(0.44%)과 비서울(0.40%)간 별 차이가 없는데, 실제 서울대 진학률은 서울(0.85%)이 비서울(0.33%)보다 2.6배나 높았다.
결국,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권 대학의 진학률 격차는 학생의 잠재력보다는 주로 사회경제적 배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실증 분석 결과가 나왔다. 고소득층 학생이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중심지 거주를 통해 대학입시에서 더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3
한국은행은 이러한 입시 불평등 해소 방안으로 전면적인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 일부 대학이 시행 중인 지역균형선발 방식을 상위권대 대부분의 모집 단위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대학이 자발적으로 입학 정원의 대부분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선발하면, 소득·지역별 격차를 줄이고 학생 잠재력에 근접한 진학률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한국은행은 잘했다. 자녀를 대학입시에 밀어 넣어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대목이 제법 많다. 또 중등학교 교사로 생활해 본 사람은 학생의 환경이나 배경이 입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례를 숱하게 경험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정확한 실증 자료를 풍부하게 뒷받침한 연구진의 시도에 감사할 따름이다.
각계의 반응과 보고서의 한계
서울대가 반응을 했을까? 하긴 했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지역별 비례선발제’에 서울대는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한국은행 보고서의 비례선발제 취지에는 공감할 부분이 있다면서도 현행 대입전형 체제와 특성을 고려할 때 지원자의 선호에 따라 모든 모집 단위에서 할당이 가능한 지역별 지원자의 확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일반인들은 객관식 시험 성적이 가장 공정하다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공정성’ 담론을 그대로 투영한 반응이 많았다. 뉴스 보도4의 몇몇 인터뷰를 보자.
• 시민1 : 대학을 비례제로 하자는 건 진짜 웃기는 짓거리지. 우수한 학생을 뽑아서 가르치는 게 대학의 목적인데, 그놈의 거주지 문제 때문에 실력과 무관하게 학생을 선발하라고?
• 시민2 : 성적순으로 가야지. 돈 아무리 들여도 머리는 못 바꾼다. 학원도 혼자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보내는 거다.
• 시민3 : 서울지역(특히 강남 거주) 학생들에 대한 역차별! 초딩부터 공부만 하고 온 애들이 서울대 가는 거다.
조금 더 차분한 반론도 있다. 오히려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고 지역 인재의 유출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역별로 선발 인원이 정해지면 이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 지역에 머물거나 지역으로 내려가는 수요가 생겨 지역경제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뒤 그대로 머물게 되면 수도권 집중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수도권 쏠림 현상을 내버려둔 채, ‘지역별 비례선발제’만으로는 입시경쟁이나 그로 인한 사회문제 해결에는 물음표가 찍힐 수밖에 없다.
또한, 반드시 대학을, 그것도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얻고 계층을 이동할 수 있는 전제로 삼았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한 연구에 머문 한계가 있다.
한국은행의 제안보다 더 전향적인 사례로는 사회적 소수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미국의 어퍼머티브 액션(소수집단 우대 정책; affirmative action)을 들 수 있다. 미국 법원은 법학대학원을 상대로 자신과 점수가 같거나 낮은 흑인 또는 멕시코계는 받아들이고 백인인 자신이 떨어진 것은 부당하다고 제기한 소송에 대해 인종적·민족적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정당하다5는 판결을 한 바 있다. 인종이나 민족을 고려한 시험 격차의 조정, 과거의 잘못 보상, 다양성 증대 노력은 공공선의 관점에서 적극적 정책이 되어야 함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미국 대학위원회는 입학시험인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의 경우에 “학생 부모의 소득과 교육 수준, 거주 지역의 빈곤율을 점수에 반영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6 이른바 ‘역경 점수’라고도 부르는 이 시험 평가 기준은 모두 15가지에 이르는데, 결손 가정 여부와 고등학교 환경까지도 포함한다. 수년 동안 치러진 SAT 시험 결과, 아시아 학생이 백인보다 평균 100점이 높고 백인 학생이 흑인보다 177점이 높은 것으로 나온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빈부의 격차와 부모의 교육 수준에 따른 점수 격차도 커 SAT 점수가 학생들의 기회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정책들이다. 하지만, 하나의 요소나 최소한의 기준만으로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고 이를 대학입시에 반영하는 방식은 왜곡된 능력주의, ‘공정하다는 착각’에 불과한 것으로 서서히 설 자리를 잃는 추세임은 분명하다.
우리에겐 더 다양한 보고서가 필요해
# 보고서 1 : 국·공립대학교 통합네트워크
무한경쟁, 학벌주의 등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많이 나온 보고서, 대안 중 하나이다. 서울대 폐지론, 국립대 통폐합론, 국립대 공동학위제 등의 유사한 제안도 있었다. 이 안의 핵심은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 30여 국·공립대를 하나의 거대 대학 체제로 묶어 신입생을 통합 선발하고 공동 학위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 안은 2010년 진보정당이 대학 서열화 해체를 외치며 쏘아올린7 뒤,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이 대학통합론은 비교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프랑스 파리대학의 통합 사례8와 캘리포니아 주립대 체제9 등을 모델로 삼아 이를 한국적 상황에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에 찬성하는 쪽은 대학 서열화에 따른 무한경쟁 교육의 폐해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상진 교수(전북대 교육학과)는 “대학서열구조, 대학 학벌체제는 초중등교육을 대학 입시 교육 경쟁으로 몰아가며, 이는 학벌 중심 고용구조와 연계돼 있다”며 “대학의 서열구조 문제 해결은 초중등교육의 정상화와 학벌 지향의 고용구조 문제를 해소할 핵심 고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로 SKY대 중심의 소수 명문대학 체제에서 전국 단위의 다수 명문대학(가칭 ‘한국대’)을 육성해, 왜곡된 입시경쟁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대가 없어지면 국가 경쟁력이 하락하고, 사립대학 중심의 또 다른 학벌 서열구조가 생길 것이라는 비판 또한 만만치가 않다. 서울대 같은 교육연구기관 하나를 만드는 게 얼마나 긴 세월, 어려움이 있는지 모르는 한가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를 공론화할 당시(2017),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도 “세계적 수준인 서울대를 하향 평준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재학생과 졸업생의 반발이나 힘들게 입학한 학생들이 통합 이후 들어온 학생들로 인한 박탈감, 지방 국립대의 서열이 높아져, 새로운 서열 체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통합의 걸림돌이나 한계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미국이나 프랑스는 대학의 학생 수가 급증하고 대학이 팽창하던 시기에 자연스럽게 통합이 되었지만, 우리는 학생 수의 급감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시도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두 나라는 본래 국·공립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통합 시도가 대학 및 교육 전반에 큰 영향을 준 반면 우리는 사립이 대다수이므로 국·공립대 통합이 주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 보고서 2 : 대학에 가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는 세상
삼성경제연구소의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하는 세상’ 보고서(2012)를 보면, ‘과잉 학력’ 사회의 원인으로 고졸자가 진입하는 열악한 일자리를 원인으로 꼽았다. ‘고졸자 일자리 취약 → 대학 진학 필수화 → 대학 과잉 진학 → 대졸자 하향취업 → 고졸자 취업 기회 감소’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2020년 이후 매년 증가세를 이어오며 2023년 대학 진학률은 76.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10하기도 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의 입학 정원 유지로 인해 대학 진학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진 것과 고졸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해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경향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특성화고를 지원하는 학생에게는 제법 혜택11이 있다. 먼저, 진학을 보면 특성화고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학 특별 전형이 있다. 취업자를 위해서도 취업 전 역량 강화, 사회 진출을 위한 취업 지원, 취업 이후 사회 안착이라는 흐름에 맞추어 지원이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왜 특성화고는 해마다 지원자 모집을 위해 안간힘을 쓰며 중학교로 홍보단을 보내야 할까. 우리 현실은 ‘고졸’이라는 말 자체가 ‘공부를 못 한다’ 또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로 왜곡돼 쓰이면서 특성화고는 대학 못 갈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그 의미가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이미 괜찮은 제안이 있었다. 진보 정당들이 학벌사회 타파를 위한 방안으로 제안한 ‘학력·학벌차별금지법’. 모든 채용과 임금 수준 책정, 교육과 훈련, 인사 배치와 승진, 해고와 퇴직 등에 있어서 학력과 학벌을 이유로 차별이나 기회 제한을 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대학교수나 전문 연구원 정도는 예외로 두고. 법을 어길 경우에는 징역 또는 벌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이행강제금도 부과한다. 아울러 근로기준법이나 비정규직법에 ‘동일 노동과 동일 임금’의 원칙을 확립해야 학벌에 의한 차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같은 직종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도, 학위 수준에 따라 임금과 기타 복지 등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시장 진입 단계와 노동과정에서 학력에 따른 차별을 없애는 노력을 기울여야, 교육에 ‘투자’해 학벌을 확보하려는 국민 인식이 바뀔 수 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이른바 ‘취업빙하기’에 3급 공무원(한국의 9급) 응시 자격을 고교 졸업 후 2년 이내로 제한하는 과감한 정책으로 ‘과잉 학력’의 악순환을 끊으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우리도 과잉 학력의 문제를 더 이상 구호와 선언에서 그치지 말고, 제도와 입법으로 풀어야 할 때다.
# 보고서 3 : ‘지대 추구’가 허용되지 않는 세상!
본래, 지대(地代 rent)는 토지나 천연자원 소유권으로부터 파생되는 소득을 의미하는 경제학 용어이다. 요즘은 그 개념이 확장되어 법적, 제도적 요인에 의해 보호받는 독점적 지위로부터 발생하는 이득 전반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지대 추구는 비생산적인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독점적인 지위나 권력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공정한 경쟁 환경을 훼손한다.
한때,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자조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아직도 그 추세가 달라진 건 아니다. 삶의 지향이 건물주인 사회에 혁신은 없다. 지대 추구가 성실한 노력을 조롱하는 한, 부동산(또는 코인) 불로소득이 근로소득을 압도하는 사회엔 미래가 없다. 위험을 감수하며 혁신에 뛰어들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지대 추구가 일어난다. 그 대표적인 행태가 ‘학벌사회’이다. 학벌사회는 특정 학벌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혜택이 주어지는 사회 구조이다. 특정 학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 유지나 상승을 위해 학벌이라는 자원을 활용하여 카르텔을 형성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을 가로채고 비용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행태를 보인다. 학연과 서열화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특목고나 자사고 출신을 우대하는 사실상 고교등급제도 교육 불평등을 조장하는 학벌주의 시스템의 한 변형이다. 특정 계층이 자녀를 특목고(과학고, 외고 등)나 자사고에 입학시키기 위해 사교육을 과도하게 활용하거나, 입학 전형과 관련된 비공식 정보를 얻기 위해 로비를 벌이기도 한다. 이들을 우대하는 교육 기회의 편중은 계층 간 격차를 고착화하며, 공교육의 형평성을 저해하기도 한다.
21세기에 들어와 심각성이 더해진 의대 열풍과 최근의 의정 갈등도 지대 추구와 무관하지 않다. 의사라는 지위를 얻기만 하면 다른 직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급여가 평생 보장되는 사회에서는 합리적 선택과 소통이 어려워진다. 성적이 좋으면 가장 먼저 의대 진학을 선택하고, 의료 현실 개선을 위한 인력 증원에는 격렬하게 저항하게 된다. 결국, ‘지대’는 한 번 확보하면 좀처럼 놓고 싶지 않은 게 사람 마음이어서, 제도로 풀어내는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이 교육 전문가? 아니, 이해 당사자!
우리 사회 공론장에서 한 번이라도 논의가 되었음직한 대안들을 몇 개 살펴보았다. 왕도(王道)가 있을 리 없다. 만일, 그랬더라면 이미 수십 년 전에 어떤 식으로든 결판이 났을 것이다. 얽히고설킨 수많은 사람, 이해관계, 영향을 미치는 요인 등으로 그 복잡성이 상상을 초월하는 까닭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모든 학부모는 교육 전문가라 할 것이며, 학교, 학과마다 조금씩 다른 대학입시의 유형을 고려하면 그 가짓수가 수백, 수천이 이른다고 하겠는가.
쉽지 않은 과제임에 틀림없다. 한국은행까지 나선 까닭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손 놓고 있기에는 그 심각성이 갈수록 깊어져, 이제는 사회의 건강한 존립마저 위협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학력에 따른 차별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학령인구는 눈에 띄게 줄었는데, 어떻게든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제대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 사교육비는 계속 상승 중이고, 기회는 수도권에 몰려 있는 까닭에 지방은 소멸 위기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인디언의 인사말에 ‘미타쿠예 오야신(Mitakuye Oyasin)’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사교육, 입시경쟁과 집값, 가계부채, 저출산, 지역 소멸 등이 따지고 보면 한 덩어리다. 각자의 자리에서 시작하고, 연결망을 타고 파고들자. 한국은행도 뛰어들었다. 교육부와 그 수장도 제발 일 좀 똑바로 해라.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놀랍게도, 지금까지 한국은행이 만든 ‘이슈노트’ 중에서 가장 많은 클릭을 받았다. https://www.bok.or.kr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165801.html (한겨레신문 2024.11.06.)
-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155538.html 한겨레신문 2024.08.28.
- https://news.jtbc.co.kr/article/NB12216973?influxDiv=JTBC JTBC뉴스 2024.09.30.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와이즈베리), 251~260쪽.
- ‘역경 점수 도입’…美 SAT 평가기준 바뀐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4203569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449834.html
- 68혁명과 ‘새로운 파리 대학’의 출현 (박단, 서강대, 2014.)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42275 - University of California https://www.universityofcalifornia.edu/campuses-locations
- https://www.index.go.kr/unity/potal/indicator/IndexInfo.do?cdNo=2&clasCd=10&idxCd=F0078&upCd=4
-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포털 하이파이브 (https://www.hifive.go.kr)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35년 동안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쳤다. 『선생님과 함께 가는 고전 소설 여행』(공저), 『선생님과 함께 가는 현대 소설 여행』(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세계문학) 서평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양서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KBS 방영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 추적60분 1400회 KBS 250214
https://www.youtube.com/watch?v=DysyxTqFlnY
마음이 몹시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