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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랑곳없는 수능 이야기

#1153 강태중,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24.11.21
올해 수능이 치러진 후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새삼 살펴본다. 여러 말이 무성하지만, 수능이 고등학교 교육에 어떤 영향을 줄지 걱정하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고 지적하며, 1993년 수능을 처음 시행했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고 알린다. 처음에는 ‘고교교육 정상화’가 이야기의 초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수능 이야기가 학교 교육을 아랑곳 않아도 되는지 묻는다.

 

 

수능 끝나면 으레 듣게 되는 말들, 난이도, 변별력, 정시 전략…

 

‘수능일’이 지나갔다. 으레 그렇듯, 신문을 비롯한 많은 창구에서 수능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특별한 사건이 터지지나 않으면, 이야기 돌아가는 모양새는 어느 해나 비슷하다.

 

먼저, 쉬웠는지 어려웠는지, 시험 시작 후 문제가 공개되는 순서를 따라 품평이 나온다. 좀 있으면, 더 구체적인 ‘난이도’와 ‘변별력’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입시 업계’가 ‘분석’ 결과를 내놓고 언론사들이 중계한다. 그 분석 결과를 전제로, 앞으로 대입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 ‘컨설팅 팁’들도 나오기 시작한다. 역시 입시 업계가 제공하는 것들이다. 사교육 업체들은 수능이 끝나자마자 재빠르게 ‘입시 설명회’도 여는데, 여기의 설명과 성황에 대한 보도도 빠지지 않는다.

 

올해 어떤 이야기들이 돌아다녔는지 보자. 역시 먼저, 신문 기사들은 난이도 이야기를 제목으로 올렸다. “수능, 작년보다 쉬웠다”, “국영수 평이”, “‘킬러’ 없었던 수능” 같은 것들이다. “국어 영어 EBS서 많이 나와”, “독서 지문 넷 중 셋, EBS 연계” 등과 같이, 시험이 쉬워진 이유에 대한 설명도 있다. 이어서는, 이렇게 시험이 쉬워져서 앞으로 대입 사태가 어떻게 돌아갈지 타산해 보는 보도들이 나왔다. “쉬운 수능, 대입 셈법 복잡해졌다”며, “상위권, 한두 문제로 당락 갈릴 듯” 같은 짐작이 나오고, 상대적으로 어려웠다고 분석되는 “미적분, 탐구가 당락 가를 듯”하다는 예상도 나왔다. 이런 예상은 더 구체적인 예측 보도로 이어졌다. ‘1등급 컷’ 예상이나 ‘주요 대학’(학과)의 “정시 합격선 예상 점수” 등과 같은 것들로, “원점수 기준 의대 합격선 2~3점씩 올랐다”와 같은 식이다. 모두 입시 업체들의 발표나 입시 설명회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수능일 후 일었던 보도 광풍은 대입 전략을 이제 어떻게 짜야 할지 코치하는 내용들과 더불어 잦아들어 갔다. “수능이 지난해보다 평이하게 나오면서… 1등급 구간대 학생들 간 동점자가 속출할 수 있어… 보수적으로 입시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는 식의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서울대나 의학계열 등 최상위권은 국어•수학에서 고득점 동점자가 밀집해 정시에서 치열한 눈치작전이 불가피할 것”이므로, “대학별로 탐구 가산점, 변환점에 따라 유불리 셈법을 고려한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들 전했다.

 

‘수시 납치’ 같이 비교적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이야기도 보인다. 수시에 낮춰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해서 ‘납치’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수시에 합격하면 정시에 지원할 수 없기에, 이번처럼 쉬운 수능에서 예상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는데도 정시 기회를 잃을 수 있으니 유의하란 뜻이다. ‘사탐런’이란 얘기도 있다. 미래 수험생을 겨냥한 말인데, 과학탐구가 어려워지면서, 경쟁력 있는 ‘이과생’이 사회탐구를 선택하는 쪽으로 도망치는 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과 침공’ 위협이다.

 

 

30년 전, 첫 수능에서 초미 관심은 ‘고교교육 정상화’에

 

우리가 보통 하는 수능 이야기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얼른 갈피 잡기 어려울 것이다. 수능 이야기는 그 자체를 우리가 30년 넘게 살아온 터라 너무나 익숙하다. 굳이 ‘특징’을 일러 말할 필요나 이유가 그동안 없었다. 앞으로도, ‘입시 개혁’이니 뭐니 하며 지지고 볶겠지만, 그런 과정에서도 하게 될 이야기는 올해 듣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딱히 특징이랄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30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얘긴 달라진다.

 

수능은 ‘1994학년도 대입제도’의 틀 안에서 새롭게 시작되었다. 1993년 8월 20일 첫 수능이 치러졌고, 도입 당시는 ‘복수 시행’ 제도였기에, 같은 해 11월 14일에 ‘2차 시험’도 치러졌다. 시험이 치러진 후 이야기는 그때도 지금과 꽤 비슷했다. 시험 난이도 얘기는 물론 빠지지 않았다. “실험 평가에 비해 쉬워”졌다거나 “중위권 점수 크게 높아질 듯”하다는 식의 기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출제 경향 보도도 있다. “수능시험 출제 내용과 영역별 분석”과 같은 것이다. 대입 전략에 대한 보도도 있다. “주요 대학의 예상 합격선”에 대한 예측도 있고, “수능 대비 이렇게 – 암기•문제 풀이식 수학 공부 도움 안 돼” 같은 조언들도 있다.

 

이런 이야기가 지금은 사실상 전부이지만, 30년 전에 그런 것들은 지엽적인 데 속했다. 수능이 처음 시행되었던 1993년에는 수능이 과연 고교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이야기 초점이었다. 이런 관심은 사실 수능 시행 전부터 일었었다. 수능 자체가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1987년에 수능 도입을 제안했던 ‘교육개혁심의회’는 그 취지를 “입시 제도[가]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전인적인 발달을 조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쇄신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적었다. 이런 사실을 정리한 교육과정평가원의 ‘대학수학능력시험 20년사’는 도입 배경을 아래와 같이 기술했다(63쪽).

 

대학입학학력고사[수능 이전 대학입시]는 단편적 지식을 중심으로 하여 암기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라… 고등학교 교육도 입시 준비를 위해 지식의 암기에 치우친 파행적 수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입학 시험이… 교육과정 운영을 왜곡된 방향으로 지배해 온 셈이다. … 사고력 중심의 발전된 학력고사라는 [수능의] 개념은… 통합교과적 소재를 대상으로 사고력을 측정하는 검사로 규정하고 있다. … 사고력 중심의 측정을 강조함으로써 고등학교 교육과정도 사고력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자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 고등학교 교육과정 운영을 정상화함으로써 학교교육을 본질적인 위치로 되돌리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런 수능 도입 취지는 당시에 사회적으로도 널리 알려졌었고 또 받아들여졌었다. 첫 수능이 치러지기 전날 한 신문 기사1는 “수학능력시험의 결과가 도입 취지대로 고교교육 정상화를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교육부가 긴장하고 있다고 썼다. 비슷하게 아래와 같은 기사2들이 더 있었다.

 

이 시험[수능]은 그동안 숱하게 변해온 우리나라 대입제도의 정착 여부를 판가름해 주는 중요한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진학 위주 암기 위주로만 진행돼 온 우리나라 고교교육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교육적 합의가 종전의 어느 제도보다 더 강하게 반영된 새로운 형태의 시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부 국립교육평가원은 물론 국민들은 이 시험의 성패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관심은 첫 수능이 시행된 후 이야기에서도 이어졌다. 수능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고교교육 현장에 새바람”이 분다고들 이야기했다. 당시 호의적이었던 반응은 한 신문의 사설3이 아래와 같이 요약해 준다.

 

… 우려 속에 치러졌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고교교육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켜 놓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 해왔던 주입식 암기 위주의 입시 공부가 수능 시험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 수능시험 제도를 도입한 것은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평가함으로써 전인교육을 지향하자는 데에 있었다. 사실상 지금까지의 고교교육은 학생들의 감수성이나 사고력•창의력을 기르기보다는 예상되는 입시 문제를 반복해서 암기하는 입시학원식 교육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 수능 시험에서 우리가 얻은 것이 있다면 전인교육에 대한 가능성을 찾았다는 점일 것이다. 더군다나 고액 과열 과외가 시들해지고 입시 전문학원이 한산해졌다는 보도는 학교 교육 정상화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첫 수능에 대한 비판이 물론 없지도 않았고 약하지도 않았다. 수험생에게 기회를 늘려 준다고 시험을 2회 시행했지만, 난이도 유지 실패로 부담감만 가중하며 헛수고하게 했다, 시험일을 8월과 11월에 잡아 2학기 수업을 파행시킨다, 문•이과 구분 없는 시험이어서 문과 학생들에게 불리하다, 등등 많은 원성이 나왔다. 수능이 처음 도입된 제도였기에, 앞으로 개선하라는 비판과 제안들이 무성했다. 그러나 이런 이슈들은 상대적으로 눌렸다. 수능이 과연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를 살렸느냐가 일차적인 관심이었고, 이 점에서의 긍정적인 평가는 그 이슈들을 어느 정도 제압했다.

 

한 신문사 논설위원의 칼럼4은 당시 이런 분위기를 증언해 준다. 소소한 문제가 없지 않지만, 수능이 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전망이 보이는 만큼, 제도의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능] 2차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손해를 봤다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 1차 시험보다 나은 점수를 기대하며 열심히 시험 준비를 했던 학생들은 2차 시험이 더 어려워서 점수가 내려가자 ‘석 달 동안 헛고생을 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
교육부와 교육평가원은 크게 당황하고 있다. …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결정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수능시험 자체에 대해서는 이미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선 교사들 중에는 “우리 교육 현장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철저한 주입식 교육 대신 토론과 실험의 교육이 시도되고, 오랫동안 대입 준비에 밀려났던 독서지도가 제자리를 찾고 있다. …
… 우리의 입시 제도는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제도를 보완해 나가지 않고, 부작용이 드러날 때마다 뒤집어엎기를 계속해 왔다. … 제도가 발전할 겨를이 없었다.
… 시행 첫해에 난이도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당장 1회로 줄이려는 것은 말썽의 소지만 없애면 된다는 또 하나의 ‘뒤집어엎기’이다. 수능 시험의 시기, 배점, 횟수, 출제 경향에 대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

 

 

수능이 학교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젠 관심 없어

 

다시 질문해 보자. 수능이 끝났을 때 우리가 으레 하는 이야기의 특징은 무엇인가? 다양한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30년 전 도입 당시를 돌아볼 때, 우선 짚게 되는 특징은 ‘수능이 과연 학교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질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려웠나 쉬웠나, 변별은 어떻게 될 듯하나, 앞으로 대입 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하나 등, 대입(수능) 게임을 헤쳐 나갈 술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무성하지만, 시험이 학교 교육을 비트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일언반구도 찾아볼 수 없다.

 

올해 수능일에 있었던 출제위원장 브리핑은 수능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민낯’으로 보여준다. 학교 수업이나 학생들의 학습에 이번 수능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학생이나 학부모, 아니 국민은, 그 영향에 전혀 관심 두지 않으리라 전제하는 듯했고, 당연히 수능 출제 과정에서도 그런 문제에 신경 쓰지 않은 게 틀림없는 듯했다. 관련 기사들을 찾아 편집해 보면, 브리핑의 요점은 아래와 같았다.

 

킬러문항을 완전히 배제하려고 노력했으며 독립적으로 구성된 수능출제점검위원회의 확인을 받아서 (중고난도의)준킬러 문항도 충분히 걸러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적정 난이도 문항을 고르게 출제했다. 사교육 없이도 풀 수 있는 수준으로 맞췄다.
쉽게 출제하기 위해 EBS 연계 체감율을 높였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EBS 수능 강의 교재의] 그림을 약간씩 변형하고 그랬는데, 올해에는 연계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 가급적 그래프나 자료 등을 직접적으로 사용했다. 학생들이 문제를 보면 ‘이거는 EBS에서 풀어봤던 거구나’리고 파악할 수 있도록 해서 체감도를 높이려 했다.

 

출제위원장의 브리핑은 “킬러문항 배제에 주력하여 쉽게 출제했으며, 변별력을 확보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유의했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기사에 보이지는 않지만, 물론, 교육과정상 핵심적인 개념이나 원리를 출제에 충실히 반영했다는 설명도 형식적이나마 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수능 출제의 역점은 ‘쉬운 수능’에 있었으리라 짐작해 무리가 없을 테다. ‘킬러문항 배제’라는 대통령의 지시와 그에 따른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이 작년부터 못 박아 온 철칙이 그것이었다.

 

수능 관련해서 이제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 얘기는 온데간데없다. 수능이 고교교육을 더 이상 해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란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을 터이다. 수능과 관계없이 고등학교 교육이 이미 정상화되어서 그렇다고도 설명하는 것은 더욱 무리일 테다. 고등학교 교육은 수능으로 인해 더 없이 황폐해져 있다. 수능출제위원장의 브리핑이 입증해 주고 있다. 수능 대비 EBS 강의 교재에 있는 그래프나 자료 등을 그대로 이용해 출제했다지 않는가. 단순히 수험생들이 시험이 쉽다 느낄 수 있게 하려고 말이다. 얼마나 해괴한 출제 논리인가. 그렇게 출제된 시험이 학교 교육이나 학생들의 학습을 정상일 수 있게 둘 리 만무하다. 강의 교재의 단순 기억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무슨 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사교육 경감’ 같은 방책이 교육에 아랑곳없는 수능 이야기 조장해

 

해괴한 수능 출제 논리가 그냥 생겨난 게 아니다. 잘 알려졌듯이, 그것은 ‘사교육 경감’을 위해서 구축되었다. 수능 출제에서 으뜸 원칙은 사교육 경감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교육부는 늘 닦달해 왔다. 수능이 쉬워야, 그리고 수능을 준비하는 부담도 가벼워야 사교육이 줄어든다는 전제에 맹목적으로 매달려 왔다. 수능의 ‘EBS 연계율’을 높이는 방책, 특히 ‘체감 연계율’을 높이는 방책은 교육부의 발상과 주문에 가장 들어맞는 것이라 여겨진다.

 

교육부의 전제나 대책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단편적인지는 수능 시행 후에 나온 이야기들이 방증해 준다. 수능이 쉬워져서 어떤 일들이 벌어진다고 하는가? 대입 셈법이 복잡해져서 ‘엄밀한 전략’이 필요하게 됐다고 한다. ‘컨설팅’이란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상황이다. 또 수능 문제 하나 맞고 틀리는 데서 당락이 갈리게 되었다고 하니, 대입 실패를 ‘불운’ 탓으로 돌릴 이유는 더욱 커졌다. 재수(N수)를 다짐하는 경우는 당연히 늘어서, 이 또한 사교육을 증폭시킬 터이다. 게다가 대통령부터 외치는 ‘공정 수능’도 공염불이 된다. 성패가 운에 달렸다 여겨지는 판에 어찌 공정의 여지가 남겠는가. 적어도 수험생과 학부모의 심리에 ‘대입 공정성’을 수긍할 자리는 사라진다. 교육부는 ‘쉬운 수능’ 정책으로 무엇을 건졌는가?

 

참담하게도 이제 학교 교육은 사실상 없다. 입시를 축으로 하는 생존 게임이 있을 뿐이다. 수능이 학교 교육에 우선한다. 생존의 관건인 수능은 모든 국민에게 성가시다. 피하고 싶지만 부딪쳐야 하는 싸움이다. 그래서 ‘쉬운 수능’은 누구에게나 반겨질 법하다. 정부는 ‘국민’이 쉬운 수능을 원한다고 말한다.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낮은 점수보다 높은 점수에서 만족 얻는 건 당연하므로 쉬운 수능을 반길 만하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어려운 수능’을 통해 ‘변별’되기를 바라겠지만, 이 과제는 수능 출제기관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미룬다. 정부의 ‘정치적 계산’에서 ‘쉽지만 변별력은 갖춘’ 수능이 최적이라 낙점된 형국이다. 수능출제위원장은 그렇게 낙점된 수능을 지향했다고 브리핑했을 뿐이리라. 학교 교육에는 아랑곳없는 수능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이 글에서 세심히 들여다보려 엄두 내지 않는다.5 비틀린 학교 교육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수능을 고쳐야 한다고 제안할 생각은 더욱 없다. 수능을 고쳐 학교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글을 맺으며, 다만, 입시가, 시험이, ‘교육평가’가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따져보지 않는, 우리의 기이한 교육 이야기 행태를 새삼 되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 ‘교육’ 정책이 이런 사태에 이르도록 이끌어 왔다. 계속 이 길을 가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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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동아일보, 1993년 8월 19일. “수능시험 기대 반 우려 반”.
  2. 한국일보, 1993년 8월 20일, “7년 연구 검토 끝 마련 올 대입제도/ 교육 정상화 성패 가늠자”.
  3. 경향신문, 1993년 8월 26일. “수능시험 이후의 고교교육”.
  4. 한국일보, 1993년 11월 20일. “수능 시험 파동”(장명수 칼럼).
  5. 사실 그 연유에 대해 이미 몇 차례 이야기했다. 이를테면, ‘학교에서 입시 위주 교육은 어떻게 버젓해질 수 있게 됐나?’(2023년 1월 5일 게재) 참조.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강태중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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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1. 교사 수정 삭제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일전에 언급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국의 중등교육은 학교든 사교육이든 수요자와 공급자 개념의 시장논리속에 돌아가는 산업으로 정착된 것 같습니다. 일선 학교에서 교육의 다양한 접근방식을 고민하려고 해도, 막상 눈 앞에서 당장 수행해야 할 것은 교육부에서 강제적으로 던지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입시’측면에서 해석하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대학에서 선발결과를 통해 던지는 입시측면에서의 압박 외에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학습과학’이 수업내에서 실천해야 할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하지만, 학습과학이든 개별화 교육이든 간에 그 어떤 교육적 시도들도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입시’에서의 좋은 성과라는 지상과제 앞에서 무력화 됩니다. (만약 그것이 ‘입시’에 도움이 된다면 또 강제로 적용하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학력고사 시절이후 수능이 이어지고 있는 이 나라의 교육 역사 기간 내내 이어지는 생존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긍정주의자입다만, 한국의 교육이 바뀔거라는 기대는 하지 못합니다. 무슨 논리와 이론을 가져다 와도 결국 중등학교는 대학을 가기위한 ‘입시’의 중간역 정도의 역할만 기대되어지니까요. 특히,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교장, 교감들의 관습적인 사고와 행태가 학교를 고착화시키는데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칼럼을 쓰셨던 전종옥 교장 선생님처럼 교육의 다양한 주제들을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아쉽게도 저는 교사생활 중 그런 교장선생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완벽한 교육은 있을 수 없지만, 좀 더 나은 교육을 고민하는 대전제가 수렴되고 완성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참으로 답답합니다.

  2. 열천 수정 삭제

    정말 뼈가 저립니다. 올해 고3을 담당하고 어쩌다 교실이 이렇게 되었나? 너무 괴로웠는데……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진 분이 계셔서 그리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어 조금 위안이 됩니다.

  3. 이수진 수정 삭제

    너무나 좋은 글입니다. 수능의 본질이 흐려진, 주객전도 된 상황이 매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래세대를 살아가게 될 청소년들에게 전해져야 할 ‘가치’와 개인과 사회가 모두 건강할 수 있는 ‘방향성’들이 치열하게 고민되어야 할 시점이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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