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⑥] 기억의 오류와 그 놀라운 축복
| 학습과학은 뇌가 학습하는 원리에 관한 기존의 인지·신경과학 연구를 교수학습 실천과 연결합니다.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 교육계에서 학습과학을 실제 수업에 적용한 사례 및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그 첫 시리즈로 쉽고 재밌는 ‘켈리 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
기억 연구의 대가,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이야기
엘리자베스가 열네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삼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는 그 충격적인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수영장에 엎드린 채 둥둥 떠 있었다. “엄마! 엄마!” 하고 소리쳤지만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 생생한 기억이란! …… 그런데 사실은 …… 엘리자베스의 그 모든 기억이 거짓이었다. 실제로 엄마를 발견한 건 이모였고 엘리자베스는 그날 집에 있지도 않았다(Cherry, 2019).
그렇다면 그 생생한 기억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충격적인 경험은 삼십 년 동안 엘리자베스에게 약간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마흔네 살 생일파티에서 삼촌이 “네가 엄마를 발견했었지.”라고 말하면서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다른 가족들이 그 기억이 틀렸다고 말해주었고, 그때까지 엘리자베스는 잘못된 기억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삼촌의 단순한 말 한마디가 어떻게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기억을 촉발시킬 수 있었는지 경악했다. 그때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연구를 시작한 것이 결실을 맺어, 결국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는 세계 최고의 기억 이식 전문가가 되었다.
생생하지만 잘못된 기억. 혹시 로프터스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전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비범하게 뛰어난 자(서)전적 기억(highly superior autobiographical memory, HSAM, 일종의 장애로 ‘과잉기억증후군’이라고도 함)을 가진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잘못된 기억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로프터스는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사건’ 실험을 통해 이 사실을 밝혀냈다. 즉,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약 25%의 참가자들이 어린 시절 쇼핑몰에서 길을 잃었다고 기억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특히 트라우마(trauma)와 관련된 경우에는 잘못된 기억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Loftus & Pickrell, 1995). 이 연구 결과는 목격자의 증언은 반박할 수 없다는 법정의 오랜 통념에 도전장을 던졌다.
기억의 불완전성과 7가지 오류
그렇다, 기억은 불완전하다. 나쁜 기억력을 한탄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우리가 어떤 일을 기억할 때마다 그 사건에 대한 일화 기억 신경망이 발화되면서 해당 기억은 재구성된다.1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사건을 기억할 때는 그 사건의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화되어 떠오르는 경향이 있다. 연구에 의하면, 교통사고 목격 당시 받는 질문에 따라서도 기억이 왜곡될 수 있다. 즉, “차들이 부딪혔을 때”보다는 “차들이 세게 충돌했을 때”라고 물었을 때, 시속 15킬로미터 정도 더 빨리 달렸던 것으로 기억했다고 한다(McLeod, 2014).
고백하건대, 나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기억력 때문에 부끄러웠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젊은 청년이 내게 다가와 가족처럼 따뜻하게 인사를 하곤 했는데 적어도 한 달에 한 번꼴로 그랬다. 문득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아마 학생이겠거니 생각하고 나는 슬쩍 낚시성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수업은 좋았어요? 아직 졸업 안 했고요?” 그러다가 그 학생이 아내의 조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민망함이란!
안 좋은 기억력 때문에 당황스러웠던 그 수많은 순간을 어떻게 일일이 나열할 수 있을까? 지금 떠오르는 사례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몇 시간 동안 휴대폰을 찾다가 결국 화장실 휴지 받침대 위에서 찾은 것, 2) 프레젠테이션 도중 어떤 이론에 대해 설명하다가 뜬금없이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이름을 언급한 것, 3) 새롭게 떠올린 아이디어에 대해 흥분해서 이야기했을 때 동료가 유튜브에서 똑같은 내용을 봤다고 말했고, 그제서야 나도 기억난 것, 4) 아이들에게 디즈니랜드에서 벅스 버니(Bugs Bunny)를 만난 이야기를 신나게 했는데 오 저런! 벅스는 디즈니가 아닌 워너브라더스의 대표 캐릭터였던 것 등…… 정말이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버드대학교의 대니얼 샥터(Daniel Schacter)는 저서 『도둑맞은 뇌-뇌과학이 발견한 기억의 7가지 오류(The Seven Sins of Memory)』에서 잘못된 기억을 다음과 같이 7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 일시성(transience)2 –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변하고 약해지는 것
• 부주의(absent-mindedness)3 –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기억하지 못하는 것
• 차단(blocking)4 – 다른 기억이 부호화(encoding) 또는 회상(recall)을 방해하는 것
• 오귀인(misattribution)5 – 무언가를 정확히 기억하지만 그 출처를 잘못 기억하는 것
• 암시성(suggestibility)6 – 나중에 제공된 정보나 암시에 의해 기억이 왜곡되는 것
• 편향(bias)7 – 사건에 대한 감정이 개입되어 부분적으로 혹은 부정확하게 기억하는 것
• 집착(persistence)8 – 부정적인 기억을 머릿속에서 떨쳐내지 못하는 것
앞서 소개한 사례를 위 7가지 범주로 돌아본다면, 조카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기억의 ‘일시성’에 해당된다. 모든 기억은 상황 맥락을 갖기 때문에 학생들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어떤 학생을 교실에서 혹은 수업 시간에 본다면 취미, 동아리, 단짝 친구 등 세세한 것까지 기억나지만, 그 학생을 쇼핑몰에서 만나면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화장실에 휴대폰을 두고 온 것은 ‘부주의’에 해당된다. 프레젠테이션 도중 인용한 학자를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의 이름으로 잘못 말하고, 유튜브에서 본 아이디어를 나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라 믿었던 것은 ‘오귀인’이었다. 마지막으로 디즈니랜드에서 벅스 버니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기억의 ‘일시성’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암시성’에 해당된다. 어쩌면 나는 그 기억이 이식되는 실험에 피험자로 참여했을 수도 있다(Schwarz, 2001)… 아니, 내가 정말 그랬었나?… 아니면, 예전에 그 실험에 대한 내용을 읽었던 건가?
샥터(Schacter, 2002)가 ‘깨지기 쉬운 힘’이라고 표현했듯이 기억은 놀랍도록 불완전하다. 이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큰 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실, 정말 중요한 점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불완전한 기억이 축복인 이유
감히 말하건대, 불완전한 기억은 엄청난 축복이다. 과연 그럴까? 유동적인 기억은 우리 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그것은 기억들을 흐릿한 원형(archetype)으로 결합한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것은 삭제하고 나머지는 합치면서 세상을 더 쉽게 탐색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라고 하면 개에 대한 모든 경험, 즉 시각, 운동감각, 청각, 체성감각, 후각 경험을 하나의 원형 모델로 통합한 신경 표상, 즉 일반적인 내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렇게 하면 빠르고 효율적이다. 반면, HSAM(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개’라는 단어가 트리거(trigger)가 되어 개와 관련된 모든 개별 기억이 세세한 부분까지 끝없이 떠오른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본질적으로 뇌는 완벽한 기억을 가능케 하는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고충을 토로한다. 피곤할 뿐만 아니라 이해 속도를 늦춘다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불완전한 기억은 축복임에 틀림없다.
『도둑맞은 뇌-뇌과학이 발견한 기억의 7가지 오류』 출간 이후 10년 만에 샥터(Schacter)는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내가 그의 입장을 조금 과하게 해석했다는 이메일을 보낸 바 있다.) 기본적으로 뇌는 예측 기계이다. 일화 기억 혹은 모든 기억의 목적은 우리가 즉각적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의식적으로, 억제할 수 없이, 부지불식간에 예측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녀는 아마 이렇게 할 거야.”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저 사람을 칠지도 몰라.” 이러한 예측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나, 심지어 겪어본 적 없는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전형적인 행동 모델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바로 기억이 하는 일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예측이 실패할 때만 기억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도파민이 분비되어 예측을 수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교실에서의 시사점
기억이란 게 생각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신비롭지 않은가? 그렇다면 교실에서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여기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여러분에게도 더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바란다.
1) 시험 문항 : 특정 세부 사항을 묻는 문항은 만들지 않는다. 학생들은 그런 세세한 내용은 아직 부호화하지 못했고, 따라서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대신 전체적인 내용과 추론에 관한 문제를 출제한다.
2) 기억력 향상 : 중요한 내용을 기억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든다. 학생들의 주의를 온전히 집중시킬 수 있는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고, 여러 감각을 사용하는 다감각 입력과 새로움(novelty)을 활용한다. 오랑우탄!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정보를 제공한다. 퀴즈를 낸다. 주의가 분산되지 않도록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벌을 창문 밖으로 내보낸다.
3) 감정 유도 : 정보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그녀는 수영장에서 어머니를 발견했다.” 이 문장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더 쉽게 학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 또 무언가를 설명할 때 “이건 시험에 나올 거야.”라고 말하면 학생들이 더 집중할 수 있다.
4) 수면 시간 : 가르친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의 수면 시간을 확인한다. 새로운 기억이 장기기억으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8시간의 수면이 필요하다. 오랑우탄.9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축복이다. 불완전한 기억을 칭송하며 샥터가 말한 “깨지기 쉬운 힘”이라는 표현을 다시 생각해 보자. 깨지기 쉽다는 것은 단단하고 섬세해서 부서지기 쉬운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제 기억을 어떤 상황에도 맞출 수 있는, 부드럽고 유연한 점토 같은 것으로 생각해 보자. 깨지지 않고, 쉽게 구부러지고, 자유롭게 변형되는 것 말이다. 정말로, 불완전한 기억은 진정한 축복이다.
| 이 칼럼은 코리아테솔(Korea TESOL)의 ELT 잡지 <The English Connection>(Spring 2020 Volume 24, Issue 1)에 영문으로 실린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박사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원본은 https://koreatesol.org/content/english-connection-tec에서, 더 긴 버전은 <MindBrainEd Think Tanks>(mindbrained.org)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Reference>
• Cherry, K. (2019). Elizabeth Loftus biography. Verywellmind. Retrieved from https://www.verywellmind.com/elizabeth-loftus-biography-2795496
• McLeod, S. A. (2014, Jan 11). Simply Psychology.
https://www.simplypsychology.org/loftus-palmer.html
• Schacter, D. L. (2002). The seven sins of memory: How the mind forgets and remembers. Houghton Mifflin.
• Schwartz, J. (2001). ‘I tawt I taw’ a bunny wabbit at Disneyland; New evidence shows false memories can be created. UW News. University of Washington. Retrieved from:
https://www.washington.edu/news/2001/06/11/i-tawt-i-taw-a-bunny-wabbit-at-disneyland-new-evidence-shows-false-memories-can-be-created/
• Strange, D. & Clifasefi, S. & Garry, M. (2007). False memories. In Garry M; Hayne H (eds.). Do Justice and Let the Sky Fall: Elizabeth F. Loftus and Her Contributions to Science, Law, and Academic Freedom. Mahwah, NJ: Lawrence Erlbaum Associates. pp. 137–68.
각주
- 신경망이 발화될 때마다 연결이 더 강해진다. 게다가 “함께 발화되는 뉴런(neuron, 신경세포)은 서로 연결”되므로, 이 글을 읽을 때 엘리자베스라는 친구를 떠올리면 연상기억으로 인해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
- 일시성(transience)은 ‘덧없음, 망각, 소멸’ 등의 용어와도 혼용됨
- 부주의(absent-mindedness)는 ‘멍 때림, 정신없음’ 등의 용어와도 혼용됨
- 차단(blocking)은 ‘막힘’과도 혼용됨
- 오귀인(misattribution)은 ‘착오’와도 혼용됨
- 암시성(suggestibility)은 ‘피암시성’과도 혼용되는데 이 둘은 같은 개념으로 암시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함. 암시성은 ‘주는’ 측면을, 피암시성은 암시를 ‘받는’ 측면을 강조한 표현
- 편향(bias)은 ‘편견’과도 혼용됨
- 집착(persistence)은 ‘지속성’과도 혼용됨
- 커티스는 이 아이디어에서 ‘오랑우탄’이 여러 번 등장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받자, 참신함과 반복이 기억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답했다. 이와 같은 기법은 학습이나 교육 과정에서 ‘새로움 효과’(novelty effect)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커티스 켈리(Curtis Kelly)는 교육학 박사이며, 일본 간사이대학교(Kansai University) 영어과 교수이다. 인생 사명은 "교실에서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인기 있는 강연자이자 작가로서 500회 이상의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며, 35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다. 대표적 저서로는 『Significant Scribbles(중요한 낙서)』(Longman), 『Active Skills for Communication(능동적 의사소통 기술)』(Cengage), 『Writing from Within(내면으로부터의 글쓰기)』(Cambridge) 등이 있다. 뇌과학과 언어교육을 연결하는 무료 잡지 <MindBrainEd Think Tanks>의 구독을 독자들에게 적극 권유한다. ctskelly@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