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⑤] 느린 뇌가 더 똑똑하다 : 교육의 새로운 시선
| 학습과학은 뇌가 학습하는 원리에 관한 기존의 인지·신경과학 연구를 교수학습 실천과 연결합니다.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 교육계에서 학습과학을 실제 수업에 적용한 사례 및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그 첫 시리즈로 쉽고 재밌는 ‘켈리 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
뇌 발달 차이: 빠른 아이 vs. 느린 아이
우리 모두는 그런 아이들을 만나본 적이 있다. 뇌 발달이 빠른 아이와 느린 아이, 즉 똑똑해 보이는 아이와 뒤처지는 아이 말이다. 특히 어린 학습자를 가르치는 교사일수록 그 차이를 잘 안다. “이 아이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네.” 이 상황은 4살 아이에게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7학년 학생에게 대수학을 가르치거나, 중학생에게 문법 규칙을 가르치는 상황일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을 좀 더 들여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주의 깊게, 그리고 완벽하게 설명해야 한다. 간단한 단계로 나누어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다. 정말 간단하다. 이렇게 하면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아이도 이해했다고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다시 과제로 돌아가면 아이는 또 실패한다. 이쯤되면 교사도 포기하게 된다. 이 아이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 아이가 왜 이 수업을 듣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 아이는 어쩌면 느린 학습자이거나, 똑똑하지 않은 아이일 것이다. 사실, ‘똑똑하지 않은 아이’라는 표현은 교사가 절대 입에 담아서도, 머릿속에 떠올려서도 안 될 ‘멍청이’라는 표현을 순화한 것이다. 아이가 느리다는 가정과 똑똑하지 않다는 가정, 둘 다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시간이 만든 변화: 나이와 학습 능력
사실은 내가 바로 그 아이였다. 나는 10학년 때 필수 과목인 기하학을 들었다. 기하학적 정리와 증명을 배웠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막힘없이 정리를 증명해 나갔지만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맸다. 그래서 수업을 중도에 포기해 버렸다. 당시 고등학생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1년 후 나는 그 수업을 다시 들었다. 선생님도 같았고, 교재도 같았고, 심지어 증명해야 할 정리도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것이 쏙쏙 이해되었다. 정말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적게 공부했는데도 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10학년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11학년 때는 완벽하게 이해했다. 가족이나 건강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것도 아니었으며, 다른 수업에서 기하학에 대한 통찰을 얻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학생도, 상황도 모든 것이 같았는데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사이에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그저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진 것, 그게 모든 차이를 만들었다.
피아제의 발달 이론
왜 그런 결과가 생긴 걸까? 장 피아제(Jean Piaget)의 이론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예전에는 똑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충분한 훈련만 받으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피아제는 이와는 다른 사실을 밝혀냈다. 생물학적 발달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7살짜리 아이는 컵에 있는 물을 다른 모양의 컵으로 옮겨 부어도 그 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6살짜리 아이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능력은 구체적 조작기(concrete operational stage, 7~11세)에 발달한다(McLeod, 2018). 형식적 조작기(formal operational stage, 12세~성인기)에는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연역적, 삼단논법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내 경우에는 기하학 정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다른 연구자들의 비판과 보완에도 불구하고 피아제의 이론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여겨진다(Cherry, 2012). 또한, 미국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의 청소년 뇌인지 발달연구(The Adolescent Brain Cognitive Development, ABCD)1는 뇌 발달의 단계를 더욱 면밀히 살펴볼 수 있도록 테라바이트 규모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Casey, 2018). 이러한 연구는 뇌 발달과 인지 능력을 설명하지만, 이것이 혹시 뇌 발달이 ‘느린’ 사람들이 지적으로도 ‘느린’ 사람이라는 뜻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더 높은 지능의 조건
기하학 수업을 들은 지 몇 년 후, 나는 과학 작가 스티븐 J. 굴드(Stephen J. Gould)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그가 거듭 강조한 주장이 내 눈길을 끈 것이다. 모든 종(species)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발달(성장)의 기본 규칙은 고등 뇌일수록 발달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침팬지의 뇌는 생김새도 발달 경로도 인간의 뇌와 매우 유사하지만, 약 3세 정도가 되면 발달이 멈춘다. 그 이후로 침팬지가 세 살 아이 수준 이상의 정보처리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하는 것과 달리, 인간은 성인기까지 계속 발달하여 협력, 언어, 더 높은 수준의 추상적 사고 능력 등을 발달시킨다(Tomasello, 2014).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발달 속도와 인지 능력의 관계가 모든 종에게 공통된 것이라면, 같은 종 내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증거에 따르면 그렇다. 발달과 함께 증가하는 피질(cortex)의 두께는 인간의 높은 지능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높은 지능에 도달하려면 뇌 발달이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국립정신건강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의 제이 N. 지드(Jay. N. Giedd) 박사에 따르면, “IQ가 높은 아이들의 경우, 생각하고 계획하며 추론하는 데 사용되는 뇌 영역의 발달이 또래보다 2년 늦게 이루어진다. …… 또래 아이들처럼 읽기나 수학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가 몇 년 후에는 그들보다 훨씬 더 잘할 수도 있다.”(Savage, 2006, 2항)
19세쯤 되면 모든 뇌가 동일한 발달 수준에 도달하지만 더 오랜 시간이 걸린 뇌일수록 가장 높은 수준의 지능을 보인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드에 의하면, 우리가 ‘느린 아이’(사실, 우리는 이 말이 얼마나 옳은지도 알지 못한다)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가장 똑똑한 아이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끔찍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를 ‘더 똑똑한 뇌 처벌’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아이들을 발달 수준이 아니라 연령대로 나누고, 시험 점수를 비교하여 똑똑한 아이와 똑똑하지 않은 아이로 구분한다. 흥미롭게도 ‘똑똑하지 않은’ 그룹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토머스 에디슨, 월트 디즈니, 에이브러햄 링컨, 찰스 다윈, 빌 게이츠, 폴 앨런, 제임스 다이슨, 조앤 롤링, 마크 저커버그, 앨버트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 등 수많은 인물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모두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느린 아이들의 잠재력: 교육의 불공평을 바로잡아야 할 이유
우리는 느린 아이들을 처벌한다. 이것이 모든 교육 시스템의 토대가 되는 원칙이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픈 일이다. 내가 기하학 수업에서 유일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였을 때, 반 아이들은 나를 멍청이로 생각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1년 후, 나는 완벽하게 이해했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다. 나에 대한 판단이 이미 내려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학교 성적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더 똑똑한 뇌 처벌’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어지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가장 똑똑한 아이들을 배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논의한 내용을 아는 것만으로도 좋은 출발점이며, 다른 교사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들을 더 직접적으로 처벌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 사실, 즉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는 단지 늦게 꽃을 피우는 것일 뿐이며, 그것이 오히려 더 높은 지능의 신호일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줘야 한다.
우리는 더 현명한 교육자가 될 기회가 있다. 우리의 선배들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 ‘느린’ 아이들에게, 사실 더 똑똑한 아이들이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다. 그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끈기 있게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능력이 본성과 양육의 조합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고난 본성이야 어찌할 수 없지만 후천적인 양육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 이 칼럼은 코리아테솔(Korea TESOL)의 ELT 잡지 <The English Connection>(Winter 2019 Volume 23, Issue 4)에 영문으로 실린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박사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원본은 https://koreatesol.org/content/english-connection-tec에서, 더 긴 버전은 <MindBrainEd Think Tanks>(mindbrained.org)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Reference>
• Casey, B. J., Cannonier, T., Conley, M. I., Cohen, A. O., Barch, D. M., Heitzeg, M. M., … & Orr, C. A. (2018). The adolescent brain cognitive development (ABCD) study: imaging acquisition across 21 sites. Developmental cognitive neuroscience, 32, 43-54.
• Cherry, K. (2012). Support and criticism of Piaget’s stage theory. VeryWellMind. Retrieved from: https://www.verywellmind.com/support-and-criticism-of-piagets-stage-theory-2795460
• McLeod, S. (2018). Jean Piaget’s Theory of Cognitive Development. Simply Psychology Retrieved from https://www.simplypsychology.org/piaget.html
• Savage, S. (2006). Smart kids may get a slow start: New study shows intelligence has more to do with how a brain develops in children than its overall size. Redorbit. Retreived from https://www.redorbit.com/news/health/449958/smart_kids_may_get_a_slow_start_new_study_shows/
• Shaw, P., Greenstein, D., Lerch, J., Clasen, L., Lenroot, R., Gogtay, N. E. E. A., … & Giedd, J. (2006). Intellectual ability and cortical development in children and adolescents. Nature, 440(7084), 676.
• Tomasello, M. (2014). A natural history of human thinking. Boston: Harvard University Press.
각주
커티스 켈리(Curtis Kelly)는 교육학 박사이며, 일본 간사이대학교(Kansai University) 영어과 교수이다. 인생 사명은 "교실에서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인기 있는 강연자이자 작가로서 500회 이상의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며, 35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다. 대표적 저서로는 『Significant Scribbles(중요한 낙서)』(Longman), 『Active Skills for Communication(능동적 의사소통 기술)』(Cengage), 『Writing from Within(내면으로부터의 글쓰기)』(Cambridge) 등이 있다. 뇌과학과 언어교육을 연결하는 무료 잡지 <MindBrainEd Think Tanks>의 구독을 독자들에게 적극 권유한다. ctskelly@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