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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정보처리와 입시중심 교육이 초래한 터널 비전

#1093 김새로나, 김해 삼문고등학교 수석교사 2024.07.31
“우리가 만성적으로 터널 비전을 통해서 세상을 인식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생존 가능성을 낮출 것이다. 불행하게도, 만성적 터널 비전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본문 발췌)                         

 

 

선택적 정보처리

 

‘흠, 이런 일이 있었다고? 정말?’ 가끔 예전 사진을 훑어보며 떠오르는 생각이다. ‘정말? 그랬었다고? 여기 그 사람이 있었어? 이 사람하고 내가 이야기를 나눴단 말이지?’ 사진 속에는 나와 어떤 이가 한 장소에서 환하게 웃으며 마주 보고 있는데, 나는 그때 내가 그 사람을 만났었다는 사실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소 심각하게 걱정이 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현상을 나만 겪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심리학 및 신경과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다이나믹 메모리 연구소(Dynamic Memory Lab)의 소장인 차란 랑가나스(Chara Ranganath)는 그의 책 ‘왜 우리는 기억하는가: 중요한 것을 간직하기 위한 기억의 힘의 활용1’에서 자신이 직접 촬영한 딸의 생일파티 영상 속의 이야기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전에 자신이 촬영하였던 영상을 보면 사랑하는 딸의 생일파티에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지만, 생생하고 풍부한 기억이 머리에 떠오르기는커녕 영상 속에서 펼쳐지는 대부분의 일들을 마치 처음 보는 일처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관찰한 것이다.

 

기억에 대한 전문가인 랑가나스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상당히 위로되는 설명을 제공한다. 그가 인용한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의 경우 평균적으로 하루에 34 기가바이트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에 노출되고, 그 모든 정보를 기억하는 것은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34 기가바이트의 메모리에는 1.5 기가바이트에서 3기가바이트를 차지하는 영화를 11편에서 22편 저장할 수 있다. 한 페이지에 약 2킬로 바이트의 텍스트가 포함된다고 하면, 34기가바이트는 300페이지짜리 책 5만 8천 권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것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또 어떤 것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 도대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게 되는 것일까?

 

랑가나스는 우리가 어떤 것을 기억하고 어떤 것을 잊게 되는지, 그의 딸의 생일 영상과 관련하여 또 다른 흥미로운 일화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당황스러운 사건의 전개로 영상을 촬영할 수 없었던 딸의 생일파티에 대해서는 그가 매우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소중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하여 영상 촬영에 몰두하였던 생일파티는 거의 기억하지 못했지만, 영상 촬영을 할 수 없었던 생일파티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일까?

 

랑가나스에 의하면, 생생한 기억을 위하여 영상이나 사진 촬영에 몰두할 경우,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은 해당하는 상황에 존재하는 소리, 정서 반응, 냄새, 생각 등의 다양한 정보를 걸러내고 시각적 정보에 초점을 맞추어 정보를 처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진 촬영의 행위는 인간으로 하여금 다양한 정보 중 일부 정보(시각적 정보)에 초점을 두어 정보를 처리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장기기억에 상대적으로 협소한 맥락 정보를 저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협소한 맥락 정보는 우리가 해당 상황을 기억하기 위하여, 즉 장기기억으로부터 유관 정보를 인출하기 위하여 활용할 수 있는 인출단서가 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2

 

이 아이러니한 현상은, 의식과 사고의 발생 장소라고 할 수 있는 작업기억(working memory)에서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한정된 반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량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발생한다.3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한정되므로 주어진 정보 중 한정된 정보만 선택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택적’ 정보처리는 인간의 숙명이다.

 

 

선택적 정보처리와 터널 비전(tunnel vision)

 

‘선택적 정보처리’는 보통 ‘작업기억의 한계’라는 맥락에서 논의되므로, 자칫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작업기억의 한계에 의한 선택적 정보처리는 인간이 위대한 문명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한 인지적 배경이 되기도 한다. 작업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은 처리할 정보를 선택하고 압축해야 하며, 이 압축 과정에서 발생한 추상화된 개념적 이해가 인간으로 하여금 문제 해결과 창의적 사고를 포함한 ‘정신적 도약’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4

 

선택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우리가 위급한 상황에 맞닥트렸을 때 극적인 기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산속에서 곰을 만난 경우, 우리의 몸은 자동적이고 본능적으로 곰에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는 데 최적의 상태로 전환된다. 심장박동수가 증가하여 더 많은 혈액을 근육과 뇌로 공급하는 한편 소화기관으로 가는 혈류를 감소시켜 근육과 뇌로 가는 혈액을 최대한 확보한다. (당신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소화불량을 경험한다면, 당신의 뇌는 아마도 그 상황을 싸우거나 도망쳐서 살아남아야 하는 위협이 존재하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최대한의 혈류를 뇌와 근육으로 보내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소화기관으로 가는 혈류를 억제하고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극한 위험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하여 우리는 한시적으로 터널 비전(tunnel vision)을 갖게 한다. 생존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정보에 집중하고 신속하게 반응하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다. (컴컴하고 긴 터널에 들어간 자신을 상상해 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저 멀리 터널 입구가 조그맣게 보일 것이다. 입구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우리가 주목하는 유일한 정보가 되고, 다른 정보는 어둠 속에 묻혀있다. 이 컴컴한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터널 입구와 입구에서 들어오는 정보에 집중해야 한다!5) 위급한 상황에서 터널 비전은 우리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정보에만 주의를 기울여 극단적으로 선택적인 정보처리를 할 수 있게 한다. 산속에서 곰을 만났다면, 살아남을 궁리에 필요하지 않은 정보에 주의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 산들바람이 불어 향기로운 꽃향기를 날라다 주어도, 그런 정보에 주의를 빼앗길 여력 따위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위급한 상황에서의 터널 비전은 우리의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극단적 형태의 선택적 정보처리는 양날의 검이다. 정보를 선택하여 인지한다는 것은 선택되지 않은 정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상황과 관련된 부분적 정보의 선택적 인지는 해당하는 상황을 더욱 정교하게 분석하고 종합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상황에 대한 부정확한 인지는 정교한 예측과 적절한 대처 방법 선택에 한계를 짓는다6.

 

 

만성적 터널 비전의 위험성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어려워지더라도, 위급한 상황에서 터널 비전은 우리의 생존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우리가 만성적으로 터널 비전을 통해서 세상을 인식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생존 가능성을 낮출 것이다. 선택적 정보처리는 현상을 정교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한계를 부여하고, 터널 비전은 선택적 정보처리의 극단적 예인 만큼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인지에 더욱더 큰 한계를 부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만성적 터널 비전은 상황에 대한 적절한 파악과 예측, 그리고 대처를 불가능하게 한다.

 

불행하게도, 만성적 터널 비전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알고리즘에 의해서 제공되는 정보가 결정되고, 즉각적으로 제시되는 불특정 다수의 반응이 정량적이고도 즉각적으로 제공되는 SNS를 통하여 주로 세상과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면, 그는 만성적 터널 비전을 통해 세상과 자신을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뉴욕 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의 교수인 사회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는 그의 저서 ‘불안 세대7’에서 온라인 세상의 넓고 얕은 관계로 오프라인 세상의 (상대적으로) 좁고 깊은 관계를 대체한 세대가 어떻게 불안의 늪에 빠져드는지를 탄탄한 이론과 데이터에 기반하여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에 의하면, 애플이 핸드폰 전면에 카메라 렌즈를 설치함으로써 ‘셀카8’를 찍는 것이 용이하게 된 2010년 이후, 그리고 이러한 사진을 공유하기에 편리한 인스타그램이 세상에 나온 2011년 이후, 수없이 많은 소녀는 자신의 가치를 온갖 필터에 의해 미화된 완벽한 타인의 이미지, 그리고 자신의 미화된 이미지와 비교하여 가늠하게 되었다9. 또한 자신을 잘 이해하고 귀하게 여기는 지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인정 여부(‘좋아요’ 반응 수)에 근거하여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상황은 이들 세대 중 다수를 낮은 자존감과 깊은 우울, 그리고 극심한 불안의 수렁으로 집어넣었다. ‘타인의 인정’과 ‘외모’를 렌즈로 하는 만성적 터널 비전이 빚은 비극이다.

 

공교육 현장의 터널 비전

 

만성적 터널 비전은 ‘불안 세대’에서만 관찰되는 것이 아니다. 공교육 현장에도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터널 비전이 존재한다. 바로 ‘입시’라는 렌즈를 장착한 터널 비전이다.

 

“고등학교 교육의 생명은 입시입니다.” 몇 년 전 함께 근무한 교장선생님이 부장 회의 중 종종 하신 말씀이다. 그분은 이미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교사에게 부가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학교를 잘 운영하려고 노력하신, 매우 온화한 성정의 관리자였다. 선생님들께 큰 부담을 주지 않으셨고, 나름의 최선을 다해 학교를 운영하신 분이었기에, 그분을 개인적으로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실, 이 땅의 수없이 많은 부모님과 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은 ‘고등학교 교육의 (실질적) 생명은 입시다.’라는 그분의 말씀에 적어도 내심으로는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명제가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표현될 때마다, ‘입시가 생명이라면,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못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고통스럽게 마음 한구석을 비집고 나온다.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는 터널 비전을 갖게 된다. 생명을 구하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도 다급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인 ‘입시’를 위하여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것은 인지하거나 고려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학교의 본질적 기능을 추구하는 것이 ‘입시’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 학교의 본질적 기능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교의 본질적 기능을 인지하는 것조차 간과될 수 있다. ‘입시가 생명’이라는 터널 비전이 ‘교육의 본질을 포기하는 것’조차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다소 엉뚱한 전개일 수 있지만, ‘생명처럼 중요한 입시’라는 접근은 나에게 ‘자기 생각을 포기하는’ 서울대 최우등생들에 대한 이혜정 박사의 글을 떠올리게 한다. 이혜정 박사는 2014년 발간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서울대 최우등생 46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결과를 분석하였다. 이 인터뷰 결과에 대하여 이혜정 박사는 큰 충격을 받는데, 그것은 “만약 본인이 교수님과 다른 의견이 있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본인의 생각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을 시험이나 과제에 쓰면 A+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응답 대상자의 90%에 해당하는 41명의 학생이 ‘자신의 의견을 포기한다’라고 응답했기 때문이었다.10

 

이것은 실로 충격적인 결과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다니는 서울대 학생이, 그리고 가장 높은 학점을 받음으로써 서울대 학생들 중에서도 최우등생으로 분류되는 학생들이, 교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고 ‘자기 생각이 교수의 생각보다 더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왜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이혜정 박사에 의하면 이러한 반응 뒤에는 당위적 인식과 전략적 접근이라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당위적 인식이란, 교수가 학생보다 지적으로 우수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다를지라도 교수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을 지칭하는 것이고, 전략적 접근이라는 것은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서 교수에게 반박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는 내용의 답안을 작성하는 접근을 지칭한다. 당위적 인식에 의해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았던 혹은 전략적 접근에 의해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았던, 교수와 다른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은 것은 얼핏 생각하면 꽤 합리적인 반응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혜정 교수가 책에서 밝혔듯이, 이것은 실로 충격적인 반응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의 그러한 반응이 충격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학생들의 당위적 인식이 충격적인 이유는 이러한 반응이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 순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응답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권위자의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왜 옳지 않은지에 대한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사고 없이 권위자의 생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권위자’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는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사는 권위자의 의견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 초래한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다.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은 사유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사유가 악의 근원이 되는 전제와 원칙을 검토하려고 해도, 사유는 (악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어떠한 전제와 원칙도 발견하지 못하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악은 사유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사유를 거부하므로 전제와 원칙 따위는 없다) 그것이 바로 악의 평범함이다.11”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학생들의 전략적 접근 역시 충격적이다. 그들이 학점이라는 개인적 이득을 위해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지적 정직성(intellectual honesty)을 위배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들의 전략적 접근은 해리포터 1편(마법사의 돌) 후반부에 나오는 악한 영령의 대사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 악령은 ‘선과 악이란 없어. 오로지 권력만 있고 나약한 이는 그 힘을 못 찾을 뿐이야. 우리 함께 굉장한 일을 해내자. 그 돌을 이리 넘겨!’라고 해리포터를 유혹한다. 학생들의 전략적 접근이 충격적인 이유는 그들의 전략적 접근이 ‘알고 모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오로지 높은 학점만 있을 뿐이야. 나약한 이는 고학점을 받지 못하지.’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껏 학점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4년의 교육기간 동안 학점을 위해 지적 정직성을 반복적으로 위배한다면, 혹여나 그들의 마음속에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씨앗이 싹틀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곡학아세. 학문적 진실이나 원칙을 무시하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자신의 학문을 왜곡하거나 타협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학점을 위해 학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곡학아세의 싹이 되지 않을까.

 

이 작은 씨앗과 같은 사소하고 하찮은 행동이 우려되는 이유는, 인간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극도로 불편해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 태도, 또는 믿음의 불일치를 인식할 때 발생하는 불쾌한 심리적 상태를 지칭하는 인지부조화는 매우 불편한 상태여서, 개인은 이러한 불쾌함을 해소하려고 매우 적극적으로 의식적, 무의식적인 노력을 하게 된다. 즉, 행동, 태도 또는 믿음을 변경하여 이들 사이의 일관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개인은 일관성 회복을 위하여 행동을 수정하기보다는 믿음을 수정한다. 따라서 작은 잘못된 행동은 개인이 그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믿음을 수정하게 하고, 수정된 믿음은 잘못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도록 하며, 결과적으로 개인은 더 높은 수위의 잘못된 행위를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심리적 기제가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공교육 현장의 터널 비전을 이야기하다가 뚱딴지같이 서울대 우등생의 태도에 대해서 살펴보는 이유는, 그 41명의 서울대생과 그들의 학문적 태도가 결국은 입시 위주의 대한민국 공교육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입시를 위해 교육의 본질이 포기된 고등학교에 3년간 몸담은 것이, ‘본인이 교수님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고 자기 생각이 더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자기 생각을 표현하였을 때 A+를 받을지 확신이 없다면’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는 태도를 갖게 한 것은 아닐까.

 

많은 고등학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특정 대학에서 선호하는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의 유형을 상세히 안내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재능이 있는지, 무엇에 의해서 충족감을 느끼는지를 탐색하기도 전에, 자신이 어떤 모습이어야 그들이 좋아해 줄 것인지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기회 제공 기관인 그들의 입맛에 맞게 자신을 포장하고, 겹겹으로 싸인 포장에 가려진 자신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 이득(입시)을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진리 탐구를 포기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너무나 큰 논리적 비약일까. 입시를 위해서 정체성 탐색을 포기하는 것을 격려하는 행위가 입시라는 터널 비전에 의해서 정당화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득, 과학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국제대회에 나가는 아이들의 영어 발표를 도와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특정 주제에 대한 연구과정과 결과를 영어로 발표하는 것을 도와줄 때, 예상 인터뷰 질문을 뽑아서 훈련시키곤 했는데, ‘연구를 왜 하게 되었는가?’와 ‘후속 연구로 어떤 것을 더 연구해 보고 싶은가?’는 당연하게도 항상 예상질문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두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는 아이들을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지도교사 혹은 지도교수에 의해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만의 연구 동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구 동기가 없었던 아이들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향후 관련하여 연구하고 싶은 주제 역시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좋은 인터뷰 결과를 기대할 수 없게 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지도교수나 지도교사에게 연락하여 연구 동기와 향후 연구 방향 설정에 대해 추가 지도를 받도록 하곤 했다. 그런데, 그것이 잘한 일이었을까? 괴롭지만, 잘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거짓말을 준비시킨 것이었으니 말이다.

 

수없이 많은 ‘탐구가 없는 탐구보고서’도 떠오른다. 도대체 탐구보고서에 왜 탐구가 없는 것일까? 최근 우연히 접한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의 한 보고서를 작성한 선생님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과정을 통한 학생의 성장이 아닌 결과 중심의 학생부 기록을 위한 주제 선정에만 너무 천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많은 학생들이 겪는 당황스러움은 지금까지 ‘탐구과정’이라는 것을 학습한 적도, 누군가가 ‘탐구 과정’을 진정성 있게 가르쳐 준 적도 없다는 점이다. 많은 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탐구 과정’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단시간의 특강으로 ‘보고서 작성 방법’에 관한 내용만을 사전 교육으로 받고 보고서 제출을 요구받는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탐구 과정 = 보고서 작성 활동’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주변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지식을 직접 논증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사고하고 증명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직 겪어보지 못한 진로 희망 분야의 거대 주제에 대해 거창한 제목을 생각해 내고 각종 논문과 도서, 인터넷 자료 등 다른 사람의 지식을 검증 없이 수용하고 이를 정리해 보고서로 작성하는 경험을 한다.

 

(밑줄은 강조를 위해 저자에 의해 더해짐)

 

아이들의 진학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탐구대회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그리고 ‘진로 희망 분야의 거대 주제에 대해 거창한 제목을 생각해 내고 각종 논문과 도서, 인터넷 자료 등 다른 사람의 지식을 검증 없이 수용’하는 활동을 격려하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탐구 과정을 진정성 있게 가르쳐 준 적도 없었다’라는 표현이 특히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논증의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논증을 수행하게 하면 아이들은 논증, 즉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종합적인 사고를 통해 탐구하는 것과 타인이 정리해 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구분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이 시대, 그리하여 미디어 리터러시가 강조되는 이 시대에, 탐구활동의 과정은 간과되고 ‘진로 희망 분야의 거대 주제에 대해 거창한 제목을 생각해 내고 각종 논문과 도서, 인터넷 자료 등 다른 사람의 지식을 검증 없이 수용하고 이를 정리해 보고서로 작성’하는 것을 ‘탐구’ 활동으로 허용하는 것은 이것이 입시를 위해 활용될 좋은 세부 능력과 특기사항 자료가 되기 때문이 아닌가.

 

학기 말이 다가올 때마다 교사들에게 제공되는 ‘과세특 작성 안내’의 내용도 떠오른다. 우리 학교 학생이 ‘돋보이도록’ 하는 과세특 작성 팁이 깨알같이 제시된 자료들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학생이 교과 개념을 깊이 있게 이해하여 소폭의 전이(near transfer)뿐만 아니라 광폭의 전이(far transfer)까지 스스로 척척 해 냈다는 것이 생기부에 표현되면 대학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러한 안내의 영향 때문인지, 기말고사 후에는 각 교실에 다양한 교과의 ‘심화 발표 신청서’가 게시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기말고사 이후 어정쩡한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고자 하는 선생님들의 의도가 엿보인다. 많은 경우 기말고사 이전까지 다룬 내용 중 하나를 선택하여 심화된 정보를 탐색하여 발표하는 활동으로, 추측건대 발표를 한 학생은 특정 교과 개념을 이러이러한 맥락에 적용함으로써, 즉, 광폭의 전이를 함으로써 교과 개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줬다는 식의 내용이 발표한 학생의 과세특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데, 그 아이는 정말 광폭의 전이를 한 것일까. 혹은 누군가가 이미 개념적 이해를 발휘하여 정리해 둔 정보를 수동적으로 정리하기만 한 것일까. 발표자의 발표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점검하는- 그리하여 그 학생이 실제로 자기 주도적으로 개념을 전이시킨 것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기는 한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과세특을 작성하느라 제대로 된 쉼을 갖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문득, 일전에 게재하였던 글에 달린 한 선생님의 댓글이 떠오른다. 정체성의 혼란이 엿보이는 댓글이다.

 

“…. 성장하는 과정을 생기부에 적어주려고 하면, 성장 이전에 부족했던 부분에서 글을 시작해야 하는데, 학생과 학부모는 그것을 부정적인 평가라고 생각하고, 생기부에 좋은 말만 적어달라고 합니다. 생기부만 보면 다들 신적인 존재죠….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고 하면, 네가 애들 인생 책임질 거냐며 비난합니다.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게 교사가 아이들 인생을 책임지는 걸까요…? (중략) 이젠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두서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돈다. 이제는 정말 터널 비전에서 벗어나 교육자의 길을 걷고 싶은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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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Ranganath, C. (2024). Why we remember: Unlocking memory’s power to hold on to what matters. Knopf Doubleday Publishing Group.
  2. 인간의 장기기억은 방대한 정보망의 형태로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기억의 연합적 속성(associative nature)에 의해, 특정 정보가 활성화될 경우 유관 정보가 이에 의해 덩달아 활성화될 수 있다. 이때 유관 정보를 활성화하는 정보를 인출단서라고 할 수 있다.
  3. 작업기억은 3~4단위(unit)의 정보만을 처리할 수 있다.
  4. 물론, 추상화와 정보 압축이 적절한 형태로 이루어졌을 때 이러한 순기능이 나타난다. Holyoak와 Thagard는 개념적 이해에 의한 고차원적 사고와 관련된 인지적 기제를 설명한 그들의 책을 ‘정신적 도약’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Holyoak, K. J., & Thagard, P. (1994). Mental leaps. MIT Press.)
  5.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smashing-the-brainblocks/202103/fight-or-flight-which-is-better-choice
  6. 이러한 한계는 자신의 시각에 대한 한계를 인식할 수 있는 지적 겸손함과 다양한 관점에 대한 열린 태도, 그리고 개개인이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의 전문가를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사회 시스템을 요구하게 된다.
  7. Jonathan Haidt (2024). The Anxious Generation: How the Great Rewiring of Childhood is Causing an Epidemic of Mental Illness. Penguin Press. 한국어판 제목 [불안 세대] (웅진지식하우스).
  8. ‘셀프 카메라’의 줄임말. 셀피(Selfie)의 한국식 표현으로, 자기 자신을 찍은 사진을 의미한다.
  9. Jonathan Haidt에 의하면 신체적 이미지에 근거한 자기검열과 자기 검증은 소년보다 소녀에게 유의미하게 더 많이 관찰된다.
  10. 이혜정 (2014).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다산에듀.
  11. Arendt, Hannah. 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1963) London, Penguin Books. 괄호 안의 표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에 의해 더해짐.
김해 삼문고등학교 수석교사 김새로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의 대학원에서 인지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리서치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였고 이후 영어 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EBS의 ‘최고의 영어 수업’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으며, EBSi의 고등학교 심리학 강의를 맡아 하기도 하였다. 현재 김해삼문고등학교에서 수석교사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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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김혜진 수정 삭제

    정말 공감하며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혼자만의 생각이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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