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혁신은 교사의 자부심과 긍지 회복부터!
| “교사가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사가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려면 국회와 정부, 교육청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질문이 미래를 위한 수업혁신, 학교개혁, 교실혁명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본문 발췌) |
공교육은 무상이다. 하지만 사교육은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므로 공짜가 없다. 사교육비의 핵심은 교육적 가치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대학입시에 있고, 대학입시는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는 개인의 욕망과 직결되어 있다. 미래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 학부모는 아이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면 나중에 사회에서 더 높은 지위를 누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의대 열풍 속에도 불안한 미래를 살아갈 아이에게 밥과 사회적 인정이라는 안전판을 만들어 주기 위한 부모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따라서 학교와 학원의 본질적 차이는 돈에 있다. 그런데 이 돈의 효용을 두고 우리는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세계에 살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무엇이 진실인가보다 무엇을 진실로 믿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사교육의 효용이란 하나의 허상이지만, 우리는 이 허상을 소비한다.
학교와 학원이 똑같은 수업을 학생에게 제공한다면, 학교 수업처럼 누군가에게는 학원 수업이 유용하고 누군가에게는 유용하지 않다. 어떤 학부모는 돈을 낭비하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이는 공부하러 학원에 갔고 공부하면 언젠가 성적이 오른다고 믿고 또 기대하기 때문이다. 한편 학교보다 학원이 아이의 역량을 효율적으로 길러준다면, 그 학원은 학부모에게 훨씬 많은 돈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수능처럼 소품종 대량 생산에 최적화된 학원은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에서는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 기존 학교는 그런 학원으로 대체되거나 하급 기관으로 변질되고 어쩌면 사라질 수도 있다. 반면 학교가 학원보다 좋다면 학원은 효용이 없으므로 학원이 사라져야 한다. 사교육비를 줄이려면 학교 교육을 더 좋게 만들면 된다. 이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교육적 가치의 충돌과 현실의 이해관계는 학교의 학원화 및 학원의 학교화를 만들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학교와 학원은 서로 기대며 공존하고 있고, 이 공존 체제가 유지되려면 학교와 학원이 비슷하게 나빠야 한다. 이 공존 체제에서 학교는 편안하게 현상을 유지하고 학원은 돈을 번다. 학교가 좋아지면 학원이 망하고 학원이 좋아지면 학교가 망한다. 서로 지금보다 더 좋아지지 말고 낮과 밤을 나누어 학생을 맡아서 데리고 있거나, 재학생과 N수생으로 나누어 각자 영역을 유지하는 선택이 현재의 생존 방식이다. 수시와 정시도 그런 이해관계의 산물이다. 그래서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거의 매년 나오고 있지만 그런 대책으로는 사교육비가 줄지 않는다. 아마 정부도 별 기대 없이 그저 발표만 할 것이다. 다만 뭔가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정부와 교육청은 허수아비 같은 정책을 반복적으로 내놓는다. 정부가 사교육비를 줄이고 싶다면 현상 유지를 위한 학교와 학원의 나쁜 공존 체제를 허물어야 하고 그렇게 할 방법은 많다. 예산을 좀 더 쓰고 법령을 조금 고치면 가능하다. 정부가 정말로 사교육비를 줄이고 싶다면,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사교육비를 줄이고 싶다면 말이다.
교육적 가치의 충돌, 현실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만들어 낸 학교와 학원의 공존 체제는 다양한 형태의 괴리를 만들었다. 부모와 학부모의 괴리, 이미 오래전 사어(死語)가 된 스승과 교사의 괴리, 제자와 학생의 괴리는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교사와 학부모의 균열, 교사와 교장의 균열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현 정부와 교육청은 모든 아이의 역량을 키우는 맞춤형 및 개별화 수업을 실현하기 위해 인공지능 시대의 디지털 교과서와 에듀테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내신도 학원에서 준비하고 수능도 인터넷 강의를 통해서나 학원에서 준비한다. 이러한 괴리는 학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상실로 나타나고 있지만 아무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작년 여름 거리에서 보았던 교사들도 법을 고쳐서 민원 업무처리 방식을 바꾼 뒤에는 보이지 않는다. 신뢰와 자부심은 교사에게도 이미 포기한 가치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학교와 학원은 무엇이 다를까. 학교 선생님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학부모는 학교와 학원이 다르지 않거나 학원이 더 효율적이고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선택에서도, 대학입시에서도 그렇다. 그들에게 학원은 학교처럼 필수적으로 가야 하는 곳이고, 학교가 학원 수업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준별 수업과 맞춤형 수업은 학원 특구에서 찾을 수 있다. TV 드라마에서는 학원 선생님이 교육적 가치를 대변하고, 교육청의 온라인 학교는 대규모 학원의 인터넷 강의를 모방하고 있다. 어떤 학원 선생님은 학생을 제자라고 표현하고, 어떤 학교 선생님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공공 서비스 제공자와 수용자라는 직업적 관계로 축소한다. 학교의 학원화와 학원의 학교화는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지만, 정부와 교육청이 이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교사의 자부심과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교사도 스스로 나서지 않는다. 그 결과 학교와 학원의 공존 체제는 수시/정시 구분에 맞춰 공고하게 이어지고 있고, 학교 교육의 질적 제고와 학부모의 신뢰 회복은 요원하다. 학교는 학원과 달라야만 존재 이유가 있다. 학교와 학원의 나쁜 공존 체제를 깨야만 교사가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그래야만 더 나은 학교 교육을 만들기 위한 진정한 교실 혁명을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교사들은 내신 상대평가 5등급을 절대평가로 되돌리고, 대학입시를 정규 교육과정이 끝난 후 시작하도록 9월 수시모집을 없애라고 정부와 국회에 요구해야 한다. 교사라는 직업의 자부심은 여기서 출발한다. 직업적 자부심이 없는 교사가 모여 있는 학교에서는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다. 디지털 교과서도 교실 혁명도 뜬구름일 뿐이다. 이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학교 제도의 역할과 존립을 재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교사의 자부심은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원동력이며, 그래야만 더 좋은 학교 교육을 만들기 위한 아래와 같은 정책적 시도를 해볼 수 있다.
1. 인큐베이팅 스쿨(Incubating School): 학생 혹은 건물 혹은 교사가 없는 학교
2. 완전한 학교 자치
3. 전국 단위 온라인 수업 플랫폼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결된 수업 모형
4. 과학, 컴퓨터, 외국어 공유학교
5. 교육청 단위 교육과정 개발 및 새로운 평가 시스템
6. 서술형 평가 학교 그룹
7. 폐교 대학을 활용하여 다수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구성된 캠퍼스형 학교 설립
8. 특목고보다 가고 싶은 특성화고 설립: 기업 연계형 (자동차, 에너지, 클라우드)
9. 중고통합학교
10. 지자체-교육청-대학 미래교육위원회 구축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
11. 교사의 전문성 제고 및 재교육
12. 교육청 조직 축소 및 교육행정 거버넌스 개편▸ 교사의 책임과 권한을 규정한 교권과 책임 선언
▸ 학생의 책임과 권리 선언
▸ 교사의 행정 부담 소수 집중제
▸ 문서를 기안하고 집행하는 교감, 교장13. 새로운 교사 양성을 위한 교육청, 사범대 협약
▸ 학과제에서 광역 학과제: 복수 과목 교사 양성
▸ 전체 정원 조정 및 지역 사범대 쿼터
▸ 교사 재교육 기관 지정: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과정14. 교육청 소속 중규직/정규직 교사: 법률 개정
15. 중고-대학-기업 연계 VR, AI, 코딩, 메이커 교육
새로운 교육 정책도, 대학입시 개혁도, 자부심을 가진 교사가 없다면 실현되지 못한다. 우리는 누구나 소방관의 노고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교사의 노고는 폄하되고 있다. 교사가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사가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려면 국회와 정부와 교육청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질문이 미래를 위한 수업 혁신, 학교 개혁, 교실 혁명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