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괜찮아
| “오랜 은둔으로 자신감이 없는 청년, 진로를 고민하며 방황하고 있는 청년, 가족의 도움 없이 공부와 일을 병행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 등 청년 모두의 ‘일경험’을 응원하며 마음속으로 말을 건네었다. ‘느려도 괘찮아!'” (본문 발췌) |
지난 3년간 ‘(사)청소년과나란히’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장면에서 청년들을 만났다. 2022년에는 고립·은둔 청년들과 함께 자화상을 그리며 자기를 이해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2023년에는 ‘노원청년교육지원협의회’의 구성원으로서 ‘청년 함께서기’ 사업의 상담사로 활동했다. 다른 상담사들의 일지까지 모아 200여 건의 기록을 범주화하고 다시 스토리텔링하여 <청년, 안녕하십니까?>라는 사례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2024년에는 ‘청년 함께서기’ 사업이 더 확대되고 체계화되었는데, 전년도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 기업의 후원이 늘어난 결과 전담 인력이 확보되었고 지역 연계도 활성화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접근하지 못했던 사각지대 청년들이 발굴되고 있고 ‘일경험’과 같은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도 시작되었다. 올해는 필자가 청년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역할을 맡았기에 ‘일경험’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청년들을 관찰하기로 했다.
비 오는 토요일이라 평소보다 일찍 나왔지만 길이 무척 막혔다. 애타는 마음으로 열심히 차를 몰아 4분 전에야 교육 장소인 ‘노원구 청년일자리센터 청년내일’에 도착했다. 숨을 몰아쉬며 교육 장소를 둘러보니 참가인원 6명 중 딱 1명만 도착해있었다. 담당 선생님 말씀으로는 청년들이 노원이나 도봉에 살아서 주로 버스를 이용하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교통체증으로 지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담당 선생님과 등록대에 나란히 앉아 청년들을 기다렸다. 첫 모임부터 지각을 하게 된 청년들의 마음이 얼마나 초조할지 염려되었다. 2시가 조금 지나자 유리문 너머로 한 명씩 나타났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열림 버튼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그리고는 “여기가 맞아요?” 하며 쭈뼛쭈뼛 들어왔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등록대로 곧장 오자, 담당 선생님이 웃으며 문 옆의 우산꽂이를 가리켰다. 다들 긴장했는지 바로 보이는 우산꽂이를 지나치는 모습이 귀여웠다.
청년들은 등록부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서명을 했다. 소속을 적는 칸에서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청년 외에는 멈칫하다 이내 볼펜을 놓았다. 하나둘씩 자리에 앉은 청년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안내문을 읽어보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2시 10분이 되자 한 명을 제외하고 자리가 채워졌다. 앞으로 나가 음악을 끄고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다. 먼저 두세 명씩 짝을 지어주고 서로 인터뷰하도록 안내했다. 청년들은 책상을 가까이 붙이고 앉아 이름과 ‘일경험’ 참여 이유, 배정받은 일터, 걱정되는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5분 정도 지나자 마지막 청년이 어린 자녀와 함께 도착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동동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같이 왔다고 했다. 활동가 한 분이 다른 공간에서 아이를 대신 돌봐주기로 하셨고, 청년은 자리에 앉아 짝꿍 인터뷰에 합류했다.
보통 강의를 할 때 자기소개 대신 이 짝꿍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참가자들의 긴장을 풀어주어 빠르게 분위기가 부드러워지는 효과가 있어서다. 경계선 지능인이나 장애인이 함께 있을 수도 있기에 본인이 직접 자기소개를 하기 어려운 경우 ‘SOS’라고 속삭이면 짝꿍이 대신 읽어주는 규칙을 마련하고 이를 매번 설명해 주고 있다.
발표 시간이 되자 크고 밝은 목소리로 유창하게 설명하는 청년들도 있었고, 떨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말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SOS’라고 도움을 청한 한 청년의 짝꿍은 당황하지 않고 이 친구의 소개를 대신 해주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배려하며 함께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일경험’을 신청한 이유는 진로 고민 중인데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수당이 생활에 도움이 되어서, 기관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서 등 다양했다. 매칭된 일터는 도서관, 카페, 청소년 식당, 미술학원, 동네 배움터였다. 개개인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맞춤형으로 일터가 배정되었고, 일터 발굴이 어려운 경우 유사 직무로 연결되었다.
짝꿍 소개를 한 뒤에는 짝꿍에 대한 첫인상도 말하게 했다. 다정해 보인다, 적극적인 모습이 보기 좋다, 햄스터같이 귀엽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을 보니 부지런할 것 같다 등 낯선 이에게서 칭찬이 흘러 나오자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짝꿍 인터뷰 시간 다음으로는 사무국장님이 ‘(사)청소년과나란히’ 단체 소개와 ‘일경험’ 프로그램의 취지, 활동 시간과 수당, 활동 중간중간 필수로 참여해야 하는 교육, 수당 지급을 위한 제출 서류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제출 서류 양식이 한글파일로 되어 있어서 혹여나 컴퓨터 사용이 어려운 청년이 있을까봐 속으로 조마조마했는데 손으로 적어서 제출해도 된다고 하셔서 다행이었다.
다시 차례를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비즈니스 매너 교육을 진행했다. “안녕하세요.” 크게 여러 번 외치는 연습을 시켰다. 말끝을 흐리지 않고 명료하게 끝맺는 연습도 했다. 하찮아 보이는 업무도 일터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설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멘토와의 소통이 중요하니 수시로 보고를 하라고 강조했다.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청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경험이 전무한 청년들은 필기를 했다.
다음으로는 첫 출근 복장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A4용지에 상의, 하의, 신발, 가방, 헤어스타일, 악세서리, 메이크업 등을 그린 후 한 명씩 발표했다. 주로 긴바지에 단정한 티셔츠를 입고 운동화를 신겠다고 했다. 카페에서 일하게 된 청년은 손톱 청결에 대해 의견을 주었고 미술학원에서 일하게 된 청년은 타투가 가려지도록 긴옷을 입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아까 짝꿍 소개를 하지 않고 ‘SOS’ 요청했던 청년의 차례가 되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맞추며 이번에는 발표해 보겠냐고 물었는데 답이 없었다. 그래서 그려놓은 그림과 메모를 보고 하나씩 질문했는데 계속 답이 없다가, 상의 옆에 적어놓은 공룡과 강아지라는 단어를 짚으며 무슨 뜻인지 물으니 갑자기 큰 소리로 “등에 공룡이 그려진 거랑 강아지 그려진 거 중에 뭘 입을지 고민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청년들이 바로 “강아지요! 강아지 입어요!” 외치며 박수쳤다. 뒤에 앉아있던 활동가들도 함께 박수를 치면서 잘했다고 격려했다.
담당 선생님과의 사전회의 때 청년들이 일터에서 주로 고객 응대나 대민 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들었다. 그래도 나중에 사무직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 활용할 수 있도록 전화와 이메일 예절도 교육했다. 전화가 왔을 때 메모하는 방법과 이메일을 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안녕하세요.’로 시작해서 ‘감사합니다.’로 끝나야 하며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먼저 명확하게 밝히고 용건을 말하는 것이 매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제시간에 시작했다면 상황극을 하며 연습해 봤을 텐데 시간이 모자라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PPT 화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일터에서도 잘할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명씩 돌아가며 오늘의 소감을 짧게 발표했다. 더 긴장된다는 청년도 있었고 자신감이 생겼다는 청년도 있었다. 그동안 유사한 교육을 진행했을 때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소감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고민이 있거나 대처하기 어려울 때 일터의 멘토 선생님, 기관의 상담 선생님, ‘일경험’ 사업 담당 선생님 모두 도와줄 수 있다고 설명하며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청년들을 배웅하면서 안색을 살펴보니 마지막으로 자녀와 함께 도착했던 청년의 얼굴이 가장 극적으로 밝아져 있었다. 그의 자녀가 이런저런 선물을 손에 쥐고 방에서 나와 “여기 다음에 또 놀러 오자.”고 말해 다함께 크게 웃기도 했다.
청년들이 모두 귀가하고 다섯 명의 활동가들이 모두 모여 평가를 나눴다. 지역의 다양한 기관에서 연계된 청년들이라 기본적인 신상 정보와 스스로 작성한 신청서, 이전 상담 기록을 미리 검토할 수 있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전반적으로 밝고 적극적이어서 걱정을 덜었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공룡과 강아지 티셔츠였다고 입을 모았다.
그때 교육학을 가르치시던 한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김샘, 교육의 효과는 언제 나타날지 몰라요. 당장 내일일 수도 있고 30년 후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영영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죠. 교육자는 그래도 교육을 이어가는 사람이에요.”
오랜 은둔으로 자신감이 없는 청년, 진로를 고민하며 방황하고 있는 청년, 가족의 도움 없이 공부와 일을 병행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어 사회에 나가기 두려운 청년, 화려한 치장을 하고 눈치를 보는 청년, 슬픔으로 웃음이 지어지지 않는 청년, 모두의 ‘일경험’을 응원하며 마음속으로 말을 건네었다.
“느려도 괜찮아.”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재)삼성꿈장학재단에서 11년간 국내 교육복지사업, 아시아·아프리카 국제개발협력사업, 고등학생 긴급지원 장학금, 대학생 근로장학금, 출판 등을 담당했다. 재직 시 역량을 키우고자 청소년 지도사 자격을 취득하였고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행정과 질적연구방법을 공부하였다. 2022년에 <문화기획 서로>를 창업하여 서울 양천구에서 작업실을 운영하며 청년, 경력단절 여성, 장애인을 위한 문화기획과 예술교육을 실험하고 있다. (사)청소년과나란히에서 서울 노원 지역의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강의, 연구,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