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육데이터 개방·활용 확대 방안’은 지나치게 정부 위주이다
| “교육부는 더 개방적이며 확산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 “지금 내놓은 대안은 교육부가 속에 숨긴 아젠다를 ‘과학과 객관적 증거’로 포장하여 밀어붙이겠다고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 (본문 발췌) |
교육부가 ‘교육데이터 개방·활용 확대 방안’을 내놓았다. 데이터가 ‘미래 핵심 자원’이므로 쓸모 있게 활용할 방도를 시급히 찾아야겠다고 말하며, ‘증거 기반 사회정책 수립’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교육정책 과학화’라는 말도 썼다.
주먹구구 정책보다는 ‘증거 기반’ 정책이 물론 더 타당할 것이다. 적어도 덜 마구잡이일 터이다. 데이터가 증거 기반의 벽돌이 되어주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일상 대부분이 디지털로 찍혀 ‘불멸의 데이터’로 남는 현실에서, 그 자원을 요긴하게 쓸 방안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이유가 충분하다 해서 ‘데이터 개방과 활용을 확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떠벌리기 전에 그런 작업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부터 해야 할 것이다. 교육부의 발표는 ‘생각’ 없이 나온 듯해 걱정스럽다.
교육부의 방안은 ‘국정과제’에 부응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보도자료 벽두에 ‘대통령 말씀’을 내걸고 있다.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플랫폼정부 구현”이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데, 관련한 대통령 말씀은 이렇다고 적혀 있다.
“단순히 기존 전자정부를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부의 데이터가 민간의 서비스와 자유롭게 결합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는 어떤 것일까? 데이터를 자원이라고 부를 때는 ‘돈’이 되는 가치를 염두에 두기 십상이지만, 그렇게만 국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데이터로는 좋은 정책을 낳고 국민 복리를 증진하는 가치도 일굴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이나 교육부의 발상은 성급하다. ‘새로운 가치’니 ‘증거 기반’ ‘과학화’니 하는 구호를 외치기 전에 데이터가 무엇인지부터 숙고해야 한다. 그저 데이터는 모두에게 똑같은, ‘그냥 있는’ 것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데이터는 중립적이지 않다. 광물처럼 발견돼 활용되기를 기다리는 자원이 아니다. 수능이나 신용카드 등 수많은 장치나 제도가 데이터를 생성하고 있다. 이들 데이터에는 모종의 ‘뜻’이 이미 들어 있다. 그것을 산출하는 제도나 기기 등의 태생에 들어있던 의도들이다. 이를테면, 수능에는 ‘성취도’에 대한 대입제도의 공인이 들어 있고, 신용카드에는 소비를 쉽게 만들기 위한 자본주의적 속내가 들어 있다.
어떤 데이터를 개방하고 그것을 적극 활용하라는 데는 당연히 그 데이터에 담긴 의도가 관철되도록 조장하거나 방관하는 의도 역시 따라붙는다. 교육부가 이번에 발표한 정책은 이 점을 알고 노리는 것인지, 모르고 순진하게 유행을 따르는 것인지 알 길 없다. 정부의 계산이 어떤 것이든, 데이터의 개방과 활용은 신중해야 한다. 정보가 개인적이고 민감한 것들이어서만 그런 게 아니다. 그 이전에 데이터는 ‘이념과 권력’을 지니고 있다.
교육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 하나로 살펴보자. 지난 5월 24일 교육부는 교육부가 지원하는 ‘사교육정책연구센터’와 함께 ‘사교육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사교육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사교육 경감을 위한 정책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행사였다. 이곳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객관적·과학적 연구’ 결과란 말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다: “방과후 학교가 사교육보다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더 우월하다.” 교육부는 이런 “사항 등을 반영하여 학업 성취 효과가 높은 방과후 학교를 더욱 활성화”하겠다는 계획까지 밝혔다.
교육부의 ‘방과후 학교 활성화’ 계획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과연 객관적이고 과학적인가? 결코 그럴 리 없다. 그 연구에서 ‘방과후 학교’니 ‘사교육’이나 ‘학업 성취’니 하는 말은 모두 관련 행위를 특정한 절차와 방법으로 ‘숫자화’한 것을 가리킨다. 그 일은 물론 연구자의 가정을 따른다. 연구자는 ‘이론적인 근거’라고 하겠지만, 여전히 특정한 가정이다.
토론회에서 발표한 세 경제학자가 왜 하필 그런 데이터의 그런 변수들을 그런 함수로 엮어 분석했을까? 데이터가 그런 것밖에 없었고, 이론적으로 그런 함수가 최적이었다고 해명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연구 결과를 정책의 ‘기반’으로 삼는 것은 무리이며 간계이다. 분석에 동원된 데이터와 그 가공 그리고 분석의 모든 과정과 결과에 정부의 ‘아젠다’와 권력이 암암리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교육’은 정부가 사교육비를 조사할 때 적용하는 항목들에 대해서 지출한 것만일 것이다. ‘방과후 학교’ 역시 정책으로 지원되고 있는 어떤 프로그램들에 국한할 가능성이 크다. ‘학업 성취’ 역시 비슷할 것이다. 공식적으로 조사된 결과일 것이고, ‘학업 성취도’라고 일반화하기엔 매우 미흡한 측정값일 것이다. 이런 데이터의 분석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산출할 수 있을까? 분석 대상이 된 학생이 어떤 학생들이며, 그 표집은 얼마나 큰지 등 관련된 여러 조건을 더 헤아려 본다면, “방과후 학교가 사교육보다… 우월하다”고 결론짓는 게 얼마나 무모할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교육부가 데이터를 개방하고 활용하여 증거 기반의 정책을 편다고 할 때, 그 데이터와 증거에는 이미 정부의 ‘생각과 힘’이 작용하고 있다. 데이터나 분석의 틀 등이 모두 정부의 정의(定義)와 논리에 구속될 것이다. 이를테면, 수능 성적이 객관적으로 타당한 ‘성취도’ 지표일 수 없다. 1994학년도 수능과 2024학년도 수능은 엄청나게 다르다. 2028학년도에는 더욱 달라질 것이다. 성질상 매우 다른데도 그 점수들은 매우 중요한 성취도 지표로 일관되게 공인될 것이다. 그리고 맹렬한 분석 대상이 될 것이다. 이때 분석의 방향이나 틀 역시 정부의 필요를 따라가기 십상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따라가지 않는다면 그 분석 결과는 ‘정책 기반’으로 간택되지 못할 것이다. 정부의 연구 지원 대상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교육부는 더 개방적이며 확산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가 숨겨왔던 데이터를 개방하고 활용하도록 시혜를 베풀겠다는 식의 대안은 궁극적으로 ‘개방과 활용’을 위한 것이 못 된다. 데이터 정책은 다양한 이해(利害)와 가치를 품은 데이터가 정부 밖에서 활발히 생성되고 분석되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데이터 생산과 분석 활용에서 대학과 연구기관 그리고 시민 사회 등의 재량을 넓혀주어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데이터로 생명을 얻고, 정책의 증거 기반도 실질적일 수 있다. 지금 내놓은 대안은 교육부가 속에 숨긴 아젠다를 ‘과학과 객관적 증거’로 포장하여 밀어붙이겠다고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
<교육 제4의 길> 편집실에서는 논급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안에 대하여 적절한 형식으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