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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스승의 날 특집] ‘스승의 날’, 학생들에게 물었다

#1057 편집실, <교육 제4의 길> 편집진 2024.05.16
“스승의 날 특집을 준비하며, ‘교육 제4의 길’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여기에 보고하는 조사 결과는 스승의 날에 즈음한 성찰에 꽤 유익한 자료가 되리라 믿습니다.” (본문 발췌)                                                  

 

 

스승의 날 특집을 준비하며, ‘교육 제4의 길’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질문 네 개를 만들어 생각을 간단히 적어달라고 부탁하는 조사를 시행했습니다. 구글 폼즈(Google Forms)라는 도구를 이용했습니다.

 

자발적으로 ‘질문지’에 접속해 응답하는 방식이라 조사에 응해줄 학생이 많지 않을 것을 염려해서,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연줄을 동원했습니다. 저희 활동을 이해하시는 선생님들께 ‘홍보’를 부탁했습니다. 조사는 제법 규모 있게 이루어졌습니다. ‘일반적인’ 경향을 읽는 데 심각한 무리는 없으리라 짐작합니다.

 

고등학생의 경우 서울, 부산 울산, 제주 등의 지역(11개 학교)에서 107명의 대답을 얻을 수 있었고, 중학생은 서울, 부산, 인천, 경기, 강원, 전북 등의 지역(13개 학교)에서 312명의 대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 숫자이면 이번 조사 결과가 제법 믿을 만한 정보를 주리라고 기대할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물론, 전국 ‘대표적인’ 표집이라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에서 부탁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이미 치우친 표집일 테고, 그런 선생님들의 홍보에 호응해 준 학생들 또한 치우친 표집일 터입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는 ‘평균’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금 치우쳤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조사의 방법이나 도구의 제약도 작지는 않습니다. 매우 간단한(그러나 가볍지는 않은) 질문을 몇 개만 던져야 했고, 학생들에게는 버거울 수 있는 ‘서술식’ 응답을 요구해야 했습니다. 모은 대답의 분석은 기본적으로 ‘정성적’이어야 하기에, 여기 보고하는 내용도 ‘객관 타당한’ 것과는 거리가 있겠습니다.

 

이런저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보고하는 조사 결과는 스승의 날에 즈음한 성찰에 꽤 유익한 자료가 되리라 믿습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는 곱씹을수록 유익한 뜻을 내놓을 듯합니다.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을 따라가며 대답을 살펴보겠습니다. 정리에서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구분합니다. 학생들의 응답을 예비적으로 검토하면서, 학교급에 따라 대답의 ‘질’이 다른 점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질이 다른 집단의 이야기를 평균해 버리면, 특히 두 집단의 크기가 크게 다른 상황에서, ‘사실’을 왜곡할 위험이 있으리라 판단했습니다.

 

 

1. ‘스승’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조사 결과를 한눈에 개관해 보려고, 먼저 그림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학생들의 서술형 대답에서 핵심어들만 골라 투입해서 그림으로 집약하도록 분석한 결과입니다.

‘스승’ 하면 학생들은 대체로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을 떠올린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사이에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위 그림에서도 ‘학교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 같은 말들이 도드라집니다. 스승이라는 말에 공경이 뜻이 좀 더 강하게 들어 있다면, 학생들이 학교 선생님에게 대체로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해석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학생이 압도적인 다수는 아니란 점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고등학생 사이에 차이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고등학생에게서는,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대답 못지않게, 스승으로 불릴 만한 요건을 기술하는 대답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대답들은 대체로 ‘인생’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대답의 예들에서는 아래와 같은 묘사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인생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인생의 경로를 잡아주는’, ‘인생을 가르쳐 주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인생의… 내비게이션’,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을 주시는’, ‘인성을 길러주시는’, ‘내 인생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신’

 

선생님은 당연히 잘 가르쳐 주셔야 하지만, 더 나아가 사적인 맥락에서 학생들의 인생을 건드려 주어야 비로소 ‘스승’으로 여겨질 수 있으리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학생들의 대답이지만, 흘려버리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답들이 있습니다. 세 가지 경우가 돋보입니다.

 

먼저, ‘스승’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는 대답입니다. 중학생은 40명, 고등학생은 17명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비율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각각 13%와 16% 정도 됩니다. 무시해도 될 비율은 아닐 것입니다. 5명에 1명 가까이가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스승이라 여길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이 곧 선생님의 탓이지는 않습니다. 구조적이거나 제도적인 여건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해서 방관할 수는 없을 터입니다.

 

둘째로 눈이 가는 응답 경향은 ‘사교육’ 맥락에서 스승이 언급되는 것입니다. 그림에서도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경우 모두 ‘학원 선생님’이 작지 않게 불거져 있습니다. 관장님이나 사범님 같은 단어들도 보입니다. 학생들은 조금 더 긴밀한 관계에서 스승을 느끼는 듯합니다. 학생들의 ‘인성’이나 ‘인생’에 가닿는 측면에서도 사교육의 영향력은 작지 않을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족 안에서 스승을 떠올리는 사례입니다. 부모님, 엄마, 할머니 등을 언급합니다. 물론 많지 않지만 적지도 않은 빈도입니다. 가족을 적시하지 않고 다만 부모님 같은 ‘배려’나 ‘보호’ 그리고 ‘관심’ 등을 스승의 요건으로 이야기하는 사례들까지 함께 고려하면, 스승을 ‘가족적인’ 관계에서 찾는 경향은 미미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학생들이(특히 중학생의 경우) 스승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다고 넘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무지’에서 온다고 하더라도, 그 무지는 ‘모르는’ 사태가 아니라 교육을 ‘달리 인식하는’ 사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학생들에게 ‘스승’은 과거의 스승이 아닐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보고 있는 응답 경향은 교육상의 좀 더 깊은 변화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학교 교육의 공공성이 쇠잔해 가는 징후일 수도 있습니다.

 

 

2. 스승의 날에 특별한 계획은?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마음’을 전할 계획을 세운 학생은 반도 되지 않습니다. 중학생의 경우, 조사에 응한 312명 가운데 141명(45%)이 계획 ‘있다’고 대답했고, 고등학생의 경우엔 이 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조사에 참여한 107명 중 41명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38% 정도입니다. 굳이 중고등학생을 묶어 평균을 내본다면 약 43%로 계산됩니다. 학생들의 대답에는 과거의 경험을 적은 것도 있어서, 올해의 계획에 국한한다면 숫자는 좀 더 낮춰 읽어야 할 듯합니다. 중고등학생의 과반은 스승의 날을 특별한 ‘의례’ 없이 지내게 된다고 보아도 무리 없을 듯합니다.

 

예전 스승의 날을 ‘거국적으로’ 기념하던 때는 당연히 거의 모든 학생이 ‘행사’에 참여했고, 적어도 ‘날’의 취지에 대해서는 전해 듣고 지나갔을 터입니다. 물론, 자발적인 계획에 따른 경험은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여러 이유로, 예전에 비해 지금은 학생들이 좀 더 자발적으로 스승을 기리게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학생이 스승의 날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지내게 된 현실은 새삼 성찰을 요구합니다.

 

일반화해도 될지 확신은 서지 않습니다마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면서 스승의 날은 더 퇴색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고등학생들이 계획을 갖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서 말입니다. ‘세상’을 알아갈수록 선생님에게서 스승을 보는 일이 더 드물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됩니다. 단순하게 보면 스승의 은혜는 성장하면서 더 깊이 느끼게 될 듯합니다마는, 그런 일은 실지로 일어나지 않는 듯합니다.

 

스승의 날 학생들의 계획은 대체로 감사 인사의 ‘이벤트’를 꾸미는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듯하고, 개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조금 있는 듯합니다. 중학생의 경우 ‘방문’이란 단어가 제법 많이 보이는 것은 의외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지리상 가까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의 대답을 아래에 그림으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3. 학교 선생님들을 떠올릴 때 드는 생각이나 느낌은? 

 

학생들이 직접 겪은 선생님들에 대해서도 질문했었습니다. ‘스승’이라는 말의 거리감을 소거하고, 학교 다니며 만난 교사들에 대해 ‘생각이나 느낌’을 적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래 그림은 학생들의 반응을 역시 그림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학생들의 대답은 대체로 호의적입니다. 그림에서도 ‘존경과 감사’의 언어들이 굵게 드러납니다.

 

‘존경’으로 표출되는 생각과 느낌은, 고등학생의 경우, ‘모범’을 보았다는 이야기들과도 연결되고, ‘열정적인 수업’과도 연결되는 듯합니다. 중학생들의 응답까지 함께 보면, 선생님들이 교사가 될 수 있었고 또 자신들과 같은(다루기 어려운) 학생을 가르치고 이끌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는 점 자체에 대한 외경도 보입니다. 대단하고 멋지다는 표현들이 눈에 띕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보살핌과 배려 또는 관심을 받았다는 뜻이 들어 있는 듯합니다. 따뜻함, 착함, 도움과 같은 표현들이 서로 엮이리라 짐작됩니다.

 

학생들이 선생님과 가졌던 관계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또 안도하더라도, 학생들 소수의 생각과 느낌이지만, 다소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대답들도 놓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스승의 날에 새삼 교사 자신을 돌아볼 이유를 제기합니다.

 

위 그림에서도 작은 글자들을 자세히 살피면 보일 것입니다. 무서움, 두려움, 나쁨, 악당, 몰이해 등과 같은 말들입니다. 고등학생의 응답에서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마음을 드러낸 것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몇 개를 아래 옮겨 적습니다.

 

• “교사라는 직업 자체를 사랑하는 선생님도 계셨고, 어쩌다 보니 교사를 선택했다고 느껴지는 선생님도 계셨다.”
•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신 선생님들은 그게 느껴진다. 반면에 수업 준비 안 하고 대충 수업하시는 선생님들의 수업은 별로다.”
• “… 어떠한 경우에도 …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기 위해 수업을 열심히 준비하시는 선생님이 떠오르지만, 학생들을 제대로 도와주지 않고 …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자기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시는 선생님들도 떠오른다.”
•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애들을 가르치려는 사명이 아니라 그냥 돈 벌려고 선생님하는 거 같다. 수업도 딱 할 만큼만 하고, 애들한테도 관심… 별로 없고 맨날 퇴근하고 싶다는 소리만 하고, 자기는 시험문제 다 내서 논다고 우리 약 올리기나 하고. 학생인지 선생님인지….”

 

 

4. ‘훌륭한 선생님’은 어떤 분?

 

‘훌륭한 선생님’의 요건을 이야기하는 데서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차이는 크지 않아 보입니다. 모두 일차적으로 ‘잘 가르쳐야’ 한다는 요건을 듭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조건만 독립적으로 들지는 않습니다. 다른 조건을 결부시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인성 함양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부만 아닌, 전인적인 향도(嚮導)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인성의 함양에 대한 바람에 버금해서 학생들이 훌륭한 선생님의 조건으로 드는 것은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뜻의 중첩이 없지 않습니다마는, 학생들이 바라는 ‘관계’는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공감’하고 ‘소통’해 주는 것, 내가 ‘의지할’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 그리고 ‘차별 없이’ 모든 학생을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각 방향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중학생의 해당 응답들에 들어 있는 핵심적인 어구를 옮겨보겠습니다.

 

• ‘공감해 주시는’, ‘이해해 주시는’, ‘이야기를 잘 들어 주시는’, ‘귀 기울여 주는’, ‘의견을 놓치시지 않는’, ‘눈높이를 맞춰주시는’
• ‘내 곁에 있어 주시는’, ‘도와주는’, ‘격려해 주시는’, ‘학생을 포기 않는’, ‘친구 같은’, ‘먼저 말 걸어주는’
• ‘차별하지 않는’, ‘무시하지 않는’, ‘공평한’, ‘평등하게’, ‘성적과 성격에 관계없이’, ‘아이 하나하나를 정성 다해’

 

고등학생 경우도, 쓰는 표현이 중학생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바람의 뜻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등학생들의 어구들도 정리해 봅니다.

 

• ‘공감해 주는’, ‘소통하려 노력하는’, ‘적극적으로 이해해 주고’, ‘수평적인 대화가 가능한’, ‘강요하지 않는’, ‘선입견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귀 기울여 주시는’
•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인 지주’,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도 할 수 있는’, ‘필요할 때 도움 주는’, ‘힘든 일 있을 때 조언’
• ‘차별하지 않는’, ‘차별 없이’, ‘모든 학생을 보살피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서로 비슷하게 ‘훌륭한 선생님’을 그리고 있지만, 고등학생들 대답에서만 보이는 단어들이 몇 있습니다. 전문성, 중용, 엄격함, 리더십, 카리스마 같은 것들입니다. 교사에게 전문적인 수월성을 기대하는 바를 중학생보다는 더 드러내는 듯합니다. 그리고 좀 더 일반적으로, ‘모범’이 될 만한 선생님을 더 자주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말들을 합니다.

 

• ‘학생이 스스로 닮고 싶어 하는 사람’, ‘올바른 인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행할 수 있는 사람’, ‘깊이감이 있는 사람’, ‘전문적이고 열정적인 사람’
• ‘엄격하면서도 정확한’, ‘겉으로는 훈계하나 속으로는 자상한’, ‘수업에 대해 성찰하는’

 

개별로 보면 학생들의 대답은 조각조각입니다. 한 학생의 대답에서 ‘훌륭한 선생님’의 총체적인 상(像)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학생의 이야기를 두루 곱씹어 보노라면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나는 상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전인’(全人)의 상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는 전인교육이라는 용어마저 진부해졌지만, 교육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상입니다.

 

학생들은 ‘지식’을 이야기하고 ‘잘 가르치는’ 전문성도 이야기합니다. ‘인생’과 ‘인성’ 그리고 ‘올바름’도 이야기합니다.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차별 없는’ 처사도 기대합니다. 선생님이 학생과 더불어 ‘계속 성장’하기도 바랍니다. 이런 학생들의 바람을 엮어 그린다면 실로 온전한 인간의 상이 아니 나올 수 없을 듯합니다. ‘훌륭한 선생님’은 곧.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받은 인간’이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다시 교육의 원점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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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제4의 길> 편집진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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